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선농단(先農壇)

Gijuzzang Dream 2010. 11. 26. 15:12

 

 

 

 

 

 

 

 

 

 

 

농단(先農壇)

왕이 손수 농사의 소중함 일깨워주던 곳

 

  

 

 

 

영조도 정조 데리고 나와 밭갈이 참여

 

선농단(先農壇)은 농사짓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을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이다.

 

신농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으로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온갖 풀들을 맛보고 병을 다스렸으며,

음악과 점술 그리고 경제의 신으로 받들어졌다.

한편 후직은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시조로 농업과 온갖 곡식의 신으로 받들어졌다.

 

동대문구 제기동 274-1에 복원되어 있는 선농단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사적 제436호로 지정되어 동대문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 조사 목적으로 발굴 작업 중에 있다.

 

선농제는 신라 때부터 비롯되었으나 정작 신농과 후직을 제향한 것은 고려 성종 7년(988)부터이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였고,

특히 농업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친 관계로 선농제를 더욱 자주 지냈다.

 

『증보문헌비고』에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농업은 만 가지 일의 근본이요, 왕이 밭을 가는 것은 농업을 권장하는 근본이다.’라고 하여

전(籍田, 임금이 직접 농사짓는 밭)제도의 실시를 왕에게 주청하였다.

이 주청이 받아들여져 곧 선농단 부근에 적전을 마련하고 농사의 소중함을 만백성에게 알렸다.

 

성종 6년(1475)에는 관경대(觀耕臺)를 선농단의 남쪽 10보 밖에 쌓아 신하들과 함께 제사하고,

해 뜰 무렵에 직접 밭을 간 다음 신하들은 물론 함께 밭갈이에 참여한 100여 명의 농민들을 위로하였다.

영조 15년(1739) 5월에 선농단을 넓혔고,

영조 43년(1767)에는 왕이 직접 왕세손인 정조를 데리고 밭을 갈았다.

국왕이 직접 밭을 갈아 모범을 보인 것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때까지였다.

 

순종 2년(1908) 7월 이후에는 선잠단과 같이 선농단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겨지면서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제사가 중단되었다.

일제는 선농단 일대를 국유화하면서 공원으로 조성하여 선농제의 역사, 문화적 의미를 말살하였다.

 

광복 후에는 이 자리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들어섰다.

대학이 이전되면서 선농단을 복원하게 되었고,

중단되었던 제사는 1979년 제기동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선농단 친목회’에 의해서 재개되었으며,

현재는 ‘선농대제 보존위원회’가 조직되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왕이 직접 밭을 간 후 농부들을 위해 곰국에 밥을 말아낸 것이 ‘선농탕(先農湯)’

 

선농단의 신농의 신위는 북방에 남향하여 설치했으며, 후직의 신위는 단 위의 동방에 서향하여 설치했다.

제사는 매년 봄 경칩 뒤 해일(亥日)에 거행하였다.

이밖에도 비가 내리도록 빌었던 기우제나 가을에 국왕이 벼를 베는 행사도 가졌는데

선농제를 지낼 때는 농민 중에서 나이가 많고 복이 많은 사람을 참여시켰다.

 

세종 때 규정된 단의 규모는 너비가 2장 1척, 높이는 2척 5촌이며, 한 개의 둘레담이 있다.

현재는 사방 4m의 돌단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선농단은 197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에 사적 제436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이 단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향나무 고목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이 나무 아래에서 신하들과 시회를 자주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성종 때 선농단을 쌓을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예전에 선농단이 있었던 곳을 ‘계터마을’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제터’의 발음이 변해서 된 것이다.

‘제사를 지냈던 터’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제기(祭基)인데 지금의 제기동과 연관이 깊다.

마을 이름이 바로 선농단을 쌓고 국왕이 제사를 지냈던 것에서 비롯된다.

 

'설렁탕'이라는 음식의 유래도

선농단에서 왕이 직접 밭을 간 후 행사에 참석한 농부들을 위해 소를 잡고 쇠뼈를 고은 곰국에

밥을 말아낸 것을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하였던 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음이 변한 것이다.

매년 4월 경 동대문구청에서 선농대제 행사를 갖는데 행사 순서를 보면

선농제례 봉행과 더불어 옛 방식대로 설렁탕을 만들고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동대문구청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교육홍보과장)

2010.08.26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