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검정소(黑牛)와 얼룩송아지(犁牛)

Gijuzzang Dream 2009. 11. 26. 06:53

 

 

 

 

 



 

 


일본 천연기념물 '미시마소' 원조는 우리나라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뉴욕 스테이크하우스에서 필렛미뇽 스테이크가 단돈 50달러인데 일본 와규(和牛) 비프스테이크는 일반 스테이크의 4배인 198달러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바로 이 명품 와규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검정소인 미시마소가 바탕이다.

그 첫 예가 네덜란드의 홀스타인 젖소와 이 미시마소가 교잡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겐란규(見蘭牛)가 된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고베규(神戶牛)를 개발하는데 무려 150년 걸렸다고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1928년 발간된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라는 학술잡지에 의하면
우리소를 고베규로 개량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소를 고베규 개량에 이용한 것이다.

일본 고대사에서 일본에 많은 문물이 우리나라로부터 전달되었고

이 때 가축도 같이 유입된 것이 사실로 입증된 점,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소가 대량으로 일본에 강제 수출된 점 등으로 미루어

미시마소는 물론 우리 흑우가 일본의 대표적인 일본소 와규 4개 품종 중 하나인

흑모화종(黑毛和種)의 바탕소가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소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 원종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소를 아직까지 천연기념물로 등재하여 보호를 못하고 있다.

북한만 하여도 황해남도 장연군 금사리와 강원도 세포군 대곡리의 누런 황소 2종을

각기 ‘장연조선소’와 ‘세포조선소’라하여 천연기념물 보호법에 의하여 보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미시마소는 어떤 소인가.

이는 우리가 예전에 전국 농촌에서 많이 길렀던 것과 같이

밭을 갈거나 달구지를 끄는 농사용 검정소-흑우다. 이 소의 털색은 흑갈색이며, 키는 암소 1.17m,

수소 1.25m에 지나지 않는 작은 체구다. 성질이 온순하고 질병에 강하며,

거친 사료도 잘 먹는 특성이 있는 소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는 흑우들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 역사와 함께한 축양동물의 대표-소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 으레 올해는 10간 12지로 무슨 띠인지

그리고 이 띠 동물의 특성을 올해 운세에 연결하여 내 운세도 따져본다.

쥐로부터 돼지까지 12가지 동물들은 나름대로 각기 특성이 있지만

기축년(己丑年) 올해 2009년의 띠 동물인 소만큼 우리네 생활 속에 친숙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소는 12지의 두 번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우직하지만 온순하고 성실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지만

결코 사납지 않은 탓에 우리와 친숙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들은 우리에게 식량으로써 고기를 나누어주고, 털을 벗어 가죽으로 자신을 줄 뿐 아니라

선지라는 이름으로 피 한 방울까지 주고, 수레를 끌고 무거운 짐도 날라주며,

밭갈이나 논갈이에 이용되기도 하였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래서 소는 <삼국사기>에는 물론  당사주나 부적과 호석에도 등장하며

서화에서도 그리고 시가나 민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대상이 된 듯하다.

 

지난 1월 개봉된 인디영화 ‘워낭소리’는 관객 290만 명을 동원하고 종영하였다.

처음 이 영화를 개봉할 때는 1주일 상영이면 다행이라고 한 다큐영화였는데

3개월 동안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련히 그리운 고향에 대한 향수를 시골 노인과 황소를 통해  

있는 그대로 그 정감을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 꼴을 베어 먹이고 소죽을 쑤던 추억이 있고, 소 팔아 대학 보내준 부모가 아직도 계시고,

우리 생활 속에서 수천 년을 식구처럼 지내 온 정이 있기에 더욱 그러한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소를 우리 재래소로 보호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그런지

멸종위기에 처한 우리의 얼룩소와 검정소가 단지 숯불구이 고기소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서글프다.

 

우리는 워낭소리에서 본 누런 황소만을 우리 고유의 재래소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일본 미시마소 원조가 된 흑우를 비롯하여 털 색깔이 다른 많은 종류의 소가 있었다.

1399년 발간된 <우의방(牛醫方)>에 보면

우리나라 한우의 모색은 아주 다양하다.

즉, 누런색의 황우(黃牛-황소), 검은색의 흑우(黑牛-흑소), 얼룩색의 리우(牛-얼룩소), 흰색의 백우(白牛-흰소), 검푸른색의 청우(靑牛-검푸른소), 사슴같은 녹반우(鹿斑牛-점박이소)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문화재청 지원으로

남한과 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황해도 안악 용순면 유순리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는

흑소, 황소, 칡소가 채색화로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미 이 시대에는 이와 같은 다양한 모색의 소들이 널리 사육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1910년 <조선지산우(朝鮮之産牛)>에 발표된 결과를 보면 확실하다.

이에 따르면 한우의 모색은 주로 적색이지만 적갈색소도 있고 흑백무늬소도 있다.

 

한편 1920년 <조선농회보(朝鮮農會報)>에서도 한우 모색은 주로 갈색이지만

적갈색, 황갈색, 흑색, 흑갈색, 회갈색, 백색 등 다양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왜 누런 황소만을 한우라고 알게 되었을까.

그 사연은 간단하다.

