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투철한 조형 논리를 따른 종교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시에 있는 클리블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은
여타의 미술관과 다르게 도시 외곽 대학가에 위치해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복잡하지 않아 차분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수풀과 호수가 있는 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1913년에 개관했는데,
고대 이집트 조각품에서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3만 점이 넘는 방대한 소장품을
시대순대로 전시하고 있어 시대를 관통했던 문화를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자랑하고 있는 것은 방대한 소장품이 아니라 작품의 질이다.
역대 관장들은 역사적 의미를 담은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보다
미술사상 명작을 소장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푸생의 <계단에 앉아 있는 성 가족>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계단에 앉아 있는 성 가족(The Holy Family on the Steps)>이다.
고전주의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푸생은 종교화에 있어서도 투철한 조형 논리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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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 앉아 있는 성 가족> 1648년, 캔버스에 유채, 72×111 |
고대 건물 중앙 계단에 아기 예수를 안고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고
왼쪽에는 황금색 옷을 입은 성녀 엘리사벳과 그녀의 아들 요한이, 오른쪽에는 성 요셉이 앉아 있다.
엘리사벳은 성모를 바라보고 있으며 요한은 아기 예수에게 사과를 내밀고 있다.
성 가족에 대한 경건함을 표현하기 위해 엘리사벳 모자를 한 계단 아래 앉아 있는 것으로 그렸으며
성 모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열망을 나타낸다.
성모에게 기대 펜으로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성 요셉을 어둡게 처리했지만
같은 계단에 앉아 있는 것과 빛을 받은 발로 성 가족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일하고 있는 모습은 현실을 나타낸다.
성모 마리아의 붉은색과 푸른색의 의상은 전통적인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푸생은 보통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아기 예수의 황금색 후광 대신 푸른 하늘로 표현했다.
중앙의 마리아가 발끝까지 내려오는 넉넉한 붉은 튜닉과 파란 망토를 두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빨강은 그리스도가 흘린 속죄의 피와 애정과 자애,
파랑은 신의 나라인 하늘의 신성한 색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망토의 파랑에는 라피스 라줄리를 가루로 만든 안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라피스 라줄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의 귀중한 교역품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얻을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금보다 더 귀했다.
라피스 라줄리를 사용한 파랑은 중세에 울트라 마린이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짙은 감색 바닷빛을 띠는 색깔 때문이 아니라,
바다(marine)를 뛰어넘어(ultra),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서아시아로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유럽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흰 백합은 성모마리아를 상징한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처녀 잉태를 알리는 중세의 벽화에는
흰 백합을 든 마리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서양에서는 흰 백합을 전통적으로 순결과 연결 짓는다.
계단 아래 황금색 단지는 아기 예수 탄생 때 동방박사가 가져온 물약과 유황을 상장하며
사과가 담겨 있는 바구니는 선악과를 암시한다.
요셉이 아기 예수에게 사과를 건네고 있는 것은
인류의 원죄를 대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를 암시한다.
수평적인 계단과 수직 기동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성 가족과 대비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이나 건축물에 대해 연구했던 푸생은
건축적인 배경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푸생은 프랑스 고전주의를 이끌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작업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고전주의 경향이 짙어졌다.
푸생은 신화, 종교, 역사, 풍경 등의 주제를 웅장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는 고금의 문학에 정통해 있을 정도로 문학적 교양을 갖추고 있어
문학적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자신의 의도에 맞게 재해석해서 그렸다.
로마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푸생을 프랑스 정부는
루브르 궁정 장식을 위해 소환해 왕실 수석 화가라는 직함을 주었다.
하지만 푸생은 동료 화가들의 모함과 질투로 견디지 못하고 로마로 돌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짧은 파리 체류에서 로마로 다시 돌아와 만년을 보냈던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벨로스의 <샤키에 모인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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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의 모인 남자들 Stag at Sharkey's> 1909년, 캔버스에 유채, 92×122 |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 이미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샤키는 일종의 남성 전용 클럽이다.
당시 이런 남성 전용 클럽에서는 불법적인 내기 권투시합이 벌어지곤 했는데,
벨로스는 그 처절한 승부의 현장을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즐겨 묘사했다.
환한 조명 아래 사각의 링에서 백인 권투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심판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들의 주먹은 상대 선수의 몸을 치고 있는데
왼쪽의 얼굴을 맞아 근육질의 운동선수의 몸이 활처럼 굽혀 있고
그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대는 바닥에서 뛰어올라 왼팔로 주먹을 날리고 있다.
두 선수는 서로에게 맞아 얼굴이 피투성이다.
활처럼 굽어 있는 선수와 뛰어오른 선수의 몸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실제로 권투를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운동선수의 움직임에 대해 잘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야구선수 생활을 했던 벨로스의 경험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은 두 선수의 격렬한 싸움으로 흥분해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관중들의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얼굴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있던 폭력성을 나타냈다.
관중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선수의 움직임에 시선을 멈추고 있다.
링 안에서 싸우는 권투 선수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관중도 돈이 걸려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절대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 성인남자 클럽에서 열렸던 권투 시합은 도박성을 띠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중들은 경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거칠고 야만적으로 변했다.
벨로스(Bellows, George Wesley, 1882~1925)는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나는 두 사람이 죽일 것 같이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권투는 그가 좋아하던 주제 중의 하나로서 벨로스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자신의 아틀리에 맞은편에 있던 샤키 운동클럽에서 실제로 경기를 보고 구상했다.
도박성이 있던 대중 권투 시합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뉴욕에서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운동클럽이 성행했었다.
벨로스는 운동경기와 활동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젊은시절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를 종용받을 만큼 뛰어난 운동선수였던 벨로스는
스포츠적인 활력과 충일감을 힘찬 붓놀림을 통해
스포츠 세계를 고속 사진기로 포착된 순간의 장면처럼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1909년에 프로 권투시합 연작, 예를 들면 〈샤키에 모인 남자들(Stag at Sharkey's)〉
<같은 클럽의 회원 2명(Both Members of This Club)>을 그리기 시작해 선풍을 일으켰다.
남성적인 힘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고 동시에
도시의 기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한 생존투쟁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는 또한 초상화로도 유명했다.
벨로스는 오하이오주립대학에 다니다가 뉴욕 시로 이주해, 로버트 헨리 밑에서 공부했다.
그가 속한 '8인회(The Eight)' '애시캔파(Ashcan School)'의 일원이 되었다.
이 단체는 동시대 미국사회의 일상사와 현대 도시생활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벨로스는 '애슈캔파(派)' 화가들과 함께 어울렸는데,
그들은 뒷골목 · 쓰레기통 · 창녀 등 삶의 이면을 주로 그려 이렇게 불렸다.
뉴욕의 빈민가와 술집의 활기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그는
"이상적인 화가란 초인이어야 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밖에 여자와 어린이들도 그렸는데,
그의 명성을 굳혀준 〈42명의 아이들(42 Kids, 1907)〉라는 유화에는
낡은 선창가에서 힘찬 동작으로 헤엄치고 다이빙하는 어린이들이 가득 묘사되어 있다.
그는 뉴욕 시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27세의 나이에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는 명예를 얻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최연소 기록이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년 09월 01일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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