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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Gijuzzang Dream 2011. 7. 19. 13:02

 

 

 

 

2011년 7월 19일(화)부터 9월 18일(일)까지 전시되는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개막식이

7월 18일(월) 16시,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중요성과 그 내용을 알리고 무엇보다 의궤 귀환의 기쁨을 국민과 함께 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자: 손범수 국립중앙박물관 홍보대사>

 

 

<인사말: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축사: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축사: 전재희 국회문방위원장>



<축사: 김의정 해외문화재 환영대회 추진위원장>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은 외규장각 의궤의 면모를 6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1부에서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의궤의 개념과 구성을 설명하고, 정조대에 강화도 행궁(行宮)에 외규장각을 완공하여 어람용 의궤 등 왕실의 중요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동시에 제작한 어람용과 분상용의 의궤를 나란히 전시하여 표지, 본문, 도설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종묘수리도감의궤_1637년(인조 15)_유일본>

병자호란으로 훼손된 종묘를 보수하고 종묘의 신주(神主)를 수리하고 새로 만든 사실에 대한 의궤.

1636년 12월 청나라 군대를 피해 신주를 강화도로 옮겨 묻었다가 훼손된 경위에서 이듬해 7월 6일 종묘와 신주의 보수를 마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었다.

목록 없이 바로 문서가 시작되어, 체재가 정형화되기 전인 17세기 초 의궤의 양식을 보여준다.

 

숭정 9년 병자(1636년) 12월초 10일 청나라 병사가 압록강을 건너 경성까지 근접하자, 14일 아침에 먼저 종묘와 사직의 신주를 받들어 강화도로 들어갔다. 오시(午時, 11시~13시)에 대가(大駕, 왕의 가마)가 이어 출발하여 숭례문에 이르렀을 때 청의 기마가 이미 홍제원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돌려 남한산성에 들어갔는데, 15일 저녁 산성이 포위되었다.

정축년(1637년) 1월 22일 청나라 군대가 갑곶진을 건너 강화도를 함락시켰다.

종묘 · 사직 양서의 제조 해창군 윤방(尹昉)이 종묘 봉사 지봉수(池鳳遂)와 사직 참봉 이진행 등을 이끌고 (종묘 사직의 신주를) 묻었으나, 종묘 · 사직의 신주가 청나라 병사에 의해 파내지고 다시 묻히고 다시 파내지면서, 어찌할 새 없이 종묘 신주 1위와 사직 신주 4위의 받침을 잃어버렸다.

 

 

 

2부부터 6부까지는 외규장각 의궤를 내용별로 구분하여 전시하였는데,

2부의 주제는 '왕권과 통치'로서 의궤 속에 보이는 조선시대 통치 이념의 면모를 살표보고자 종묘제례, 친경, 영건, 녹훈 관련 의궤를 전시합니다. 특히 유일본인 '보운녹훈도감의궤(1682년, 숙종 8)' 중에 한글 문장이 적혀 있어, 의궤에 한글이 기록된 희귀한 사례로 주목됩니다.

 

 

 

 

 

 

 

3부의 주제는 '나라의 경사'로서 왕실의 혼례, 책봉, 존호 등에 관한 의식을 기록한 의궤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식 및 행사를 집행하기 위해서 우선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업무를 분담하는 하부의 작은 조직들을 구성하여 국가의 경사스런 행사를 치렀습니다.

의궤를 통해 제작물품의 목록과 재료, 장인 명단, 도설, 행렬 그림인 반차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종명성왕후가례도감의궤>

현종이 왕세자시 세자빈(후의 명성왕후)을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

 

 

<헌종효현왕후가례도감의궤>

헌종이 효현왕후를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

 

 

<정조왕세손책례도감의궤>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후의 정조)을 왕세손으로 책봉한 과정을 담은 의궤

 

 

 

 

 

 

 

4부의 주제는 '왕실의 장례'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의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죽음과 관련된 의식이었습니다.

특히 왕과 왕비의 장례는 국장(國葬)으로서, 임종과 장례 준비, 무덤의 조성, 장례 행렬, 삼년상 동안의 제사 등이 모두 엄숙하고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 의궤가 전시됩니다.

 

 

 

5부의 주제는 '추모와 기억'으로 3년상을 마친 후 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는 부묘,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에게 일생을 함축한 이름을 올리는 시호, 왕의 초상을 그리는 영정 제작 등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선왕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추모하는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6부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과정을 짚어봅니다. 이를 위하여 병인양요 때 참전했던 프랑스 해군 쥐베르의 기록 등 관련 서양서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외규장각 의궤의 행방을 기록한 여행 잡지>

1860년에 창간된 여행 잡지이다.

1873년 쥐베르(M.H.Zuber)가 기고한「Une Expedition en Coree」에는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많은 양의 서적과 비축용 종이 등을 발견하였는데, 일부 서적이 놀라운 그림으로 장식되었으며, 대부분의 서적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 어떤 책들은 훌륭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 그것은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과정을 묘사한 주간지>

1834년에 창간된 프랑스 최초의 주간지이다.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프랑스 해군 쥐베르(M.H.Zuber)가 기고한 1867년 1월 19일, 26일 기사인「Expedition de Coree」에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과정과 전투상황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외규장각으로 추정되는 건물 앞을 행군하는 프랑스군의 모습이 담긴 스케치가 눈길을 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약탈 사실을 기록한 책>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부인 달레가 지은 조선의 천주교회사이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이 있는 행궁 등의 주요 시설에 불을 지른 사실과 불을 지르기 전 이곳에서 은괴와 의궤를 비롯한 도서들을 본국으로 우송한다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197,000 프랑의 값어치가 되는 은괴를 담은 상자들과 학문을 위하여 어느 정도 흥미를 끌 수 있는 필사본들과 서적들은 상해(上海)로 발송되었는데, 거기서 프랑스로 운반될 것이다."

 

 

<오페르트가 본 병인양요의 원인과 과정>

19세기 후반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지은 조선에 대한 소개서이다.

본래 이 책은 독일어로 출판되었지만, 후에 영어로 번역될 정도로 19세기말 서양인들에게 조선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였다. 특히 이 책에서는 병인양요의 원인 및 과정에 대한 설명과 저자가 조선의 상업적 가치를 극도로 미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외규장각 의궤의 상세 목록과 보관처를 소개한 책>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동양학자인 모리스 쿠랑이 지은 한국의 서지 목록이다.

2권에서는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의 상세한 목록과 함께 그것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4년에「한국서지」란 명칭으로 번역되어 간행되었다.

 

 

 

 

 

 

* 특별강연

ㅇ일시: 2011. 7. 22(금) 오후 2시~5시

ㅇ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 이태진(국사편찬위원장): 외규장각 의궤 귀환의 의의

 - 이성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외규장각 의궤의 문화사적 의의

 

* 전시설명

화~금: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 3시

토: 오전 10시, 11시

 

* 큐레이터와의 대화

7.20(수) / 8.17(수) / 8.31(수) / 9.14(수) 오후 6시 30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원문 http://blog.naver.com/100museum/140134467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