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작품들 - <발코니> <뱃놀이>

Gijuzzang Dream 2010. 1. 13. 04:34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들

 

 

‘My Way’로 인상파의 리더 되다

 

 

 

 

미술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에두아르 마네는 살아있는 현실이 창의력의 원천이었다.

그는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부르주아 출신으로 전통을 숭배하고 과거에 대한 경의를 표했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파리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을 뿐이다.

마네의 중요한 작품 중에 하나 <발코니>는 19세기 파리의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하우스만 남작은 나폴레옹 3세의 지시에 따라

1833년 중세 이래 수 백 년 동안 이어졌던 구불구불한 도로를 재정비한다.

나폴레옹 3세는 민중봉기에 재빠르게 대응하고자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대로를 원했던 것이다.

대로를 중심으로 오페라 극장, 카페, 교회 등 공공건물이 건축되기 시작하면서

파리는 최첨단 건축의 향연 장소가 되었다.

대로에 접한 주택들은 오늘날에도 파리 주택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철제난간이 달려 있는 작은 발코니가 있는 외양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민의 고독 표현한 <발코니>

파리지엔이었던 마네는 <발코니> 작품을 통해 당시 건축의 특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고야의 <발코니의 마하>를 기초로 삼아 모네 자신의 집 발코니를 묘사하고 있다.

<발코니>

1868~1869년, 캔버스에 유채, 169×125,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부채를 든 팔을 발코니 난간에 걸치고 있고,

옆에 양산을 든 여인은 정면을 바라보고 서서 우아한 동작으로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

두 여인 뒤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어슴푸레 하게 보이는 방안에도 사람들이 있다.

앉아 있는 여인은 여류 화가 모리조이며 서 있는 여인은 첼로 연주가인 파니 클라우스,

남자는 풍경화가 앙트완 기요메다. 마네는 두 사람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그렸다.

좁다란 발코니의 서있는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시선을 다르게 처리해

서로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자기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은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도시민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1869년 살롱전에 전시되었을 때 혹평을 받았다.

모리조는 이 작품의 모델을 서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열다섯 차례나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후에 살롱전에서 완성된 작품으로 보고 굉장히 실망한다.

이 작품은 마네가 모리조를 모델로 한 첫 번째 작품으로, 후에 그녀를 모델로 여러 점의 작품을 제작한다.

마네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싫어해 외부의 빛을 사용하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차이가 있었다.

마네는 동료화가인 모네의 아르장퇴유 작업실에 자주 놀러갔었다.

모네는 아르장퇴유에 거주하면서 중고 보트를 구입해 작업실을 만들었다. 마네는

아르장퇴유에서 자연을 보고 그리고 싶다는 욕망에

부르주아 취향의 속물근성을 버리고 시선을 중산층이나 하류층의 일상으로 바꾸었다.

 

 

 

 

 

 


 인상주의의 전형적 주제 다룬 <뱃놀이>

마네가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주제인 중산층의 유쾌하고 행복한 일상을 표현한 작품이 <뱃놀이>이다.

이 작품은 근대생활을 그린 것으로 19세기 파리 사람들은 빠른 사회 변화에 긴장을 풀고자

전원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파리 근교 센강 주변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이

파리 시민들의 고정적 일과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배를 띄우고 놀거나 카페에서 점심을 즐겼다.

아르장퇴유도 당시 주말 휴식장소로 각광을 받던 곳으로,

생 자르 역에서 기차로 30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주말이면 파리 시민들이 보트와 요트를 타러 왔었다.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아르장퇴유를 찾았던 파리 시민들처럼 마네도 뱃놀이에 매료되었다.

<뱃놀이>

1874년, 캔버스에 유채, 97×13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배의 키를 잡고 있다.

하얀색 모자를 스카프로 동여맨 여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다.

남자는 당시 파리 멋쟁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세련된 레저 복장이지만

여자는 뱃놀이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도시에서나 어울리는 옷차림이다.

남자의 시선은 여자에게 머물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여자는 뱃놀이에 긴장을 했는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야외활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당시 남자는 레저활동을 즐기는 것을 최고로 여겼지만

여자는 레저 활동보다는 도시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남자의 하얀색 옷차림은 푸른 강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휴식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다.

남자는 마네의 처남 루돌프 렌호프다.

마네의 이 작품은 모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작품으로서

<아르장퇴유>, <선상 작업실의 모네>, <뱃놀이> 3부작으로 이뤄져있다.

이 세 작품 모두 강렬한 푸른색의 물과 지평선이 없는 대담한 구도가 특징으로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판사였던 아버지가 법률 공부를 하기 원했으나 법률가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르주아 환경은 마네가 추구하는 그림의 세계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동료화가들과 다르게 후원자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네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부르주아 출신답게 자신의 재능을 빠르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지

과거의 미술을 뒤집거나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렸다. 마네는 일찍 성공하고 싶었으나 성공에 집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결국 파리 화단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리더였던 마네를 인정한다.

 

- 박희숙(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명화산책]

- 2010. 01.1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