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곽터서 일제신궁 비석 발굴
아래쪽 원 안이 서울성곽 기저부와 성돌 등 터가 발견된 곳이다. 위쪽 원 안은 황국신민서사지주 잔존물이 발견된 부분이다. - 홍진환 기자 |
서울성곽 부수고 신궁 세워
서울市, 남산 구간 우선 복원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마음을 합해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조선신궁의 옛 모습. |
일제 황민화 정책에 따라 1939년 서울 남산에는 조선신궁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황국신민서사지주(皇國臣民誓詞之柱)-맹세의 탑’이라는 비석이 세워졌다.
조선 왕조의 안녕을 상징하던 남산에 상징적으로 들어선 이 비석은 서울역 정문에서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도록 배치됐다. 규모도 길이 25m, 높이 16m로 서울 시내 지주비 중 가장 컸다.
서울시는 1946년경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국신민서사지주 잔존물이 23m 폭의 탑 받침대만 남아 있는 것이
남산에서 발견됐다고 7월29일 밝혔다.
올해(2009년 3월) 발표한 ‘남산 르네상스’ 사업 일환으로 진행해 온 남산 내 유적 발굴 결과다. 잔존물 길이는 23m, 높이는 2m 규모다.
일제가 조선신궁을 짓기 위해 파괴한 서울성곽의 기저부 및 성돌도 함께 발견됐다.
1960년대 미로 형태로 설계한 어린이놀이터 잔존물도 함께 확인됐다.
신영문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산사면에서 서울성곽이 어떻게 축조됐는지 축조방식을 밝히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 하였다.
발굴 현장에서는 조선시대 도자기와 일제 때 매설된 것으로 보이는 배수구 등의 유적도 함께 출토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서울성곽을 없애고 그 자리에 일제 식민을 찬양하는 비석을 세웠던 것이다.
박상빈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은
"이 비석은 일제가 세운 비석 중에 가장 큰 비석으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는 능선 및 성곽탐방로를 활용, 남산 회현자락에 숲속 오솔실 분위기를 연출하고
옹벽구간 경사완화와 진입광장 조성을 통해 서울의 관문인 남산의 개방감을 더욱 높이는 방안으로
지형을 회복시킨다는 계획이다.
서울성곽 복원 후 남산지역 일대 조감도.
서울시는 옛 남산식물원~소월길 구간 일부를 내년 4월까지 우선 복원하고,
발굴·조사를 더해 내년 하반기 추가 복원작업에 나설 계획이다.(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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