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고도(古都) 보존정책' - 문화재보존정책의 새로운 전환점

Gijuzzang Dream 2010. 8. 30. 19:51

 

 

 

 

 

 




 

국토관리와 문화재보존정책

 

우리나라의 국토관리에서 역사문화에 대한 배려는 크지 않았다.

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존되는 별도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국토관리의 중심축에서는 소외되어 있었다.

이는 국토관리의 기본 틀이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치중되어 있어

역사문화에 대한 국민의식이 전반적으로 낮았던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소득수준이 증가하면서 환경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였고,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이 1995년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도로서

관광산업과 지역홍보를 목적으로 한 지역축제, 영화와 같은 문화산업이 큰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문화를 활용한 사업은 대부분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문화축제, 공연 및 전시 등의

콘텐츠 중심의 사업과 이를 위한 공연장 등의 시설물 건설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문화관련사업이 관광자원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역고유의 장소성이 흐려지는 문제가 있었고,

각 지역이 가진 역사문화성이 훼손되는 부작용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최근 들어 전주한옥마을과 북촌한옥마을이 성공하면서 전통주거지를 보존하여

지역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문화의 경제적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문화 예술의 거리,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공공디자인, 도심재생과 같은 주거환경 및 도시환경 개선관련

사업 등에서 그 지역의 고유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문화재의 역사적 진정성 보존 및 활용체계에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보존정책의 변화과정과 한계

일제시대 이후 추진된 한국의 문화재보존정책은 1962년「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개발 과정에서 문화재를 지키고 보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단일 문화재를 보존하는 정책은 문화재와 조화되는 형태로

주변지역을 관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화재 주변에 이질적인 건물이 건설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려워 역사문화환경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대상으로 원형 보존적 규제를 실시할 뿐

주민 지원사업 등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인근지역의 쇠퇴화를 촉진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문화재만을 보존하는 점적인 문화재보존정책의 한계를 극복하여

광역적으로 역사문화환경을 보전하고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1980년대부터 있었다.

낙안읍성, 하회마을, 양동마을, 성읍마을 등을 민속마을로 지정하여 보전하고,

1984년에는「전통건조물보존법」을 제정하여 단위 건축물만이 아니라 일단의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보존지구 등을 지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시도는 공공지원 및 보상조치가 미비하여 확산되지 못하였고

「전통건조물보존법」 폐지, 한옥보존지구 해제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0년도부터는 점적인 문화재보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여

문화재로부터 500m 이내 지역에 대해서는 현상변경허가를 받도록 규정하였다.

현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역은 2010년 법 개정을 통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도록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필요할 경우 500m가 넘더라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500m를 넘는 지역의 개발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국보급 유적이나 세계문화유산과 같은 주요 유적의 주 조망권에 들어있는 지역이라도

500m를 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개발은 관리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다.

특히 땅값이나 개발압력이 높은 도시지역 내에서는 현상변경허가검토 권역이

100∼200m에 불과하기 때문에 문화재가 고층건물로 둘러싸이는 문제를 차단하기 대단히 어렵다.

이와 같이 한국의 문화재 보존정책은 단일 문화재 보존정책에서

광역적인 역사문화환경 조성정책으로의 전환을  모색해 왔으나,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고도보존법의 제정 배경과 목적

문화재청은 「고도(古都) 보존에 관한 특별법(이하 : 고도보존법)」(2004)을 제정하여

수십 년간 제기되어 온 광역적 역사문화환경 보전과 함께, 주민 손실보상, 지역 활성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

고도(古都)는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던 왕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경주 · 공주 · 부여 · 익산이 고도로 지정되어있다.

 

고도(古都)에는 일반도시와 달리 왕도만이 갖는 유 · 무형의 흔적인 왕궁, 성곽, 사찰, 왕릉, 그리고 국가 통치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 공간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경주에는 총 297점의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이중 70%가 국가지정문화재이고,

부여에는 187점, 공주에는 185점, 익산에는 86점의 지정문화재가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문화유산은 점적으로 산재해있을 뿐, 주변지역과 연계해서 관리하기가 어려워

유적이 고층건물로 둘러싸이는 등 고도읍지로서의 역사적 골격과 역사문화환경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도보존법」은

문화재 보존정책에서 배제되었던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단일 문화재 보호에서 간과되었던 역사문화환경을 광역적으로 보전하고 조성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따라서 문화재보호법이 문화재자체의 보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고도보존법은 문화재 주변지역을 관리하고 조성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비움 우선의 고도 공간관리구상

고도의 공간관리구상이 문화재 보존이나 일반도시의 공간관리와 차별화되는 점은,

문화재라는 가시적인 실체가 없는 비어있는 공간도 고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고도의 일정부분은 역사적 실체를 기다려주는 공간으로서 비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왕도로 기능하던 그 당시부터 비어있는 곳도 있었겠지만,

그 이후 퇴락의 길을 걸으면서 주요지역이 황폐화되어 실체를 알 수 없는 땅으로 방치된 곳도 많다.

