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유흥문화공간 - 다방 낙랑파라(樂浪parlour)
위치 : 당시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 현재의 소공동에 위치.
『삼천리』 1933년 10월의 기사에 의하면
'낙랑파라(樂浪parlour)' 는 1931년에 개업했다.
주인은 동경 우에노 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한 화가 이순석이다.
'낙랑파라(樂浪parlour)' 의 이름은
강서(江西) 고구려 문화의 정화(精華)를 따다가 관사(冠辭)를 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2층 건물로 아래층은 끽다점(喫茶店), 위층은 아틀리에로 사용하였다.
입구에는 파초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슈베르트와 같은 예술가의 사진과 영화배우의 사진, 그리고 뎃생을 걸어 놓았다.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많이 모였고 일본촌과 가까워 일본인들도 많이 드나들었으며
맛있는 차와 케이크 등을 팔았다.
매주 금요일에는 빅타 레코드의 신곡이 발표되었고, 명곡 연주회도 매주 두어 번 열렸다.
‘괴테의 밤’ 과 같은 모임과 전람회도 열었다.
이후 김연실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상호를 '낙랑(樂浪)' 으로 변경하였다.
김연실이 맡아 경영한 낙랑은 1940년까지 이어진다.
김연실이 마담이 된 후에는 특히 예술인들의 안식처이자 창작의 장소로 자리 잡아
특히 문예파들의 이용이 잦았다. 낙랑의 주 음악은 세레나데, 스코틀랜드, 스페인 무용곡 등이었다.
기존의 다방이 적자를 면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거의 처음으로 수지맞는 경영을 하였는데
이 이유를『청색지』에 실린 「동경다방성쇠기」라는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공에 주인(主因)을 생각해보면
장소를 대담한 곳에 안친 것이 의외로 성공하야 내지인 손을 많이 끌 수 있었고
또한 종로근방 차점에 가장 큰 폐단이었던 기생이나 주정꾼 출입이 태무(殆無)하야
다객의 취미에 적당한 기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등에 있지 않엇든가 한다.
금요일마다 명고신보를 돌리고
어늬 해엔가는 노문호「트르게네프」백년제를 거행하야 유명하였다."
다방이 자리했던 장소에 대한 언급은 『삼천리』의 한 기사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북촌하고 떠러진 이 아스팔드 길 엽헤 위치를 정하는 것이 성공하겟느냐 엇저겟느냐고
퍽도 의구하엿스나 경영자의 견식은 결국 탁월하엿든 모양으로
전차의 소음을 피하여 강철과 석재로 다신 양옥의 이 삼림가에 조고마한 쉬임터를 만든 것이
세인의 기호에 마젓섯다."
1935년에는 『춘풍의 밤』을 열고 십오 전씩의 돈을 받아 문예 영화「춘풍(春風)」을 상영하였다.
1936년에는 화가 길진섭(吉鎭燮)의 소품전이 열렸다. 당시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였는데
길진섭의 소품전에서는 작품 한 점당 십 전에서 사십 전의 가격으로 판매하였다고 한다.
구본웅의 개인전, 시인들의 시집 출판 기념회, 경성제대 학생들의 만돌린회 같은 행사가 이어졌다.
낙랑에는 <스크린>같은 외국 잡지와 여러 문고를 비치해두었다.
