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파주 파평윤씨(윤관 묘) / 청송심씨(심지원 묘)의 산송(山訟)

Gijuzzang Dream 2007. 12. 25. 23:51

 

 

 

파평윤씨 vs 청송심씨
양 문중 묘지다툼 '400년만의 화해'



조선시대 명문가였던 파평윤씨와 청송심씨간에 400년 묵은 '산송(山訟 · 묘지에 관한 다툼)'이

두 문중 후손들의 화해로 막을 내리게 됐다.  

▲ 윤관장군 묘와 영의정 심지원의 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 장군 묘역(사적 323호) 주변.  

 뒷쪽이 청송 심씨 묘이고, 앞쪽 윤관장군 묘는 돌담으로 가려져 있다.

 

지난 12월23일 경기도와 중앙문화재위원회는

두 문중간의 화해정신을 기리고 두 종중의 타협안을 존중해 묘지 이전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두 문중은 청송심씨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 장군묘역 내에 조성된

청송심씨 조상묘 19기를 이장하고

파평윤씨는 이장에 필요한 부지를 제공한다는 조건에 합의한 뒤 행정절차가 끝나

내년 3월에 묘지 이장을 시작할 예정이다.


두 문중간 묘지 다툼은 무려 400년 동안 지속돼 온 것으로

한때 영조가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최근까지도 돌담 설치 문제, 조망권 문제, 산소 훼손 문제 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었다.  

 

▲ 윤관장군묘

 

두 문중의 묘지 다툼은 

1614년(광해군 6) 청송심씨의 수장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1593∼1662)이

고려시대 명장이었던 윤관장군(?~1111) 묘 바로 위에 부친 묘를 조성한 뒤

일대 땅을 하사받아 주변에 문중 묘역을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파평윤씨 일가는 이에 반발해 100여 년이 지난 1763년(영조 39) 윤관 장군 묘를 되찾겠다며

심지원 묘를 일부 파헤쳤고, 청송심씨 일가가 이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오랜 다툼으로 번져 현재에 이르게 됐다.

 

두 문중은 모두 조선시대 왕비를 4명, 3명씩 배출한 외척 가문으로

당시 영조는 고민 끝에 윤관 장군묘와 영의정 심지원 묘를 그대로 받들도록 해

두 문중의 화해를 구했으나 파평 윤씨 일가가 이에 불복해

심지원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매를 맞아 죽는 등 원한만 깊어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두 묘가 3m 남짓 떨어져 있는 데다 윤 장군의 묘역에 2m 높이의 돌담이 설치돼

심지원 묘의 앞을 가리는 등 조망권 문제로 후손들의 다툼이 이어져 왔다.

    ▲ 심지원과 심씨 종중묘 


이러한 산송 문제가 2005년 청송 심씨 심지원의 묘 등 19기를 이장하기로 협의했다.

현재 윤관 장군의 묘역에서 불과 3m 정도 떨어져 있던 심지원의 묘 등 청송 심씨 조상의 묘를

현재 위치에서 120여m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대신

파평 윤씨 문중이 9천여㎡를 청송 심씨 문중에 제공하기로 해 가능해졌다.

 

경기도와 중앙문화재위원회도 현 상태로 원형을 살려 이전한다는 조건하에 타협안을 가결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앙숙이 된 양쪽 문중으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심재인 경기 제2청 문화복지국장의 특이한 이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심 국장은 “아내가 파평 윤씨의 후손이고 나는 청송 심씨의 후손이어서

양쪽 문중의 중재 요청이 거셌다”며

“경기도 문화재위원회가 8번씩이나 현상변경 허가신청을 반려했으나

이전할 도문화재의 현 위치에 비석 등의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옮겨가는 곳에도 이전 경위를 밝히는 비석을 세우는 등의 보완 조처를 거듭했고

1년여에 걸친 문중 간 대타협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 2007년 12월24일, 주요일간신문 기사

 

 

 

 한국의 400년 '묘지분쟁', 해외토픽 화제

 
조선시대 명문가문인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이른바 '묘지 분쟁'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4일(현지시간) 윤씨와 심씨 문중의 이른바 '조상묘 다툼'이
400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묘지분쟁의 역사를 해외토픽으로 보도했다.
통신은 두 문중이 400년동안 분쟁을 벌여오다
최근 파평 윤씨인 윤관 장관 묘역에서
청송 심씨 조상묘 19기를 이장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고 전했다.

