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실크로드,茶馬高道를 찾아서
문명의 향기, 역사의 숨결…티베트 高原 길을 열다 | ||||||||||||||||||||
샹그리라에서 라싸까지 1671km 7일간의 대장정… 평균고도 4200m의 길 따라 천혜 절경의 파노라마
세계지도를 펼친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노인의 찌푸린 이마 주름을 닮은 거대한 땅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티베트 고원(高原). 해발 5000m를 훌쩍 넘는 거대한 산봉우리와 1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 협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줄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땅. 그곳에 지금은 잊혀진 실크로드가 있다.
중국 한나라(BC 202~AD 220) 이전부터 중국 내륙지역과 인도를 연결해준 고대의 무역로. 가장 낮은 지역도 해발 2000m를 훌쩍 넘기는 까닭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지대에 있는 무역로’로 칭송되는 길이다. 이 길의 이름은 ‘차마고도(茶馬古道)’. 높고도 험준한 고원협곡을 따라 중국 남부에서 재배된 차와 티베트 고원에서 자란 말이 교역된 데서 유래됐다.
세계에서 가장 험준한 무역로
중국과 티베트 간의 교역뿐만 아니라 인도, 서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로 차를 비롯한 중국의 물자가 이 길을 따라 전해졌다.
중일전쟁(1937~45) 당시 일제가 중국 남쪽으로 연결되는 길을 차단하자 상인들이 차마고도를 통해 인도에서 중국 내륙까지 물자를 실어날랐다고도 한다.
6월11일 여행자 집단 ‘트래블게릴라(www.travelg.co.kr)’ 와 함께 남부의 실크로드, 차마고도를 찾아 나섰다.
중국 윈난(雲南)성 샹그리라(香格里拉)를 차마고도 답사의 출발지로 잡았다. 꼬박 일주일 동안 샹그리라에서 티베트자치구의 주도(州都) 라싸(拉薩)까지 1671km를 승합차를 빌려 타고 달린다는 계획이다(지도 참조).
샹그리라-라싸를 잇는 도로는 띠앤짱(藏 · 214번) 도로와 추안짱(川藏 · 318번) 도로로 불린다. 이 두 도로는 1950년대에 건설됐으며 대부분의 구간이 옛 차마고도와 일치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6000m에 달하는 탕구라(唐古拉)산맥, 동서로 길게 뻗은 헝돤(橫斷)산맥, 베트남 메콩강으로 이어지는 란창(瀾滄)강,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누(怒)강…. 앞으로 답사팀이 만나게 될 천혜 절경들이다.
윈난의 성도(省都) 쿤밍(昆明)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650km 날아 해발 3276m의 도시 샹그리라에 도착했다. 샹그리라의 옛 지명은 중띠엔(中甸·겔탕). 2002년 중국 정부는 중띠엔의 지명을 샹그리라로 바꾸었다. 잘 알려진 대로 샹그리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갈등과 탐욕이 없는 인류의 낙원으로 그려지는 곳이다. 힐튼은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 대신 티베트와 윈난 일대를 여행한 유럽의 탐험가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샹그리라를 그렸다.
중국 정부는 윈난성, 쓰촨(四川)성, 티베트 등을 답사한 끝에 중띠엔이 소설 속 샹그리라라고 결론을 내렸다. 협곡, 초원, 티베트 불교사원 등 샹그리라가 중띠엔 일대의 자연환경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샹그리라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귀산공원에서 차마고도의 첫 번째 ‘흔적’을 발견했다. 공원 입구에 ‘차마고도 중진(茶馬古道 重鎭)‘이라고 새겨진 대리석 현판이 세워져 있다. 샹그리라가 차마고도의 중요한 거점도시였음을 알리는 것이다.
차마고도 상인들은 5~10명씩 무리를 지어 말 등에 짐을 싣고 교역을 다녔는데, 이들 무리는 마방(馬幇)이라 불렸다. 샹그리라는 차마고도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처였다. 고원지대에서는 보기 드문 드넓은 초원이 형성돼 있어 말들이 휴식을 취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샹그리라 시내 북쪽에는 ‘나파하이(納海)’라는 호수가 있는데, 풀들이 자라는 늪지여서 이 호수 일대가 마방이 쉬기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손꼽혔다고 한다.
띠엔짱 도로 위에서 나파하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푸른 초목이 뒤덮인 늪지에서 검은 야크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 호수는 겨울에는 초원이었다가 우기가 시작되는 여름에는 호수가 된다고 한다.
차마고도 윈난-티베트 길은 매우 험난하다. 산세가 험할 뿐만 아니라 우기에도 덥고 유행성 질병이 난무하여 사람과 말 모두가 쉽게 질병에 걸린다. 윈난과 티베트의 경계 지역은 더욱 힘든 길이다. 겨울에는 폭설로 길이 가로막힌다. 날씨가 좋을 때도 마방들이 힘들어하는 코스다. 어떤 길은 매우 협소해 너비가 한 척이 되지 않고, 왼쪽은 절벽이요 오른쪽은 낭떠러지인 길도 있다. 모든 물건들은 기근인데, 길은 멀어 사람이든 말이든 지치기 십상이다. 이것이 이 일대에서 사람과 말이 빈번하게 죽어나가는 이유다. 차마고도는 여행객에게도, 상인에게도, 탐험가에게도, 승려에게도 모두 어려운 여행길이다. - ‘차마고도의 여행자원 개발에 관한 고찰’ (중국 윈난성위원회 선전부, 2005년 8월)
나파하이를 벗어나 북쪽으로 달렸다. 본격적으로 차마고도의 위풍당당한 풍광이 펼쳐진다. 해발 5000m가 훌쩍 넘는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산봉우리들이 하나, 둘, 셋, 넷…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도로 왼쪽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이라면 오른쪽은 끝도 없이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는 낭떠러지다. 천혜의 풍광에 감탄하다가도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반대편에서 차가 나타나면 한참을 슬금슬금 후진해서 길을 내줘야 하는 협소한 길도 번번이 나타난다.