기사제목 : 끽다점평판기(喫茶店評判記) 잡지명 : 삼천리 제6권 제5호 발행년월일 : 1934년 05월 01일 기사제목 : 낙랑(樂浪)파라 「쏘-윈도의 뎃산」을 그리여 주든 화가 이순석씨(李順石氏)의 경영이다. 장소는 경성부청(京城府廳)의 백악(白堊) 5층루(層樓)를 마조 선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에 잇다. 서반아(西班牙)에나 온 듯 남국(南國)의 파초(芭蕉)가 문 밧게 푸르고 잇는 3층루(層樓)다. 웃층은 아토리요 아래가 끽다점(喫茶店)이다. 널마루 우에 톱밥을 펴서 사하라 사막 우에 고단한 아라비아려인(旅人)들이 안저 물 마시듯 한잔의 차라도 마시는 그 정취가 사랑스럽다. 주인이 화가인 만치 여기에는 화가가 만히 차저 온다. 또 일본촌(日本村)이 갓가운 까닭인지 일본인(日本人)이 만히 모이며 란데뷰에 몸이 곤한 청춘남녀들이 각금 차저드러 다리를 쉬인다. 금요일마다 삑타-의 신곡(新曲) 연주가 잇고 각금 조고마한 전람회도 열닌다. 이곳의 밀크 맛이 조타. 빨-가케 타는 난로 압헤서 아이다야 아이다야 하는 로서아(露西亞)의 볼가노래나 드러가며 뜨거운 밀크를 마시는 겨을의 정조(情調)! 이는 실로 낙랑(樂浪) 독특(獨特)의 향미(香味)라 할 것이다. 요지음 업서진 것이 마치 피엿든 동백꼿이 속절업시 날려간 듯 허급흐다. 기사제목 : 끽다점(喫茶店) 연애풍경(戀愛風景) 잡지명 : 삼천리 제8권 제12호 발행년월일 : 1936년 12월 01일 기사형태 : 대담, 좌담 뻐-너스<서울 인사정(仁寺町)> 매담 복혜숙씨(卜惠淑氏), 낙랑(樂浪)<서울 장곡천정(長谷川町)> 매담 김연실씨(金蓮實氏), 모나리자<서울 본정이(本町二)> 매담 강석연씨(姜石燕氏) 긔자 - 서울시민 60만 명의 「거리의 공원」이요 또 인테리와 모던남녀의 휴게실(休憩室)인 끽다점(喫茶店)에 모히는 손님들은 대개 엇든 분들이 만습덱가. 배우(俳優)가 만흘걸요 『뻐-너스』여신(女神)에는-복헤숙씨 대답 좀 해주서요. 빙그레 웃고만 있지 말고. ... ... (중략) 김연실(金蓮實) - 우리집에 오는 문사로는 안석영(安夕影), 최정희(崔貞熙), 정지용(鄭芝鎔), 김상용씨(金尙鎔氏)들과 또 저어 함대훈(咸大勳), 이헌구(李軒求), 김황섭씨(金恍燮氏) 등 해외 문예파 손님들도 각금 와요. 춘원(春園)씨도 간혹 오시고 팔봉(八峯)도 이하윤(異河潤)씨도 김기림(金起林)씨도 그리고 언젠가 여류 문사일파가 오섯더구만. 모윤숙(毛允淑), 장덕조(張德祚), 최정희(崔貞熙), 노천명(盧天命)씨 등 아마 무슨 집회를 끗마추고 그 길로 오심인 듯. 문사양반들이 차 마시는 풍경은 퍽 고요-해요. 겻헤서 누가 신문장 뒤지는 소리나는 것조차 귀찬은 듯 「침묵(沈默)의 실(室)」에 감겨 시상(詩想)을 닥거나 소설 스토리을 생각하는 듯해요. 간혹 이약이한대야 예술과 영화에 대한 화제가 만트군요. 그분들은「세레나-드」가튼 고요하고 나즌 음악을 조와하도군요. 긔자 - 낙랑(樂浪)은 일홈이 조선의 고전맛(古典味)가 나고 또 위치가 덕수궁(德壽宮) 엽 조선호텔 부근 여러 신문사지대(新聞社地帶)에 있기 까닭에 일하다가도 산보하다가도 여러분들이 차저오기 쉬워요. 영화인(映畵人)들은요? 김연실(金蓮實) - 금유영(金幽影), 박기채(朴基采)씨가튼 감독들이며 문예봉(文藝峰)가튼 녀우(女優)며 이명우(李明雨), 나운규(羅雲奎)씨들이 만히 와요. 와서는 파리제「巴里祭」서반아광상곡「西班牙狂想曲」「모록코」가튼 외국영화 비평을 하고 있지요. 데-도 릿지나 갈보 롬바드 가튼 녀우들 비평도 하고요. 