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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며(자료)

천마도의 '天馬'는 영험한 동물인 기린?

Gijuzzang Dream 2009. 11. 26. 07:08

 

 

 




 

 

적외선 사진에서 발견된 정수리 부분의 ‘뿔’모양 

 

가뭄이 한창이던 1973년 7월 경북 경주의 5~6세기 신라 고분인 155호 무덤에서

<천마도>는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해방 뒤 처음 신라 금관이 같은 무덤에서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고신라 유일의 회화자료인 <천마도>의 발견이 던진 파장은 그에 못지않았다.

 

고신라 장인들의 예사롭지 않은 회화 수준에 학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상하는 천마의 강렬하고도 고귀한 이미지는 이후 교과서 관광안내서 등에 실려

<천마도>가 한국의 대표 문화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1974년 문화재위원회는 <천마도>의 발견에 힘입어 155호 무덤의 이름을 ‘천마총’으로 확정했고,

지금도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천마총은 필수적인 관람 대상지로 첫손에 꼽히고 있다.

 

이 유명한 그림이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9월29일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전 ‘여민해락’을 개막하면서

10여 년 만에 <천마도>를 출품했는데, 이 그림의 적외선 사진을 함께 공개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그림 속 동물이 '천마(天馬)'가 아니라,

고대 중국에서 창안된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이라는 설을 제기한 것이다.

적외선 사진을 투과해보니 실제 그림에 보이지 않던 기린의 특징인 뿔이 보이더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보도가 계속되면서 박물관을 찾은 상당수 관객들도

<천마도>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뿔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과연 <천마도>의 천마는 기린일까?

<천마도>의 적외선 사진은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품을 공개할 때,

낮은 해상도에서 찍은 1차 촬영 본이 이미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당시 이 사진에서 그림 속 동물의 정수리에 솟은 반달형 뿔 같은 것이 드러나자

학계 일각에서 기린설이 조금씩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소장 미술사연구자인 이재중씨는 2000년 <천마도>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천마도 동물 도상의 머리 위에 솟은 것을 기린의 특징인 뿔이라고 보고, 기린설을 단정적으로 주장했다.

 

그 뒤 학계에서 천마도의 기린 여부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1200만 화소로 정밀하게 찍은 적외선 사진에서

반달형 뿔 모양 외에 머리 양쪽에 작지만 각진 뿔 모양 흔적도 추가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새삼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론몰이에 가까운 언론 보도로 기린설이 크게 증폭되긴 했지만,

학계에서는 <천마도> 도상을 기린으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뿔이라고 주장하는 부위가 머리 위에서 솟아나 갈기처럼 휘날리는 모습은

갈기 달린 천마 또는 다른 신수의 장식 이미지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천마도>처럼 동물의 뿔이 갈기처럼 휘날리는 것은

고금의 기린 이미지와 비교해봤을 때 전례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실크로드 초입인 중국 깐수성 주천 지역의 남북조 시대 16국묘 벽화묘를 보면,

<천마도>처럼 뿔에 털 같은 것이 달려 갈기처럼 휘날리는 신마(곧 천마)의 도상이 있다.”며

“기린설에 맞서는 여러 반증 근거들이 있어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천마도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들

 

고대 중국 문헌을 보면, 기린은 고대 중국의 전설 등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인수(仁獸)'라고도 한다.

사슴과 소의 짝짓기로 탄생했다고 하며, 수컷을 ‘기(麒)’, 암컷을 ‘린(麟)’으로 구분한다.

용과 더불어 모든 신화적 동물 중 으뜸가는 성스러운 짐승으로 간주됐고,

성인이나 성군이 태어날 때 미리 그 조짐을 알리기 위해 나타난다고도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사슴 몸에 소의 꼬리와 말의 발굽을 가졌으며, 이마에는 뿔이 달려 있다고 묘사된다.

네 발굽에는 하얀 털이 돋아 달릴 때는 구름이 피어나는 듯하며,

후대로 갈수록 몸체는 용과 비슷하게 변모된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목이 긴 기린도 그 이름의 유래는 이 상상의 기린에서 비롯된 것이다.

15세기 중국 명나라 영락제 때 환관 정화가 남해 원정을 다녀와서

당시 아프리카산으로 진상한 이 짐승의 이미지를 영락제가 상상의 기린처럼 상서롭다고 생각해

그대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 쟁점이 된 기린 뿔의 경우 고대 중국의 문헌 등을 보면

본디 사슴뿔, 소뿔처럼 높게 솟아 있고 그 끝에 둥근 살덩어리 같은 것이 달려 있는 형상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한나라 때 허신(許愼, A.D 58년경~147년경)이란 사람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란 문헌을 보면, 이런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나오는데,

기린의 뿔은 한개만 솟은 일각수이고 그 끝에 ‘육(肉)’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육’이란 끝이 둥글게 뭉친 살덩어리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5세기 고구려 옛 무덤인 안악 1호분 천장에도 기린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 기린은 뿔이 하나이고 그 끝이 뭉툭해 <설문해자>의 묘사에 가깝다.

