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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광주이씨(칠곡) - 옛 종가를 찾아서 (2)

Gijuzzang Dream 2007. 12. 14. 19:33

  

 

 ■ '승정원 사초(承政院 史草)'  

 

 

 

 이담명의 <승정원일기 사초> : 현종 13년(1672) 6월 18일-숙종 1년(1675) 윤 5월 8일까지

 

 

조선 현종-숙종 시대에 국왕 앞에서 기록된 '승정원사초(承政院史草)' 161책이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에 의해 최근 영인(影印), 탈초(脫草)가 마무리됐다.

 

'승정원 사초(承政院 史草)'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나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원고격인 사초(史草)류로,

원래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소재하는 광주이씨(廣州李氏)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 1622-1680) 종가에 세전(世傳)되다가 그 존재가 최근에야 겨우 알려져,

2002년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전량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됐다.

 

이들 사초류는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承政院,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 담당관인 주서(注書)였던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이

현종 13년(1672) 6월 18일부터 숙종 1년(1675) 윤 5월 8일까지

조선정치사를 상세히 기록한 초서체 원본이다.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명신이자 이원정의 아들인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이

승정원이나 춘추관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관리로 재직할 때 작성한 것이다.

 

사초는 원칙대로라면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작성에 활용되었다가

 해당 역사서가 편찬 완료되면 세초(洗草)되어 없어져야 하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 자료를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관련 기록과 비교 검토한

김경수 청운대 교수는 상당 부분에서 합치되는 대목을 발견하고는

"이 사초는 실록 편찬 때 원본자료로서 제출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가 편찬, 완성된 과정을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되었으며,

승정원 주사의 역할이 사실상 춘추관의 사관에 맞먹는 기능을 수행했음을 확인하게 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날림 글씨체인 초서(草書)로 기록된 이 문건에 대한 정리작업에 착수해

2004년 12월에 '경주이씨가 승정원사초Ⅰ'을 발간한 데 이어,

최근에는 그 Ⅱ편을 펴냄으로써 161책 전체에 대한 정리작업을 완결했다.

 

자료집은 원전을 실물대로 촬영한 원문편과

그것을 정서(正書)로 풀어쓴 정서본(正書本)의 세트로 구성함으로써 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원문 탈초에는 고문서 전공인 박병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비롯해

규장각 양진석 김경숙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문숙자 연구원 등이 참가했으며,

사초류 문건에 대한 전반적인 해제는 서울역사박물관 김문택 박사가 맡았다.

김문택 박사는 이번 자료집이

"국왕 앞에서, 그것도 그 현장에서 작성된 사초라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의의가 대단히 크고,

나아가 승정원일기나 실록을 편찬하는데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통상 사초류는 승정원일기나 실록을 편찬한 뒤에는 없애 버리기 때문에

현전 실물자료로는 규장각 소장 <인조무인사초(仁祖戊寅史草. 37책. 작자미상, 1638년, 인조 16년)>와

이류(李瀏, 1662-1716)의 <춘추관일기(春秋館日記)>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인조무인사초(仁祖戊寅史草): 1638>

 

따라서 이번에 정리가 이뤄진 이담명 문건은

분량 면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사초류 중 가장 방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이담명 사초류에는

'임자 6월18일 임진 청(壬子六月十八日壬辰晴)' 이라는 식으로

해당 문건이 기록된 연대(1672)와 월일(6월18일), 일간지(임진일) 및 날씨(맑음)가 기록되어있고,

'입시일기(入侍日記)'라든가 '입시초책(入侍草冊)'과 같은 표현을 씀으로써

국왕 앞에 입시해 쓴 기록임을 밝혀주고 있다.

 

김문택 박사는

"겉장에 대개 붓으로 원을 그려둔 점으로 볼 때 이 문건이 초본(草本)임을 알 수 있다"면서

“조선 선비들은 원본을 필사할 때,

그 여부를 표기하기 위해 해당 문서 앞부분에 원을 그려두곤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 사초류에 의하면

이담명은 '주서(注書)'라든가 '춘추관(記事官) 기사관(記事官)' 등의 기록 담당 직책을 맡았다.

- 2006년 3월 19일 일간신문 기사

- 자료사진은 기주짱 추가.

 

 





- The Prayer / Ceci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