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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보는 여자 - 벨라스케스, 프리드리히, 페르난도 보테로, 로트레크 作

Gijuzzang Dream 2009. 6. 16. 02:23

 

 

 

 

 

 

 거울을 보는 여자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44년, 캔버스에 유채, 122×177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여자에게 거울은 또 다른 자아다.

여자가 거울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거울은 또한 여자에게 정신과 의사다.

남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거울 속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벨라스케스(Diego Rodrguez de Silva Velzquez, 1599-1606)‘거울을 보는 비너스’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누드화로 1600년대 스페인 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다.

 

벨라스케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신화에서 주제를 빌려왔다.

비너스가 벌거벗은 채 침대 위 회색 새틴 시트에 누워있다.

그녀의 살갗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허리가 유난히 가늘다.

비너스는 뒷모습조차 관능적이다.

거울 속 비너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큐피드의 손목에는 리본이 감겨있다.

리본은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큐피드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 큐피드가 없다면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임이 금방 드러난다.

벨라스케스는 여인이 비너스임을 상징하기 위해 큐피드를 등장시켰다.

 

비너스의 뒷모습과 큐피드가 받쳐 든 거울 속의 희미한 얼굴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 관계를 탐구하려는 벨라스케스의 의도다.

벨라스케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화폭에 허구의 공간까지 담아내기를 원했다.

이 작품은 거울을 이용한 그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이면서 그의 유일한 누드화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누드화에서 강조된 풍만함과 달리 여인의 몸을 날씬하게 표현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던 중 당시 스무 살이던 정부(情婦) 플라미니아 트리바에게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다.

관능적인 이 작품은 1914년 한 여권 운동가에 의해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허영’

1904년, 캔버스에 유채, 130×125cm,

개인 소장

여자에게 거울은 기대와 설렘, 그리고 희망을 선사한다.

외출하기 전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 여자를 그린

작품이 프리드리히(Otto Friedrich)의 ‘허영’이다.

 

커튼이 쳐진 방 안 큰 거울 앞에서 여자는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여인은

자신의 뒷모습을 손거울로 비쳐보는 중이다.

여자는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황홀한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커튼이 쳐진 방 안과 손질한 하얀 드레스는

그녀가 저녁 외출 준비 중임을 암시한다.

벌거벗은 여인의 화사한 피부는

외출을 준비하는 여인의 들뜬 마음을 짐작케 한다.

 

여자의 방 특유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오토 프리드리히(Otto Friedrich, 1862~1937)의 이 작품에서

애완용 원숭이가 드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젊음을 파괴하는 시간과 유혹의 문란함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는 빈 분리파에 속하나 동시대 예술가들과 다르게

여인의 누드를 왜곡하지 않고 부드럽고 밝게 표현했다.

 

   

 

쿠르베, '아름다운 아일랜드 여인, 조' Portrait of Jo, The Beautiful Irish Girl

1865년, 캔버스에 유채, 54×65,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소장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아름다운 아일랜드 여인, 조’는

손거울을 들고 붉은 긴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여인을 표현한 작품이다.
거울 보는 여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지금 오로지 자신에게 열중해 있을 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여인은 몸과 마음이 풀어져 있다.

그녀의 붉은빛이 감도는 얼굴은 경계가 사라진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즉, 사랑받기 위해 거울을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거울을 바라보는 여인 조안나(Joanna Hiffernan, 1843경- ?)의 모습은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한다.

스스로에게 매혹된 여인은 그 여인에게 매혹된 남자의 열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는 쿠르베의 그런 열망이 투사되어 있다.

조안나는 지금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편안히 어루만지고 있다.

이런 순간의 여인은 주위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자신을 열어놓는다.


마음이 풀어진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이것저것 마음의 자로 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남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쿠르베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화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기를 바라는 욕망을 표현했다.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는 이 작품 속의 아일랜드 여인 조안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조안나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아리땁고 관능적이며 성적 매력이 매우 뛰어난 모델이었다.

당시 미국인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 McNeill Whistler, 1834-1903)의 정부였다.

런던에서 살다가 휘슬러와 함께 파리에 와 있었다. 1860년경 휘슬러의 모델이 된 것이다.

조안나를 워낙 신뢰한 탓에 휘슬러는 자신의 작품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마저

그녀에게 위임하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 사이

조안나는 쿠르베의 매우 관능적인 누드모델 제의를 별 고민없이 덥석 받아들였다.

쿠르베의 '잠' 모델을 하며 이 도발적인 순간을 스스로 즐기게 된 것이다.

'잠'에서 검붉은 머리를 한, 앞쪽의 여자가 조안나로 보인다.

하지만 작게 그려진 옆얼굴만으로는 정확하게 조안나의 인상착의를 포착해내기 어렵지만

인상 면에서는 금발의 여인에게서도 조안나의 흔적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휘슬러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휘슬러와 조안나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어

그해 말 마침내 실질적인 파경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잠' 모델사건을 비롯해 쿠르베를 위해 여러 차례 매우 관능적인 포즈를 잡은 사실이

한 몫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안나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니스에서 골동품상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는 풍문이 전해져 온다.

