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민통선 문화유산 기행] 18. 한반도의 배꼽, 오리산 上

Gijuzzang Dream 2007. 12. 9. 13:53
 

 

 

 

 

 

 

 (18) 한반도의 배꼽 ‘오리산’ (上)  

-화산 · 용암평야… 고인류의 출현-


 

철원 동주산성에서 바라본 오리산 모습. 왼쪽엔 평강고원,

뒷쪽엔 장암산, 오른쪽엔 낙타고지가 보인다. 철원/이상훈기자


“저기 낙타고지(432.3m) 보이죠. 낙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죠.

그리고 바로 옆 자그만 산 보이죠.”

철원평야와 저 멀리, 갈 수 없는 땅 이북의 평강고원이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는 곳.

동주산성(해발 360m) 정상에서 바라본 이북의 모습이다.

이우형씨(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연구원)가 잘 보라고 손을 가리킨다.

“어디요. 저기 낙타고지 뒤에 있는 큰 산?”
“아니 그건 한탄강 발원지인 장암산(1052m)이고요.

낙타고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산, 저기가 바로 오리산이에요.”

오리산(鴨山)이라고?

그저 동네 뒷산처럼 야트막한 산인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구릉이라고 여기고 흘려버렸을 저기가 오리산?

“맞아요. 저기가 한반도의 배꼽이라는 오리산입니다.”

# 한반도의 배꼽, 고인류의 어머니

해발 453m밖에 안되는 산인 데다 이곳(동주산성)의 해발도 360m나 되니 그렇게 낮게 보이는 것인가.

먼 발치에 볼 수밖에 없기에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너머에는 또 다른 화산의 흔적인 검불랑(680고지라고 함)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내륙지방에서 발견되는 거의 유일한 휴화산인 점도 흥미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오리산은 단순한 휴화산이어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고인류와 구석기문화, 그리고 지금과 같이 빼어난 절경을 탄생시킨 어머니 산이다.

그러나 갈 수 없는 땅, 이북에 자리잡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자 일행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해서 사진을 찍으려 무진 애를 썼다.

허락을 받아야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민통선 이북 철원평야를 이리저리 달리고 또 달렸다.

카메라 포인트를 잡기 위해서였다.

군용 차량과 출입을 허락 받은 농사꾼들이 다니는 시원한 도로. 하지만 허탕이었다.

위성으로 본 오리산 분화구 모습. 분화구 안에 북한군 시설물이 보인다.

<출처:구글 어스>

그다지 높지 않은 오리산을 가까이서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다만 이리저리 달리다가 도로 가장자리에서 죽어버린 구렁이(족히 3m는 되는 것 같았다)만 목격했을 뿐.

무심코 지나치다가 구렁이를 발견한 이우형씨가 급히 승합차를 급후진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불쌍한 구렁이가 길을 건너다가 화를 당한 게 분명했다.

민통선 이북 지역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각설하고, 결국은 1시간의 헛수고 끝에 동주산성에서 찍은 사진이 그래도 가장 양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오리산을 배꼽산이라 했어요.”
평야지대에 불쑥 솟은 분화구가 마치 배꼽을 닮아서인가.

그런데 왜 이 오리산을 한반도 고인류의 어머니 산이라 하는가.

# 가장 젊고 예민한 땅

우선 한탄강, 임진강 유역의 특징을 살펴보자.

이곳이 포함된 이른바 추가령구조대는 제주도, 울릉도, 백두산 등과 함께 가장 젊은 지층이다.

가장 역동적이고 민감한 지층이기도 하다.

지질학자들은 한반도가 원래는 하나의 땅덩어리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 2억3000만년 전 북중국지판과 남중국지판이 충돌해서 합쳐진다.

중국의 충돌대가 한반도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평남분지와 경기육괴가 만나는 임진강대,

그리고 영남육괴를 가르는 옥천대라는 것이다.

대륙충돌을 뒷받침하는 고압성 광물인 각섬암이 발견되는 곳이

바로 임진강 유역인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와 한탄강 부근 도로변인 포천군 관인면 중리란다.

포천군 삼율리의 고남산 자철광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서로 다른 습곡대 충돌의 중심부가 임진강, 한탄강이었으니 ‘민감한 곳’일 수밖에.

그러니 이 지역 땅 밑 깊숙한 곳이 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지역은 용암의 분출구가 된다.

백악기 중생대때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나

지금의 천하명산 보개산군을 탄생시킨 것은 너무 먼 옛날 이야기다.

그런데 4기 홍적세(20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를 일컫는다.

인류가 등장했던 시기)때 한반도 내륙, 즉 평강 오리산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니었다. 최소한 10번 이상 뜨거운 마그마를 분출시킨다.

그런데 오리산의 화산 분출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대한 폭발,

즉 증기와 용암이 폭발하는 스타일(중심분출이라 한다)이 아니다.

벌어진 지각 틈에서 마그마가 꿀렁꿀렁 흘러나오는 열하(熱하)분출이었다.

이 경우엔 주로 점성이 약한 현무암질 마그마가 흘러나오게 된다.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화산체(백두산이나 한라산 같은)는 형성되지 않는다.

다만 흐르는 용암이 엄청난 평원을 이루게 된다.

아하! 이것이 명색이 화산이라는 오리산의 정상이 주변보다 ‘불과’ 140m밖에 높지 않은

분화구를 갖고 있는 이유구나! 그러니 구릉인지, 화산인지 잘 모를 수밖에….

