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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초상화이야기 5 - 초상화 속 흉배

Gijuzzang Dream 2011. 11. 17. 08:14

 

 

 

 

 

 

 초상화 이야기 - 초상화 속 흉배

 

 


조선시대 초상화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하는 형식은 관복 초상화이다.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상복에 부착했던 흉배는

초상화 주인공의 성격과 초상화의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조선시대에 흉배는 1454년(단종2) 12월에 문, 무관 3품 이상의 관복에 흉배를 붙이게 되면서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는 고려시대의 복제에 따라 흉배를 부착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초에 3품까지만 부착했던 흉배는 1505년(연산군 11) 9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영조대에는 흉배제도가 문란해져 품계에 맞는 흉배를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무관의 운학문 흉배 착용을 엄금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흉배 제도의 역사는 초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5-16세기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흉배가 부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초상화는 <신숙주 초상>이다.

날개를 접고 있는 백한이 수놓아져 있는 흉배로 당시 흉배제도와

신숙주의 이력을 대조하면 1453년 정난공신때의 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세기 인물들 초상화를 보면 금색으로만 된 흉배로 이후 오색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흉배와는 구분된다.

조선후기의 이모본인 경우에도 원본 제작 당시의 금색 흉배 형태를 재현했다.

 

  

신숙주 초상                               장말손 초상

조선, 15세기 중엽                     조선, 15세기, 고령 신씨

문충공파 종약회                     인동 장씨 연복군종택

 

               유순정 초상, 조선, 18세기                         이우 초상, 조선, 18세기

          서울유형문화재 제 221호 서울역사박물관             진성 이씨 송당종택

 

 

17세기

 

<정탁 초상>과 <이시방 초상>에서는 기러기와 모란문양, 구림문양이 배합된 운안 흉배가 부착되어 있다.

여러가지 색깔의 운문은 옆으로 길다.

<전 조의 초상>의 흉배는 모란공작 흉배로

모란의 모양은 <이시방 초상>보다 앞서 그려진 1613년의 혀난공신 흉배 속 모습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14세기 인물인 조의의 초상으로 전해지는 이 초상은 다른 사람의 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탁 초상, 조선, 1604년경                   이시방 초상, 조선, 1623년경

                          청주 정씨 약포종택                       대전선사박물관, 이종억 기탁

                                                                                     

   

                   전 조의 초상, 조선, 17세기 초                 윤중삼 초상, 조선, 17세기 초

 


18세기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복본 초상화는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초상화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도 18세기의 초상화들은 아름다운 흉배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정 3품 이상 당상관의 쌍학문 흉배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18세기 초의 초상화들 중에는 유독 흉배를 섬세하게 표현한 예가 눈에 띠는데

<남구만 초상>과 <남유용 초상>은 실의 느낌까지 살려냈다.

18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학 두 마리가 다소 흉배 위쪽으로 함께 이동하며,

아래쪽으로 바닷물결이나 파도의 문양이 들어가기도 한다.

 

 

                     남구만 초상, 18세기 초                        남유용 초상, 조선, 1748년

 

                 이정보 초상, 조선, 1760년대                이성원 초상, 조선, 18세기 후반

 

 

무관의 흉배


1454년 (단종2)에 처음 수립된 조선시대의 흉배제도에서 무관의 흉배는 1, 2품은 호표, 3품은 웅표였다.

영조대에는 무관의 문관 흉배 금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관이면서도 문관의 흉배를 착용하는 등 흉배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초상화 속 무관들의 흉배는 호랑이와 해치문양이 많이 보인다.

해치문양은 원래는 대사헌의 흉배로 제정되었으나, 무관의 흉배로도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경업 초상>에서와 같이 동, 식물이 아닌 곡선이 구름문양이 연속되는 흉배 문양도 보이는데

이는 인조대에 나라에 공을 세운 무인들에게 내린 흉배였다.

 

                           이창운 초상 부분                                 전 구인후 초상 부분

                  조선, 1782년 이건일 소장                            조선, 17세기 전반

 

                              이국현 초상 부분                               임경업 초상 부분

                조선, 1774년 <동준시무과도상첩> 중                 조선, 19세기

 

 

외국인이 그린 초상화 속의 흉배


한, 중, 일 교류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려가지고 들어온 초상화 속의 흉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조선시대 관복이나 흉배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외국인들이 짧은 시간에 그리다 보니

조선의 복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그림들이 그려지곤 했다.

<남이웅 초상>의 흉배는 1627년에 그려진 <이시방 초상>과 같은 공작 흉배지만

공작의 모양이나 구름 문양이 많이 다르며 전체적으로 금빛으로 채색된 점이 눈에 띤다.

또한 <조태억 초상>은 봉황이 그려져 있어 흉배와 조태억의 신분이 맞지 않는다. 

 

    남이웅 초상, 중국, 청, 1627년,             조태억 초상, 일본, 에도, 1711년

            행정중시복합도시건설청, 남대현 기탁

 

 

김육 초상

중국 청, 1650년, 실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전시 도록

- 이혜경,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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