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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초상화이야기 3 - 조선 초상화로 풀어 본 얼굴 속 비밀

Gijuzzang Dream 2011. 11. 17. 07:58

 

 

 

 

 

 

 조선 초상화로 풀어 본 얼굴 속의 비밀


                                                                  

 

얼굴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의 얼굴을 대하면,

아무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 즉시 성별, 연령, 품성 등을 단번에 짐작하여 알아낸다.

얼굴에 있는 정보를 읽어 내는 사람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예전 우리의 초상화에도 역시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초상화란 닮게 그리고자하는 목적이 분명한 그림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초상화에는 유럽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유럽의 초상화를 보면 주인공이 초상화 그리는 날

일부러 얼굴 한쪽에 숯검댕이를 칠하고 앉아 있었을 리가 없건만, 얼굴 반쪽을 검게 그린다.

남자 뿐 아니라 공주님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공주님의 귀티 나는 하얗고 볼그레한 뺨에 구태여 검정 때를 묻혀 그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유럽인 중에 검은 동자에 흰점이 박힌 각막상흔(角膜傷痕)이 있는 사람이 몇 %나 되겠는가?

그런데 유럽의 왕자님 공주님들의 초상화에는 한결같이 각막에 상처가 나 아문 흰점이 자국으로 남아있다.

유럽의 화가들은 이런 방법으로 적어도 2천년 이상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우리의 초상화가들은 수 천 년 동안 이런 명암법(明暗法)을 단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으면서도

멀쩡하게 초상화를 발달시켜서 전신화(傳神畵-인품까지도 전해 받는 그림)의 경지까지 올려놓았다.  

 

  <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

 

 

 <이채의 초상>

 

조선시대 화가라고 얼굴 한쪽이 그늘져 어두운 시각적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눈에 흰점광원(光源)이 없을 리도 없지만, 이렇게 그린 이유는

조선의 초상화는 그 사람의 본질을 나타내고자했기 때문이다.

얼굴에 보이는 밝고 어두운 것은 광원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서 언제고 바뀌는 것일 뿐

그 사람이 가진 본질이 아니고, 검은 동자의 흰점도 비록 눈에는 보이지만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특징이 아니다.

대신, 흰 눈썹 털이 몇 가닥인지, 마마자국은 몇 개인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바를 낱낱이 그린다.

유럽의 초상화가는 수염에 가려진 검은 사마귀가 보이지 않으면 안 그리지만,

조선의 화가는 사마귀를 그려 넣고 그 위에 수염을 그리는 식이다.

유럽의 화가들은 ‘보이는 바’를, 조선의 화가들은 ‘있는 바’를 그린다.

초상화에는 이렇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대로의 정보가 그대로 남아있으니

그때 앓았던 질병을 오늘날의 현대 의학의 눈으로 밝힐 수도 있다.

실록에 나온 당시 유행했던 ‘괴질(怪疾)’이 무엇인지도 알아낸다.

 

이런 초상화 양식의 차이는 유럽인과 조선시대 화가의 뇌(腦)가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뇌의 사용법에는 상반요소가 많아서,

초상화양식에도 차이를 가져왔다. 뇌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전자이다.

만드는 유전자의 차이가 뇌기능의 차이를 가져 왔고,

이것이 초상화 양식의 차이까지 작용해 온 것이다. 얼굴 또한 유전자에 의하여 그 특징이 지정된다.   

 

초상화에는 우리 한국인의 유전자적 특질-형질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용모 유전자는 대립형질이므로, 눈썹은 진하거나 흐리거나, 두텁거나 얇거나, 길거나 짧거나,

이렇게 서로 상반 것들 중 한 가지를 택하여 발현될 수밖에 없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립형질 중 한 가지를 택하여 이목구비의 특징이 구성된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李恒福)선생은 얼굴윤곽이 전체적으로 위아래 좌우너비가 크고

상대적으로 중안이 좁아서 땅콩형이다. 눈썹은 길고 끝까지 진하고, 미간은 좁다.

크고 쌍꺼풀이 있는 눈에, 짧은 듯한 코에 끝이 둥글고 콧방울도 박문수의 두 배나 되어 보이게 크다.

수염 또한 무성하다.

 

여기에 비하여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선생을 보면 얼굴생김이 전혀 반대이다.

두상과 턱이 좁아서 전체적으로 고구마형에, 눈썹이 앞의 반은 진하고 뒤쪽 반은 흐리다.

미간은 넓고, 코는 길고 코끝이 작고 콧망울도 작다,

조선의 셜록 홈즈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수염도 빈약하다.

 

 

< 백사 이항복 >

 

 

< 암행어사 박문수 >

 

한반도에서 이항복형 얼굴은 동남아시아 등 저위도 지역의 주민에 많고,

한반도의 남쪽 해안 · 강안의 주민에 많다.

박문수형은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지방과 우리나라의 산지 내륙에 많다.

이런 용모유전자 발현형이 각각 동남아와 시베리아로부터 따로 한반도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역대 초상화 속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남방계 · 북방계 두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형질을 띄면서도 이 두 얼굴 모두 한국인 인상이다.

초상화를 보면 이미 조선시대에는 우리 한국인 얼굴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600년 전에도 이미 우리 얼굴이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 특징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때는 어땠을까? 증거는 빈약하지만 이때도 이미 우리 얼굴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삼국시대 초에는 아직 우리 얼굴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때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얼굴이었나?

전남, 경남 등지의 바닷가에서 발굴되는 인골로 얼굴을 복원해 보면, 우리와 얼굴생김이 다르다.

거의 아프리카인같이 생겼다.

 

한편, 충북산지 내륙의 2,300년 전의 황석리인(黃石里人)은 북유럽인 얼굴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는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와는 거리가 멀고, 그 쪽과 오히려 가까운 모양이라는 말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현재의 우리 같은 얼굴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 같다.

통일에 의하여 이 땅의 인구집단이 재편되고, 용모유전자의 전국 균질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본시 한국인의 뿌리가 이항복형, 박문수형 두 갈래였음에도,

최근 1,500년 동안 우리끼리 전국에 섞여 결혼하다 보니 이런 동질성이 생긴 것이다.

 

우리 한국인 얼굴을 그린 초상화 속 얼굴에는 이렇게 많은 정보가 층층히 쌓여 있다.

비록, 겉 표면만 그렸지만, 그 표면형상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의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얼굴 속에 담긴 정보를 초상화에서도 구현해내고자

조선의 화가들은 이름조차 전신화(傳神畵)라고 불렀다.

역시 조선의 초상화는 조상님들의 형질과 마음까지도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름 그대로 전신화이다.

 

- 조용진, 미술해부학 박사/ 전 서울교대 교수/ 얼굴연구소장

- 박물관 NEWS  482호(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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