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실학박물관] 곤여만국전도, 세계와 우주를 그리다

Gijuzzang Dream 2011. 9. 28. 11:58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조선의 세계관을 바꾸다”

 


서양의 세계지도가 1602년 중국에서 그려졌다.

거기에는 지도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서양의 과학지식이 함께 투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지도는 1603년(선조 36) 조선에 소개되었다.

1602년 예수회 이탈리아인 신부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중국인 이지조(李之藻, ?~1631)와 함께 만든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그것이다.

1402년(태종 2) 조선에서 최고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린 지 200년 만이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모든 세계는 중국의 영향아래 있다”는 ‘직방(職方)’이라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한역(漢譯)의 서구식 세계지도를 본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바깥에 중국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국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아시아에 만연한 중국 중심의 전통적 지리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특별전은 17세기 초 전래된 <곤여만국전도>를 중심으로

조선후기에 그려진 세계지도를 통해 실학자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국가가 직접 나서 우주와 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했음에서

조선 사회의 개방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새지식은 실학자들에게 적극 수용되어 그들의 학문과 사상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현재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봉선사 소장의 곤여만국전도를 실물 형태로 복원하였다.

봉선사 소장의 곤여만국전도는 1708년(숙종 34)에 국가에서 제작한 것으 로 어람본(御覽本)이다.

서양의 배와 여러 나라, 동물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채색을 하여 이 <곤여만국전도>를 만들었다.

1708년 조선에서 제작된 이 세계지도는 현재 몇 점 밖에 없는 희귀한 ‘회화식’의 곤여만국전도.

18세기 초 조선은 이미 최신의 지리 정보를 습득하였고

이 정보를 최고의 전문가를 동원하여 8폭의 병풍으로 남겼다.

18세기 초 조선 왕실은 이미 전문가들에게 지리와 우주에 대한 최신의 정보를 습득하도록 한 것이다.

 

둥근 지구와 세계, 이제까지의 조선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깨지고 확장되는 계기를 제공한

이 <곤여만국전도> 세계지도를 통해 세계관을 넓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이번에 실학박물관이 복원한 <곤여만국전도>는

마테오 리치가 1602년 명나라 수도 북경에서 출간한 서양식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

단순한 원본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해서 조선에서 숙종 34년(1708) 왕명으로 자체 제작한

어람본(御覽本) 곤여만국전도를 복원한 것이다.

 

170×498㎝,8폭 병풍, 실학박물관 복원 - 新곤여만국전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자료
 

1708년 조선, 세계지도를 그리다(봉선사본 복원) 新곤여만국전도(실학박물관 복원)
실학박물관에서는 2011년 하반기 특별전 ‘곤여만국전도, 세계와 우주를 그리다’ 전시를 맞아

1708년(숙종 34)에 조선에서 만든 곤여만국전도 8폭 병풍을 복원하였다.

이번에 복원한 곤여만국전도는 남양주 봉선사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때 유실된 것으로

현재는 1932년에 촬영했던 유리 원판 사진만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남아 있다.

 

곤여만국전도는 이태리 출신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602년 북경에서 만든 세계지도로

우리나라에는 중국 사행사를 통해 1603년에 전래되었다.

이후 1645년 소현세자가 아담 샬로부터 곤여만국전도를 받아 왔다고 전한다.

1708년 조선은 중국에서 가져온 곤여만국전도를 바탕으로 모사본을 제작했고,

이해 8월과 9월에 관상감에서 8폭 병풍의 곤여만국전도를 만들었다.


조선에서 만든 곤여만국전도는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배와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제작 당시 관상감을 맡고 있던 최석정의 발문이 포함되어 총 8폭으로 만들어졌다.

제작 당시 2벌의 곤여만국전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1708년 8월에 제작된 것은 현재 훼손이 많이 진행된 상태로

서울대학교박물관(보물 제849호)에 소장되어 있고,

9월에 제작된 곤여만국전도는 봉선사에 소장되어 있다가 소실되어 사진 상태로만 남아 있다.

이번 실학박물관에서 복원한 것은 9월에 제작된 곤여만국전도이다.