평강읍에서 5㎞ 떨어진 오리산에서 마지막으로 용암(마그마)이 꾸역꾸역 분출한다.

용암은 추가령과 전곡 도감포 사이의 낮은 골짜기를 메우기 시작한다.



 

# 용암의 바다가 빚어낸 절경

지금의 철원과 평강, 이천, 김화, 회양 등 무려 2억평(650㎢)에 달하는 지역이 용암의 바다로 변한다.

낮은 곳을 찾은 용암은 포천~연천을 지나 검불랑에서 흘러온 용암과 합류한다.

용암은 무려 97㎞를 스멀스멀 흘러 경기 파주시 화석정에 도달해서는 그 긴 여행을 끝낸다.

한편 평강·철원 일대를 뒤덮은 용암이 식으면서 광활한 현무암 대지가 형성된다.

이것이 유명한 철원평야다. 용암이 흘러간 포천-연천-파주 지역도 좁은 용암대지가 생긴다.

그런데 빙하기를 겪으면서
평강 · 철원 지역에 두꺼운 빙하가 덮이게 되는데

간빙기가 되자 빙하가 녹기 시작한다.

진원지 오리산이 있는 평강의 현무암층이 가장 두꺼운 것은 당연한 일.

평강~철원~포천~연천~파주로 이어지면서 용암 두께가 얇아졌을 것이다.

 

지금 보면 평강은 해발 330m, 철원은 220m 정도 된다.

지금 동주산성에서 보면 철원쪽보다 높은 평강고원을 저 멀리 한 눈에 볼 수 있다.

어쨌든 고도가 높은 평강 · 철원에서 녹기 시작한 빙하가 흐를 곳은?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액체 상태 마그마가 고체 상태의 현무암으로 식자 수축작용이 일어났다.

그러자 흐르는 용암과 맞닿았던 원래의 지형과 수축해버린 현무암 대지 사이에 틈이 생길 수밖에.

흐를 곳을 찾은 물은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렀다.

오리산 쪽에서 흐른 물은 한탄강이 되었고,

검불랑 쪽에서 내려온 역곡천과 평안천은 다시 임진강과 합쳤다. 그곳이 바로 경기 전곡 도감포다.

물이 흐르면서 온갖 조화를 부린다.

마그마와 현무암 대지, 그리고 물이 연출하는 절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서 한반도의 선사시대가 열린다.

바로 약 30만년 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사용했던 고인류가 이곳에서 출현한 것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오리산. 너무도 작고 수수하기만 한 우리네 어머니와 같지 않은가.
- 2007년 7월 6일 경향〈이기환 선임기자 / 김화 · 철원평야에서〉

 

 

 

 

 

 

 

 

 

  

분단 직전엔 정상 분화구서 농사도

“사흘 한나절 갈이였어.”
예전, 즉 분단 직전에 오리산 정상 분화구에서 농사를 지은 주민의 말이다.

하루갈이가 한 1500평 된다고 보면 휴화산 분화구의 규모는 5000평 정도다.

갈 수 없는 땅. 사진 찍기도 어려운 곳이므로 위성사진으로 바짝 당겨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분화구 안에 건축물 2동이 보인다. 북한군 요새가 틀림없다.

뜨거운 용암을 꾸역꾸역 토해냈던 그 분화구에 흉흉한 군사시설물이 들어선 것이다.

갈 수 없어, 그래서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인가. 더욱 애틋한 느낌이 든다.

가장 취약한 열섬지점(오리산)에서 지각 운동의 뜨거운 날숨을 토해냈다.

평형을 이루려는 자연의 조화는 오묘했다.

2억3000만년 전 대륙 충돌의 에너지는 서에서 동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오리산의 용암은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듯 역방향, 즉 동에서 서로 흘렀다.

그리고 두 대륙판의 충돌부, 즉 부딪친 상처의 환부에 켜켜이 쌓이며,

절경을 빚어냈고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가장 젊은 지층이지만,

우리 문명에 엄청난 풍요와 역동의 드라마를 일구면서 늘 중심의 몫을 해왔다.

비록 작지만 우리 국토의 배꼽이요, 상징적인 지리적 정중앙의 자격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게 중요한 공간임을 깨닫기까지 역사의 굴레가 너무도 모질었다.

지금도 철조망 너머 지척의 거리인 북한의 평강고원 지평선에 아련히 솟아 있다.

그러니 연구가 된 적이 없다. ‘오름’의 어근인 ‘올’의 변형태인 오리산.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킨다.

물론 역시 화산이 빚어낸 제주도의 비경이 아름답다지만

돈 없고, 시간 없는 이들은 반드시 제주도에 갈 필요가 없다.

어머니산인 오리산이 낳은 무릉도원이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지천에 깔려 있으니 말이다.

이념의 굴레에 얽혀 제대로 된 조사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여지는 풍경만으로도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오리산의 그 넓지 않은 분화구 안에 남북한이 모이는 날이 오겠지.

그곳에서 감격의 눈물바다로 질펀해진 참소통을 이루겠지.

그날은 오리산이 벅찬 감동의 용암을 분출하는 날이며,

그 감격의 용암바다는 흘러흘러 남북이 그어놓은 휴전선을 녹이는 날이 될 것이다.
〈이우형 / 한국국방문화재硏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