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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 한여름의 날개옷

Gijuzzang Dream 2010. 9. 14. 11:55

 

 

 

 

 

 

 

 한여름의 날개옷 '모시'

 

 

 

 

 



 

저마 식물에서 나오는 날개 같은 옷감

 

모시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으며 햇빛이 충분한 곳에서 잘 자라는 저마(苧麻)로 만들어지는 직물이다.

통풍이 잘 되고 토양이 좋아야 잘 자라는 저마는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까다로운 식물이다.

저마는 필요하다고 아무 때나 생산할 수 있는 원료도 아니므로,

6월, 8월, 10월경에 수확하는 저마가 제대로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며 보살피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잘 자란 저마를 수확하면 바깥쪽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을 남긴다.

이 속껍질을 여러 차례 물에 적셔서 햇빛에 말리기를 반복하면

연한 미색이 도는 섬유상태의 모시 원료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태모시'라고 부른다.

태모시는 또다시 세심한 기술로 가늘게 쪼개지며,

실처럼 가늘어진 모시섬유 다발을 버팀목에 걸고 올을 빼내어 비벼서 '모시굿'이라는 뭉치 형태를 만든다.

모시굿 10개를 한 묶음으로 하여 날틀에 걸고 날실의 올 수를 맞춘 후,

바디에 걸어서 팽팽하게 당기고 콩풀을 먹여 모시를 짜게 되는 것이다.

 

투박한 천연원료였던 저마, 즉 모시풀을 손질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참을성 있게 소화해 내며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투명하며 고운 모시를 탄생시키던 손길은 대부분 오랜 경험을 쌓은 여인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와 풍토가 맞는 충남, 전남, 경남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모시풀을 재배해 왔고,

특히 충남의 한산모시는 결이 고운 짜임새와 우수한 품질로 꾸준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모시는 얇고 아름다운 태를 가졌으며 습기와 오염을 잘 흡수하여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고,

바삭한 질감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며 피부에 달라붙지 않고 시원해서,

예로부터 남녀의 여름철 고급 옷감과 보자기, 발 등의 소품 재료로 더할 나위 없는 웰빙 직물이었다.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전통 특산물 

 

옛 부여와 통일신라에서도 얇고 통풍이 잘 되며 위생적인 이 섬세한 옷감을 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모시 옷감을 매우 즐겼다는 사실은 고려 중기부터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은 고려인들이 왕부터 일반남녀까지 백저포(白苧布),

즉 흰 모시로 지은  옷을 입고 다녔던 풍경과 고려 모시의 섬세함을 <고려도경>이라는 기록 안에 남겼다.  

 



이후에도 고려인의 모시 직조기술은 날로 발전을 더한다.

끊임없이 남쪽의 땅을 동경하며 두터운 옷감으로 방한용 의상을 지어 입었던 북방 유목민의 나라에는

여름에 어울리는 옷감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고,

무지개 나라라고 불렸던 고려의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는 무척이나 생소하고도 요긴한 직물이었다.

원나라에서 고려 충렬왕의 왕비로 온 제국대장공주는,

한 고려 여승의 여시종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짜낸 꽃무늬 모시를 보고 그 기술을 탐내어

여시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갖가지 화려한 직물에 익숙했을 원나라의 공주에게 강한 인상을 줄 만큼 당시

고려의 모시는 섬세한 짜임을 자랑했으며,

비단보다 더 값지고 오늘날에는 짜기 어렵다는 20승(升) 모시까지 생산해 냈다.

 

모시 조직의 치밀함을 세는 단위를 ‘새’ 또는 ‘승(升)’이라고 부르는데 1새는 약 80올에 해당된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치밀하고 올이 가느다란 고급 모시이며,

현재 짜여지는 모시 중에서는 15승과 12승의 세모시가 가장 정교하고 고운 모시에 속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공을 세운 이와 사신에게 백저포로 만든 직령과 철릭을 하사하거나

품질 좋은 백저포를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시는 옛 조상의 평상복 뿐 아니라 궁중 의생활에서도 소중한 옷감이었던 것이다.