실학박물관은 유실된 곤여만국전도를 복원하고자

2011년 1월부터 정기준(서울대), 송영배(서울대), 양보경(성신여대) 교수를 중심으로

복원연구팀을 구성하여 복원 작업에 착수하였다.

실학박물관은 복원연구팀과 함께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제공한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6개월에 걸쳐 그림 채색과 마모된 글자를 디지털로 복원하였다.

이어서 복원한 이미지를 다시 한지에 출력하여 170×484m 크기의 8폭 병풍으로 만들어

2011년 9월 30일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본, 일본 교토대 소장본, 미국 미네소타 제임스벨 연구소 소장본이

복원에 활용되었다.

 

 

 

1708년 조선 왕실에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모사한지 303년이 흘렀다.

1602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북경에서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함께

한자로 출간한 서양식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통해

둥근 지구 위에 많은 나라와 인류가 세계를 이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동아시아에 알려졌다.

이 지도를 본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바꾸어

자아를 재발견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이러한 세계지도와 그 수용∙제작 과정을 보여주고자

실학박물관에서는 “곤여만국전도, 세계와 우주를 그리다”라는 특별전시를 기획하였다.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는 1603년에 조선에 전래되었고,

약 100년 후인 1708년(숙종 34) 조선에서 왕명으로 모사되었다.

1708년 조선 왕실에서 제작한 회화식 '곤여만국전도'를

실학박물관에서 원형 크기로 새롭게 복원한 '新곤여만국전도'를 전시하였다.

 

1708년 회화식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 박물관(보물 제849호)과 오사카 남만문화원에 각각 소장되어 있고,

왕이 보았던 어람본으로 추정되는 봉선사 소장본은 한국전쟁 때 사라져 현재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봉선사본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이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병풍으로 제작하였고, 실학박물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마모된 글씨의 복원과 함께 채색을 더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부분적으로 마모된 글씨는 일본 교토대학과 미국 미네소타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1602년 북경판 '곤여만국전도'를 참조하였고, 채색에는 서울대박물관의 보물본을 참고하였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최근 유행하는 미디어 모빌아트 기법으로 제작된 '움직이는 곤여만국전도'를

디지털 병풍의 형태로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소개

 



 

 

섹션 1. 직방(職方)에서 원형(圓形)의 세계로

 

하늘과 땅,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것이었다.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의 세계를 바탕으로

조선은 하늘의 모습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함께

땅의 모습을 담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1602년 둥근 구형의 땅을 바탕으로 하는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만들어 지기 이전,

조선은 평평하고 네모진 땅 위에 중국 중심의 직방(職方) 세계를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5세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류코쿠대학 소장본 모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와 곤여만국전도

 

 

 

 

 

 

 

땅과 바다는 본래 원형이고 합쳐져서 하나의 둥근 공 모양을 하고 있다”- 마테오 리치


‘곤여(坤輿)’란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곤여만국전도는 곧 세계지도를 의미한다.
이른바 ‘리치 지도’로 불리는 이 세계지도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와 남극, 그리고 지구설(地球說)을 바탕으로 한

경위도선과 함께 카나리아 제도를 통과하는 본초자오선 등이 그려져 있다.

마테오 리치는 곤여만국전도를 통해

중국만이 문명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허물고자 했다.

천주교 전파를 위해 비록 중국 대륙을 중앙에 그렸지만, 땅은 구형이므로

모든 나라가 그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마테오 리치의 생각이었다.
중국인 이지조와 함께 제작한 곤여만국전도 원본이 소장되어 있는 곳은

현재 바티칸박물관, 일본 미야기현립도서관, 교토대학도서관, 미국 미네소타대학 등이다.

 

1602년 북경판 곤여만국(교토대학도서관소장)

 

◯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 동서양 문화 교류의 가교

 

200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제임스 포드벨연구소는 100만 달러를 주고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만든 <곤여만국전도>를 구입했다.

이 세계지도는 “검은 튜울립처럼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는 의미로

“Impossible Black Tulip of Cartography”라고도 불린다.
16세기 중국을 찾아와 동서양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던 선교사 마테오 리치(중국명 利瑪竇).

그의 아시아 선교는 1583년 중국 광둥 지역의 자오칭에서 시작되었다.

