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필생의 걸작 <지옥의 문>
30여 년간 작업, 끝내 미완성으로 남아
20세기 현대 조각의 창조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오귀스트 르네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의 걸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파리에 있는 로댕미술관이다.
1919년 개관한 로댕 미술관은 말년에 로댕이 생전에 거처했던 비롱관이다.
비롱관은 신앙공동체가 사용하던 건물로서 로댕은 1층 전부와 동측 건물 2층에 입주하고 있었으며
입주자들 중에는 장콕토,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 릴케가 있었다.
말년에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던 로댕은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고 싶었고
비롱관이 헐리게 되자 국가에 제안을 한다.
‘나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한다. 여기에는 석고상, 대리석상, 청동상, 석상, 데생
그리고 예술가와 장인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골동품들이 포함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비롱관에 전시해 이곳을 로댕 박물관으로 정하고
내 여생을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줄 것을 국가에 요청한다.’
이에 1912년 국가 행정위원회는 로댕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로댕은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미술관 개관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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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the gate of hell)> 1880~1917, 청동 |
로댕 미술관의 대표작이자 로댕의 필생의 걸작은 <지옥의 문(the gate of hell)>이다.
로댕은 30여 년 동안(1880-1917년) 작업을 했지만 끝내 미완성으로 남겼다.
<칼레의 시민> <발자크 기념비>와 더불어 로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로댕은 1880년 프랑스정부는 새로 건립하기로 한 장식미술관의 출입문을 로댕에게 의뢰하였다.
그때까지 국가나 지방 단체에서 작품을 의뢰받지 못하고 있던 로댕은
동료들 사이에서는 실력을 인정 받아 파리 미술계에 입성을 했다.
단테를 좋아했던 로댕은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장식 박물관 입구를 지옥의 문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단테의 <신곡>은 파리 미술계에서 즐겨 찾던 소재였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되어 있는데
로댕은 인간의 고통을 다룬 지옥을 작품의 소재로 택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방문하여 처절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목격하는 내용이었다.
로댕은 단테의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데생에만 1년을 매달렸다.
하지만 인물들이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로댕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단테의 신곡을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끊임없이 수정하고 끊임없이 인물을 끼워 넣었다.
로댕은 <지옥의 문>의 규모가 결정되자
우선 점토로 작게 제작된 186여 개의 작은 조각상들은 다시 석고로 제작되었고,
그후 형상을 첨가하거나 떼어내는 등 여러 차례의 수정작업을 거쳐 제작되었다.
이러한 조각상들은 청동이나 석고, 대리석의 독립상으로도 제작되기도 하였다.
<지옥의 문>은 2쪽의 패널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기베르티(Lorenzo Giberti)의 피렌체 세례당의 <천국의 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옥의 문> 속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인간 군상이
한데 얽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네모로 나누어진 청동문의 형식을 무시하고
형상과 문이 한데 얽혀 녹아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17년 로댕이 죽을 때까지 <지옥의 문>은 제자리에 세워지지 못했다.
장식미술관 부지에 오르세미술관이 들어서고
장식미술관은 루브르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래의 계획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1900년 로댕은 이 작품의 오리지널 석고 모형을 자신의 회고전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은 로댕의 전 생애에 걸친 집약적인 작품으로
여기에는 고딕건축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리고 단테와 보를레르 등 로댕의 주요 관심사들이
폭넓게 반영되어 있으며, 인간신체에 부여한 로댕의 표현력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지옥의 문> 꼭대기 중앙에 서서 악령 <세 그림자>가 가리키는 곳은
지옥의 고통에 짓눌려 있는 인간들이다.
<세 그림자>를 중심으로 로댕은 <신곡>에 나오는 개별적인 인물과
장면을 풍부히 살려<지옥의 문>을 3차원적 공간으로 표현했다.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보여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상들은
조각가로서의 그의 삶을 기록한 일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옥의 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이다.
벌거벗은 채 오른손을 턱에 괴고 벼랑 끝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남자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창조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옥의 문>의 다양한 인물상은 로댕에 영감을 주어
<돌아온 탕아> <입맞춤-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절망> <웅크린 여인>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 등
다른 인물상의 밑바탕이 되었다.
