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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古) 신라비 - 포항 학성리 碑 논쟁

Gijuzzang Dream 2009. 7. 31. 14:10

 

 

 

 

 

 '포항 학성리碑' 논쟁예고

 

 

 

처음 나온 인명, 관등명

6세기 이전신라연구 '전환점'

 

 

 

지난 5월 경북 흥해읍에서 발견된 옛 신라비(왼쪽)와 그 탁본.

명문 내용 등으로 미뤄 501년 혹은 441년 만들어진 현존 최고의 신라비임이 확실시된다. ‘학성리 비’로 부르고 있으나, 첫 발견 장소가 흥해읍 중성리여서 ‘중성리 비’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14일 경북 포항 흥해읍 도로공사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신라의 옛 비석

고대사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른바 ‘포항 학성리비’(가칭)로 불리는 이 비석은

지금껏 확인된 신라의 문자새김 기록(금석문) 가운데 가장 이른 6세기 초, 심지어 5세기 중엽까지

연대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신라비로 추정된다.

 

게다가 베일에 싸인 6세기 이전 신라 초기의 사회상과 권력구조를 암시하는 내용들도 담고 있어

고대 신라사의 ‘뇌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신라 최고 비석 확실시…연대는 핵심 쟁점으로
새로운 지명 등 토대 계급·지역사회상 연구 가능

 

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의 화강암 한 면에 12행에 걸쳐 가득 음각된 비석 글자수는 200여 자.

당시 신라 왕경 경주를 장악했던 6개 핵심 세력인 6부와 지방 세력 사이에

재산 등을 둘러싼 다툼이 일자 왕과 주요 세력가들이 회의를 통해 중재한 뒤

이를 지킬 것을 포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비석의 연대 문제다.

서두에 새긴 ‘신사’(辛巳)라는 간지의 해석을 놓고

지증왕 재위 2년인 501년과 눌지왕 재위 25년인 441년설이 벌써부터 엇갈린다.

 

비에 새겨진 ‘아간지(阿干支)’, ‘사간지’(沙干支) 등의 관등이

현존 최고 신라비였던 포항 냉수리비(503년), 울진 봉평비(524년), 창녕 진흥왕비(561년) 등의

후대 비문보다 옛 식임은 분명하나,

비석의 관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시기는 60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초기 신라 왕은 왕경 세력에는 경위를, 지방 세력에는 외위라는 차등화한 관직을 주어 분할 통치했다.

이런 맥락에서 학성리 비문 내용 중 주목되는 것이 기존 학계가 외위의 명칭으로 보았던 ‘일벌’(壹伐)이다.

 

분쟁 해결 회의에 참석한 유력자들의 이름을 거명한 비문 내용 중,

이 ‘일벌’이란 관등을 지방 세력이 아닌,

6부 세력의 ‘불내’(弗乃), ‘제지’(祭智) 등의 인명에 붙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이는 곧 당시 왕권이 약해 관등을 왕경, 지방으로 나눠 갈라 줄 정도의 힘을 행사하지 못했고,

관등 자체도 정비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일벌’의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일벌’이 왕경, 지방을 가리지 않고 썼던 관등이라면

율령(법)과 관제를 정비했던 6세기 신라 때보다 통치기반이 미숙했던 5세기 초창기 관등이 명확하므로

비석 연대는 훨씬 올라가게 된다.

 

 

다른 외위의 명칭으로 확인되는 ‘일금지’(壹金知)의 의미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모단벌탁’(牟旦伐啄: 흥해로 추정?), ‘본파탁’(本波啄) 등 기존 비석에 전혀 없던 추정 지명들이

육부 세력가들의 이름 앞에 확인돼 육부가 좀더 작은 소단위 구역들로 나누어졌으리란 추론도 가능하다.

 

비석 명문 말미에 새겨진 ‘궁’(宮)의 실체도 수수께끼다.

비문에서 재물을 빼앗은 주체로 풀이할 수 있는 ‘사간지궁’(沙干支宮) ‘일부지궁’(日夫智宮) 등의 표현에

나오는 이 ‘궁’을 궁궐, 곧 왕실 세력 등으로 추정할 경우

그들이 사사로이 지방 세력의 재산 등을 빼앗았다가 강한 반발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비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궁은 유력자의 벼슬 직위로도 볼 수 있어 해석의 논란은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비문을 검토해온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학성리 비문은 냉수리비, 봉평비보다도 더욱 거센 논쟁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며

“비문의 문장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인명, 지명, 관등 등도 처음 드러난 것들이 상당수여서

해석에 따라 초기 신라의 권력망, 사회 성격의 실체가 크게 엇갈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성리 비를 인수해 비공개로 보관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8월 말~9월 초 비석 명문 내용에 대한 공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며,

한국고대사학회도 그 뒤 잇따라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학성리비는 바야흐로 올가을 고대사학계 최고의 이슈로 등극할 전망이다.

- 노형석 기자, 사진 문화재청, 경북매일신문 제공

- 2009-07-23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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