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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순장(殉葬)여인 복원 - 창녕 송현동 15호분 출토

Gijuzzang Dream 2009. 11. 26. 01:06

 

 

 

 

 

 

 1,500년전 16세 순장(殉葬)여성 복원 공개

 

- 창녕 송현동 15호분 출토 순장(殉葬)인골 인체복원 모형 공개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출토된

1,500년 전 고대(古代) 순장(殉葬) 인골(人骨)의 인체복원(人體復原) 모형을

11월 2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한다.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출토된 1,500년 전 16세 여인의 생김새는

턱뼈가 짧아 얼굴이 넓어졌으며 목이 긴 미인형이다.

팔이 짧고 허리는 21.5인치로 현대인(평균 26인치)에 비해 가늘며 거의 8등신에 속한다.

인체복원 모형은 뼈에 남아있는 의학적 증거들을 통해 CT촬영ㆍ3D스캔ㆍ디지털복원 등을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영화의 최신특수기법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인체복원을 통해

과거 이 땅에 살았던 한국인의 얼굴과 몸을 과학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발굴 당시 135㎝의 길이로 누워 있던 순장인골은

법의학의 키 산출공식에 따라 152㎝ 안팎으로 추정되었고,

모든 뼈를 복제하여 자세를 맞춘 키는 151.5㎝이다.

여기에 근육과 피부를 복원하고 머리카락을 심은 최종 키는 153.5㎝이다.

 

 

인체 복원모형의 제작은 발굴된 뼈대를 디지털화하고 복제뼈를 만들어 조립한 다음

인체 통계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근육과 피부를 복원하고 실리콘 전신상을 만들었다.

실리콘 전신상은 사람의 피부와 비슷한 색감과 질감으로 마감했고,

머리카락과 눈썹도 하나씩 심는 등 실제 사람같이 만들었다.

인골 복원에는 컴퓨터단층촬영, 영화의 특수분장기법 등등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

고대 인골을 과학적으로 복원한 국내 첫 사례다.

 

고대 순장인골 복원연구 사업(2년간)의 연구성과는

제33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분과발표를 통해 소개되어

국내 최초의 학제간(學際間) 융합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① 복제뼈 조립  ② 근육복원   ③ 피부층형성      ④ 실리콘 전신상 제작

[인체 복원모형 제작과정]

 

창녕 송현동 15호 가야고분 출토 순장인골의 복원모형은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 국민에 공개되며,

12월 1일부터 6일까지는 출토지인 창녕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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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고분군 중 15호분에서

귀고리를 찬 1500년전 가야계 여성 인골을 발굴 공개한 것은 2007년 12월 20일이다.

이 15호분은 도굴로 인해 유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무덤 주인공과 함께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장자 4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가야사람 복원연구’는 문화재청 책임운영기관 연구과제로 선정되어 2008년 7월에 닻을 올렸다.

올해 10월까지 계속된 이번 프로젝트는 가야문화재연구소 주관 아래

가톨릭의과대학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와 충청문화재연구원 한국고고과학연구소가 공동연구했다.

 

이들 순장자 4명 중 유일하게 귀고리를 찬 채 발견된 인골은

여성이며, 성장판이 채 닫히지 않은 상태 등을 고려할 때

16세 혹은 16.5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불어 이 여성은 출산 경험이 없으며, 종아리와 정강이뼈,

 그리고 치아 분석을 통해 '반복적인 사용과 앞니로 무언가를 자르는 작업을 했다'는 흔적을 발견했다.

전신적 질환과 빈혈이 있었으며, 충치도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이 여성은 무릎을 꿇는 일을 많이 한 시녀이거나 노비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다만, 금귀고리를 한 점으로 보아 노비보다는 시녀에 무게가 실렸다.

 

복제한 뼈로 인체를 조립해 보니 신장은 151.5㎝로 나왔으며, 인체를 복원한 뒤 신장은 153.3㎝였다.

 

 

출토 인골에 대한 유전학ㆍ생화학적 연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수행했으며,

복원 과정은 우선 셀아트라는 기관에서 촬영한 컴퓨터 단층 촬영 자료를 이용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108개의 복제뼈를 제작하고

이를 한승호 교수가 이끄는 가톨릭의대팀이 조립했다.

가톨릭의대팀은 2001년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얼굴을 복원한 경험이 있었다.

이어 B.H 인체조형 조형연구소 김병하 소장이 얼굴을 복원하고 근육과 피부 조직을 표현했으며,

피부를 마감했다. 전신상은 실리콘을 재료로 활용했다.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에서는 머리 형태를 자문했으며,

임정연 한복에서는 가야시대 의복 수선을 담당했다. 

 

가야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1500년 전 가야 여성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가야 복식을 걸치고,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탔으며,

오른손은 악수하듯이 앞으로 내밀고, 왼쪽 한 곳에만 금귀고리를 찬 모습으로 탄생했다.

 

강순형 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발굴 당시에 이 여성의 귀걸이가 한쪽만 남게 된 사연에 대해

'소설적 상상력'이라고 전제하면서 '시신을 묻는 사람이 다른 쪽 귀걸이는 슬쩍했을 수도 있다'는

기발한 ‘해석 (?)’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가야 여성의 이름을 무덤 지명을 따서 ‘송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창녕 땅이 옛날 가야시대에는 비화가야 땅이었으므로, ‘비화’라는 이름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고분군 중 15호분은 도굴로 인해 유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무덤 주인공과 함께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장자 4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2007년 12월 20일 발굴된 이 인골은 창녕 지역에 있던 비화가야(非火伽倻) 권력자의 시녀로 추정되며,

뼈 성장판 분석 등을 통해 키 151.5㎝의 16세 여성임이 밝혀졌다.