레-코드 방면에 가수(歌手)로 게시니만치 그 방면 손님이 만흘걸요. 김연실(金蓮實) - 우리 홀에는 빅타-컬롬비아가 가까운 탓인지 가수도 여러분 으서요. 대개 모여드는 시간은! 극장 파하는 때도 만치만, 오후 네 시 각 관청과 학교가 파하는 때에 만히들 오지요. 그리고 일요일과 제일(祭日)에도 만쿠요. 청년들이 만흔가요. 삼씨(三氏) - 스물 한둘부터 삼십 칠팔까지가 가장 만치요. 직업으론 신문기자, 배우, 문사, 화가, 음악가가튼 인테리층, 거기다가 은행회사원과 교사들도 끼지. 집회(集會)와 민요(民謠) 긔자 - 여러분의「홀」에서 문사들의 집회와 화가들의 전람회를 한 적이 만흔섯슬 터인데요. 「낙랑(樂浪)」에선 만핫지요. 언젠가「시성(詩聖) 꾀-테」백년기념제도 30여인의 문사가 모여 하엿고 안석영(安夕影)씨의「춘풍영화(春風映畵)」축하회도 우리 곳에서 하엿고 그밖게도 시인들의 시집출판기념회도 각금 하였지요. 전람회는 언젠가 화가 구본웅(具本雄)씨의 개인전을 한번 했고 긔억은 다 못하겟지만 퍽으나 여러 번 했어요. 더구나 제국대학(帝國大學) 학생구룹의 만도링회(會) 가튼 것은 각금 잇지요. 외국서는「살농 문화(文化)」가 놀랍게 발달됐다는데 여기서도 작고 문화층(文化層)의 발(足)과 눈(眼)을 여기 모히는 노력을 해야할걸요. 그런데 음악은 무엇들을 조와해요. 레코-드판으로 비취한 것은? 「낙랑(樂浪)」에는 세레나-드 종류가 만해요. 칼소 것이나 등원의강(藤原義江) 것도 여러 장 잇지요. 쪼세프뻬-간의 꾀고리가튼 판도 여러 장 있고 그리고 민요들을 조와해요. 소격란(蘇格蘭) 것 가튼 것과 서반아(西班牙)의 무용곡도 조와들 하고. 긔자 - 비치하여 노은 문고는 대개 엇든 것이여요. 대개 그러치요. 「스크린」가튼 외국영화잡지들을 조와해요. 「낙랑문고(樂浪文庫)」를 압흐로 더욱 확장코저 합니다. 강석연(姜石燕) - 대개 그러치요. 어느 긱자점이나 다 마찬가지지요. 십분 이십분 안저잇는 짤분 시간에 되도록 머리를 평안히 쉬이고 그리고 눈을 살지게 하자니 자연히 호화롭끄 경쾌한 독물(讀物)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끽다점 연애풍경 (喫茶店 戀愛風景) 긔자 - 야자나무 아래서 태양에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면서 고요히 세레나-드나 듯는 청춘남녀의 풍경을 남미(南米)나 모록코의 정열적 연애풍경이라 한다면 거리의 한모통이 조용한 안식처인 서울 여러 끽다점(喫茶店)에서 고-히 마시며 속삭이는 남녀의 풍경을 이 땅의 로맨지스트의 애무(愛撫)광경이라고 아니하리까. 어디 끽다점(喫茶店)에서 비저지는「사랑의 로-맨스」나 풍경을 말슴해 주서요. 스겟춰식으로. 우리 홀은 조선사람 만히 사는 촌과 본정에 갔다 오는 손님이 만하요. 그분들 중 남녀 한패가 사람의 눈을 꺼리는 듯 드러와서 고요히 차마시고는 다시 장곡천정(長谷川町) 애스팔트 거리로 뚜벅뚜벅 거러 차츰차츰 사라저가는 풍경은 참으로 무에라 말할 수 업시 조와요. 더구나 길거리의 포푸라 가로수 입사귀가 시름업시 떠러지는 만추(晩秋)나 함박눈이 푸실푸실 오는 삼동(三冬)의 겨울밤 외투에 잠긴 피씨(彼氏) 목도리에 고개를 파묻은 궐녀. (중략)
