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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특별전/ 어린이, 청소년 스스로 학습지

Gijuzzang Dream 2011. 11. 21. 22:02

 

 

 

 

 

 <초상화의 비밀> 특별전  

 

 어린이, 청소년용 스스로 학습지

 

 

 

 <조씨삼형제 초상>, 18세기 말, 보물 제 1478호, 비단에 색, 42.0x66.5cm, 국립민속박물관

 

 

 

 

 초상화란?

초상화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우리나라에서 초상화가 발달하게 된 이유로 맞지 않는 것은? (답 : ③)

 

① 제사를 지내는 조상숭배 사상이 널리 퍼졌기 때문
② 후손들이 조상을 공경하고 추모(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하기 위해
③ 그림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어 표현의 자유를 알리기 위해
④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

생각해보기)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충효사상의 하나인 조상숭배 사상이 유행하면서

조상을 공경하고 추모하는 제사에 초상화를 모시는 문화가 더욱 발달했어요.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대부의 초상화에는
자신을 성찰하고 정신과 마음의 수양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담겨 있어요.

** 추모 :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
** 성찰 :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 수양 :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


 

 

1.하늘과 땅


 역사 속 통치자에 대해 알아보아요!

 

- 태조 어진

 

왕세제로 책봉되기 전의 왕자 연잉군의 초상화를 찾아보아요!
초상화 속의 연잉군은 훗날 조선의 임금 중 누구일까요? (답 : ④)


① 태조 ② 세종 ③ 정조 ④ 영조

 

생각해보기)

영조 임금이 왕세제로 책봉되기 전의 모습인 연잉군 초상’이에요.

6.25전쟁 때 초상화를 보관하던 창고가 불에 타면서 그림의 오른편 1/3이 사라졌으나

화면 왼쪽 위에 쓰여 있는 “초봉연잉군고호양성헌"에 ‘연잉군’이라는 글귀가 있어

이 초상화가 영조의 왕자 시절의 모습임을 짐작할 수 있어요.
** 왕세제: 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아우

** 책봉: 왕세자, 왕세손, 왕후, 비(妃), 빈(濱), 부마 등의 직을 주는 일.

 

- <연잉군 초상>, 박동보, 1794년, 보물 제 1491호, 비단에 색, 183.0x87.0cm, 국립고궁박물관

 

용이 수놓아진 곤룡포를 입은 근엄한 영조 임금의 어진찾아보아요!

- <영조 어진> 조석진/채용신, 1900년, 보물 제 932호, 비단에 색, 110.5x61.0cm, 국립고궁박물관

 

생각해보기)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있는 반신상으로, 영조의 어진이에요.

이 그림은 영조의 친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에 안치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 익선관: 왕과 왕세자가 평상시에 입는 옷인 곤룡포를 입고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쓰던 관.
** 곤룡포 : 누런빛이나 붉은 빛의 비단으로 지어, 가슴과 등과 어깨에 용의 무늬를 수놓은

                 임금이 의식 때 입던 왕의 정식 옷.

** 반신상 : 사람 몸의 허리 위 부분의 사진이나 초상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어진 : 임금님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형상이나 사진.

** 신주 :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그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 패.
** 안치 : 안전하게 잘 둠.


 

 조선의 통치자와 신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요!

 

유교의 주요 이념인 충과 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도복의 초상화를 살펴보아요!
초상화 속의 주도복은 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입는 상복을 왜 입고 있을까요? (답 : ①)


① 돌아가신 임금을 향한 충직한 신하로서의 애도를 표현하기 위해
② 나라의 큰 죄를 지은 사람임을 표현하기 위해
③ 가난한 선비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④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효심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해보기)

주도복 초상화는 유교 이념의 하나인 충효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어요.

그림은 영조 임금이 승하한 뒤 3년간 아침, 저녁으로 북쪽을 향해 절하고 슬피 울었던

충신 주도복의 모습이에요.

그림의 왼쪽 위에는 비각과 함께 돌로 쌓은 대 위에 향로와 촛대가 그려져 있어

임금을 잃은 슬픔을 살펴볼 수 있지요.
** 승하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 충신 :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이른다.
** 비각 :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 주도복 초상, 1776년경, 비단에 색, 113.0x57.0cm, 함안박물관

 

 

정조시대의 이름난 재상인 채제공의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아요!
채제공이 손에 들고 있는 향주머니와 부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아볼까요? (답 : ①)


① 통치자의 은혜와 신하의 충성
② 노년의 여유로운 생활
③ 학식이 높고 출세한 선비
④ 아내가 준 선물로써 부부간의 화합

생각해보기)

체제공은 정조의 탕평책과 문예부흥정책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한 이름난 재상이에요.

