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원천리 백제 취락유적
- 4대강 살리기 북한강구간에서 대규모 백제 취락유적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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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한성 도읍기(BC 18~AD 475) 시절 현재의 강원 화천 일대까지 진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됐다. | ||||||
문화재청에서 허가하고,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화천 원천리 유물산포지 내 유적 발굴조사 하고 있다.
ㅇ 발굴장소 :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42-1번지 북한강변 충적대지 1만7500㎡ ㅇ 조사기간 : 2010. 5. 26 ~ 현재
ㅇ 조사결과
- 청동기시대 주거지 약 23기, 석관묘 1기, 철기~삼국시대 주거지 약 120기, 수혈 유구 약 120기, 구상 유구 1기 등 총 약 265기 - 철기~삼국시대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 등 다수. 특히, 광구단경호, 무뉴식뚜껑, 흑색마연토기, 직구호류, 고배 등 한성 백제기의 토기 다량 출토 - 철제 괭이 · U자형삽날 · 철겸 등 농구류, 철부 · 철촉 등의 무기류, 등자 · 재갈 등의 마구류와 철제 찰갑, 금동제 이식, 유리제 이당 등 다양한 유물 출토
*** 위 자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발굴제도과(신희권 연구관, 010-4560-4293)와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 011-377-3556, 책임조사원 심재연, 011-375-1826)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화천 원천리유적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4대강살리기(북한강) 사업구간 12공구 내’에 위치한 유적으로 2010년 3월 15일부터 4월 20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10년 5월 26일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현재까지 현재 확인된 유구는 약 265기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23기, 석관묘 1기, 철기(원삼국)~삼국시대(한성백제) 주거지 약 120기, 수혈유구 약 120기, 구상유구 1기 등이다. 이 중 주를 이루는 것은 철기~삼국시대의 유구로 북한강 상류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한성 백제기의 대단위 취락유적이라 할 수 있다.
철기~백제시대의 주거지는 중복현상이 관찰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화재주거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가옥구조와 변화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철자형(凸字形)과 여자형(呂字形)이 대부분인데, 출입구의 반대쪽 단벽이 직선 · 곡선 · 둔각으로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으며, 출입구 쪽의 단벽도 직선인 것과 둔각으로 변화된 것이 확인되는 등 시간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입시설도 판재를 사용하여 계단식으로 시설한 것, 강돌을 사용하여 문지방을 시설한 것,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되어 확인되었다. 일부 주거지는 화재로 폐기되면서 벽체로 사용된 판재와 가구 부재들이 고스란히 출토됨으로써 당시 가옥구조를 복원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거지의 내부에는 대부분 부뚜막이 시설되어 있으며, 비교적 이른 시기의 주거지에서는 점토띠식 노지가 확인된다. 부뚜막은 평면형태를 기준으로 ‘11자형’과 ‘八자형’으로 구분되며, 부뚜막내의 지각은 석재를 사용한 것보다 토기를 엎어놓은 것이 주를 이룬다. 특히 부뚜막의 아궁이 부분은 재래의 점토띠식 노지와 동일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재래의 토착민이 상용(常用)하던 노지에서 부뚜막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거지와 수혈에서는 각종 토기류와 금속유물, 유리제품, 곡물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경질무문토기에 비하여 각종 타날문토기가 압도적으로 출토되고 있으며 조사완료 후 유물의 복원과정을 거치면 기종의 판별이 명확해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토기류는 심발형토기 · 장란형토기 · 대호 등이 있으며, 경질무문토기류는 외반구연옹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주거지와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일부 구덩이에서는 인골 편과 짐승 뼈가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팥으로 추정되는 곡물들도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 한성기의 유물(광구단경호 · 무뉴식뚜껑 · 흑색마연토기 · 직구호류 · 고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된 점은 백제 전기의 동계(東界)를 획정(劃定)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라 할 수 있으며, 한성에서 유행하던 중앙 양식의 토기가 지방으로 전파되는 확산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판단된다.
불탄 서까래 등이 발견된 백제마을 유적지.
발굴단 관계자들이 백제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한편 Ⅱ-철58호 주거지에서는 흑색마연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이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는 표면과 음각된 부분에 옻칠이 보이는데 현미경 관찰을 통하여 토기의 태토 내부에 침투된 칠과 두께가 얇은 흑색 칠층이 함께 확인되었다. 흑색 칠층은 두께가 얇은 것으로 보아 입자가 작은 그을음(연매)을 옻칠에 혼합하여 칠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당시 도태(토기) 칠기의 제작과정에서 칠의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묽은 칠을 사용하여 태토 내부로 침투되도록 초칠을 하였고, 그 위에 흑색안료가 혼합된 칠(상칠)을 얇게 덧칠한 것으로 보인다.
금속유물로는 철제 괭이 · U자형삽날 · 철겸 등 농구류와 철부 · 철촉 등의 무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이밖에도 등자 · 재갈 등의 마구류가 확인되었다. 특히 마구류와 철제 찰갑편이 출토된 것은 한반도 중부지방에서는 발견 예가 드문 경우로, 북방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마구류 및 갑옷류의 기원과 전파 과정을 연구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으로부터, 원천리 취락의 성격을 일반적인 생활유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을 수행했던 군사적인 성격의 복합 유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기타 유물로 유리제 이당(耳?) · 구슬 · 관옥 등이 출토되었으며, 금동제 이식도 출토되었다. 이러한 장신구들은 원천리 취락 지배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그동안 백제 한성기의 중요한 위신재로 평가되었던 흑색마연토기의 존재와 함께 백제 중앙에서 파견된 지배자가 직접 지니고 온 것이나 중앙으로부터 사여받은 품격높은 물건들일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상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을 종합해 보면, 원천리 유적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4세기경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던 마을로 판단되며, 특히 백제가 한성시대 초기에 북한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하여 직접적인 지배 영역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대단위 취락이라고 할 수 있다.
-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신희권 042-481-4947 - 2010-11-03 문화재청
화천 원천리 유적 발굴 현장. 출토된 토기들이 놓여 있다.(사진제공: 문화재청)
4대강 살리기 사업구간 중 북한강 유역인 강원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춘천호 호안에서 최근 발견된 한성백제시기 대규모 마을유적 중 주거지. 4대강 살리기 사업구간인 강운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일대에서 최근 발견된 한성백제시기 대규모 마을유적은 백제의 서북방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변경의 전초기지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주거지에서 무기로 쓰이던 철촉이나 말을 탈 때 발을 디디는 등자와 재갈 등이 이례적으로 발견됐다. 백제 전기의 동쪽 경계가 지금의 춘천까지로 알려져 왔지만, 이렇게 한성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면서 한성백제가 동쪽으론 지금의 화천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됐다. 한편, 당초 연꽃단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변경해 적공원 등 문화재 관련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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