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 된 과학, 과학이 된 마법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타난 마법 - 과학
“어떤 충분하게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지난해 작고한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락(Arthur C. Clarke, 1917-2008)의 말이다.
클락은 1961년, 자신의 저서 <클락의 3번째 법칙(Clarke’s third law)> 중
‘미래의 프로파일(Profiles of The Future)’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때 마법이었던 것이 알고 보니 그 전까지 몰랐던 과학지식이거나 정교한 기술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서. C. 클락 (arthur c. clarke, 1917-2008) |
언제나 합리적으로 명백한 과학은 없었다.
과학은 언제나 새로운 합리적인 시야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기’인 것처럼, ‘과학’이 아니라 ‘과학하기’가 더 적당할 수 있다.
과거 마법이라 불리던 신비로운 일들도 당시는 ‘마법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과학이 체계화되지 못해 이해할 수 없었으니 신비로운 일로 인식될 법하다.
그런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당시의 새로운 과학을 마법으로 칭했을 뿐이다.
마녀는 과학을 알아버린 천재였다
순식간에 안개를 만들어 연막을 만들었던 것도 화학작용의 하나였다.
귀신이 쓰인 사람에게 먹인 신비의 약물도 신경안정제 같은 효능의 물질이었을 것이며,
불을 피우면 거대한 문이 열렸던 것도 헤론의 숨겨진 기술이었다.
그래서 마법은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과학기술이다.
물론 마법사는 마법이 과학이 되지 않기 위해 비법을 숨겼다.
그것은 과학 암흑시대를 거친 뒤에야 하나씩 밝혀졌다.
마녀재판의 마녀는 먼저 비법을 알아챈 탄압 받은 천재였다.
영국 에딘버러에 살던 무명작가 조엔 롤링(Joanne. K. Rowling, 1965- )을
일약 세계적인 부자로 만든 작품이 <해리포터(Harry Potter)>다.
온갖 판타지로 가득찬 이 소설을 이끌고 가는 것은 마법이다.
롤링이 글로 표현한 아기자기한 마법들은 2001년부터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는 작가의 상상력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냈고,
머리 속에 머물던 마법은 이제 눈앞에 현실처럼 또렷하게 그려졌다.
물론 이는 컴퓨터라는 마법의 힘을 빌었다.
<해리포터>시리즈 중 첫편을 장식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에서부터
풍부한 마법적 상상력은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났다.
영화는 조엔 롤링이 묘사한 마법 하나 하나를 뚜렷한 이미지로 그려줬고,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상상한 이미지를 영화에 그려진 그림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일종의 마법적 현상은,
그러나 현실의 과학기술로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대 과학으로 실현가능해진 마법들
뱀과 대화하는 해리포터 ⓒ해리포터 |
어린 해리포터는 친척들과 함께 동물원을 간다. 동물원에서 해리포터는 거대한 뱀과 대화를 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동물들의 행동패턴을 분석해 특정한 소리나 신호를 낼 때
동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아내고 있다.
어떤 개목걸이는 개의 맥박과 성대울림 등을 통해
개가 하고 싶어하는 의사표시를 액정화면에 나타내 주기도 한다.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돌고래가 발산하는 초음파로 인간은 그 의도를 알아채기도 한다.
자폐에 갇혀 40여 년간 동물을 관찰해 온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콜로라도대 동물학과 교수는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lation: Using the Mysteries of Autism to Decode Animal Behavior),
캐서린 존슨, 템플 그랜딘 / 샘터사 / 2005>를 통해 인간이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연구자들은 생명체 간 특정한 정보전달 체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애완동물과 인간이 일종의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쉽다는 데 착안해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를 탄 곳은 9와 4분의 3 승강장이다.
승강장 기둥 벽을 뚫고 들어가야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단단한 벽으로 사람이 흡수되듯 들어가는 것은 분명 마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안쪽이 상대적으로 어두운 통로 앞에 서로 다른 프로젝터를 엇갈리게 설치한다.