그림 속 주인공 모습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은 전통적인 자세가 아니라

향주머니가 달린 부채를 양손으로 쥐고 있는 자세랍니다.

그림에 쓰인 “부채도 향낭도 임금님의 은혜(扇是君恩香亦君恩)“라는 글귀에서

임금님의 은혜와 신하의 충성을 부채와 향주머니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 탕평책 : 조선 영조 때에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나뉘어 서로 싸우는 일을 없애기 위하여

                 각 집단(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뽑아 쓰던(등용)하던 정책.
** 재상 :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 이상의 벼슬(벼슬아치).

 

 

- 체제공 초상 / 손에 들고 있는 부채와 향주머니

이명기, 1792년, 보물 제 1477호, 비단에 색, 120.0x79.8cm, 수원화성박물관 

 

 

 역사적 맞수였던 초상화 속 인물에 대해 알아보아요!

 

임진왜란 때 의병들과 큰 활약을 한 승려 사명당의 초상화 를 찾아보아요!

 

- <사명대사 진영>, 1796년경, 보물 제 1505호,  삼배에 색, 122.9x78.8cm, 동화사성보박물관

 

조선의 승려 사명당은 1604년에 일본으로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평화를 약속하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데리고 돌아오지요!

사명당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답 : ②)


① 친구
② 맞수(라이벌)
③ 통치자와 신하
④ 스승과 제자

생각해보기)

사명당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승려랍니다.

그림 속 주인공의 모습은 불자를 들고 신발을 벗은 채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발을 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에요. 온화한 얼굴 표정에 비해 날카로운 눈매와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턱수염은 승병을 이끌며 지휘하는 책임자로서의 기백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 승병 :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 불자 : 짐승의 꼬리털 또는 삼 따위를 묶어서 자루에 맨 것.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막부를 개설한 창시자예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1600년에 세키가하라전투에서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답니다.

같은 해에 에도막부를 개설하고, 쇼군이 되어 도쿠가와 300년의 기초를 세웠으며,

여러 가지 정책으로 일본 근세 봉건제 사회를 확립했지요.

** 막부 : 1192년에서 1868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쇼군의 정부.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쇼군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졌다.
** 제후 :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지 안의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지던 사람.
** 쇼군 : 일본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우두머리.

-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 일본 에도초기, 비단에 색, 82.9x41.3cm, 교토대학박물관

 

 

 

 

 

2. 인의예지(仁義禮智)

 

 초상화 속의 성리학자를 만나보아요!

 

 

조선시대 유학의 이념과 이해에 따라 나누어진 선비들이 이끌던 붕당 정치에 대해 알아보아요!

붕당 정치를 대표하는 허목, 송시열, 윤증의 초상화를 찾아 볼까요? (답 : 윤증)

 

1. ‘왕실에서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송시열과 논쟁을 벌였던 인물이에요.
2. 주자학이 절대적인 사상이라고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에요.
3. 송시열의 제자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를 꿈꾸었던 인물이에요.

 

허목 초상)

허목은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이어받은 17세기 남인의 중요 인물로서,

이후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림 속의 82세 미수 허목은 허리에 서대를 두른 엷은 홍색 관복을 입고 있어요.

‘눈썹이 하얀 늙은이’라는 호에 걸맞게 유난히 희게 묘사된 눈썹과 야윈 얼굴은

강직한 그의 성품을 잘 보여 주고 있어요.

송시열 초상)

심의를 입고 복건을 쓴 송시열의 반신상으로, 비슷한 모습의 초상화가 여러 점 있어요.

둥글고 넓은 어깨는 당당한 풍모를 나타내며, 다소 과장된 커다란 체구는

학문과 사상으로 존경받는 조선 후기 유학자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답니다.

윤증 초상)

윤증은 송시열의 제자로 소론의 우두머리였으며,

청렴한 학자로 많은 후학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에요.

그림속 주인공은 유독 치켜 올라간 눈매에 평상복 차림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은 공수 자세를

하고 있어 유학자로서의 공손하고 겸손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 학풍 : 학문에 대한 태도나 경향.
** 남인 : 조선 시대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나뉘어 나라의 정치적인 일에 영향을 주고 지배하던

             네 개의 집단(사색당파)의 하나. 유성룡, 우성전을 중심으로 한 파로

             경종 임금 이후 정치계에서 멀어져 고향에서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 후학 : 학문에서의 후배.
** 서대 : 조선 시대 정1품의 벼슬아치가 허리에 두르던 물개 가죽 허리띠로 무소의 뿔로 장식함.
** 심의 :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은 선비들이 입던 웃옷으로,

             대개 흰 옷감으로 만든 두루마기 모양이다.

