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조각승 원오(元悟)

Gijuzzang Dream 2009. 12. 31. 13:55

 

 

 

 

 

 

 

 

 

조각승 원오(元悟)의 삶의 작품세계

 

 

 

최근 조각승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흥미롭게 밝혀낸 작가는

17세기 초반에 활동한 원오(元悟)스님이다.

2004년부터 원오스님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지만,

1605년에 제작한 경남 김해 선지사 목조여래좌상 외에 단편적인 문헌기록만 남아있어

그동안 구체적인 연구를 할 수 없었다.

 



원오, 목조보살입상, 1605년, 익산 관음사

 

2008년 11월에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을 옮기면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군산 동국사 스님이 전해주셨다.

이 보살입상은 문화재청과 대한불교조계종이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전라/제주>(문화재청,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3, 168쪽)에 사진이 실려 있어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다.

특히, 익산 관음사 보살상과 유사한 작품이 익산 혜봉사와 완주 위봉사(도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1999, 218쪽)에 있어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목조보살입상의 얼굴

익산 관음사에서 덕문주지스님에게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고, 보살상과 조성발원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살상의 높이는 153㎝이고, 어깨 폭은 34㎝로 조선후기 제작된 중대형 불상이다.

 

보살상은 눈꺼풀이 두툼하여 편하고 인자한 인상이다.

가늘고 긴 신체의 형태와 자세는 조선전기 보살상을 계승하고 있다.

두꺼운 대의는 변형우견편단으로 걸쳐 옷자락 일부가 오른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하게 늘어져

팔꿈치와 복부(腹部)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이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배 부분에서 아래로 늘어져 있다.

특히, 왼쪽 팔뚝 위에 옷자락은 뾰족하게 ㅅ자형이고, 등뒤에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상반신에는 X자형으로 목걸이를 착용하고, 대의 안쪽에 승각기를 두르고 있다.

 

 



조성발원문 세부, 1605년, 익산 관음사

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산인(山人) 의암(儀庵)이 큰 원을 세워 1594년에 길을 떠나 명산을 두루 돌아보던 중

북암(北庵)에 이르러보니 1597년에 본사(本寺)가 병란으로 인하여 불전과 전각이 전부 불타서 흔적이 없고

1601년 정월에 법당을 시작하여 다음 해인 1602년에 법당에 모실 불상 삼존을 조성하고,

다음 해인 1603년에 영산도와 다른 전각에 단청을 다하여 마치니 모든 사람들이 와서 둘러보고 말하기를

새로 지은 모든 것이 옛날의 북암 같다고 하였으며,

1605년 8월에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등 존상과 약사도, 미타도, 지장과 시왕도 등을 마쳤고 …”

라는 문구를 통하여 1605년에 의암스님이

1601년 정월에 법당 건립을 시작하여 1602년에 불상 삼존을 조성하고,

1603년에 영산회상도와 다른 전각(殿閣)에 단청을 칠하였다.

 

1605년 8월에 화사(化士) 의암과 김문의가 발원하여 조각승 원오(元悟), 충신(忠信), 청허(淸虛) 등이

문수(文殊), 보현(普賢), 관음(觀音), 지장보살(地藏菩薩像)과 약사(藥師), 미타(彌陀), 지장(地藏) 등의

불화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만들어진 네 구의 보살상이 현재 익산 관음사, 익산 혜봉사, 완주 위봉사(도난)에 봉안되어 있고,

이들 보살상이 처음 조성된 북암은 위봉사에 딸린 암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조보살좌상, 1605년

북암 조성(소장처-지장보살(왕주 위봉사, 도난), 문수보살(익산 관음사),

보현보살(익산 혜봉원), 관음보살(완주 위봉사, 도난)

 

따라서 조각승 원오는 157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1599년에 석준(釋俊)과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중수하였으며,

1605년 전북 익산 위봉사 북암 보살상 등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원오가 1624년에 경남 합천 해인사 경판고(經板庫, 法寶殿) 중건에 시주자로 참여하여

1620년대 중반까지 생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99년에 상원사 문수동자 중수 · 개금에 수화승으로 참여한 석준이

17세기 전반에 김제 금산사 중창에 적극 관여한 스님이기 때문에

같이 활동한 원오도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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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일,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12-30  문화재청, 문화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