뼈를 복제해 조립한 뒤 실리콘으로 근육(가운데)과 피부(아래)를 복원하고 머리카락까지 심은

모형의 최종 키는 153.5㎝, 21.5인치의 가는 허리에 긴 목을 가진 8등신 미인이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정밀스캔 등 첨단기술을 동원한 끝에

무덤 입구의 왼쪽 귀에 금동귀고리(지름 2㎝)를 한 이 가야 여성은

뒤통수 뼈에서 다공성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정강이와 종아리뼈의 상태로 볼 때 무릎을 많이 꿇은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랑니가 아직 턱 속에 있어 16세 안팎으로 추정되며

실 잦는 노동을 많이 한 권력자의 시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쌀이나 보리, 콩 등을 주로 먹어 영양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한승호(카톨릭대 응용해부연구소장)은 "의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운동량이 많았고

뼈를 보면 전신 질환이나 빈혈을 앓았던 흔적이 있으나 아기를 가진 적은 없었다"고 했다. 

1500년 만에 신비스런 모습을 드러낸 이 가야 여성은

특이한 외상이 없어 순장직전 중독사나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모형에

인골 출토 지명을 따 '송현' 혹은 '비화'라는 이름을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담당자 : 이은석, 이성준

연락처 : 055-285-1315 

- 2009-11-25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조사한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연구 성과는

1천500년전 무덤에 순장된 가야인의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정밀스캔, DNA와 안정동위원소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이번 연구에 동원된 과학적 기법 덕분에 혈연관계, 식생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순장자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먹었나

순장자들의 성별판별, 식습관의 과학적 복원을 위해 유전학ㆍ생화학적 연구가 진행됐다.

경남 창녕 송현동 15호분에 묻혀있던 순장인골에 대한 학제 간 복원연구 분석 결과

무덤 입구에서부터 여-남-여-남의 성별로 순장자가 차례로 배치돼 있었으며

흥미로운 점은 유전학적 연구에서 두 명의 남성 순장자들의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같은 모계혈족임이 드러난 것. 두 남성의 어머니가 같거나 혹은 이종사촌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식생활에 대한 분석 결과

네 번째 위치의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조와 기장 같은 잡곡보다 쌀이 주식이었음이 밝혀졌다.

문제는 무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있던 네 번째 위치의 남성의 경우

다른 순장자보다 육류 섭취가 현저히 높았음이 확인됐다는 사실.

종전에는 사회적으로 반감이 덜한 전쟁포로나 최하층민을 강제로 죽여 순장했다는 견해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 육류섭취가 일반적이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기존의 개념과 달리 상위계층도 순장의 대상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양상태가 양호하고 금동귀고리가 나온 것에서 순장자는 최하계층이 아닌

무덤의 주인공 곁에서 봉사하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판명됐다.

◇어떤 질병을 앓았나
무덤 입구에서 한쪽 귀에 금동귀고리를 한 16세의 여성은

뒤통수뼈에서 다공성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원인은 영양결핍, 급성감염, 기생충 감염 등

다양하다.
또 어금니 등 여러 개의 충치가 보이고 치아에서 사기질형성저하증으로 인한 사기질의 결손도 확인됐다.
사기질형성저하증은 전신적인 감염, 대사성 질환, 영양 결핍 등이 원인으로 이 여성이 어떤 질환을 겪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살아있을 때 전신적인 질환을 여러 번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순장자는 이미 사망한 유력자를 내세에서도 섬기고 봉사의 책임을 다하고자 독약을 마시거나 질식사해 무덤에 함께 들어가게 됐다. 뼈대에서 특이한 외상이 보이지 않아 법의학적으로 중독사나 질식사가 법의학적으로

가장 적합한 사인인 것으로 판명됐다.

일반적으로 순장자들이 죽은 상태로 무덤에 매장되었을지, 아니면 산 채로 묻혔을지에 대해

궁금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송현동 고분의 순장자들은 매장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규명됐다.
인골 4구가 일정한 간격과 방향에 따라 발견된 점과 뼈대 관절의 유지 상태 등을 종합할 때

매장되기 전에 사망했으며 시신의 부패(백골화) 이후 무덤으로 이동된 것은 아니다.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고분군을 발굴조사한 결과

봉분 지름 20m가 넘는 대형 고분 2기를 비롯해 중형 고분 2기, 소형 석곽묘 6기,

제의(祭儀)와 관련된 매납 유구 2기, 묘역 조성과 관련된 주변시설 등을 확인했다.

대형 고분인 15호분은 도굴로 인해 유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무덤 주인공과 함께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장자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중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은 순장자 1구의 인골은 금귀고리(지름 2㎝)를 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토기의 동물문양과 같은 무늬를 새긴 토기편 등이

고배(굽다리접시)를 비롯한 다른 토기류와 같이 수습됐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제15호분 출토 동물 문양 새김 토기

 

이 외에도 15호분에서는 금동관 파편과 금반지, 금구슬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마구류 등이

일부 수습돼 이곳이 왕릉급 무덤임이 확인됐다.

 

제15호분 출토 각종 금제품

 

15호분은 무덤방 한쪽(북쪽)에 입구를 마련한

횡구식(橫口式) 석실분(길이 856㎝, 너비 170㎝, 높이 225㎝)로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면까지

회칠을 해서 내부를 마감했다.

8장 천장 뚜껑돌 바깥에는 사람 머리 크기 만한 돌을 쌓고 점토를 발라 밀봉함으로써

내부 석실을 보호한 적석 석실묘(積石石室墓) 구조로 밝혀졌다.

봉토는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고 외곽에는 호석(護石, 두름돌)을 설치했으며,

묘역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주변 경사면에 석축단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