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부산 금불암(金佛庵)의 건칠지장보살좌상

Gijuzzang Dream 2009. 9. 9. 14:09

 

 

 

 

 

 

  금불암의 빛

 

 

 

어느 철학자는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고정관념, 우상(Idola-偶像)을 경계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견해로 의한 편견으로

실제보다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상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선입견이 불상 제작 때의 염원을 그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의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조선시대 불상으로 생각했던 해인사 법보전 불상은

개금중수를 위해 열었던 불상의 내부에서 中和三年癸卯(883년)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最古의 목조불상임이 밝혀졌고,

부산 선암사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불좌상은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수법 때문에 건칠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는 건칠과 같은 얇은 두께를 가진 목불로,

내부에는 20개 이상의 꺽쇠로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 X-Ray의 촬영에서 확인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낡고 파괴된 세월의 흔적으로 생긴 상흔으로 우리가 바로 인지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만, 판단의 오류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조사하게 된 원명사 불상이 이런 오류를 일으킬 만하다.

그 모습이 지금까지 잘 접하지 못한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어떻게 설명하고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원명사(圓明寺) 불상의 대충적인 모습은 이러하다.

 

원명사(圓明寺) 상은 한 눈에 보기에도 표현수법이 섬세하고 정교해 현대불상으로 오인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 상은 고려후기부터 조선 전기에 제작사례가 다수 있는 건칠상이다.

다른 상과 달리 가벼워 팔 한아름으로 들어올릴 정도로 가볍다.

 
             
   
                                     〈가벼운 건칠불상의 특징〉

 

      

                           <원명사 건칠지장보살좌상 정면 · 얼굴모습〉


 

비구와 같은 머리의 지장보살상으로

이마로부터 쭉 뻗은 긴 코와 콧날의 날카로움이 남성적 인상을 강하게 준다.

볼록하게 드러나는 뺨과 턱에는 부드러운 건칠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법의는 오른쪽 속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편단우견으로 걸친 형식으로,

돌려 입은 대의 끝단은 왼쪽 팔뚝 위로 넘겼다.

법의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슴과 볼록한 배가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고려불화에서 풍만한 신체를 드러내고 있는 불,보살을 조각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탄탄한 다리 위를 덮은 큰 호형의 주름은

대담하면서도 그 사이에 잔주름이 적절히 구사되어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원명사 불상은 모습만큼이나 원명사로 오게 된 경위도 이 불상이 보여준 이적도 신기하기만 하다. 

자정보살(地藏菩薩)을 圓明寺에 모시게 된 원인은

최초 창건주인 장씨 성의 보살님이 어린 나이 결혼하여 가정생활에 충실하던 중

승려였던 숙부(叔父)로부터 맡아 모시고 있던 지장보살상을

남편이 일본으로 가면서 함께 가자고 하니 맡길 곳을 찾았으나 맡겨둘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지장보살님을 업고 부산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며칠간 매일저녁 지장보살이

生人처럼 ‘不肯去(기꺼이 가지 못한다)’ 라는 꿈을 반복하였으나 그 뜻을 알지 못했단다.

또 다른 꿈에는 바로 일본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절을 지어 모셔 달라고 하여

남편만 일본으로 보내고, 보살님만 혼자 남아 절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이 절이 원명사의 전신인 ‘금불암(金佛庵)’이다.

 

그리고 현 주지스님의 말에 의하면 불상이 지장전에 온전히 봉안되기까지도 약간의 곡절이 있었단다.

원명사의 지장상은 얼굴이 관념적인 神像과 달라서 법당에서 공양간의 구석에 방치해 버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 앞에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공양간에서 나오고 있어

빛을 따라 가보니 방치한 지장보살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신이한 모습에 놀란 스님과 사람들은 다시 법당에 모셔와 지장전을 세워 주불로 모셨다고 하니,

이 지장보살상은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투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기만 하다.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지장보살님의 행적을 그대로 다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각자의 몫이리라.

우리는 실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에는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우상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에 대해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 이희정, 
문화재청 김해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