             소매가 넓고, 소매 끝단은 검은 비단으로 둘러져 있다.
** 복건 : 도복(道服)에 갖추어서 머리에 쓰던 건(巾).

             검은 헝겊으로 위는 둥글고 삐죽하게 만들었으며, 뒤에는 넓고 긴 자락을 늘어지게 대고

             양옆에는 끈이 있어서 뒤로 돌려 매게 되어 있다.
** 소론 : 조선시대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나뉜 네 개의 집단(사색당파)의 하나.

             한태동, 윤증 등을 중심으로 한 집단(당파)으로 숙종 때에 ‘경신출척庚申黜陟‘ 이후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년과 장년층 집단(노장파)의 반대파가 된다.

              - 허목 초상                          - 송시열 초상                       - 윤증 초상

 이명기, 1794년, 보물 제 1509호,       조선후기, 국보 제 239호
비단에 색, 72.1x57.0cm                   비단에 색, 89.7x67.6cm

 

 

 

 20세기 초의 대가족의 모습을 살펴보아요!


할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을 묘사한 배운성의 작품을 살펴보아요!

 


그림 속에서 그림의 작가인 배운성을 찾아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고 그림 속의 가족과 우리 가족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어볼까요?

 

생각해보기)

이 그림은 작가 배운성이 독일에 머물면서 한국에서 집사로 있던 주인 집안의 가족을 그렸답니다.

중앙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배치된 그림 속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기념사진과 흡사하며,

당시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요.
집사인 작가 자신의 모습도 화면 가장 왼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당시 유럽에서 동양적 소재와 서양적 표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했어요.


 

<그림 속 가족>   -     <공통점>       -   <우리 가족>

      대가족이다     -   강아지를 키운다    -   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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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사대부에 대해 알아보아요!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인공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요!
아래의 초상화 속의 주인공들을 알맞게 줄로 연결하고 어떤 관계가 있을지 알아볼까요?

 

(답: ㄱ.이순신 - ②이봉상 - ●5대손)

(답: ㄴ.이채 - ③이재 - ●조손)

(답: ㄷ.이항복 - ①이덕형 - ●친구)

 

 ㄱ.이순신 초상                          ㄴ.이채 초상                        ㄷ.이항복 초상           
 

 

      ①이덕형 초상                        ②이봉상 초상                              ③이재 초상                  

 

 

●친구                                   ●조손(祖孫)                                ● 5대손                 

 

이순신 초상과 이봉상 초상)

이순신 기념 영정은 기록에 근거하여 호랑이 털가죽이 깔린 의자 위에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은 공수 자세로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에요.

온화한 성품을 지닌 얼굴이며, 관복 위에 한 쌍의 범이 표현된 흉배를 두르고 있는 무관의 모습.

이봉상은 이순신의 5대손으로,

초상화는 용감한 무관의 모습으로 흉배에는 해치가 표현되어 있고 학정금대를 두르고 있어요.

 

이채 초상과 이재 초상)

조선 후기에 활약한 문관 이채와 그의 할아버지 이재의 초상화이랍니다.

이재의 초상화는 손자인 이채의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세밀한 붓질감과

은 갈색 윤곽선을 이용하여 살결까지 드러나도록 표현되어 있어요.

이 표현들은 조선 후기의 표현 방식과 비슷하여 두 작품이 동시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이채는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글을 붙여

할아버지이자 학문적 스승인 이재를 더욱 부각시키고자 했어요.

 

이항복 초상과 이덕형 초상)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오성과 한음’이라고 불릴 만큼

친형제보다 두터운 우정으로 유명했어요.

두 사람은 이항복이 23세, 이덕형이 18세에 만나 서로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가 되었고

이후 관직에 나아가서도 나란히 활동했어요.

두 사람 모두 글 쓰는 재주와 백성을 잘 다스리는 능력을 겸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교대로 병조판서를 맡아 전쟁 중의 국정 운영을 위해 힘썼지요.

 

** 영정 :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쓰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족자.

** 흉배 : 조선 시대에, 문무관(文武官)이 입는 관복의 가슴과 등에

             학이나 범을 수놓아 붙이던 사각형의 표장(表章).
** 해치 : ‘해태’의 원말.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다고 한다.
** 학정금대 : 조선 시대에, 종이품 벼슬아치가 관복이나 조복에 띠던 띠.