1601년 베이징에 온 그는 중국인 이지조와 함께 <곤여만국전도>를 만들어

중국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테오 리치는 지구, 경위선, 회귀선 개념과 함께

하늘의 1도가 땅의 250리에 해당된다는 것을 기준으로 이 지도를 만들었다.

 

 

 

섹션 2. 조선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실학과 세계지도

 

조선에서 서양에 대해 막연했던 지식이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실학의 선구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조선에 소개하였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 외에도 알레니의 <만국전도>,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 등

서양식 세계지도들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하백원은 알레니의 <만국전도>를 모사하였고,

최한기와 김정호는 장정부의 서양식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를 목판본으로 제작하였다.

 


18세기 이후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은 더 이상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었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점차 무너져 조선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움트기 시작했다.


∘ 성호 이익(1681-1763)
“지구 아래와 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서양 사람들에 의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땅이 둥글고 우주 가운데 있는 데도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땅에는 '지심(지심)'이 있어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담헌 홍대용(1731-1783)
“월식은 땅의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 다산 정약용(1762-1836)
“땅의 모양을 네모나게 한 것은 측량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땅의 본래 모습은 둥근 것이다.”

 

∘ 이재 황윤석(1729-1791)
"마테오 리치가 천하를 그리면서 경도와 위도로 위치를 정했다.

해 뜨는 시각과 절기 시각의 차이가 모두 <곤여만국전도>에서 나왔다."

 

 

 

 

 

 

 

 

 

 

 

 

 

 

 

 

 

 

 

 

 

 

 

 

 

하백원(1781~1744)이 모사한 만국전도(후손 하상래 소장)

 

섹션 3. 미지의 세계를 지워 나가다

 

서양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스 시대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원정은 그리스인의 지리 지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천문 ·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ios)

지도투영법을 사용하여 세계지도를 그렸다.

14세기 이후 서양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항해시대였던 16세기는 세계지도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인들은 활발한 탐험 활동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를 통해 얻은 지리적 정보가 세계지도 제작에 반영되었다.

지도 제작 기술도 발달하여 마테오 리치에게도 영향을 준

벨기에의 오르텔리우스(ortelius, 1528~1598)가 동판으로 근대적인 지도를 인쇄하였다.

 

마테오 리치가 참조한

오르텔리우스가 발간한 지도첩 ‘세계의 무대’에 들어있는 세계지도(혜정박물관 소장)

 

 

섹션 4. 1708년 조선, 세계지도를 그리다

 


청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서양식의 세계지도를 받아

조선에 들여왔다. 이때 그가 가지고 온 세계지도가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였다.

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1708년(숙종 34) 8폭 병풍의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숙종은 중국에서 들어온 이 세계지도를 보고 감동한 나머지 당시 최고의 지도 전문가를 동원하고

김진여를 비롯한 당시 궁중 최고 화원 여러 명에게 다시 그리게 했다.
이렇게 병풍식에 채색을 한 새로운 세계지도가 조선에서 탄생했다. 

 

1708년 8월에 그린 회화식의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보물 제849호). (보물본 사진 그래픽)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봉선사 소장본(1951년 유실 추정)

1931년에 촬영한 봉선사본 흑백 사진(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남양주 봉선사에서 소장했던 <곤여만국전도>는 보물본보다 한 달 늦은 9월에 만들어졌다.

국왕이 보기 위해 만든 어람본(御覽本)으로 보물본보다 훨씬 화려하고 생생하다.

 

 

 

 

서양의 배와 각 나라 혹은 상상의 동물을 그린 회화식 세계지도인 이 곤지도 자체만 보면 6폭으로, 당시 영의정 최석정이 쓴 발문 부분을 포함하면 총 8폭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린 지도는 현재 몇 점밖에 남아있지 않다.

어람용인 봉선사 소장품은 흑백사진만 남긴 채 한국전쟁 때 소실됐으며,

이보다 한달 앞서 제작된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박물관(보물 849호)에 전하지만

이 또한 마모가 극심해 실물 전시는 불가능하다.
이 외에도 다른 판본이 일본 오사카 남만문화원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만국총도> 1645년,

일본 시모노세키 조후박물관

 

 

 만국인물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조선을 비롯한 일본에 전래된 것은 17세기 초이다.

