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冊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길 위에서 책읽기

Gijuzzang Dream 2011. 11. 2. 19:54

 

 

 

 

 지안 스님 역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말씀의 길을 걷다



루쉰이 말했다. 길은 가고 나면 열리는 법이라고.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그 말을 내내 떠올렸다.

이 사막에 어찌 태초부터 길이 있었겠는가. 긴 세월 사람들이 다녀 길이 열렸을 터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 나은 물질적 삶에 대한 동경과 희구가 이 길을 닦았으리라.

타는 듯한 더위나 맹수의 위협, 그리고 그런 것보다 더 위험했을 산적들이 널려 있었더라도

그들은 이 길을 갔을 터다. 무서운 집념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바로 그 욕망의 집착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이기의 길이다.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둔황을 둘러보며 아직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 길은 세속적 열망만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열망의 발자국이 길에 새겨져 있었다.

말씀에 대한 갈망. 내게 주어진 삶이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여기서 헤어나오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질문한 이들이 답을 찾아 나섰던 길이다.

그들은 원본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전해져온 그 분 말씀의 원본을 찾아서,

그 말씀이 가능했던 그 분 삶의 행적이라는 원본을 찾아 상상할 수 없이 멀고 험한 길을 나섰다.

본디 원본이란 근본이기도 한 법. 모든 회의와 방황 그리고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얻은 경전을 품에 안고 되돌아왔다.

혼자 구원받으려 하지 않고 뭇 중생을 구제하려 했다.

내가 서 있는 길이 말씀의 길이요, 이타의 길이기도 했다.

나는 전율했다, 그 길 위에서. 우리 삶의 상징이 여기 펼쳐져 있다 여겨서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삶이란 대립하는 것의 통일이다. 어느 하나에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것들의 변증법적 통일이 진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삶의 비의는 늘 ‘한 곳’에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있다. 우리 삶의 길도 그러하다.

다수는 실크로드를 걷는 삶을 산다. 지겨워하면서 걷기도 하고, 아득바득거리며 걷기도 한다.

이건 무가치한가? 아니다. 이 길이 있어야 나와 가족이 살고 세상이 유지된다.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이냐면, 이 길만을 목표로 삼는 데 있다.

극소수가 말씀의 길을 걷는다. 진정한 것의 고갱이를 품고 사는 삶이다. 존경하고 부러워할 삶이다.

그러나 그리 살지 못한다고 콤플렉스를 느낄 일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의미 있다.

나는 그 길 한가운데 서서 두 팔 벌리며 마음속 깊이 외친 바 있다.

진정 내 삶이 두 길의 한가운데이기를!

이를 다른 말로 번안한다면, 세속의 삶을 버릴 수야 없으나 말씀의 가치를 잊지 않기를, 이 되리라.

     

    거듭 읽어봐도 도통 재미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불광출판사)을 읽었다.

     

    이 책, 교과서에서 우리 옛사람이 쓴 가장 오래된 여행서라 배웠겠으나,

    무슨 이국 풍물이 흥미롭게 기록된 바도 아니고,

    부처님 땅에 가서 비로소 얻은 놀라운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무미건조하다.

    책을 옮기고 풀이를 단 지안 스님의 말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향,

    왕의 이름, 언어와 기후, 풍습, 왕이 소유하고 있는 코끼리의 수, 종교적 성향,

    불교가 전파된 곳일 경우에는 대승인지 소승인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기록”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발견한 고서뭉치 가운데 앞뒤 잘려나간 한 필사본이

    혜초의 것임을 밝힌 펠리오가 <불국기> 같은 문학적 가치도 없고,

    <대당서역기>처럼 정밀한 서술도 없다고 평했겠는가.

    솟구쳐 오르는 민족애로 분노하지는 말 것. 읽어보면 알겠지만, 다 맞는 말이다.

     

    거기다 틀린 것도 제법 된다.

    여행기에 반복해서 인도 지역의 나라들은 죄인을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한다고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료에는 법이 매우 엄격하고 형벌이 가혹했다고 나온다.

    사냥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거나, 도적이 물건만 빼앗고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대목이나, 노비가 없다거나, 금은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더욱이 이미 힌두교가 널리 퍼졌고 이슬람마저 침투한 상황에서도 당시 인도를 너무 불국토인 양 기록한 것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직접 보고 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전해들은 것도 포함하고 있어 그럴 수 있고, 여행길에서 깊이 관찰하지 못하고 대략 살펴본 불찰일 수 있고, 오늘 우리가 보는 책이 전문이 아니라 요약본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감동 없이는 읽을 수 없다.

    혜초가 뱃길로 인도 땅에 발을 디딘 것은 723년.

    이때부터 4년에 걸쳐 40여개의 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다녀온 나라는 오늘로 치면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러시아 등이다.

    이거 대단한 일이다. 지금도 이런 순례가 쉽지 않다.