                    가장자리는 황금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붉은 장식물이 붙어 있다.

** 병조판서 : 조선 시대에 국가의 정무를 나누어 보던 6조 가운데, 병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으로, 군사와 국방에 관한 일을 총괄하였다.

 

 

 

 

3. 자아와 일상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표현한 자화상을 살펴보아요!


정면에서 자신의 얼굴만을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을 찾아보아요!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알맞은 적외선 사진을 찾아 볼까요?

 

- 윤두서 자화상 / 윤두서 자화상의 적외선 사진

 

 

적외선 사진에는 있고 윤두서 자화상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 : ①)

① 옷깃 ② 손과 발 ③ 부채 ④ 턱수염

생각해보기)

윤두서의 자화상은 우리나라 초상화 가운데 외형 묘사와

내면세계의 표현이 잘 조화된 획기적인 작품이에요.

특히 그의 자화상은 현재 몸체가 생략된 채 얼굴만 남아 있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그러나 적외선을 촬영한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옷깃과 옷 주름선이 어깨 부분에서 확인되었고,

현미경 관찰에서는 색을 칠한 것도 확인되어

작품이 그려질 당시에는 몸과 옷깃, 귀가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살펴보아요!

 

16세기 철릭과 비슷한 옷을 입고 투명한 사방관을 착용한 한복입은 사람의 그림을 살펴보아요!

<한국인 초상>, 페터르 파울 루벤스, 1617-1618년경, 
종이에 초크 등, 38.4x23.5cm, 폴게티미술관


그림 속 인물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답 : ③)

① 일본 ② 미국 ③ 아프리카 ④ 조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인상착의를 살펴보면서 자유롭게 적어보아요!

생각해보기)

그림의 주인공은‘안토니오 꼬레아‘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실제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관리 출신이라고도 해요.

17세기 서양화가 루벤스가 유럽에서 만난 한국인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요.
16세기의 철릭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탕건과 비슷한
‘준모‘라는 모자 위에 방건을 쓰고 있는

당당한 모습은 조선시대의 관리와 비슷한 인상을 주고 있답니다.

** 철릭 : 조선시대 무관이 입는 관복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혀 있고, 소매가 넓고 뻣뻣하며

             깃이 곧은 웃옷의 하나다.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붉은색이다.
** 탕건 :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관(冠)의 하나.

             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뜬다.

             집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외출할 때는 그 위에 갓을 썼다.
** 방건 :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평상시 망건 위에 쓰는 네모가 반듯한 관의 하나로,

             네 면이 편평하고 정수리 부분은 터져 있다.

 

 

 서양의 초상화를 살펴보아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프란스 할스가 그린 초상화를 찾아보아요!
초상화 속 남자 인물이 손에 들고 있는 장미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답 : ③)


① 탄생 ② 죽음 ③ 사랑 ④ 슬픔

생각해보기)

프란스 할스(Frans Hals)가 그린 부부초상의 하나로,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초상화를 발전시킨 화가로 평가받았던 인물이에요.

초상화 속 남자 인물은 부유한 비단 상인으로,

부인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아내의 초상과 자신의 초상을 함께 제작했어요.

주인공이 들고 있는 장미는 사랑과 결혼을 상징한답니다.

- 프란스 할스가 그린 초상

 

 

 

 

 

4. 새로운 눈 - 사진

 

 초상화의 제작 기법에 대해 알아보아요!


초상화 제작의 전통기법과 19세기 후반에 들어온 사진이 초상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아래 보기에서 틀린 내용은 무엇일까요? (답 : ①)

① 살아있는 인물을 화가가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을 ‘이모’ 라고 해요.
② 밑그림을 그릴 때는 종이 위에 같은 간격으로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 안에 인물의 신체 부위를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③ 초상화에 색을 칠할 때는 뒤쪽에서 색을 칠하기(배채)도 했어요.
④ 19세기 후반에는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어요.

생각해보기)

사진의 영향을 받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초상화기법이 어떻게 변화했을까?

초상화 제작 과정

①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전통적으로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模寫)를 하였어요.