기사제목 : 인테리 청년 성공 직업 (1) 잡지명 : 삼천리 제5권 제10호 발행년월일 : 1933년 10월 01일 필자 : 박옥화(朴玉花) 내용 : 동경미술교(東京美術校) 출신 이순석씨(李舜石氏)의 끽다점(喫茶店) 낙랑팔라(樂浪parlour) 대한문(大漢門) 압흐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궁궐을 끼고 조선(朝鮮)호텔 잇는 곳으로 오다가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初入)에 양제(洋製) 2층(層)의 숙쇄(潚殺)한 집 한채 잇다. 입구에는 남양(南洋)에서 이식(移植)하여 온드시 녹취(綠翠) 흐르는 파초가 노엿고 실내에 드러서면 대패밥과 백사(白沙)로 석근 토질 마루 우에다가 「슈-벨트, 데-도릿지」등의 예술가 사진을 걸엇고 조흔 뎃산도 알맛게 걸어 노아잇서 엇전지 실내 실외가 혼연조화(渾然調和) 되고 그리고 실내에 떠도는 기분이 손님에게 안온(安穩)한 침정(沈靜)을 준다. 서울 안에 잇는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가장 만히 모히고 그리고 명곡연주회(名曲演奏會)도 매주 두어 번 열니고 문호(文豪)「꾀-터」의 밤 가튼 회합(會合)도 각금 열니는 곳이다. 이 집에서는 맛난 틔(茶)와「케-크」「푸룻」등(等)을 판다. 씨(氏)는 30을 상하(上下)하는 청년예술가다. 그래서 그의 2층에는 「아토리에」(화실)을 꾸미어노코 제작에 늘 분주한다. 이 집의 감촉은 마치 파리(巴里) 「이정(裏町)」에서 청절(淸節)을 직혀가며 전심예도(傳心藝道)에 정진(精進)하는 예술가의 화실가튼 늣김을 준다. 씨(氏)가 이 낙랑(樂浪) 팔라를 시작한 것이 2년 전이엇다. 그 때는 종로(鍾路)에 「멕시코」와 「뽄아미」가 잇서 인테리 청년을 흡수하든 때이다, 북촌(北村)하고 떠러진 이 아스팔드 길 엽헤 위치를 정하는 것이 성공하겟느냐 엇저겟느냐고 퍽도 의구(疑懼)하엿스나 경영자의 견식은 결국 탁월하엿든 모양으로 전차의 소음을 피하여 강철과 석재(石材)로 다신 양옥(洋屋)의 이 삼림가에 조고마한 쉬임터를 만든 것이 세인(世人)의 기호에 마젓섯다. 그리고 티룸의 일홈이 조타. 낙랑(樂浪)팔라! 이것은 강서(江西) 고구려(高句麗) 문화(文化)의 정화(精華)를 따다가 관사(冠辭)를 부첫는데 그 뜻도 무한히 조커니와 음향이 명랑한 품이 깍근 참배맛이 난다. 씨(氏)가 처음 이 차실(茶室)에 급하(扱下)한 자본은 약 2,000원이란 말이 잇다. 기사제목 : 『춘풍(春風)의 밤』개최 삼(三)일밤『낙랑』에서 잡지명 : 『조선중앙일보』 발행년월일 : 1935년 12월 3일, 조간 2면
문예영화「춘풍(春風)」이 제작상연된데대하야 이는 미약한조선영화운동에잇서서는 큰수확인동시에깃분일일이라하야 이기세(李基世)씨의 십구(十九)씨 (문예또는연예방면인사)의밤긔로 금삼(三)일오후 일곱(七)시에 부내 장곡천정「낙랑(樂浪)팡라」에서『춘풍의 밤』을 열기로되잇다는데 당야의회비는 오십(五十)전이라한다.
기사제목 : 길진섭 소품집, 명십오일부터 낙랑「파라」에서 잡지명 : 『동아일보』 발행년월일 : 1936년 3월 15일. 석간 4면 오는 십오일(일○)부터 이십이일까지 팔일간 시내 장곡천정 낙랑파-라(樂浪parlour)에서 양○○ 길진섭씨의 소품전이 개최되리라 한다. 서양○의 길진섭씨는 이미 ○○○○에서 상○한 ○정을 받고잇는 ○○어니와 씨는 현재경성에 잇어 모든 ○○와 싸워가며 더욱○○에○○하야 백○○의 일원으로 중앙○○전 백일○○에도 입○되잇는바 이번에○○○ 이순석씨 등재○우인의 ○○으로 우와여히씨의 ○작소품삼십○ 점으로 전시하고 또 이를 현지에서 절○하야 씨의 ○진에 필요한 ○구대나마 ○○려하는것이라는데 일점의 가격은 십원으로부터 사십원까지라 한다.