잦은 산사태로 길 자주 끊겨
가파른 산허리 중간 중간에는 티베트인들의 마을이 형성돼 있다. 적게는 서너 채에서 많게는 스무 채까지 티베트 정통 양식에 따라 흙으로 빚어 올린 이층집이다. 윈난성의 북쪽, 그리고 쓰촨성의 일부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해 지금의 행정구역을 긋기 이전까지 티베트 영토였다. 때문에 지금도 이 지역에는 티베트인들이 많이 산다.
마을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마을과 산 정상, 이웃 산봉우리 등을 연결하는 좁다란 산길이 여럿 나 있다. 역시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낭떠러지인 길이다. 대부분 차량이 지나갈 수 없다. 간신히 말 한 마리,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시어라마스’라고 불린다는 산골짜기 마을에서 티베트인 남용홍(48) 씨를 만났다. 이곳이 고향이라는 그는 “먹고살기가 힘들긴 하지만…”이라면서도 티베트인 특유의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고도가 높아 벼농사는 안 되고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고 했다.
해발 4000m에 소금마을이 있네!
윈난성과 티베트자치구의 경계선을 넘어 티베트를 향해 100여 km 달리면 ‘소금 우물’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마을 옌징(鹽井)에 다다른다. 염전은 옌징 시내를 벗어나 란창강 쪽으로 산비탈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나온다.
14일 도착한 옌징의 염전(鹽田). 나무틀로 만든 100개 남짓한 염전이 산비탈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각각의 염전에는 소금물이 얇게 깔려 있다. 염전 밑으로 하얀 소금기둥이 매달려 있다. 이 소금기둥을 따다가 빻으면 소금이 완성된다. 100%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원시적인 소금 생산방식이다. 염전 청소에 한창이던 스무 살 남짓한 아낙네는 “날씨가 좋으면 하루 만에도 소금이 생산된다”며 수줍게 말했다. 소금물은 란창강에 있는 우물에서 퍼온다고 한다. 언제부터, 왜, 그 우물에서 소금물이 나오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옌징에서 염전으로 내려가는 산비탈에서 남자 셋과 11마리의 말로 구성된 소금마방을 만났다. 그들은 말 등에 소금을 싣고 옌징 시내로 나가 다시 차로 더친까지 소금을 팔러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옛 마방들은 더친까지도 말로 소금을 옮겼다. 차가 다니는 지금, 굳이 말에 싣고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산골짜기 마을에서 다른 산골짜기 마을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없고, 트럭이 없는 티베트인들은 여전히 말로 소금을 운반하고 있다.
옌징을 떠나 다시 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6마리의 말을 이끄는 세 명의 티베트인들을 만났다. 미라(53) 씨는 “아들과 마을 친구”라며 일행을 소개했다. 미라 씨는 “저기 저 산봉우리 위에 있는 마을까지 소금을 팔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앞으로 서너 시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옌징에서 120km 떨어진 망캉까지도 소금을 팔러 나갑니다. 말 등에 짐을 싣고 걸어가면 꼬박 나흘이 걸려요. 요새도 가끔은 말을 타고 소금을 팔러 갑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가지요.”
차마고도는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지만, 차마고도 위에서 많은 중국인과 유럽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에 이끌려 차마고도를 찾는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 새파란 칭커밭, 고원의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는 야크 떼,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에메랄드 빛 강물….
망캉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탄탄한 몸매의 판웨이썬 씨는 놀랍게도 59세였다.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이 고향인 그는 2월19일 다롄을 출발해 우리 일행을 만난 14일까지 739시간 동안 1만620km를 달렸다고 했다. 그는 차마고도 풍광을 예찬했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틀에 갇힌 인생에 안주하기 싫어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허베이(河北)성, 산둥(山東)성, 하이난(海南)성 등을 거쳐왔습니다. 하지만 차마고도처럼 아름다운 곳을 만난 적이 없어요.”
17일 새벽 어둠에 잠긴 포탈라궁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라싸다. 티베트 왕국의 수도로 수많은 마방들이 목적지로 삼아 걷고 또 걸어왔던 곳. 말과 함께 그들이 걸었던 길고 좁다란 차마고도는 지금 탄탄한 도로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라싸 인근에서 ‘차마고도’는 여행상품의 이름으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호텔에서는 ‘차마고도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여행상품을 판다. 빠이-라싸 구간에 있는 주요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1박2일 일정의 여행상품이다. 빠이에서 만난 신춘링(19) 양은 “말에 짐을 싣고 걸어다녔다던 티베트 상인들은 이제 역사 속 이야기일 뿐”이라며 “지금은 걸어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글=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사진=이용한 시인 binkond@hanmail.net - 2006.07.18 주간동아 544호 (p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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