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로강을 따라 다윈의 발자취를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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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탐험한 길이 800km의 아르헨티나 네그로강은 남미 대륙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유유히 흐르는 네그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파타고네스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도시는 다윈이 탐험할 당시 불렸던 이름을 버리고 지금은 카르멘데파타고네스로 불리고 있다.
도시는 빈민가가 많은 꽤 낙후된 모습이었다. 일단 강 건너에 있는 비에드마에 숙소를 정했다.
홍수와 건조한 기후가 남긴 멋진 퇴적암 다윈은 당시 일기에서 파타고네스라는 도시 앞에 강이 있고 강변 절벽에 사암(砂巖)이 많았다고 묘사했다.
다윈은 사암층이 자갈층에 덮여 있는데, 자갈들이 안데스산맥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경험으로 미뤄볼 때 다리가 서 있는 곳이 강폭이 좁고 그곳에 절벽이 있을 것 같았다. 거기서는 다윈이 관찰했다는 사암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숙소가 있는 비에드마와 파테고네스를 잇는 다리 2개를 잇따라 찾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바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강의 하류인 남쪽 강가까지 내려갔지만 허사였다.
다행히 상류쪽 다리에선 다윈도 감탄한 멋진 노두(강가의 절벽)의 모습이 보였다.
네그로강의 한 다리 옆에 드러난 퇴적층 모습. 홍수가 자주 일어나는 네그로강 주변에는 이처럼 퇴적물이 굳어 바위가 된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강물에 실려온 모래층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형성한 독특한 무늬는 흡사 오래전 TV에서 봤던 호주퍼스의 ‘웨이브록’처럼 눈부셨다.
직접 노두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자갈 모서리가 한결같이 둥글게 보인다.
저 멀리 안데스산맥의 화산암 지대에서 떠내려 오면서 모서리들이 깎이고 다듬어진 결과였다.
지금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나 적합해 보이는 이곳에 다윈이 서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들뜬다.
사암으로 구성된 절벽은 아래쪽부터 경사가 심한 층과 물이 흐르며 패인 홈, 기후가 건조할 때 생성된 석회질층, 사암층, 역암층이 차례로 발달해 있었다.
이들 퇴적층은 강이 범람하고 건조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변에는 홍수 때 쌓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모래자루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최근까지도 네그로강은 홍수로 종종 범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윈은 자신의 일기에서 융기작용으로 솟아오른 사암층이 해안가 일대에 광범위하게 발달했다고 적고 있다.
필자는 실제 네그로강 하류지역과 맞닿은 해안가의 사암층을 보기 위해 산안토니오에스테로 이동했다.
이 작은 도시는 네그로강에서 약 50km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휴일이라 음식점들 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동네를 몇 바퀴 돌았지만 문을 연 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동네 가게도 24시간 문을 열고 전화 한 통화면 야식을 배달해주는 한국이 문득 그리워졌다.
물빠짐 구조에서는 무거운 광물들이 자연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곳의 해안가에도 사암이 솟아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암이 융기한 곳 아래쪽은 파도에 깎여 나가면서 동굴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동굴’이라는 뜻의 그루타스 관광지가 눈에 자주 띄었다.
동굴들이 길게 자리한 사암층은 석회질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다윈 역시 이런 광경을 지켜봤던 것으로 보인다.
사암층 위쪽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굴들이 파여 있는데,
아마도 새나 토끼의 보금자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가 퇴적층에서 발견한 토끼굴과 새집 흔적들. 원래 이 지역은 철새들의 도래지로 오래전부터 이름이 나 있었다. 하지만 철새들은 3월과 10월에나 볼 수 있어 지금은 빈 둥지 자리만이 남아 있다.
바닷가 한쪽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수영장’이라고 부르는 인공 웅덩이가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수영장이 아닌 염전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웅덩이 안에는 모래 바닥에 남아 있는 물결자국이 보여 바닷물이 들어올 때면 이쪽으로 물이 찼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바닷가 모래엔 퇴적구조에서 흔히 발견되는 검은색 띠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비중이 높은 무거운 광물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광물에서 분리되는 물의 분급작용인 듯했다.
이는 모래가 안데스 산맥의 화산암 지대에서 이동해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 현지인들이 '수영장'이라고 부르는 인공 웅덩이. 오랜 기간 모래가 흘러들어 웅덩이 바닥에 물결자국을 만들었다.
모래 양과 침식 정도로 보면 수백 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남미의 작은 마을에서 거리를 돌아보면서 종종 느꼈던 정겨움이 또 한 차례 다가왔다. 이곳에서도 역시다윈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요즘 필자는 다윈이란 단어만 보면 흥분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인근의 안내소 직원에게 어렵게
확인을 했지만 그는 특별한 관련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제3기 지층은 바이아블랑카까지 고루 넓게 퍼져 있다. 이곳을 포함한 파타고니아 지방은 아르헨티나가 보유한 석유와 가스 대부분이 묻혀 있다.
석유 분지는 가장 아래에 중생대 화산암이, 중간부는 중생대 육지 또는 바다 퇴적물이,
가장 위에는 화산성 사암과 응회암이 덮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석유를 모두 자급자족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동해에서 생산되는 소량의 천연가스와 2007년 울릉 분지에서 발견된 가스하이드레이트가 전부다.
당시 탐사 책임자였던 필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탐사선인 탐해 2호에서 겪었던 발견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네그로강 하류에 형성된 해안가. 융기해서 솟아 있는 바위들이 바닷가에 드러나 보인다. 다윈의 흔적을 따라 아르헨티나의 시골도시를 다니며 성실과 근면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남미인들이 일하는 시간은 우리와 크게 비교될 정도로 짧다.
낙천적인 성격도 성격이지만 풍부한 먹을거리와 자원 덕분일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이런 악조건을 이기기 위해
남보다 더 일찍, 더 많이, 더 빨리 일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다윈의 이론대로라면 사람도 환경에 적응하려면, 아니 살아남으려면 필요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진화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합리화일까.
- 더 사이언스, 2009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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