기사제목 : 만문(漫文), 차당여인(茶黨女人) 잡지명 : 별건곤 제69호 발행년월일 : 1934년 01월 01일 필자 : 이선희(李善熙) 밤이다.- 무섭게 추은 도시의 밤이다. 어차피 추울 바에는 영하 40도의 된 추이가 그립다. 털속에 파뭇처 가이업는 눈덥힌 벌판으로 헤매고 십흔 것도 인테리 녀성의 변덕의 하나다. 이반의 향락을 일허버리다니-. 밤거리로 나가거라. 그리하야 너의 젊은 날을 즐겁게 보내라. 나는 이 잠을 조와한다. 더구나 밤도 긴-겨울 깁흔밤을 조와한다. 심야장(深夜長)이란 말이다. 울트라 모-던니즘을 숭배하는 젊은 남녀의 야릇한 채림새가 내 호기심을 끈다. 입술을 빨앗케 물드리고 눈섭을 가늘게 그리고 윙쓰를 사방으로 보내며 레뷰-식으로 깡충깡충거러라. 단연이 갑싼 모-던니즘의 여왕이 될테니. 그러나 내 눈은 변으로 아름다운 것을 구하고 내 가슴은 허영과 향락으로 차잇지 안은가. 나는 도회의 딸이다. 아스팔드의 딸이다. 티-룸 이것의 탄생은 퍽이나 유쾌한 일이다. 활동사진에도 실증이난 내게 유일한 사교장(社交場)이다. 일전 엇던 잡지에 차ㅅ집이 넘우 만허서 차만 마시면 사느냐고 하기는 햇지만. 엇재든 얼마전 내가 시골에 단여와서 처음으로 이차ㅅ집에 갓슬 때 엇던케 조와햇든지 가티 갓든이가 요행 내 아저씨여서 연방 까불지말나고 주의를 밧은 일도 잇다. 위선 빈 자리를 골나 안젓다. 커피를 가저 왓다. 가느다란 김이 몰-몰-난다. 흑-드리컷다. 그 향기로운 맛이란-그래 집에서 숭융을 마시고 잇서. 서양 배우의 「푸로마이드」도 뒤적거려 본다. 멧십분 동안이라도 이러케 쉬어야지 고부라진 신경이 펴질게다. 모도다 이저바리고 아름다운 그 노래에 마음껏 취하는 복된 순간이여-. 차ㅅ심부름 하는 아희! 참 깜직하기도 하다. 외형보다 속이 넘우 여무진데 놀냇다. 나이를 무러보니 아홉 살이나 열살밧게 안되여 보이는 군(君)이 열네살 이란다. 누구나 이 아해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안을 수 업슬 것처럼 그는 직업적으로 별나게 되엿다. 조라든 모양이다. 이 차한잔이 얼만지. 십전? 오십전? 멧번 왓서도 머 차갑을 내가 내나. 녀자의게서 찻ㅅ갑을 밧는 사람이 어되잇담. 켁을 폭으로 국찔너 먹엇다. 갑작이 내가 몹시 올나가는 것 갓다. 김치를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한층 더 문화적임에 괘감을 늣긴다. 그 머리속이란 대중을 잡을 수 업는 것이다. 서울은 파리와 가티 생각되고 조고만 차점도 세게에서 제일 큰 사교장가티 생각된다. 나는 그 가온대로 것는 화형으로 자처하고-. 이리하야 화미(華美)와 형악욕(亨樂慾)의 절정에서 춤추는 것이다. 뽀이를 불너 신문을 청햇다. 활동사진에 나오는 서양뽀이의 채림새다. 그리고 또 미남인데. 미남을 뽀이로 선택한 것도 직업적 수단인가. 친구도 업시 혼자온 모양인데 차ㅅ잔은 벌-서 비여잇는지가 오래고-. 네 활개를 여덥팔자로 쩍벌니고 안젓는 모양이 일백 이십분 이상인지 일백 팔십분 이상인지 저 모양을 게속한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 길이를 알길이 없다. 그의 탄력만흔 신경은 이 밤의 모든 것을 흡수할 때로 흡수해서 차ㅅ갑 20전이나 삼십전을 밋지지 안켓다는 생각x20보다. 그도 그러 것이 집에라고 가야 별것이 업다. 재미는커녕 을쓰년 스러워 드러갈 수부터 업다. 조고만 셋방에 늙으신 어머님 어린애들이 뒤법석을 치고 게다가 그리 탐탁지 안은 고생주머니 안해가 잇고... 김치 냄새가 후더분한 신선치 못한 방안의 공기와 합해서 야릇하게 불유쾌한 냄새가 코를 지르는 그 속에 화로에서 보글보글 끌코 잇는 된장찌개-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만 질색이 나서 발길이 도라선 것이다. 