두 문중의 묘지분쟁은 1614년 영의정을 지낸 청송 심씨 심지원이
고려시대 명장이었던 윤관 장군의 묘역에서 불과 몇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쪽으로
문중 묘역을 조성하면서 묘역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심지어 당시 임금이었던
영조까지 나서 두 문중의 화해를 주선했지만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150여년이 지난 뒤 윤씨 문중 가운데 일부가 심씨 조상 묘역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두 문중의 다툼은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다
결국 2년전 청송 심씨의 조상묘를 이장하는 대신 이장에 필요한 땅을 윤씨 문중이 제공하는
것으로 양측이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파평 윤씨 문중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윤패일씨는 로이터 통신과의인터뷰에서
"400년 가깝게 오래 지속된 두 문중의 묘지분쟁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피력했다.
심씨 문중의 대표도 "마침내 올해 400년 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드디어 두 문중의 후손들이 완전한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 2007-12-25 워싱턴=CBS 박종률 특파원 nowhere@cbs.co.kr 

 

 

 

 

 

 영의정 심지원 묘 대형 회곽 노출

 
최초의 영의정묘 발굴
(파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시대 영의정묘로는 처음으로 발굴에 들어간 경기 파주 광탄면 분수리 심지원(沈之源.1593-1662) 묘.
가운데 앞쪽으로 돌출한 부분이 심지원, 그 오른쪽이 첫번째 부인 안동권씨, 왼쪽이 두번째 정실부인 해평윤씨를 안치한 3중 회곽묘다.


 

조부 심종침 묘 회곽은 높이만 2m

조선시대 영의정 묘가 마침내 내부를 드러냈다.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산 4-1 번지 일대

청송심씨 묘역의 이장(移葬)을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효종시대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1593-1662)과

그의 조부 심종침(1553-1614) 묘의 회곽(灰槨)을 노출하고 그 규모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두 묘의 회곽 규모는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무덤의 그 어떤 것보다 크고,

형식 또한 독특하며 지석(誌石) 배치도 특이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원 묘는 가운데 심지원의 시신을 안치하고 전면에서 보아

왼편에 첫째 정실부인 안동권씨, 오른편에는 두번째 정실부인 해평윤씨를 나란히 놓은

3중 회곽 구조임이 확인됐다.

더욱 독특한 점은 회곽을 평면 장방형으로 마련하되,

가운데를 차지한 심지원은 북쪽을 향해 돌출해 마치 사각형 톱날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회곽 전체 규모는 높이 150㎝ 정도였으며(전체 폭은 321㎝),

이 중 심지원 회곽은 길이 264㎝에 위쪽 폭 128㎝에 아래쪽 폭 76㎝이며,

안동권씨 회곽은 길이 243㎝에 폭 90㎝, 해평윤씨 회곽은 길이 250㎝에 폭 103㎝이었다.

조사단의 이헌재 학예연구사는 "이들 세 분의 회곽은 나중에 한꺼번에 만들었으며,

그 이전에 돌아가신 분은 인근 지역에 가묘처럼 따로 만든 곳에 시신을 봉안해 두었었음을

문집이라든가 신도비 등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원 묘에서는 청화백자로 구워 만든 지석 3장이 수습됐다.
하지만 지석 자체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지석은 모두 16장을 만들어 봉분에 안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예사는 "지석은 봉분 북쪽(제1장)과 동쪽(제2장), 그리고 서쪽(제14장)에서 각각 확인됐으며,

나머지 지석은 봉분 앞쪽 어딘가에 묻혀있다 홍수로 유실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심지원 묘 바로 뒤쪽(북편)에 자리잡은 그의 조부 심종침 묘는 그 오른편에,

그의 부인 단양오씨와 나란한 쌍분(雙墳) 중 하나로,

봉분을 걷어낸 결과 같은 회곽이지만 심종침 한 사람만을 안장한 단곽(單槨)으로

규모는 길이 300㎝에 폭 150㎝로 조선시대 단곽 회곽묘로는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종침 묘 회곽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높이가 무려 200㎝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조사단은 "이렇게 높은 회곽은 아직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송심씨 묘역에서는 이 외에 심지원의 아버지 심설 부부를 비롯한 다른 묘에 대해서도

이장을 위한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청송심씨 묘역의 회곽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드러남에 따라

발굴조사에는 당초 예정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아울러 발굴조사를 완전히 끝낸 다음 이장할 것인지, 아니면 회곽 전체를 그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장할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조사는 조선 영조시대 이후 무려 250년 가량이나 계속된

청송심씨와 파평윤씨 두 집안간 묘역 다툼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청송심씨 묘역 바로 앞쪽에는 국가사적이면서 파평윤씨 중시조인 윤관 장군의 묘역이 위치한 관계로

두 집안은 한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장기간의 묘역 쟁송(爭訟)을 벌이다가

최근 파평윤씨 쪽에서 청송심씨 묘역으로 조성할 부지 2천500평을 조건없이 기증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 연합뉴스(08.5.15), 김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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