로댕의 작품들은 <지옥의 문>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독립상으로 제작되었다.
로댕은 <지옥의 문>을 제작하는 도중
1883년 말 젊은 여성들을 위한 강연을 하면서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을 만난다.
지식과 미모를 겸비한 카미유 클로델과 사랑에 빠지면서 로댕의 작품에 여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은 예술가로서의 삶이 같았기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경쟁자로 또 창의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서로에게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 미술관에서 따로 전시되고 있다.
연인이며 동료였던 카미유 클로델은
1885년부터 로댕의 조수가 되어 <지옥의 문> 제작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여인상의 모델이기도 했다.
<지옥의 문> 청동작품은 모두 로댕의 사후에 제작된 것이다.
<지옥의 문>은 첫 번째 Edition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 두 번째 Edition은 파리 로댕미술관,
그리고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스탠포드대학교,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로댕관,
서울 로댕갤러리 등 전 세계 7곳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7번째 Edition인 서울 로댕갤러리의 <지옥의 문>은
프랑스정부로부터 1994년에 삼성생명이 구입하여 한국에 영구보존되는 작품으로,
매일 50여 명의 장인이 참여하여 2년 7개월의 작업 끝에 완성한 진품의 작품이다.
프랑스정부는 판화 개념을 빌어 청동으로 주조되는 <천국의 문>을 12개까지만 진품으로 인정한다.
판매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세 망령'(아담)
'지옥의 문'중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조각 '세 망령'을 상징하는 '아담'.
지옥입구를 지키는 망령을 뜻하며, 전시장 독립 조각 작품들 중 가장 먼저 등장하도록 배치돼 있다.
1880년 무렵 로댕이 제작한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이탈리아 여행 당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감명 받아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강건하고 근육과 약간 뒤틀린 형태는 작품 '아담(Adam)'과 함께 줄리어스 2세교황의 무덤을 위해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노예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아담'은 1875년 로댕이 이탈리아 여행중 그리스의 조각작품들이 아름다움과 죄에 대한 기독교적 의식을 결합시킨 미켈란젤로의 작품 '아담과 이브'를 성 시스티나 성당에서 보았다.
로댕은 그의 작품 '아담과 이브'를 제작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아담과 이브'의 특징과 해부학적 형태를 정확히 기억해 냈다.
즉 앞으로 뻗친 '아담'의 집게손가락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을 나타내며,
그리고 아담의 굽힌 무릎, 가슴을 지나는 비스듬한 팔, 어깨 쪽으로 숙인 머리 등은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프랑스 바로크시대 조각가 피에르 퓌세가 제작, 마르세이유미술관에 소장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닮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그는 꿈을 꾼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몽상가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로댕이 밝힌 '생각하는 사람'의 의미다.
단테, 혹은 로댕 스스로가 모델이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로댕의 작품으로 통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앉아, 현세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을 관조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 <신곡(神曲)>에 대해 명상하는 시인 단테를 묘사하기 위해 제작한
로댕의 예술의 정상을 차지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아마도 로댕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1장에서
영감을 받아 <지옥의 문> 전체를 지배할 인물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옥편 제1장에서는 지옥의 심판관인 미노스(Minose)가 육체의 죄를 범한 영혼에 대한 심판을 주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이 단순히 단테를 상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의 고뇌에 찬 모습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짙다.
말하자면 ‘생각하는 사람’은 신비한 빛에 고양된 인간이 동물적인 차원보다 높아지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최초의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수축은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로댕은 수축된 근육을 묘사함으로써
숭고해지려는 인간의 정신적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뇌에 찬 몸부림인가를
공간 속에 구체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다.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Ugolino and his Sons)
'설교하는 성 요하네'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 Pignatelli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간 전쟁에서 적에 생포된 우골리노 델라 게라르데스카는 반역죄를 선고받고
두 아들 및 손자 2명과 함께 피사에 있는 '기아의 탑'에 투옥되어 탑의 열쇠는 강으로 내던져졌다.
아사상태에 이른 우골리노는 배고파 죽은 자신의 아들 시신을 먹고 '마지막 생존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금기시한 이러한 행동으로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카르포), Jean-Baptiste Carpeaux, Ugolino and his Sons.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Paolo and Francesca in the Clouds (혹은 '입맞춤 The Kiss')
단테 '신곡' 지옥편 5곡에 나오는 'Paolo and Francesca(육욕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13세기, 젊고 잘 생긴 시동생 파올로에 반한 gudtn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를 묘사했다.