이러한 지역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추후 역사적 고증을 거쳐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비워두어야 한다.

그 다음 고도의 역사적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고도의 일부 공간은 퇴락한 모습 그 자체로 존치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롭게 전통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될 수 있는 여백으로 남아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고도(古都)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진 개별적 심상으로 1,500~2,000년 전의 고도 모습을 상상해서 채우고

돌아가는 여백의 공간을 배려해야 한다. 고도의 모든 부분을 일시에 전통경관으로 채우려는 의욕은,

오랜 세월 축적되어있는 고도공간의 상징성을 축소시키고 고도의 역사문화환경을 질식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고도(古都)의 공간구상은 고도의 핵심골격을 이루는 곳은 비워둘 곳으로 우선 비워두고,

나머지 부분을 새롭게 조성하고 개발하는 개념으로 ‘비움과 채움’의 패러다임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

 



 

고도보존계획의 수립과 고도보존사업

 

우리나라의 고도는 역사문화유적과 역사적 공간골격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따라서 고도 보존계획의 기본방향은 절대적 원형보존이 아닌

 ‘창조적 고도골격 회복’과 ‘상생적 고도관리’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고도보존계획은 다음의 세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수립되고 있다.

첫째, ‘고도 보존하기’를 통해 고도의 역사적 실체를 보존하고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한다.

고도의 지형조건, 역사문화유적, 공간적 골격 등을 분석하여

반드시 보전 또는 복원해야 할 곳을 구분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고도가 가진 DNA를 재발견하고 진화시킴으로써 역사적 진정성을 제고한다.

둘째, ‘도시 활력 넣기’로 역사문화유적 주변의 쇠락한 생활공간을 역사문화환경과 조화되게 재생시켜

활기찬 삶터를 조성한다.

이를 통해 현 주민이 자부심을 갖고 역사문화환경을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셋째, ‘고도(古都) 보여주기’는 잘 보전되고 복원된 역사적 실체와 현 주민의 삶터를 조화시켜

고도를 관광자원화하는 전략을 강구하는 것이다. 고도(古都)의 역사문화자산과 주민 생활공간의 조화를

도모하여 고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는 ‘고도 보여주기’ 측면을 고려한다.

 

이와같이 고도보존계획은 지속가능한 형태로 고도가 보존되고 발전해나가는 기본틀을 만드는 작업으로서,

고도(古都)의 역사적 골격과 진정성을 회복하고, 문화재보존을 위한 규제로 침체된 도시기능과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다.

따라서 고도에 분포한 문화재만이 아니라, 왕궁, 성곽, 사찰 등의 역사유적과 함께 고도읍지가 입지하게 된

지형적 조건, 도시조직 차원의 옛길과 물길, 주거지, 시장터 등을 조화롭게 보전하고 복원하여

고도읍지의 역사문화환경을 회복시키는 계획을 수립한다.

고도(古都)가 그 곳에 자리 잡게 된 입지적 배경으로서의 산과, 하천, 그리고 궁궐, 성곽 등

고도읍지의 핵심골격을 이루는 지역은 특별보존지구로 지정하고,

고도(古都)의 조화로운 역사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핵심골격의 배경을 이루는 시가지와 농경지 등은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한다.

 

고도보존계획이 완료되면 지구지정을 하고, 지정된 지구를 대상으로 고도보존사업을 실시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고도의 역사적 골격이 회복되고 광역적으로 낙후된 도시환경이 활성화되게 될 것이다.

 

고도보존계획은 2005년 말부터 고도보존을 위한 기초조사가 시작되어 2007년 7월에 완료된 이후부터 수립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부여, 공주, 익산에 대한 고도보존계획이 2009년 말에 완료되었고,

경주에 대한 고도보존계획이 2010년 말까지 완료될 계획으로 있다.



공간계획개념을 적용한 역사문화환경 관리

 

고도(古都)는 문화재보존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시험장이고, 고도보존계획은 문화재보존정책을 공간계획 및 도시재생사업과 접목시킨 것이다. 「고도보존법」은 원형보존중심의 규제정책에서 문화재와 주민이 공생하는 장을 조성하고 도시재생환경 조성정책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점적인 문화재보존이나 지구차원의 한옥마을조성사업 등을 광역적인 도시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과,

관광지개발 중심의 문화관광사업에서 고도읍지의 역사적 진정성을 회복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차별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다.



문화재의 역사적 진정성은

문화재만이 아니라 문화재 주변을 광역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 더 높아질 수 있고,

주민이 자긍심을 가지고 문화재 주변을 지키고 관리할 수 있을 때

고품격의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앞으로 고도만이 아니라 일반지역에서도 광역적 보전이 필요한 중요 문화재는

고도보존계획과 같은 공간관리 개념을 적용하여

역사문화환경을 조성하고 문화재의 보존가치를 높이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고도보존계획에 기초한 고도육성 정책이 성공하여

문화재보존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채미옥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전략센터장  (사진/ 문화재청, 경주시청)

- 2010-08-12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