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서울시립미술관] 2. 반 고흐의 수채화

Gijuzzang Dream 2007. 12. 11. 03:57

 

 

 

 Vincent van Gogh (1853~1890)


고흐는 네덜란드 빈민촌 브라반트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맏 아들로 태어났다.

특이한 사실은 그가 태어나기 꼭 1년전에 태어난 형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한 그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그 슬픔을 차남(지금의 고흐)이 태어난 후에도 지우지 못하고

매일같이 죽은 큰 아들의 무덤을 찾았고
어머니의 애정이 부족함을 느낀 고흐의 맘 한구석에는 항상 슬픔과 울적함이 있었다.

그의 소년기의 생활과 모습은 누이동생이 쓴 '회상의 고흐'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고흐가 그 당시 미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그의 동생 테오가 있어서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동생 테오는 고흐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고흐는 동생 테오가 보내오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800여 통에 이른다고 한다.

1869∼75년에는 미술품 상점의 점원이었으며, 그 뒤 어학교사가 되었고,

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공부 (암스테르담대학 신학부)를 하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한 뒤 처참해진 밑바닥에서 화가의 길을 찾았다.

동생 테오도르는 형을 믿고 항상 형의 생활을 도왔는데, 고흐는 죽을 때까지 동생의 보호를 받았다.

그 후 탄광지대에서 J.F. 밀레 등의 판화를 모사해 가며 지내다가

80년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86년 빈곤, 병고, 실연의 상처를 안고 파리에 나와 루브르미술관을 출입하면서

로트렉, 드가, 고갱 등과 알게 되어 인상파의 색채,

신인상파의 점묘와 화면의 고전적 질서를 배워 탄기의 초상(1887) 등을 그렸다.

88년 2월 남프랑스의 아를로 옮겼는데, 이곳의 밝은 광선은 그의 새로운 시각상을 완성시켜

종전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색채의 조화를 가지는 역학적인 색면구성으로 일변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 고갱을 초청하여 함께 생활하였다.

그 동안 이젤 앞의 자화상(1888), 해바라기(1888), 아를의 여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

아를의 도개교(1888) 등 불과 15개월 동안에 2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곳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정신병의 발작을 일으킨 그는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스스로의 귀를 잘라 버렸고,

그 뒤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권총 자살로 90년 7월 30일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그림은 긴 선, 짧은 선, 파도와 같은 곡선, 그리고 점들이 통일을 이룬 가운데서도

저마다 천변 만화의 꿈틀거림이 보이며 작품 하나하나에 불꽃 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와

눈부신 색채로 그려져있다.

그는 후기 인상파의 특색 있는 화가로서 1903년 그의 유작전 이후 위대한 화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화풍은 20세기 초의 야수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Praha ... Flight Od Winter Bird   
 

 
출처  :  

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