그러나 조각 자체는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됐으며, 이 두 사람이 그 유명한 조각 '입맞춤'의 모델이 됐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의 두 여인인을 재현한 이 작품은
뜨거운 숨결과 부드러운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데,
원래 <지옥의 문> 오른쪽 아래에 '입맞춤' 을 제작하였으나,
로댕이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떼어내고 살롱전에만 출품했다고 전해진다.
순교자
이 작품은 1889년 처음 전시된 이래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순교자지만, 뒤틀린 몸을 지면에 누이고 있고, 그 표정은 고통스럽다.
이는 로댕이 가진, 인간에 대한 진실 추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옥의 문> 중 '무릎꿇은 목신'이 받치고 있는 두 남녀의 기원이 됐으며,
대리석조각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유리디체 모델이 되기도 했다.
허무한 사랑(Fugit Amor)
단테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이야기.
<지옥의 문> 왼쪽 문 가운데와 오른쪽 문 꼭대기에 방향을 바꾼 형태로 각각 조각되어 있다.
그 중의 남성은 작품 '탕아'에 다시 나타난다.
관능적인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하며, 달아나는 여인을 붙잡기 위해 뻗치고 있는 남성의 두 팔을 보면
ㅈ바을 수 없는 여인의 아름다운 매력을 더욱 느끼게 하고 있다.
로댕은 같은 주제로 많은 브론즈 작품들을 제작하였고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도 여럿 있다.
여인의 등은 깊이 파였으며, 남자의 토르소는 평평하고 다리가 늘어져 있다.
이중 젊은 남자의 얼굴을 로댕은 '슬픔의 머리(슬픔의 두상)'라고 불렀다.
슬픔의 두상
자연미에 고통이 뒤섞여 더욱 통렬하다.
코가 깨진 남자
이 얼굴이 만들어진 것은
로댕의 작품활동 초기로 생계를 이어가기가 매우 어려운 때였다.
그는 버젓한 모델을 구할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이웃집 비비라는 가난한 노인의 얼굴에서 착상을 얻었으나
난방시설이 없는 아틀리에는 너무 추워서
비비의 머리를 빚은 점토가 얼어 갈라졌으며 두개골은 깨지고
간신히 얼굴만 지탱할 수 있어서 코가 깨진 얼굴의 형태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로댕은 이 ‘코가 깨진 남자’ 얼굴을 1864년에 탄생시킨 후
계속해서 시리즈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나중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코가 깨진 남자’ 작품이 드디어 살롱전에서 입선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1880년 <지옥의 문> 제작에도 계속 사용되어 ‘생각하는 사람’ 바로 옆에 배치되게 하였다.
돌을 지고 있는 여인(Fallen Caryatid)
<지옥의 문> 왼쪽 기둥 꼭대기 부분에 위치한다. 비참한 그러나 고통을 인내하는 이미지다.
<지옥의 문> 왼쪽 기둥 꼭대기에 주름에 약간 가려진 채로 건축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83년부터 로댕은 이 주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이 앉아있는 여인상의 오래된 주제,
즉 그리스조각에 나타난대로 물건을 나르는 여인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새롭게 재창조하였다.
로댕은 작품 생활 초기에 브뤼셀에서 장식적이고 근육이 발달한 역학적인 앉아있는 여인상을 빚었었는데
인간의 존재를 억누르고 있는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 여인이 돌 무게 때문에 지치고 찌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도록 표현함으로써
마치 여인이 운명 때문에 슬픔에 잠겨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로댕은 돌 대신 유골단지를 메고 있는 다른 여인의 모습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부드러움과 젊음은 살이 늘어지고 비썩 말라 죽음에 처한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와 대조를 이룬다.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
유골단지를 들고 있는 여인(The Fallen Caryatid with Urn)
탕아(The Prodigel Son)
이 비통한 몸짓의 인물은 <지옥의 문> 오른쪽 문 아래에 있다.
1894년 처음으로 단독작품으로 출품되었을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세기의 아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버려진 아이의 기도' 혹은 '죽어가는 군인' 등으로도 불리었다.
