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공개전 “방 안 가득 꽃향기”
조선시대 모란도 10폭 병풍, 80년 만의 특별공개
ㅇ기 간 : 2010년 4월 6일(화) ~ 6월 20일(일) ㅇ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회화실 ㅇ내 용 : 특별공개 10폭 대형 모란병풍 등 조선시대 모란도 10점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상설전시관 2층 회화실에서
조선시대의 모란병풍 특별공개 전시를 오는 4월 6일부터 6월 20일까지 연다.
전시에는 80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10폭의 대형 모란병풍과 함께 조선시대 모란도 10점이 함께 선보인다.
이번에 공개되는 모란도 10폭 병풍은 1921년 처음 박물관에 입수된 것으로
반년 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처음으로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병풍을 펼쳤을 때의 가로 길이가 580cm, 높이가 194cm에 이르는 큰 크기이며
제작 당시의 병풍틀과 장황의 비단 배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모란도의 전개 과정 및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병풍은 10폭의 화면이 모두 이어져 한 바탕을 이룬 가운데
언덕에 모란꽃이 무성하게 피어 마치 모란 숲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모습은 각 폭에 모란이 단독으로, 또는 괴석과 모란이 함께 그려져
각기 독립적이고 도식적인 화면을 이루는 보통 ‘궁모란병(宮牡丹屛)’이라 불리는 작품들보다
이전 단계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봄의 대표적인 꽃인 모란(牡丹)은
동양에서는 꽃 중의 꽃, 꽃의 왕[花王], 부귀화[富貴花] 등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관상용이나 그림의 소재로 애호되었다.
특히 모란 병풍은 일반 사가(私家)의 행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실에서의 종묘제례, 가례(嘉禮, 왕실의 혼례), 제례(祭禮) 등의 주요 궁중 의례 때 사용되었다.
이렇듯 궁중에서는 모란을 ‘부귀영화(富貴榮華)’의 대상으로 뿐만 아니라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상징으로까지 여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조선시대 모란도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는 10점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조선 중기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 새와 함께 그려진 모란 그림과,
조선 후기 문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심사정(沈師正, 1707-1769),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모란도도
전시된다. 또한 조선 말기의 남계우(南啓宇, 1811-1890)의 장식적인 채색 모란도와
채색 없이 먹으로만 그린 허련(許練, 1809-1893)의 묵모란도 등도 함께 진열되어
조선시대의 다채로운 모란도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최근에 구입한 이한철(李漢喆, 1808-1880)의 모란도도 새롭게 소개된다.
이외에 모란도 10폭 병풍의 보존처리 과정을 사진과 해설로 알기 쉽게 요약한 패널을 함께 전시하여
회화의 수복 작업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조선시대 모란도
조선시대의 모란도는
자연 속의 여러가지 나무와 꽃, 새와 어우러지게 그린 감상용 모란도와
모란 단독 또는 모란과 괴석을 연속적으로 그린 의례용 모란 병풍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그림 속 모란은 새와 풀, 모란이 함께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조선 초, 중기에 자주 그려졌던 이러한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조선 후기에는 모란의 비중이 커지고 풍성함이 강조되며,
채색모란도와 먹으로만 그린 묵모란도로 다채롭게 그려진다.
조선 말기에는 모란만 단독으로 그려지는 모란도가 유행했다.
의례용으로 사용된 모란도는
병풍 형태로 그려졌으며, 거의 같은 모양의 모란이 8폭-10폭에 그려지는 형태로 전한다.
모란 병풍은 조선시대 왕실에서의 종묘제례, 가례(嘉禮, 왕실의 혼례), 제례 등의 주요 궁중의례와
일반인의 행사 때 사용되었다.
특히 궁중에서는 모란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귀영화'의 의미를 넘어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란병풍은 왕실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모란이 다른 상서로운 요소와 조합된 민화모란도가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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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 10폭 병풍/ 각 폭 145×58㎝
작자미상,조선 18세기,비단에 색
색색의 꽃과 무성한 잎이 돋은 모란 나무가 자연을 배경으로 다양한 모양과 색의 괴석과 어우러졌다.
10폭에 이르는 대형화면에 연속적으로 펼쳐진 모란 나무들은 화려하고 당당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모란 나무를 괴석의 앞, 뒤에 배치하거나
9, 10폭에 보이는 것처럼 다소 화면의 뒤쪽에 그려서 일률적인 반복을 피하고 변화를 주었다.
이번에 특별공개되는 모란 병풍은 1921년 박물관에 입수된 후 보존처리를 거쳐 선보이게 된 것으로,
조선시대 원래의 장황(粧황, 표구)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궁모란병(宮牧丹屛)'으로 지칭되는, 각 폭에 모란 또는 괴석과 모란이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형식의 병풍보다 이른 단계의 양식을 보여준다.
즉, 10폭이 모두 이어지며 자연 속에 피어난 모란꽃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 모란병풍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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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과 나비] |
[묵모란] |
꽃, 모란
모란(牧丹)은 꽃이 크고 그 색이 화려하여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화왕(花王), 부귀화(富貴花) 등의 별칭으로 알려져 왔다.
원산지는 중국의 사천, 운남지방이다.
중국 진한(秦漢)시대 이전부터 약재로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남북조시대(429-589) 초기에 감상의 대상인 관상용 꽃으로서 문헌에 등장하였으며,
唐代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꽃의 크기가 15-20㎝ 정도로 매우 크며 5월에 꽃이 핀다. 백
색, 자색, 적색, 연분홍색, 황색 등 다양한 색깔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모란과 관련된 가장 이른 기록으로, 선덕여왕(?-647)과 모란꽃 이야기가 있으며,
모란이 꽃 세계의 왕으로 등장하는 설총(7세기말-8세기 전반 활동)의 글 <화왕계(花王戒)>가
<삼국사기>에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에 왕이 모란을 감상한 기록이나
모란꽃이 피는 것을 길조로 기록한 것이 있다.
조선후기 선비 유박(柳璞, 1730-1787)이 쓴 <화암수록(花菴隨錄)>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
모란을 작약, 철쭉, 석류, 파초와 함께 2등으로 분류하며 그 특징을 '부귀'로 평한 것을 보면
모란은 조선시대까지 풍요로움과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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