모시를 요긴하게 여긴 것은 조선 궁중 여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예로 <영조 정순황후 가례도감의궤>의 직물 목록을 보면,

상궁들이 입을 예복 활옷의 소매 끝에 손을 가리기 위해 붙이던 한삼(汗衫)의 재료는

다름 아닌 흰색 모시였다. 화려한 활옷의 소매 끝에서 나부끼는 반투명한 흰 모시 한삼은,

몸에 좋고 위생적이라는 장점은 물론이거니와

엄격한 궁중예복에 다소의 가벼운 화사함을 더해주었을 감각 있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천연염료의 아름다운 빛깔과 친한 모시

 

홍화, 쪽, 가지, 오배자, 치자 등등 색상이 선명한 천연염료를 써서 옷을 물들이면,

염색과정은 다소 번거롭지만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화학약품이 들어갈 여지가 적어진다.

 

몸에 좋고, 얇고 섬세하며, 통풍이 잘 되는 점 외에도 모시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

흡습성과 흡수성이 좋아 고르게 염색이 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천연염료의 붉고 푸르고 검푸르며 노란 아름다운 자연색들을 쉬이 받아들여

은근하고 깊은 색을 내 준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흰 모시옷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물들인 모시 역시 청아한 한복의 자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모시는 조직에 힘이 있어 천연염료에 한 번 끓이거나 담그는 정도로 짙게 물들지는 않으나,

그런 만큼 여러 번 물을 들이면 깊이 있고 짙은 색상을 얻을 수 있으며

얼룩이 잘 지지 않아 곱고 균일한 염색이 가능한 직물이다.

 

다양한 천연염료로 물들인 모시가 빛을 받으면,

흰색일 때의 잠자리 날개 같은 느낌과는 다르게 무지개처럼 영롱한 반투명한 선명함이 드러난다.

이런 빛의 향연은 한복 뿐 아니라 조각보처럼 분할과 색채의 미를 중시하는 전통 소품에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몸에 좋은 천연직물인 모시와 몸에 좋은 천연염색이 어우러져 쾌적한 즐거움과 함께

고운 빛의 자태까지 만들어 내므로,

모시라는 직물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이 우리 조상에게 준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인 것이다.

 

 

여름 모시 한복의 고아한 풍취

 

모시는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을 정성어린 손질로 끈기 있게 다듬어 완성시킨 천연의 옷감이며,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청량감을 주며 인체와 친한 건강한 직물이다.

얼음 같은 차가운 촉감과 투명함, 은은한 색상, 사각거리는 청각 효과가 주는 청아함은 전통 여름 한복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특성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한산모시와 같은 고급 모시는 비싼 가격 때문에 대중적으로 널리 입혀지기는 어렵지만, 저급한 모시에서는 볼 수 없는 우아한 투명감과 치밀한 짜임새를 자랑하며 여름 한복의 품격 있는 자태를 내기에는 가장 적합한 옷감이다.

 

그러나 모시는 매우 잘 구겨지기 때문에, 풀을 바삭하게 먹인 고급 모시 한복을 얼마나 주름 없이 맵시 있게 입어내느냐에 따라 품위 있고 바른 몸가짐을 가진 남녀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드는 짓궂은 옷감이기도 했다. 또한 비칠 듯 말 듯 하면서도 모시로 만든 옷은 절대로 인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 까다롭고 귀한 천연직물로 만든 옷을 흐트러짐 없이 입어내는 몸가짐을 갖추어야 비로소 여름 한복의 고아한 풍취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모시는 우리 조상의 자연친화적인 미감과 섬세한 직조기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직물이다.

숙달된 여인들의 정성어린 손으로 탄생한 모시 적삼, 모시 치마, 모시 두루마기, 모시 바지와 속곳은

수고에 보답하듯 몸에서 나오는 땀을 어느 틈에 흡수하고,

옷 속으로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을 부드럽게 통과시킨다.

모시로 만든 발과 보자기와 모시옷을 통과하는 햇빛은 하늘과 나무와 꽃을 비추며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만든다.   

 




- 최 정 원광대학교 패션디자인산업전공 조교수  
-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서천군청 한산모시 세계화사업단, 연합콘텐츠  

- 2010-08-12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