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피티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피티 미술관(Galleria Pitti)은
1458년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피티 가문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피티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팔라티나 미술관(Galleria Palatina)으로,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서 막강한 권력을 잡고 있던 메디치家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낀 피티家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하지만 권력투쟁에 밀려난 피티는 궁정의 완공을 보지 못했으며 그 이후 메디치家에 팔리게 되었다.
메디치家는 건물을 확장해 1737년까지 거처로 사용하다 1798년 국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우피치 미술관과 다르게 피티 미술관은 개인적 취향의 소장품이 위주다.
라파엘로의 '작은 의자 위의 성모'
술통 뚜껑에 급하게 그려진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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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자 위의 성모> 1515년경, 목판에 유채, 지름 71 |
피티 미술관의 자랑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작은 의자 위의 성모(Madonna della Seggiola)>다.
이 작품은 종교화에서 볼 수 있었던 엄숙함보다는 인간적인 어머니 상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라파엘로의 성모상은 그의 심리적인 표출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는 8살 때 어머니를 잃고 항상 그리워해
성모자상을 통해 신의 존재보다 인간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
성모 마리아는 녹색의 바탕에 화려한 수가 놓인 숄을 두르고 의자에 앉은 채 무릎 위에 아기를 안고 있다.
아기 예수는 어리광부리듯 어머니 품을 파고들고 있으며 동그랗게 뜬 눈은 세상을 향해 바라보고 있고
옆에 있는 세례 요한은 기도하는 자세로 성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종교적 분위기를 화면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지만
주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종교화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머리 장식에 가늘게 빛나는 금색의 원은
그녀가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라 성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머리 위의 광채는 종교화의 특징인데 그것은 성모나 성인에게만 표현되는 방식이다.
라파엘로는 이 작품에서 머리 위에 광채를 과장되게 그리지 않았다.
과장된 원형의 테두리는 15세기 종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는데
라파엘로는 종교화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원형의 테두리를 있는 듯 없는 듯 표시했다.
성모 마리아의 의상은 항상 종교적 약속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데
빨간색은 성스러운 하늘의 색이며 파란색은 하늘의 진실을 상징한다.
색채가 주는 효과를 연구한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를 강조하기 위해 빨강과 녹색 보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의 자세가 불편해 보이는 것은
원형의 목판에 두 아이와 어머니를 한꺼번에 그리기 위해서다.
실제로 성모 마리아의 자세로 아이를 안을 수 없다.
성모 마리아의 자세는 불편하지만 라파엘로는
푸른색 망토에 주름을 많이 그려 넣어 성모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하지만 아기 예수는 왼쪽 무릎 때문에 편안해 보이며
아기 예수의 발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아기 예수 옆에 있는 어린아이가 성 요한인데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십자가가 달린 지팡이다.
종교화에서 그리스도의 도래를 예언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는 십자가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어야 하는 모습으로 정해져 있다.
라파엘로가 어느 날 길을 가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두 아이와 젊은 어머니를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작품이 원형인 것은 라파엘로가 모자를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을 그릴 도구를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아 옆에 있는 술통 뚜껑에 급하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실제의 모델은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여인 포르나리나다.
이 작품이 공개가 된 후 인기가 많아 수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으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뒤 루브르 박물관에 가져갈 첫 번째로 작품으로 꼽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모자상 중 하나로 피티 미술관은
라파엘로의 이 작품 외에 대표적인 성모자상인 <대공의 성모(Madonna del Granduca)>도 소장하고 있다.
루벤스의 <전쟁의 공포>
피티 미술관에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자 당대의 현안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전쟁의 공포(The Horrors of War)>다.
외교관으로 활동해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루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평화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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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공포> 1637∼1638년경, 캔버스에 유채, 206×342 |
비너스는 투구를 쓰고 칼을 든 전쟁의 신 마르스를 붙잡고 있으며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과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쓰러져 있다.
화면 왼쪽 문은 야누스 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평화시에는 닫혀 있던 문이 열려 있는 것은 마르스가 전쟁을 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조화,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풍요, 마르스 발 아래의 책은 지성을 상징한다.
마르스가 책을 밟고 있는 것은 전쟁으로 인해 지성이 무너지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있으며
조화와 풍요가 짓밟히고 있는 것은 전쟁의 살육을 의미한다.
비너스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큐피드 때문에 실체가 아닌 신화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검은 옷을 입고 두 팔을 들고 있는 여인은 유럽을 암시한다.
루벤스는 보통 우의화에서 여인을 나체로 그리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 비너스와 큐피드를 그려 넣은 것은 전쟁을 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루벤스는 신화를 정치적 의미를 가진 우의화로 재탄생시켰다.
루벤스는 말년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 막중한 외교관 업무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면서
삶의 행복과 평온함을 입증하기 위해 평화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말년 작품으로 유럽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8.25 ⓒ ScienceTimes [명화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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