    당장 경비가 문제가 된다. 혜초가 여행하던 시절은 지금 중동을 여행하는 것과 비슷한 점도 있었다.

    이슬람 세력이 인도지방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던 차라 정국이 안정되지 못했다.

    교통편은 말해 무엇하리. 아마도 도보여행이 중심이었을 터.

    당시 인도 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다른 자료들이 보여준다.

     

    404년 지맹이 15명과 함께 인도 순례를 떠났다.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이미 10명이 희생되었다.

    나중에 장안으로 귀환한 이는 지맹과 담참 단 둘뿐이었다.

    422년에는 법용이 25명을 이끌고 인도로 갔다 돌아와 보니 살아남은 이는 4명이었다.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갈구하는 이들이 떠나야 했던 순례였다.

    물질의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것을 바랐다면, 실크로드로 갔어야 한다.

    권력을 잡는 것도 아니다. 영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려면 정치를 해야 했다.

    왜 태어났고 어찌 살아야 하며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욕정과 열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만 결단할 수 있는 순례였다.

    그러니 <왕오천축국전>은 문장을 읽어서는 안된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살아 숨쉬는 간절함을 느껴야 한다.

    생각해보라. 언제 우리가 목숨 걸고 여행 가본 적 있는가.

    목숨 건 일이 효용의 가치가 전혀 없는, 삶의 구원 문제인 적이 있는가.

    혜초는 그 길을 갔다. 용케 살아 돌아와 둔황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었다.

    그 뜨거움에 감동한 누군가가 그 글의 요약본을 만들었을 거고, 다른 이가 그것을 옮겨 적었으리라.

    지금 우리가 보는 여행기가 바로 그것이다. 알고 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혜초는 꿈을 이루었다.

    석가모니의 열반지 구시나국(쿠시나가라), 최초의 설법지 피라날사국(바라나시), 성도지 마하보리사를

    두루 둘러보았다. 감격한 혜초, 한 편의 오언시를 읊는다.


    “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함이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기득을 버리고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게 하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사막과 광야를 건너게 해주었고, 고원과 산맥을 넘게 해주었다.

    당이 동북아시아에 제국을 이루고 있을 적에 동쪽 변방 신라 출신인 혜초는 왜 그토록 말씀을 갈구했을까.

    그 정성이라면, 제국의 핵심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 입신양명의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최치원이 걸었던 바로 그 길 말이다. 하나, 그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제국의 중심으로 가는 세속적 열망을 버리고 말씀이라는 보편성의 길을 갔다.

    변방에서 살아보았기에 이미 알고 있었나? 제국으로 가는 길이 한낱 부속품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아니면, 석가모니가 그러했듯 누릴 것 다 누려보아도 절대 해결되지 않는 삶의 화두가 있어 그러했던가.

    혜초의 삶에 분명히 두 갈림길이 놓여 있었을 터다. 가기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혜초는 당대의 세계인이다.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순례했다.

    개별성의 흔적이야 왜 없었겠는가. 고향을 그리는 시를 남긴 이유가 거기에 있을 터.

    그러나 그는 경계 안에 주저앉지 않았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추구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시절 최고의 학문이었을 터요, 최고의 문화였을 터요, 궁극의 종교였을 터다.

    세속의 제국은 중심이 있고 나머지는 종속의 자리에 놓여 있다.

    하지만 말씀의 나라는 달랐다. 민족과 계급이 녹아버리고 간절한 이가 얻을 수 있는 참된 것이 있었다.

    세속의 제국은 차별하나, 말씀의 나라는 평등했다.

    혜초가 꿈꾼 것은 말씀으로 자유로워지고 평등해지는 것이었으리라.

    그토록 뜨거운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놀라운 여행을 했겠는가.

    혜초가 처음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당에 가서 불교를 공부한 이들이 있고, 인도를 찾아간 이들이 있었다.

    혜초는 바로 우리 정신사에서 흔하지 않은 세계성과 보편성을 추구한 지적 계보의 한 상징이다.

    그래서 그의 <왕오천축국전>이 값지고 값진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실크로드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의 길이다.

    우리 삶이 한낱 장사치로 전락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물불 안 가리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산다면 우리의 고귀성은 휘발되고 만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본토와 아비 집을 버리고 종교인이 될 수는 없다.

    거기에 영원한 것이 있으나, 그렇다고 우리의 욕망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마땅하게도 두 길 사이에 있다.

    맹목이 되어 하나만 부여잡고 산다면 그것은 파탄일 터.

    긴장을 잃지 않고 두 길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혜초는 묻는다.

    과연 그 길을 걷고 있냐고? 세계화의 길이 오직 그것뿐이냐고?

    지금의 삶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으냐고?

    우리가 배낭 메고 혜초가 걸은 길을 따라가야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혜초가 남긴 문장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걸어가야 마땅한 삶의 길이 열린다.

    기적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렷다!
     

    - 이권우, 도서평론가 [길 위에서 책읽기]

    - 2011-06-10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