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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과 김홍도의 우정(友情)의 연대

Gijuzzang Dream 2009. 12. 22. 11:36

 

 

 

 

 

 

 

 우정의 연대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고 그 조직도 체계화되어,

이를 중심으로 많은 화원(畵員)들이 배출되었고,

초상화(肖像畵), 인물화(人物畵), 산수화(山水畵), 영모화(領毛畵), 화조화(花鳥畵) 등

각 분야에 걸쳐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도화원은 1463년부터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되었던 1469년까지의 어느 땐가

도화서(圖畵署)로 개칭이 되었는데, 도화서는 종 6품아문(衙門)으로 최하위 기관 중의 하나였다.

 

도화원은 1463년부터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되었던 1469년까지의 어느 땐가

도화서(圖畵署)로 개칭이 되었는데, 도화서는 종 6품아문(衙門)으로 최하위 기관 중의 하나였다.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의 「吏典」, 「禮典」, 「工典」등에 의하면,

도화서에는 제조(提調) 1명, 별제(別提) 2명, 종6품인 선화(善畵) 1명, 종7품인 선회(善繪) 1명,

종8품인 화사(畵史) 1명, 종9품인 회사(繪史) 2명, 잉사자(仍仕者)인 서반체아(西班遞兒) 6품 1명,

7품 1명, 8품 1명 등 화원 20명, 생도(生徒) 15명 이외에 배첩장(褙貼匠) 2명, 차비노(差備奴) 5명,

근수노(根隨奴) 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後代에 화원이 20명에서 30명으로 늘고 전자관(篆字官) 2명이 추가되는 등

다소간 변화를 겪었다.

 

제조는 예조판서(禮曹判書)가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화원으로서 도화서에서 출세할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종6품인 별제나 선화였다.

 

화원들은 초상화 제작, 宮中의 각종 행사 모사(模寫), 풍경, 사생(寫生) 등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일체의 회사(繪事)에 참여하였고,

그밖에 士大夫들의 요청에 따라 계회도(契會圖)나 士人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청화백자의 문양을 그리는 데에도 파견되었고,

또한 중국이나 일본에 파견되는 사절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古松流水館道人 李寅文, 1745~1821)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와 함께 정조, 순조 연간을 대표하는 화원화가로서

주부(主簿)와 첨사(僉使) 벼슬을 지냈으며, 정3품 통정대부(通正大夫) 품계를 받았다.

산수와 포도를 잘 그렸으며,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松下談笑圖> 1805. 종이에 담채,

그림 : 이인문(李寅文) / 글씨 : 김홍도(金弘道)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원으로서 조선왕조의 四大家라 할수 있는 김홍도(1745~1806년경)는

37세 때(1781년)에는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의 초상을 제작하는데 참여하였고,

47세 때(1791년)에는 음관(蔭官)으로 충청도 연풍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다.

산수, 도석인물(道釋人物), 풍속, 화조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였다.

 


(좌)
<단원도(檀園圖)> 1784. 종이에 담채, 김홍도(金弘道) 135×78.5㎝  

(우)<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 1782. 종이에 담채, 김홍도(金弘道) 

 

 

정조 화단(畵壇)을 대표하던 두 화원은 동갑 친구로서 먼 친척이었으며

집안의 세업(世業)으로 그림에 종사해온 여타 화원들과는 달리,

순전히 자신의 천분(天分)과 실력만으로 화원세계에 새로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친분관계는 현존하는 두 사람의 작품에 보이는 관지(款識)로 확인이 된다.

 

 

김홍도의 <허정노수도(虛亭老樹圖)>에 "이인문과 이유신(李維新)이 나란히 서있는 아래서

극히 주제넘은 일이다(道人石塘 竝立之下 極爲汎濫)"이라 한 것이 있다.

 

또 이인문이 김홍도의 집에서 제작한 작품이 두 점 있다.

하나는 1791년작으로 <송석원시회도(松石園詩會圖)>로서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문욱이 단원 집에서 그리다(古松流水館道人 李寅文文郁 寫於檀園所)"

라는 낙관이 있고,

또 하나는 <수간모옥도(數間茅屋圖)>로서

"몇채의 오막살이가 절로 마을을 이루었네.

고송유수관도인이 단원 집에서 그려 백하신동에게 주다

(數間茅屋自成村 古松流水館道人 寫于檀園榻 贈白下申童)"라는 내용이 보인다.

 

또 두 사람이 글씨와 그림을 나누어 맡은 예로서

이인문의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로서

"을축년(1805) 정월에 도인 이인문과 단구 김홍도가 박유성의 서묵재에서 글 쓰고 그림 그려

육일당 주인께 드린다(乙丑年 元月 道人與丹丘 書畵于瑞墨齋中 贈六一堂主人)"라는 내용으로, 

이것은 두 사람의 만년 작품으로 김홍도 사망 일년쯤 전에 제작한 것이다.

 

김홍도의 작품을 이인문이 감상한 사실을 알려 주는 작품 예도 석 점이나 확인된다.

첫째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에서는

"고송유수관도인이 보다(古松流水館道人觀)"라고 되어 있고,

둘째는 <단원도(檀園圖)>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문욱이 보다(古松流水館道人李文郁觀)"라고 되어 있으며,

셋째는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기성유수고송관도인 이인문 문욱이 증명한다(碁聲流水古松館道人李文郁證"라는

관화기(觀畵記)가 그것이다. 

 

같은 서화의 길을 걸었던 동갑 친구의

돈독한 우정의 연대를 실증(實證)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라 하겠다.

- 오기복,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문화재청, 200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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