도사는 살아있는 인물을 화가가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고,

추사는 인물이 돌아가신 후에 주위사람들의 말이나 기록 또는 작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완성,

모사는 이미 그려진 초상화가 낡고 못쓰게 되거나 영당에 새롭게 초상화를 봉안하기 위해

원본을 보고 다시 옮겨 그리는 방식이에요.
② 모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윤증 초상화가 있어요.
윤증 초상화의 밑그림에는

방안지 위에 면을 나누어 인물의 신체 부위를 똑같이 그리려고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요.
③ 색을 칠할 때에는 뒷면에서 색을 칠(배채,
背彩)한 후에

앞면에서 다시 색칠(전채, 前債)하여 완성하였답니다.
배채는 종이나 비단의 뒷면에 색을 칠하는 기법으로 조선시대 초상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예요.
④ 사진 기술이 도입된 19세기 후반부터는

초상화도 사진을 참고하여 좀더 정교하고 입체감 있도록 묘사하게 되었어요.
** 영당 : 한 종파의 조사(祖師)나 절의 창시자, 덕이 높은 승려의 얼굴을 그린 화상을 모신 집.
** 봉안 : 죽은 사람의 이름을 나무에 새긴 신주(神主)나

             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형상인 화상을 받들어 모심.

 

- 황현의 사진/ 김규진 촬영, 1909년, 보물 제 1494호

- 황현의 초상/ 채용신, 보물 제 1494호, 1911년, 비단에 색, 120.7x72.8cm, 개인소장

 

 

 

 

- 윤증 초상 밑그림 /  윤증 초상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초상화의 비밀] 어린이, 청소년용 스스로 학습지

- 기획,개발 : 교육과 / 감수,도움 : 전시과 / 자문 : 국립국어원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 초상화

   

인간은 자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거울이나 창, 물 위에 비쳐진 얼굴은 수면과 거울에 반대로 비쳐진 얼굴이기에 진짜 얼굴일 수가 없다.

그런 자기 얼굴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생겨난 그림이 초상화였다.

 

자기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숙명으로 인해 탄생한 초상화는

산수화나 화조화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추모하거나 후세에 전하기 위해

초상조각과 함께 아주 오래 전부터 발달해 온 회화장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초상화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 삼국시대부터,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초상화가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고 발달하여

비교적 많은 작품을 남긴 때는 역시 조선시대

초상화는 진경산수화, 풍속화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회화장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문벌을 숭상하고 충효를 중요시하는 유교사상이 팽배해있어

학덕이 뛰어난 인물이나 조상들을 공경하고 제사지내기 위한 서원, 사당 등이 많이 세워지면서

봉안을 목적으로 한 사대부나 명현들의 초상화 제작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초상화를 ‘전신(傳神)’이라는 말로 불렀다.

그런 만큼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초상화의 최고 규범으로

‘전신사조(傳神思潮)’와 정신세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초상을 제작함에 있어 만에 하나 털 오라기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초상화로서의 가치와 자격을 가질 수 없기에 동양의 초상화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양의 초상화는 인물묘사를 통하여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마음까지도 담아내야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려진 인물의 ‘참된 그림자’ ‘참된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그

려진 인물의 살아있는 용모와 다를 바 없는 신성한 가치의 영물(靈物)로 소중히 다뤄지기까지도 했다.

그래서 초상화는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으며,

그 어떤 그림보다도 온갖 정성을 기울여 기운생동의 경지로 끌어올려 그려야 하는 그림이었다.

이런 동양의 초상화에 적용되는 전통과 규범에 따라 제작되어진 그림이 바로 우리의 옛 초상화였다.

 

- 서직수 상

 

 

한민족의 영원한 얼굴, 천년의 미소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들 살았을까?

요즘의 우리들처럼 오똑한 코에 쌍꺼풀을 하고들 살았을까?

생활환경과 먹는 습관이 바뀌면 얼굴 생김새도 바뀐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영원히 우리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을 생김새와 DNA가 있다면 그건 뭘까?

 

 

한복 입은 유럽피언 코리언

 

모두 다 기억하고 있듯이,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주인공 네로가 성당 안에서

애견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바라보면 얼어 죽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피터 폴 루벤스, 네로가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성당 그림을 그린 화가다.

유럽의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가 그린 그림 중에는

<한복 입은 사람>이라는 걸작이 있다.

1983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 4천 파운드에 팔려

미국의 폴 게티 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지면서

우리나라를 한때 들끓게 했던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후, 루벤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한복 입은 남자는 어느 한 소설가의 상상력을 통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베니스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마치고 유럽에 뿌리를 새롭게 내리는

개성상인의 후예, 안토니오 꼬레아로 되살아나 고국 땅, 한국에 귀향하게 된다.

 

 

<한복입은 사람>, 1617년, 벨기에,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폴게티박물관 소장 

 

 

 

-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