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나오는 집 고쳐 쓰기: 영덕의 어느 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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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때문에 氣 막혀 모두 쪽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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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에서 ‘입택입식가(立宅入式歌)’에 사람이 살기에 부적절한 터 8곳이 나온다. 폐허가 된 옛터, 감옥 자리, 전쟁 터, 무덤 터, 문 앞으로 도로가 많은 곳, 물이 집(건물) 뒤를 치고 들어오는 곳, 음지, 늪 지대가 그곳이다. 물론 토목 · 건축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이러한 땅들이 주는 불리한 여건들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터들은 과거 전력(?) 때문에 누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흉가(凶家) 혹은 귀신 나오는 집(터)으로 소문나 가끔씩 TV에 소개되고, 더러는 흉가체험 동호인들에게 현장학습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잠깐 머물다 갈 곳으로 여전히 유효한 곳
2005년 10월 어느 날 저녁 9시 무렵, 나는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해수욕장 맞은편 산 끝에 있는 어느 폐가(廢家)를 찾았다. 그보다 몇 시간 전 포항에서 버스를 타고 장사리해수욕장에 내렸다.(포항에서 30여분 거리). 그리고 바닷가를 거닐며 소문으로 떠도는 ‘백사장 맞은편에 있는 흉가’의 위치가 어디쯤일까 찍어두었다. 저녁 8시쯤 장사리해수욕장 부근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주인에게 ‘귀신 나오는 흉가가 어디인지’ 물었다. 낮에 찍어둔 자리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주인은 자세한 내력과 함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다. “1980년대 건물이 지어진 뒤 음식점, 술집, 절집 등으로 몇 번씩 용도와 주인이 바뀌었지만 모두 망했다. 6·25전쟁 중에 근처에서 상륙작전을 벌였던 학도병들이 많이 죽어 이곳에 묻혔다. 또 언젠가는 인근 부대에 근무하던 군인과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임신한 처녀 하나가 이곳에서 목을 맸다….”
포항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 옆 여기저기에서 비춰대는 불빛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흉가를 찾았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여기저기 쓰레기더미가 희미하게 보여 어둠 속에서도 폐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때 거실이었던 곳에는 침대 매트리스가 뒹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갑자기 2층에서 ‘덜커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순간 등이 오싹했다. 애써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마당만 잠시 배회하다 장사리해수욕장 부근에 잡아둔 여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흉가는 7번 국도 산 쪽에 있기 때문에 전망이 좋았다. 그러나 바람이 유난히 거셌고, 국도에서 흉가로 이어지는 몇십 m의 길 모양새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같은 길을 걸어 다시 흉가를 찾았다. 흉가 마당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다시 불었다. 어젯밤에 불던 바람이다. 땅바닥 여기저기 암반이 드러나 보인다. 마당 한쪽 암반 위에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작은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최근까지도 절집으로 쓰였던지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아직도 건물 벽에 붙어 있다. 건물 안 벽 한쪽에는 ‘흉가’임을 알리는 낙서와 ‘함부로 건들면 영가(혼령)들이 달라붙어 괴롭힐 것이다’는 안내문(?)까지 쓰여 있다.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실전 風水] -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 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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