일제 강점기간인 1938년 일제는 한우심사표준을 정하면서 “표준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고 정하여

다양한 우리나라 소 중 적갈색 소만을 한우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폄에 따라 이렇게 되었다.

더구나 1945년 독립 국가가 되었음에도 우리는 이를 그대로 이어 받아

1970년 한우심사표준을 개정하면서 “한우의 모색은 황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라고 정함에 따라

황소만이 한우로 굳어지게 되었다.


국가 제향에 쓰이던 흑우-이제는 귀한 보물

 

우리의 고유한 재래소에는 얼룩소도 있었다.

이 소는 우리가 어릴 때 즐겨 불렀고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박목월의 동시 ‘얼룩송아지’에 곡을 붙인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인 것처럼 누런 몸통에 검은 무늬가 얼룩얼룩 있는 소이며,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던 ‘얼룩빼기’ 황소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흑우와 황소가 합친 것 같아 흑우의 변종이라고 하기도 하고 황소의 변종이라고도 하지만 엄연히 우리 고유의 재래소인 것은 틀림없다.

 

얼룩소를 흔히 ‘칡소’라고도 하는데 마치 칡넝쿨 같은 검은색 내지 흑갈색의 줄무늬가 황소의 등에서 배쪽을 향해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칡넝쿨이 누런 황소의 몸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줄무늬가 아주 많은 소도 있고 적은 소도 있지만 한자로는 얼룩무늬가 몸에 흩어져 있다하여 흩어질 리(离)를 써 리우(牛), 또는 얼룩얼룩한 무늬가 몸에 있다하여 얼룩 이(犁)를 써 이우(犁牛)라고도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줄무늬가 황소 몸통에 수렴을 친 것 같다하여 일본식으로 렴우(簾牛)라 부르기도 하였다.

얼룩소를 검은 점이 듬성듬성 있는 홀스타인 젖소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얼룩소는 엄연히 우리 재래소인 칡소다.

우리나라에서 흑우는 국가의 제향 또는 임금의 친경 등에 쓰이는 아주 귀한 공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8권 8년 11월에 보면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 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

(제향흑우계시막중천헌지수, 祭享黑牛係是莫重薦獻之需)"라고 기록되어 있고

영조 108권 43년 1월에 보면 "친경에 흑우를 사용하도록 명하였다(친경시용흑우, 親耕時用黑牛)"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에는 흑우의 일종인 청우(靑牛)도 있는데

이는 한마디로 모색이 아주 까맣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듯한 ‘검푸른소’이다.

이를 국어대사전에서는 ‘청치’라 하여 ‘푸른 털이 얼룩얼룩한 소’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푸른 털이 있는 소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인지 흔히 청우를 ‘푸른소’,  ‘사전에만 있는 소’ 또는 ‘상상의 소’라고까지 적고 있고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영조 57권 19권 4월 “친경 때 청우에 푸른색으로 염색한 무명을 입히고 있다.

그런데 종묘에 청개, 홍개란 것이 있으니 이른바 청개란 곧 흑개이다.

오례의 <청우조>는 <흑우>로 주를 달아 놓는 것이 옳다.

(親耕時靑牛以染靑木衣之 而宗廟有靑紅蓋所謂靑蓋 卽 黑蓋也 五禮儀 靑牛條 以黑牛 懸註可也)”라고

임금이 교시한 한 점이나,

춘원 이광수가 을축년을 맞아 소를 찬양하여 쓴 수필 ‘우덕송’에서 검은 소를 한문으로 청우라고 쓰는데

그 이유는 검은빛은 죽음의 빛이라 생명의 빛인 푸른빛으로 빗대어 흑우를 청우로 부른다고 한 점에서도

분명해진다.  아울러  겸재 정선의 견본담채화 ‘청우출관도’에 등장한 소도 검정소로 흑우인 점이나

중국의 많은 시문이나 서화에서 흑우를 '청우'라고 적고 있다는 점으로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천연기념물의 발굴과 보존은 문화재청의 기본 책무

 

지난 9월 8일 일제시대 부터 동서냉전 시대 사이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토종 개성보리, 개성배추 등

리의 재래종자 900점이 독일유전자원연구소(IPK)에서 돌아왔다고 대서특필한 기사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일제 강점기에 유출된 아마, 기장, 피 등의 종자 1,546점,

그리고 2007년에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채집한 앉은뱅이 밀을 비롯해

1,679점의 토종종자를 미국으로부터 반환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문서를 반환 받기위해

정부와 국회가 직접 앞장서 15년간 협상을 전개한 바 있다.

 

문화유산과 식물종자의 반환 노력은 당국과 민간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천연기념물인 동물의 반환 요구나 복원에 대해서는 왜 관심이 적을까?

문화재란 그것이 자연유산이든 문화유산이든 이들은 우리가 지켜야 될 자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산으로서 가치가 큰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 스스로 발굴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우리도 모르게 소멸할지도 모를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부디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잊혀져 가는 흑우나 칡소 같은 축양동물 자원의 발굴과 보존에 동참하는 기회가

하루 빨리 마련되기를 갈구한다.   


- 이흥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사진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제주특별자치도청 축산진흥원,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프리랜서 고려진

- 문화재청, 2009년 11월9일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