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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섬, 민통선
책에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담기면 ‘보는 책’이다.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면 ‘읽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면 ‘감동을 주는 책’이고 밑줄 그을 정보가 그득하면 ‘유익한 책’이다.
비무장지대(DMZ) 역사기행집인 ‘분단의 섬 민통선’은 앞서 언급한 책의 특징들을 두루 갖추었다. 넓적하고 두툼해 제법 무겁기도 한 이 책을 휘리릭 넘기면 화려한 컬러사진, 꼼꼼하게 그린 지도가 눈길을 끈다.
책 내용을 살펴보자. 머리말부터 심상찮다. 눈요기용 사진에다 헐렁한 해설 몇 줄을 덧붙인 여느 관광안내서 같은 책이 아니다. 한반도 중심부에서 펼쳐진 수천 년 역사의 파노라마를 조망하는 저자의 진지한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오늘날 남북 분단 상황의 문제의식까지 담았다. 표지를 다시 들추니 아스라이 보이는 군사분계선 너머 북녘 사진이 다가오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역사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역사 현장을 답사하는 한편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도 한다. 전공 분야가 ‘전쟁 고고학’이라 하니 이 책의 저술 방향과 꼭 맞는 듯하다. 저자의 경력과 수련 자세가 믿음직스러워서인지 이 책은 학술적 분위기를 풍기는 르포르타주의 백미(白眉)처럼 여겨진다.
저자는 2년 반 동안 국방문화재연구원의 이재 원장과 이우형 조사팀장 등 전문가와 함께 비무장지대에서 발품을 팔며 문화재를 살폈다.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어서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곳곳에 깔린 지뢰 때문에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이 책은 6부로 나뉘어 한반도의 역사 흐름을 더듬는다. 제1부 ‘문명의 탯줄’에서는 30만년 전 한탄강 유역의 장면이 나온다. 구석기 시대에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기구는 돌을 다듬거나 갈아서 썼다. 1977년 4월 미공군에 근무하는 그렉 보웬 병사가 한탄강 부근(경기 연천군 전곡리)을 애인과 함께 거닐며 데이트하다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무심코 보면 돌덩어리에 불과한데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청년의 예리한 눈은 사람이 깎은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에 사람이 산 역사 흔적은 3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주먹도끼는 국제학계에서 공인받았고 세계고고학 지도에 등재됐다. 이 구석기를 쓴 사람들이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4300여 년 전의 단군이 아득한 옛날의 신화상 인물로 여겨지는 판에 30만년 전에 한탄강변에서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물적 증거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상상력은 엄청나게 넓어진다.
제2부 ‘난세의 여울’을 펼치면 역사시대로 성큼 접어든다. 임진강, 한탄강, 한강이 어우러진 이 유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세력을 다투던 무대였다. 고구려 유리왕의 핍박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온 온조가 세운 초기 백제(하남위례성) 터는 지금 서울 올림픽공원 부근이었다. 풍납토성이 그 유적이다. 온조는 하남위례성 이전에 하북위례성에 먼저 자리 잡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그러나 아직 하북위례성 유적은 규명되지 않았다.
덤프트럭을 몸으로 막다
이 책은 경기 연천군 적성읍 임진강변에 위치한 육계토성이 하북위례성인 것 같다고 밝혔다. 1996년 여름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 탓에 지표가 쓸려 내려가면서 땅 밑에 있던 유물이 무더기로 드러난 일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본 여러 전문가는 “풍납토성 모양과 흡사한데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하북위례성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발굴조사 요원이었던 황소희 한양대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의 무용담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주민들이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갖고 와 정지작업을 하려 했는데 황 연구원이 흙을 쏟으려던 덤프트럭을 몸으로 막았다. 젊은 여성의 기개가 문화재를 보존한 것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박진감을 주는 것은 저자가 지뢰와 불발탄이 질펀하게 깔린 비무장지대를 누볐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군 당국의 허가를 얻어 들어갔다. 현장 주민의 증언과 전설, 설화를 반영한 점도 생동감을 더해준다. 후삼국 시대의 영웅 궁예가 웅지를 펼쳤던 철원평야에서 구전 설화를 채집해보니 궁예를 숭모하는 민심이 면면히 이어 내려온다. “궁예는 포악한 군주”라는 평가는 역사의 승리자인 고려 왕조가 과장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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