각 프로젝터들이 적절한 각도에서 벽돌의 이미지를 쏘면
각각의 이미지는 간섭을 일으켜 가상벽이 돼 들어갈 수 있다.
길을 열어주는 벽돌들 ⓒ해리포터 |
벽돌로 만들어진 벽이 움직여 길을 내주는 장면이 있다.
벽돌은 모두 가로로 서로 쌓아올려져 만들어져 있는데,
이들 벽돌이 하나씩 세로로 돌아가면서 열리는 것이다.
규격화된 벽돌은 대체로 긴 면의 길이가 짧은 면의 2배가 된다.
다시 말해 가로로 버티던 벽돌이 세로로 돌아가면 막고 있던 면적의 반이 줄어들게 된다.
긴 면을 따라 일렬로 놓여진 벽돌 사이에 회전축을 심은 뒤 주름지게 접히도록 회전시켜
벽이 열리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차 안에서 해리포터는 종이딱지를 얻게 된다. 호그와트 학교 교장 덤블도어가 그려진 딱지다.
평면인 이 딱지에 그려진 사진은 입체적으로 보인다. 마치 안쪽에 사람이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종의 홀로그램인데 보이는 방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입체적인 홀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체 형상을 2개 이상의 스테레오 카메라로 촬영한 뒤
그림에 맞춰 여러 차례 세밀히 홀로그램에 입혀준다.
밤하늘이 비치는 호그와트 식당의 천정 ⓒ해리포터 |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식당 천정은 뻥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밤하늘이 보이기 때문이다.
천정 위에 카메라를 달아 구름 낀 하늘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이를 같은 시간 천정으로 이미지를 쏘면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어두운 하늘의 이미지를 잘 살리려면
천정은 빛을 잘 반사시킬 수 있도록 다소 밝은 것이 좋을 듯하다.
집 안에서 집 밖의 모습을 촬영, 벽에 투사하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보여 멋진 인테리어가 될 수 있다.
현대 과학에 힌트를 주는 마법들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의 반 배정은 오래 묵은 마법모자의 결정에 따른다.
학생들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면 모자가 그의 성격과 능력 등을 고려해 적절한 반을 지정해 준다는 것이다.
마치 학교를 지나쳐간 학생들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담고
이를 원칙과 규칙, 경험에 견주어 반을 결정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마법모자는 학생의 바람도 참고한다.
뇌파 안정도에 따라 반을 배정하는 시스템보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겪어온 교사들의 판단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호그와트 기숙사의 계단은 가고자 하는 복도의 문에 맞춰 움직인다.
층계를 올라야 하는 것은 같지만 비어 있는 사방 각각의 통로를 계단이 지정해 주는 방식이다.
에스컬레이터보다 그리 편리해 보이지는 않지만
각 층의 위치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잇점도 있다.
돌로 만들어져 허공에 떠 있는 계단을 움직이고 떠받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단을 하나의 끝단만으로 지지하려면 계단을 더욱 단단히 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공, 황금 스니치 ⓒ해리포터 |
마법학교의 학생들은 퀴디치라는 게임을 한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를 타고 하는 축구경기의 종류다.
공은 3가지가 있는데 이 중 2가지는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블러저는 경기장 내에서 플레이어가 치는 방향을 감안해 움직이고,
황금 스니치는 작은 새처럼 쉽게 잡히지 않도록 날아다닌다.
공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공 내에 특정한 감각기능이 장착돼야 한다.
사람 등 외부가 이를 잡으려 하는 것은 인식하고 피하는 성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공은 그 목적에 맞춰 이동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굳이 시각적 감각장치를 달 필요는 없다.
다른 요소가 접근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그 반대 방향으로 날면 된다.
