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김정동교수의 문화재사랑

Gijuzzang Dream 2009. 11. 26. 05:57

 

 

 

 


 


오래된 것들을 만나는 기쁨

서대문 형무소의 오래된 설계도, 신세계 백화점의 건축 모형도,

낯선 이름의 오래된 학교 앨범 등이 가득 찬 김정동 교수의 연구실은

만물상과도 같다. 하지만 서대문 형무소의 오래된 설계도는 그것을

복원할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고, 신세계 백화점의 건축 모형도는

훗날 이 시대의 건축물의 상황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이 될 것이다.

오래된 앨범들은 당시의 학교 상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김정동 교수는 연구실을 가득 메운 오래된 것들 투성이와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가 비단 연구실에 있을 때뿐만이 아니다.

그는 연구실을 나와 세상 속에 다닐 때에도 오래되고 먼지투성이인 낡은 것들을 찾아다닌다.

 

"서울시가 작년에 '역대정부수반유적 종합보존관리계획' 을 발표했었죠.

해당 유적은 6곳인데,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많아요. 하지만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곳을 다시 복원하고자하는 움직임은 참 반가워요.

과거의 건물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죠. 우리 땅의 역사를 담은 현장이에요."

 

운명처럼 근대건축물을 찾아다니는 김정동 교수는

대학에서 건축사학을 가르치며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는 김정동 교수는

언제 어디서고 오래된 건축물과 문헌들을 소중한 보물처럼 생각한다.

 

"한국근대건축사를 연구하고자 할 때,

사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단어조차 잘 쓰이지 않았어요.

물론 대학, 대학원에도 한국근대건축사 과목은 없었죠.

당시 서양근대건축사가 유일한 교과목이었어요.

나에게 근대 건축사를 가르쳐 준 선생이 없으니 독학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죠.

하지만 이 일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이 걸린 문화재의 귀환

 

한국근대건축사를 연구하다 보면 맞닥뜨려지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무수한 건축물에 관한 문제이다.

여러 나라에 여러 통로로 반출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의 건축물들이 일본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김정동 교수는 1993년 도교대학 객원 연구원으로 일본에 가게 되어

그곳에 남아있는 우리 근대사 자료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일본이 약탈해간 우리 것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 하던 중

도교경제대학의 오쿠라 문서와 데라우치 문서에서

오쿠라가 경복궁의 자선당을 자신의 미술관 경내에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자선당은 왕이 정사를 돌보는 근정전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궁'이라 불렸다.

아침 해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으로 와위를 이을 왕세자가 거처하는 귀한 곳이었다.

세종 때 지어진 전각으로 경복궁 내의 전각 중에 긴 역사를 자랑하는 전각이기도 했다.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경복궁을 파괴하는 작업을 교묘히 진행하며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전각을 뜯어냈다.

그 중 자선당은 오쿠라 재벌의 창업주인 오쿠라 기하치로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다.

 

"이제 10년도 더 넘은 일이 되었네요. 자선당은 유구의 반환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요.

도쿄에서 오쿠라 저택이 있었던 오쿠라 호텔을 방문해서 옛 건물터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요."

 



자선당 주춧돌을 발견한 김정동 교수는 이 사실을 국내에 공개하고,

유구가 반환될 수 있도록 여론을 모으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백방으로 뛰어다닌 지 2년만인 1996년에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80년이 걸렸던 자선당 유구는

언제까지일지 몰랐던 타지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일본 혹은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하루아침에 찾아올 수는 없어요.

우선 어떤 문화재가 외국으로 갔는지부터 세세히 연구해야 해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외국에 우리 문화재가 갔는지도 확이 해야 하고,

현재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아야하죠.

오랜 시간동안 연구와 노력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현재 그런 작업들이 학자들로부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문화재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빛나는 김정동 교수는

외국으로 간 우리의 문화재가 반환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있는 문화재의 보존, 반환된 문화재에 대한 꾸준한 보존 작업은 더더욱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

 

"우리는 이제 문화재 여인숙에서 자고 문화재 다방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요. "

 

근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제도적 방편으로 등록문화재' 조항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그 연수가 더해졌으므로 많은 등록문화재 지정이 속속들이 이루어졌다.

김정동 교수는 '등록문화재' 의 시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었다.

 

50년 지난 건축물을 중심으로 하는 이 등록문화재는 역사성이 있는 건축물은 하한 기준이 없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생활 속의 일상건물도 당시의 역사를 드러내 주는 훌륭한 타임캡슐이 되기에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국으로 관광을 하러 가면 오래된 건축물들을 의미 있게 관광하고 오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우리도 우리네 역사가 담긴 오래된 건축물들을 아끼고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난개발로 오래된 건물 옆에 무분별하게 새 건물을 신축하여

역사적인 건물의 경관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흉물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정동은 오래된 것을 쉽게 버리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 새로운 것이 다는 아니에요.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질 때 보기에도 좋지 않겠어요? "   


- 글 · 김진희
- 사진 · 최재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년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