조선과 달리 일본은 중국 이외에도 바다를 통해 포르투갈 등의 서양 문화가 유입되고 있었다.

일본은 이미 16세기 서양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가 들어왔으나,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어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한자로 된 <곤여만국전도>는 한자문화권인 일본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세계의 지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바탕으로 세계지도가 제작된 것은 1645년이다.

당시 쇄국정책을 폈던 에도 막부에서 유일하게 문호를 개방한 나가사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섹션 5. 동서양 세계관의 충돌 - 천하도(天下圖)

 

동양세계지도인 <천하총도>, 1684년, 목판본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조선후기에 그려진 <천하도>는

그간 도교와 신선의 세계를 표현한 지명 때문에 막연한 상상의 세계를 그린 지도로 알려져 왔다.

 

<곤여만국전도>가 왕실 및 일부 지식인들이 본 세계지도라면,

<천하도>는 민간의 지식인들이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과 같은 지도였다.

특히 한 개의 원안에 그려진 <천하도>는

서양에서 전해진 넓은 세계, 땅과 하늘의 관계, 지구 구체설 등을

동양적 언어로 이해하려 했던 세계지도였다.

 

 

당빌의 신중국지도첩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동양 고전의 단어들을 통해 서양식 세계지도를 이해하려 했고,

그것이 천하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땅과 바다는 본

 

 

 

 

Section 2.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와 곤여만국전도
◯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 동서양 문화 교류의 가교

 

○ 1602년 마테오 리치와 곤여만국전도

청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서양식의 세계지도를 받아 조선에 들여왔다. 이때 그가 가지고 온 세계지도가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였다. 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1708년(숙종 34) 8폭 병풍의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1708년 8월에 그린 회1708년 8월에 그린 회화식의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보물 제849호). (보물본 사진 그래픽)

남양주 봉선사에서 소장했던 <곤여만국전도>는 보물본보다 한 달 늦은 9월에 만들어졌다. 국왕이 보기 위해 만든 어람본御覽本으로 보물본보다 훨씬 화려하고 생생하다.

사진으로만 남아있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봉선사 소장본(1951년 유실 추정)1931년에 촬영한

봉선사본 흑백 사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섹션 2. 조선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조선에서 서양에 대해 막연했던 지식이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실학의 선구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조선에 소개하였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 외에도 알레니의 <만국전도>,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 등 서양식 세계지도들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하백원은 알레니의 <만국전도>를 모사하였고, 최한기와 김정호는 장정부의 서양식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를 목판본으로 제작하였다.
18세기 이후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은 더 이상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었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점차 무너져 조선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움트기 시작했다.


∘ 성호 이익(1681-1763)
“지구 아래와 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서양 사람들에 의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 담헌 홍대용(1731-1783)
“월식은 땅의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 다산 정약용(1762-1836)
“땅의 모양을 네모나게 한 것은 측량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땅의 본래 모습은 둥근 것이다.”

 

 

 

 

 

 

 

 

 

 

 

 

 

 

하백원 만국전도(후손 하상래 소장)

 

섹션 3. 미지의 세계를 지워 나가다

 

1. 서양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스 시대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원정은 그리스인의 지리 지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도투영법을 사용하여 세계지도를 그렸다. 14세기 이후 서양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2. 대항해시대였던 16세기는 세계지도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인들은 활발한 탐험 활동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를 통해 얻은 지리적 정보가 세계지도 제작에 반영되었다. 지도 제작 기술도 발달하여 마테오 리치에게도 영향을 준 벨기에의 오르텔리우스(1528~1598)가 동판으로 근대적인 지도를 인쇄하였다.
마테오 리치가 참조한 오르텔리우스의 세계지도(혜정박물관 소장)

 

 

 
섹션 4. 1708년 조선, 세계지도를 그리다

◯ 1708년 조선, 세계지도를 그리다


청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서양식의 세계지도를 받아 조선에 들여왔다. 이때 그가 가지고 온 세계지도가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였다. 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1708년(숙종 34) 8폭 병풍의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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