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 회화의 발전과 남송의 산수
宋대 회화의 발전
직업화가의 출현
송대에 이르러 중국 회화는 소재, 양식이 더욱 다양해지고
화원(畵員)의 발전과 귀족, 문인사대부회화의 융성 그리고 민간수요에 따라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송대의 회화는 이러한 사회 각 계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상업적으로 거래되기도 하고, 회화작품들을 파는 상점들도 등장하였다.
화가의 작품은 수요자의 취향에 따라 상품화되고,
기존의 종교적이고 귀족적인 취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발전하기도 하였다.
궁정화가의 활동
송은 건국 초 한림도화원(翰林圖畫院)을 설립하여
유명한 화가들을 불러들여 궁정과 황실귀족을 위해 작품을 제작하게 하였다.
화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거쳐야 했고, 채용 후에는 승진의 기회도 있었다.
특히 휘종 때에는 화학(畵學)을 설립하여 인물, 산수 등 여러 화목(畵目)별로 나누어 시험을 보기도 했다.
북송 초기의 화원화가에는 인물화가, 화조화가가 많았으며 고문진, 황거채가 대표적이다.
중기에 활약한 화가로는 곽희, 최백 등이 있으며,
말기 휘종 때에는 장택단, 마분, 이당, 소한신 등 많은 인재가 활약하였다.
남송 초기에는 항주로 천도하며 북송에서 남하한 휘종시기 화원의 화가들을 임용한 동시에
새로이 강남지역의 화가들을 충원하여 중건하였다.
마원, 하규, 양해, 이숭, 이적 등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남송시대 궁정회화는 중국미술사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회화의 형성
송대의 문인사대부들은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고상한 생활과 문화적인 수양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수장가와 감상가들이 많이 등장하고, 회화 애호가들의 서화활동도 매우 활발해졌다.
문인화의 제재는 묵죽, 묵매, 산수 등을 주로 그렸으며
형사(形寫)에 치우치기보다는 의미의 표현과 우아한 화풍을 추구하였다.
대표적인 북송대의 화가로는 이공린, 소식, 문동, 미불 등이 있고
남송대에는 미우인, 조맹견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높은 문화적 소양과 함께 문인화가로서 활약하였다.
이러한 송대의 문인화는 후대 원, 명, 청대 문인화 발전에 기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南宋 산수화와 마원
남송산수화
960년 북송이 건립되면서 수도 변경(卞京, 하남성 개봉)을 중심으로
경제문화의 발전과 함께 회화가 흥성하였다.
이후 1127년 송 황실이 남쪽으로 천도하면서 회화의 중심지는 항주로 옮겨져
강남지방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함께 중국의 산수화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항주는 매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곳으로 유명한데
안개 자욱한 대기의 묘사, 눈 덮인 마을의 표현 등으로 시정이 넘치는 서정적인 화풍의 효과를 얻어
남송원체(南宋院體) 산수화로 발전하였다.
마원(馬遠)
마원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남송의 고종, 효종, 광종, 영종 등의 황제기간에 화원에서 활약한 화가로,
1130년대에 태어나 1220년까지 90여 년 간 살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그의 집안은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쳐서 7명의 화원 화가를 배출한 유명한 화가 집안이다.
마원은 이러한 가문의 대를 이어 그림을 업으로 삼으며,
가풍을 배우면서도 당시 새로운 화풍으로 각광받은 이당의 화풍을 계승하여
웅장하면서도 기묘하고, 간략하면서도 세련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원화풍으로 발전시켰다.
전(傳) 마원, <봄산수> 전(傳) 마원, <겨울산수>
117.5×5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17.5×5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의 구성은 복잡한 자연을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포착하여
단순하고 시적인 구도로 구성하였으며 여백을 많이 살렸다.
나무는 마르고 단단한 느낌으로 심하게 구부러지게 표현하고,
바위와 산은 부벽준법을 이용하여 날카롭고 각지게 표현하였다.
또한 조감(鳥瞰)으로 보는 산수화 구도에서 벗어나,
수평으로 보는 평시(平視) 또는 올려다보는 앙시(仰視)의 화법을 사용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자연 속으로 빠져들도록 하였다.
이처럼 이당(李唐)으로부터 시작된 남송원체 산수화는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발전, 완성되고
이후 중국 산수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래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 박성혜,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 중국실 학예사
- 2010. 10.20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 2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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