 

이런 기록을 따를 경우 <천마도> 동물의 솟은 뿔은 기린의 것으로 단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끝이 뭉친 육은 보이지 않으며, 갈기처럼 흩날리는 모양새를 띠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 적외선 사진에서 판독된 머리 위 양쪽 뿔 흔적의 경우도 갈기나 목의 일부분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기린의 뿔이라면 끝이 뾰족하거나 둥글게 뭉쳐져야 하는데, 그 끝이 비스듬히 끊겨있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어서다.

 

<천마도>의 동물 뿔이 두 개라는 것을 인정할 경우

오히려 다른 상상의 동물인 ‘벽사(壁邪)’일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비휴(貔貅)’라고도 불리는 벽사는 뿔이 두 개 달린 용의 머리에 말의 몸,  기린의 다리를 갖고 있는데,

그 모습이 기린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분석을 종합한다면 <천마도>는 그림 주인공으로 천마와 기린 외에도

벽사, 천록 등 다른 상상의 동물이 후보로 등장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천마도의 기린설을 신봉하는 일부 학자들은 더욱 상이한 차원의 해석을 꺼내놓고 있다.

몸에서 내뿜는 기운이 가득한 <천마도>의 이미지와

고구려 중국 벽화 등에 나타난 기린 도상 등을 비교해 볼 때

기린일 개연성이 더욱 커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이화여대 교수는

“천마도의 경우 뿔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꼬리, 몸통, 네다리 등 몸에서 두루 영기가 발산되는 모양을

띠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도상은 네 가지 영험한 동물 중 하나인 기린이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천마에는 영적인 조형화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천마도 도상은 장천 1호분의 기린 도상 등 고구려 벽화 고분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데다

재료도 추운 북방의 자작나무 껍데기란 점에서 고구려에서 신라에 만들어 보낸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들 영물이 지닌 상징성도 논란 거리다.

 

천마의 경우 고대 동아시아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피안의 영생 세계로 이끄는 영물로 인식되어 왔다.

 

벽사는  문자 그대로 인간을 괴롭히는 귀신들을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천마나 벽사는 망자를 위한 무덤 부장품의 상징성에 들어맞는 도상이라 할 수 있다.

 

기린의 경우 태평성대의 세월이 다가온 징조로서, 성군의 즉위를 뜻하는 상징으로 주로 쓰였다.

 

구체적인 왕명을 확인 하는데는 실패했으나,

천마총처럼 존귀한 지배자급의 주검을 묻은 왕릉 급 무덤 속에

이런 상징성을 지닌 천마 혹은 기린의 도상을 묻었다는 것은 각기 무슨 의미를 띠게 될까.

학자마다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만큼 논의는 간단치 않은 양상이 될 것이다.

 

교류사 전공인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부장은

“금관 출토품에서 보이듯 고신라는 명백히 북방 유목 민족의 문화를 수용했던 국가였다.”며

“단정할 수 없으나 중국 중원 정주 문화의 산물인 기린 도상보다는

유목 문화의 상징인 천마가 그들에게는 유력한 도상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일부 의견이긴 하지만, <천마도>가 말 탄 이의 옷에 흙이 묻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늘어뜨린

말 다래 그림이란 점에서 과연 성군을 뜻하는 기린을 흙과 먼지가 숱하게 묻는 다래에 그렸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정황을 종합한다면,

<천마도>에서 기린의 뿔 여부로 도상의 동물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까지 공개된 도판 자료들은

뿔이냐 아니냐의 일차적인 육안 판독에 전적으로 기대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문헌까지 접근하면 논의는 더욱 어렵고 복잡해진다.

기린이나 천마 등 고대 동아시아의 영물들에 대한 도상적 개념은 옛 문헌마다 서술들이 조금씩 다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도 이미지가 변해왔기 때문이다.

 

기린은 명 · 청 시대까지 중국의 민화 등에 빈번하게 그려지면서 도상이 계속 변모해 온 반면,

천마는 당나라 이후 점차 사라진 것이 그런 예다.

단순히 비슷한 그림을 꿰어 맞추는 식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사상, 신화, 전설 등에 대한 문헌학적 탐구와 비교 문화적 검토가 충실하게 뒷받침되어야

<천마도> 논란을 진척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충분한 학문적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

 

아쉽게도 천마총 발굴 30주년을 넘긴 현 시점에서도

<천마도>는 물론 기린, 천마 등의 고대 영물 도상을 분석한 후속 논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국내 학계의 관심도는 저조한 편이다.

고대 동아시아 신화의 영물들에 대한 도상적 특징, 기능 등을 다룬 분류서, 개론서 등이

계속 출판되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 쪽의 사정에 비춰보면 그 공백감은 더욱 커진다.

 

<천마도>를 전시한 박물관 쪽은 학문적 논의가 여물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입장 없이 적외선 사진의 공개에만 급급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다분히 언론의 기호에 맞춰 변죽 울리기 양상으로 진행된 이번 천마도 논란은  

동아시아 고대 신화나 영물의 도상학에 대한 국내 학계의 종합적 연구와 토론의 필요성을

숙제로 남겨주고 있다.


- 글 · 사진, 노형석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 사진 · 연합뉴스 콘텐츠

- 문화재청, 2009년 11월 9일 월간문화재사랑

 

 

 

 

 

 

 

 

더보기


신라 천마도(天馬圖)의 반달형 뿔 그림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863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특별전 유물 (1). 天馬圖 장니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