곤충들은 수백 개로 만들어진 눈으로 외부의 변화를 인식해 달아나지만,
소리나 온도, 냄새 등 보이지 않는 정보로 위험한 요소의 접근을 알아채기도 한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곤충 행태를 연구하면 이 같은 공을 구현하는 건 쉬울 수 있다.
호그워트 학생들이 즐기는 놀이 중에 움직이는 체스가 있다.
대화하듯 말로 지시하는 대로 체스의 말이 움직이고, 상대 말을 잡으면 로봇처럼 움직여 말을 부서뜨린다.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체스의 말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말의 밑부분에 자석을 달고, 체스판 아래에 전자석을 심은 뒤,
전류를 이동하는 구간에 따른 전자석에 주면 된다.
말이 직접 무기를 내리쳐 상대말을 부서뜨리는 것은 작은 로봇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면 쉽게 이해된다.
투명망토를 입은 해리포터 ⓒ해리포터 |
해리포터는 아버지 유품으로 보이지 않는 망토를 받는다.
망토를 쓴 부분은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옷은 이미 일본에서 개발된 바 있다.
도쿄대 대학원생이던 카즈토시 오바나(Kazutoshi Obana)는 투명 외투(Invisible Cloak)를 개발했다.
은색으로 된 옷을 입으면 몸 뒤에 가려진 부분이 옷에 투영돼 마치 사람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몸 뒤의 배경을 촬영해 이를 반사되는 옷에 투사해 옷을 입은 부분이 배경이 되는 식이다.
호그와트 기숙사에 걸린 그림들은 모두 움직인다.
그림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길을 가르쳐 주거나 열쇠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움직이는 그림은 현재 시판되는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컴퓨터를 장착하면
길을 안내하거나 목소리로 암호를 말하면 길을 열어주는 등의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마법으로나 가능할 것같은 이미지지만 수년 내에 우리 생활 깊숙히 구현될 만한 기술이다.
마법학교에 배달되는 신문에 찍혀 있는 사진은 동영상처럼 움직인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 등장한 전자신문과 비슷한 방식이다.
e-페이퍼 기술이 좀더 말랑말랑한 종이처럼 휘어질 수 있도록 개발되고
동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작은 크기의 프로세서가 장착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종이로 된 매체 나름의 특징이 있음에도
움직이는 영상이 꼭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지는 재고해볼 문제다.
자신의 바람과 함께 비치는 마법의 거울 ⓒ해리포터 |
해리포터는 우연히 거울 하나를 발견한다. 자신의 바람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미 여러 과학 박람회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상합성 기술의 일종이다.
블루 스크린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에 다른 배경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촬영한 영상을 180도 반전해 영상으로 투사하면 거울과 같은 이미지로 볼 수 있는데,
이를 경면 스크린에 드러내면 영화와 같은 기능을 구현해 낼 수 있다.
물론 거울 앞 사람의 바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과학자, 현대의 마법사들
<해리포터> 시리즈가 관심을 끌게 되자
현재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편집장으로 있는 과학저술가 로저 하이필드(Roger Highfield, 1958- )는 2002년 <해리포터의 과학: 마법이 진정 어떻게 작용하는가(The Science of Harry Potter: How Magic Really Works)>를 펴냈다.
하이필드는 “롤링의 책에서 현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발견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마법에서 과학을 설명한 것이다.
과학과 소설의 가상세계를 한 발씩 담근 듯한 이 책에서 하이필드는
“해리포터의 마법세계는 과학을 훼손한다기보다 이를 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힌다.
하이필드는 이를 두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 첫 번째는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비밀스러운 과학적 연구(secret scientific study)”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책에 나오는 신화나 전설, 괴물 등을 표현하면서
교수들은 “마법적인 생각(magical thinking)”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 Directed by Chris Columbus | Written by Screenplay: Steve Kloves Novel: J. K. Rowling | Running time 152 minutes | 2001
- 박상주 객원기자
- 2009년 07월 17일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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