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정원 조선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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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聖과 俗이 숨쉬는 공간
1.건원릉(健元陵) 2.정릉(貞陵) 3.헌릉(獻陵) 4.영릉(英陵) 5.현릉(顯陵) 6.장릉(莊陵) 7.사릉(思陵) 8.광릉(光陵) 9.경릉(敬陵) 10.창릉(昌陵) 11.공릉(恭陵) 12.선릉(宣陵) 13.순릉(順陵) 14.연산군묘(燕山君墓) 15.정릉(靖陵) 16.온릉(溫陵) 17.희릉(禧陵) 18.태릉(泰陵) 19.효릉(孝陵) 20.강릉(康陵) 21.목릉(穆陵) 22.광해군묘(光海君墓) 23.장릉(章陵) 24.장릉(長陵) 25.휘릉(徽陵) 26.영릉(寧陵) 27.숭릉(崇陵) 28.명릉(明陵) 29.익릉(翼陵) 30.의릉(懿陵) 31.혜릉(惠陵) 32.원릉(元陵) 33.홍릉(弘陵) 34.영릉(永陵) 35.융릉(隆陵) 36.건릉(健陵) 37.인릉(仁陵) 38.수릉(綏陵) 39.경릉(景陵) 40.예릉(睿陵) 41.홍릉(洪陵) 42.유릉(裕陵)
1408년 음력 5월24일, 서울에 많은 비가 내렸다. 새벽 파루(야간통행금지 해제 때 서른세 번 타종하는 것)에 태상왕 이성계는 가래가 심해져 태종이 급히 달려와 청심원을 드렸으나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는 창덕궁 별궁에서 74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이날을 양력으로 계산하면 6월27일이다.
601년 후 2009년 6월27일 새벽 1시30분(한국 시각), 스페인의 역사도시 세비야에서 조선 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6월21일부터 7월3일까지 열린 제33차 세계유산대회(World Heritage Committee) 기간 중 태조가 승하한 바로 그날 그 시각, 그의 후대 왕과 왕비의 유택이 모두 세계유산이 된 것이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이런 것을 두고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걸까?
6월27일 오후 동구릉 건원릉에서 태조 승하 601주기 기신제(매년 후손들이 치르는 제사)가 황세손 이원(李源) 씨를 초헌관으로 거행됐다. 601년 전과 달리 쾌청했다.
조선 왕릉은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향유해야 할 우리 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됐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잠정등록, 등재를 위한 학술연구, 등재신청서 작성,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실사, 세계유산대회 등의 과정을 거친다.
필자는 십수 년 조선 왕릉을 연구해온 덕에 운 좋게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제 ‘신의 정원’ 조선 왕릉의 내밀한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자 한다.
동서고금 가장 완벽한 형태의 무덤 유산 조선시대 능원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영된 무덤 유산이다. 27대에 이르는 왕과 왕비, 추존왕 등 42기의 능(陵)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의 능인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에 있고, 폐왕이 된 연산군 · 광해군의 묘는 이번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제외됐다.
5000여 년의 역사에서 조선시대는 우리 민족의 성립기이며 문화의 완성기다. 이때 조성된 궁궐과 왕릉은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조선 왕릉은 518년 동안 왕실이 철저히 관리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국가에서 관리해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현존하는 능원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왕릉은 유교의 이념에 따라 능역 공간의 크기, 문 · 무석과 석물, 기타 시설물의 형태와 배치를 달리해 예술성을 높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1500여 개 석조물은 지상 최대의 조각공원을 유산으로 남겼다. 아울러 당대의 조영 내용을 기록한 각종 의궤와 능지가 있어 보존과 관리에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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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의 국장(國葬) 기간 정성과 기술 총결집
왕이 승하하면 3일에서 5일 안에 새로운 왕이 선정된다. 새 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왕을 좋은 자리에 정성껏 모시는 것이다. 유교 국가인 조선은 더욱 그랬다. 새 왕은 국장을 치를 장례위원회를 조직한다.
장례위원장을 ‘총호사’라 한다. 총호사는 일반적으로 3정승이 맡는다. 총호사 밑에는 선왕의 시신을 안치하고 예를 갖추는 빈전도감, 국장의 의식과 절차를 담당하는 국장도감, 능원의 자리 잡기와 능역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의 조직을 둔다. 이 일을 잘하면 차기 정권의 실력자로 들어갈 수 있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다. 대선이 끝나면 조직되는 인수위원회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국장은 대개 5개월 동안에 이루어진다. 능역 조성의 책임을 맡은 산릉도감은 대체로 공조판서가 총괄한다. 태조 건원릉의 산릉도감은 경복궁과 종묘 등을 건축한 박자청이 담당했다. 동원된 인력은 5000~9000명에 이른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와 자재가 동원된 조영기술의 총합이다.
산 자를 위한 진입 공간
조선시대 능역의 공간 구성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인 정자각을 중심으로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외금천교, 재실, 연지 등이 있는 진입 공간은 산 자를 위한 곳이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과 참배도(향도 + 어도), 수복방, 수라청이 배치된 곳은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제향 공간이다.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ㄷ자형의 담)과 석물이 조성된 곳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으로 능침 공간 이라 한다.
각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손을 위한 진입 공간은 외금천교, 외홍살문, 재실, 연지, 금천교로 이어진다. 외금천교는 능역의 영역을 구분하는 돌다리를 가리킨다. 외금천교를 지나면 외홍살문이 있다. 능 행차 시 헌관은 외홍살문 앞에서 하마(下馬)한다. 원래는 하마비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말에서 내린 헌관은 가마를 타고 재실로 향한다. 재실에서 헌관 일행은 음식을 준비하고 몸을 깨끗이 한 뒤 제례 준비를 한다. 필요에 따라 숙박을 하기도 한다. 제례 준비를 마친 헌관 일행은 제례의식을 갖추고 능원으로 향한다.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진입하면 작은 연못이 나오는데, 이는 농토에 물을 대고 제관(참배객)들이 휴식할 수 있게 하는 수경 공간이다. 곡선의 참배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돌다리인 금천교를 만난다.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속세와 구분해주는 구실을 한다.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커다란 문이 있다. 홍살문 또는 홍전문이라고 한다. 헌관은 홍전문을 통하지 않고 배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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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 2010.03.30 729호(p78~80)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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