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진전(眞殿), 신선원전(新璿源殿)
- 창덕궁 신선원전 조사도록 발간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동산문화재 지정학술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2009~2010년 까지 2년 동안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최후의 진전 창덕궁 신선원전』으로 발간했다.
1921년에 세워진 신선원전은
역대 진전(眞殿 : 임금의 초상화(御眞)를 모셔둔 곳) 중 최후에 건립된 어진(御眞) 봉안처(奉安處)로,
조선왕조 어진봉안과 제례의식 전통을 마지막까지 계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본래 조선 태조~순종에 이르는 총 12국왕의 어진 48본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동안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선원전의 여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진을 걸어 두었던 12개 감실(龕室 : 신주(神主), 어진 등을 모셔둔 곳)은
1900년대 의궤도설(儀軌圖說)과 일치하여 왕실의 전통적인 법식을 충실하게 계승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현존 유물은 대한제국기 이후 변화된 시대상을 뚜렷하게 간직하고 있다.
감실을 비롯한 당가(唐家 : 어좌 위 작은 집 모형, ‘닫집’이라고도 함),
용상(龍床 :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앉았던 평상), 각답(脚踏: 교의 아래 둔 발판, 족좌대) 등 가구 및 시설물은
주칠(朱漆)이 아닌 황색(黃色)으로 개칠하였고 건립 당시의 것이 아닌
영희전(永禧殿), 구선원전(舊璿源殿), 의효전(懿孝殿) 등 몇몇 전각에서 옮겨온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로 인해 각 실의 크기와 세부 기법, 문양이 일률적이지 않고 조금씩 차이가 난다.
또한, 감실 뒤편에 배치되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모란병(牧丹屛)을 비롯해
감실 내 오봉병(五峯屛), 매화병(梅花屛), 어진교의(御眞交椅 : 어진을 모셔두는 의자) 등
회화 및 공예품을 통해 새로운 화학안료의 사용과 19세기 도상(圖像)의 적용 등
신, 구 전통이 공존한 19~20세기 초 궁중미술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도록에는 그간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신선원전의 내부 및
의효전(懿孝殿), 괘궁정(挂弓亭), 몽답정(夢踏亭) 등 주요 부속건물의 주변 경관까지 수록했다.
아울러 미술, 건축, 제례 등 분야별로 신선원전을 조명한 연구논문, 1920년대 관련 신문자료 등도 발굴,
수록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조선시대 진전의 전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신선원전의 빗장을 열고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공개한 이번 도록 발간은
조선왕실 의례공간으로서 종묘에 버금가는 신선원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선원전 내부 감실 현황
감실 내부의 당가(唐家)와 용상
어진교의(御眞交椅) 어진교의 아래 두었던 각답(脚踏: 족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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