파평윤씨 vs 청송심씨 |
한국의 400년 '묘지분쟁', 해외토픽 화제조선시대 명문가문인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이른바 '묘지 분쟁'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4일(현지시간) 윤씨와 심씨 문중의 이른바 '조상묘 다툼'이 400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묘지분쟁의 역사를 해외토픽으로 보도했다.
통신은 두 문중이 400년동안 분쟁을 벌여오다 최근 파평 윤씨인 윤관 장관 묘역에서 청송 심씨 조상묘 19기를 이장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고 전했다.
두 문중의 묘지분쟁은 1614년 영의정을 지낸 청송 심씨 심지원이 고려시대 명장이었던 윤관 장군의 묘역에서 불과 몇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쪽으로
문중 묘역을 조성하면서 묘역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심지어 당시 임금이었던
영조까지 나서 두 문중의 화해를 주선했지만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150여년이 지난 뒤 윤씨 문중 가운데 일부가 심씨 조상 묘역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두 문중의 다툼은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다
결국 2년전 청송 심씨의 조상묘를 이장하는 대신 이장에 필요한 땅을 윤씨 문중이 제공하는
것으로 양측이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파평 윤씨 문중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윤패일씨는 로이터 통신과의인터뷰에서 "400년 가깝게 오래 지속된 두 문중의 묘지분쟁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피력했다.
심씨 문중의 대표도 "마침내 올해 400년 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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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심지원 묘 대형 회곽 노출
조부 심종침 묘 회곽은 높이만 2m 청송심씨 묘역의 이장(移葬)을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효종시대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1593-1662)과 그의 조부 심종침(1553-1614) 묘의 회곽(灰槨)을 노출하고 그 규모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형식 또한 독특하며 지석(誌石) 배치도 특이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왼편에 첫째 정실부인 안동권씨, 오른편에는 두번째 정실부인 해평윤씨를 나란히 놓은 3중 회곽 구조임이 확인됐다. 가운데를 차지한 심지원은 북쪽을 향해 돌출해 마치 사각형 톱날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이 중 심지원 회곽은 길이 264㎝에 위쪽 폭 128㎝에 아래쪽 폭 76㎝이며, 안동권씨 회곽은 길이 243㎝에 폭 90㎝, 해평윤씨 회곽은 길이 250㎝에 폭 103㎝이었다. 그 이전에 돌아가신 분은 인근 지역에 가묘처럼 따로 만든 곳에 시신을 봉안해 두었었음을 문집이라든가 신도비 등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지석은 봉분 앞쪽 어딘가에 묻혀있다 홍수로 유실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부인 단양오씨와 나란한 쌍분(雙墳) 중 하나로, 봉분을 걷어낸 결과 같은 회곽이지만 심종침 한 사람만을 안장한 단곽(單槨)으로 규모는 길이 300㎝에 폭 150㎝로 조선시대 단곽 회곽묘로는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장을 위한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발굴조사에는 당초 예정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아울러 발굴조사를 완전히 끝낸 다음 이장할 것인지, 아니면 회곽 전체를 그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장할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송심씨와 파평윤씨 두 집안간 묘역 다툼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두 집안은 한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장기간의 묘역 쟁송(爭訟)을 벌이다가 최근 파평윤씨 쪽에서 청송심씨 묘역으로 조성할 부지 2천500평을 조건없이 기증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조선시대 영의정 묘가 마침내 내부를 드러냈다.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산 4-1 번지 일대
두 묘의 회곽 규모는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무덤의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심지원 묘는 가운데 심지원의 시신을 안치하고 전면에서 보아
더욱 독특한 점은 회곽을 평면 장방형으로 마련하되,
회곽 전체 규모는 높이 150㎝ 정도였으며(전체 폭은 321㎝),
조사단의 이헌재 학예연구사는 "이들 세 분의 회곽은 나중에 한꺼번에 만들었으며,
심지원 묘에서는 청화백자로 구워 만든 지석 3장이 수습됐다. 하지만 지석 자체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지석은 모두 16장을 만들어 봉분에 안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예사는 "지석은 봉분 북쪽(제1장)과 동쪽(제2장), 그리고 서쪽(제14장)에서 각각 확인됐으며,
심지원 묘 바로 뒤쪽(북편)에 자리잡은 그의 조부 심종침 묘는 그 오른편에,
심종침 묘 회곽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높이가 무려 200㎝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조사단은 "이렇게 높은 회곽은 아직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송심씨 묘역에서는 이 외에 심지원의 아버지 심설 부부를 비롯한 다른 묘에 대해서도
이처럼 청송심씨 묘역의 회곽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드러남에 따라
이번 발굴조사는 조선 영조시대 이후 무려 250년 가량이나 계속된
청송심씨 묘역 바로 앞쪽에는 국가사적이면서 파평윤씨 중시조인 윤관 장군의 묘역이 위치한 관계로
- 연합뉴스(08.5.15), 김태식기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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