 

조안나에 대한 쿠르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아름다운 아일랜드 여인, 조'(1865-66)와 관련된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쿠르베는 이 초상화를 같은 버전으로 네 점 이상 반복해 그렸다.

이 가운데 하나를 늘 가지고 다니며 끝까지 팔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평생 자신만을 위한 그림으로 소중히 남겨두었다는 사실에서 조안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나름대로 애틋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주의자 쿠르베는 사교계 여성들의 우아한 아름다움보다

조안나의 세속적인 아름다움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그녀의 도발적인 붉은 머리는 쿠르베에게 영원히 유쾌한 이미지였다.

 

 

 

 보테로, ‘아침욕실’

1971년, 캔버스에 유채, 192×113cm, 개인 소장

 

 

거울은 속임수가 없다. 거울은 결점까지 드러내지만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싶어한다.

자신의 결점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보테로의 ‘아침욕실’이다.

침대 앞에 대형 거울이 있음에도 뚱뚱한 여인은 작은 손거울로 자신을 보고 있다.

작은 거울 속 여인의 얼굴은 거울의 크기만큼이나 작다. 여인은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거울 속 여인의 모습은 앙증맞고 귀엽다.

하지만 화면을 넓게 차지한 그녀의 모습은 기형적일 정도로 뚱뚱하다.

풍만한 허벅지는 살이 쪄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신발은 살찐 다리와 발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빈약해 보인다.

그녀의 엉덩이와 허리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의 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얼굴만 보고자 작은 거울에 의지한다.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 )는 뚱뚱한 사람을 즐겨 그린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비틀어서 과장되게 표현한다. 이 작품 속 여인도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로트레크, ‘거울앞에 선 누드 여인’

1897년, 마분지에 유채, 63×48cm, 뉴욕 하우프트 컬렉션 소장

 

매춘부에게 거울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녀들에게 거울은 삶의 서글픔이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것은 스러져가는 젊음과 미래에 대한 공포다.  

 

 

 

매춘부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의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이다.

  거울 앞에 선 매춘부는 평범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벗은 듯한 블라우스가 들려 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매춘부의 부드럽고 탱탱한 젊은 육체는 남자에게 사랑받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 왼쪽의 헝클어진 침대는 매춘부가 나이 들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는

이 작품에서 남자에게 상처 받는 매춘부의 마음과 시들어가는 육체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152㎝ 키에 상반신만 비대한 균형성 왜소증이라는 장애의 굴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던 로트레크는

몽마르트에서 자유로웠지만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알코올로 인해 정신착란증까지 겪고 있는 로트레크는

정신병원에서 아버지 알퐁스 백작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의 부모는 프랑스 명문 귀족으로 이종사촌 사이로 근친결혼을 하여 그를 낳았다.

그러나 알퐁스백작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회피했다.

알퐁스 백작은 이때에 매사냥과 승마에만 빠져있어서 아들을 영국으로 보내라는 편지만 보냈을 뿐이었다.

37세의 짧은 생애를 독신으로 보내며 죽을 때까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던 로트레크였지만

그는 화가보다는 아버지와 같은 귀족으로서의 삶을 살고싶어 했다.

로트레크는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아.

내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도 난 결코 그림 따윈 그리지 않았을거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였던 것이다.

 

한편, 로트레크가 모델이었던 잔 아브릴(Jane Avril, 1868-1943)에게 빠진 것은

물론 춤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춤에 반했지만,

그녀가 미술과 문학에도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고

꽤 지성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더 진솔한 연정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소문이 주변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1890년 무렵.

이때부터 아브릴의 주위에는 로트레크의 명망가 친구들인

말라르메, 베를렌, 보나르, 오스카 와일드 등이 그녀의 예찬자 그룹을 형성한다.

이렇듯 미술과 문학을 깊이 사랑하고 또 그 대표적인 인물등과 교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브릴은 이 무렵의 다른 무희나 유흥가 여인들과는 선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 인물이었다.

동료 무희들이 그런 그녀를 '왕따' 시키곤 했다지만,

지식인들과 예술과들은 갈수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워낙 그림을 사랑하는데다 자신의 그림에 특별히 남다른 관심을 갖는 아브릴을 보고

로트레크는 많은 그림을 선물했다고 한다. 화가로서 자신의 예술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에게

그림을 주는 것만틈 아깝지 않은 일도 없다 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브릴은 로트레크 이후에 만난 자신의 연인들에게 그 그림을 모두 주어버려

끝내 로트레크의 선물 하나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여인이 되고 말았다.

환락과 잘나의 섬 몽마르트에서 피고 진 꽃답게 그녀에게 새상의 소유는

그저 하나의 바람 같은 것이었을 뿐이다.

로트레크와 인연이 닿았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그 밖의 것은 시간 속에 사멸할 삶의 더께였다.

 

- 신동아, 2009.06.01 통권 597호(p368~371) [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⑥]

- '화가와 모델' 이주헌, 예담, p57,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