차ㅅ집! 이것은 우리의게 현대의 감각을 자극식히는 매개장이 아니야. 이만한 데만 와도 훨신 명랑한 긔분을 맛보는 소득이 잇다. 만일 그 돈을 오늘 아츰 그의 안해의게 맛겻든들 늙은이 아히들 또 그 현숙한 안해 자긔까지 하다 못해 고기국이나 생선 한토막이라도 어더먹엇을 것을-. 호주머니의 단 몃십전이라도 잇서든 차ㅅ집으로 가거나 식당에라도 가서 「라이쓰카레」한그릇이라도 먹으면 뱃속은 엇더튼지 기분 그 놈의 긔분만은 백이십퍼센트로 유쾌하리라. 차 한잔 또 청햇다. 나는 단연이 이 사교장의 녀왕이나 된 것가튼 자부심이 생긴다. 그리고 밋칠 듯이 깃브다. 레코드가 도라간다.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마친 뒤 한동안 화신상회(和信商會)에서 만흔 보수를 밧으며
장내의 분위기가 엇전지 주선수선하여 가라안지 안은 듯한 점이 흠이랄가.
넷날에는 피빗가튼 저고리 입은 미모의 젊은 매담이 카운터-를 보고 잇더니
차(茶) 마시려 오는 손님종류
긔자 -
기자 -
김연실(金蓮實) -
긔자 -
김연실(金蓮實) -
긔자 -
김연실(金蓮實) -
김연실(金蓮實) -
김연실(金蓮實) -
이것이 「낙랑(樂浪)팔라」다.
이 차실(茶室)의 주인이 연전(年前)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마춘 화가 이순석씨(李舜石氏)다.
명화 「파리(巴里)の옥근(屋根)の하(下)」에 나오는 셋트 속의 한 쪼각 갓기도 하다.
이리로 모아드는 인테리는 점점 만허 간다, 아마 씨(氏)의 사업은 인제는 터전이 서 젓다고 보겟다.
설비비 1,100원 유동자본 500원 선전비 30원
지금 매삭(每朔)의 수지(收支)는 이러하다.
매상고(賣上高) 300원 원가급잡비(原價及雜費) 200원 순이익(純利益) 불명(不明)
아모리 추어도 하숙집 아랙목에 쪼그리고 안저 잇슬 수는 업다. 그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무겁고 우울한 침통미(沈痛味)는 겨울밤의 감각이다. 불멸(不滅)의 세레나-데다.
떼파트 쇼-윈도의 황홀한 색채가 나를 유혹하고
거리로 나가거라.
나는 이것이 조흔지 납븐지 모른다. 하기는 아마 조선의 녀성이 다 이모양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곡천정(長谷川町)으로 가다가 「낙랑(樂浪) 파-라(樂浪parlour)」이집을 내가 제일 조와한다.
쏙 드러서면 그 화려하고 경쾌한 맛이라니. 현대인의 미감(美感)을 만족식힌다.
마즌편 벽에 반나체(半裸體)의 여인초상화가 걸엿다. 보면 볼수록 눈을 옴길수 업게 매력이 잇다.
사람이 상당이 만이 왓는데, 그래 하로종일 시달니다가
「레코드」가 돌아간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저 주는 그 음향-.
흥 이 직업이 이 아희의 성장을 방해햇다.
한푼에 두 개짜리 갑싼 인테리 그중에도 팔자에 업는 허영을 찻는 나가튼 게집애-
유쾌하고 즐거울 때면 세상은 차차로「보까쓰」되여 오는 거이다.
마즌 편에 엇던 사람 하나가 안저잇다.
음악을 어느 만큼 아는지 몰나도 렬심으로 듯고 잇고 또 아조 흠신 취한 것 갓다.
그리하야 그 귀중한 돈 이십전이나 오십전을 앗김업시 내여 놋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것까지 생각하면 남자가 궁해서 못쓴느 법이고 또 노-모던이 되어서 안되는 것이니
나는 언제가지나 심야파(深夜派)가 되고 언제까지나 이 차(茶)당 여인(女人)으로 행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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