추락하는 사람(Falling Men)
육상선수의 모습인 이 작품은 <지옥의 문> 왼쪽 문 위에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다. 힘이 강하고 역학적인 근육을 가진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로댕에게 많은 영향을 준 미켈란젤로의 작품세계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나는 아름답다(I Am Beautiful)
"오, 인간들이여!나는 꿈꾸는 석고상처럼 아름답다네.
모든 이들을 상심케 하는 나의 가슴은 시인에게 물질과 같이 영원하고 침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네. 물질같이 영원하고 말이 없는 사랑을..."
<지옥의 문> 오른쪽 모서리 부분에 받침돌 위에 써있다. 이 작품은 오른쪽 기둥 꼭대기에 있는데,
'추락하는 사람'과 '웅크린 여인'으로 가각 한 사람씩의 독립된 작품으로도 제작되었다.
각각 다른 작품들을 서로 결합 및 접합시키는 기법은 로댕이 자주 사용한 기교로
여기서는 놀라운 동질성과 강력한 힘의 효과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원래 제목이 '납치'였다. '나는 아름답다'라는 제목은 샤를르 보들레르의 시 '아름다움'에서
따온 것으로 첫번째 시구절이 받침돌 위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시와 조각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든 작품이라는 것만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악의 꽃' 영향은 로댕의 '저주받은 여인들'이란 작품에서도 민감하게 나타난다.
젊은 여인의 토르소(아델의 토르소) Arched Torso of a Young Woman
<지옥의 문> 왼쪽 위 패널에 위치한다.
시벨레(Cybele, Seated Woman)
웅크린 여인(Crouching Woman)
웅크린 여자는 신비로운 얼굴을 어깨와 허벅지에 기대고 있는데 이렇게 비틀어 구부린 자세를
외설적이지 않으면서 부조리하지도 않게 다룰 수 있는 이는 로댕뿐이다.
여기에서는 현란한 기교를 찾을 수 없으며 조화로운 무심(無心)의 인상을 받는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서 주제를 따온 <지옥의 문>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1880-1917, 청동Bronze, 680×400×85㎝, 파리 로댕미술관
청동에 새겨진 조각들은 그동안 로댕이 제작했던 작품들로 이루어졌고,
위쪽은 고뇌하는 단계, 아래쪽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원래 이런 구성은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이면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내용과 구성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로렌쪼 기베르티(Lorenzo Chiberti, 1378-1455)의 <천국의 문(Gate of Paradise)>을 보고 연구하면서 만든 <천국의 문>에 반한 작품이기도 하다.
<천국의 문>은 피렌체의 두오모성당 세례당의 문으로, 기베르티가 27년 동안 제작하였는데
문에 표현된 부조의 내용은 천국과 관련내용이 없으면서도
미켈란젤로가 ‘Gate of Paradise’라고 감탄하였다 하여 <천국의 문>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부조된 내용은 아담창조,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탄생하는 하와, 아벨의 살해, 노아의 방주, 이삭의 희생,
모세의 십계명, 여리고의 몰락, 필리스틴과의 전투,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
구약성서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지옥의 문>은 5m 높이의 문짝 2개를 각주와 상인방으로 둘러싸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간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자 그는 소용돌이치는 상상력의 조수에 빠져들었다.
<지옥의 문>에 들어갈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걸작에 속한다.
맨 위의 세 사람은 ‘세 사람의 망령(The Three Shades)’으로
여기에는 고뇌하는 아담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체 작품을 압도하는 플롯의 시작이다.
기념비의 맨 위에 고립되어 특수한 지위를 갖는 군상은 품위와 위엄에 있어 단연 눈에 띈다.
‘세 망령’으로 알려진 이 군상은 동일한 한 작품을 세 점 복제하여 다른 각도로 배치한 것이다.
그 각각에는 독자적인 개성이 부여되어 있다.
작가가 애정을 보인 ‘프로필’ 이론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입증해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세 명의 다른 인물상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세 망령’은 혼란스런 저주받은 영혼 무리를 지배하며 질서를 유지시킨다.
이들은 발밑에 펼쳐지는 아비규환에 속해 있다.
짐 진 고뇌로 다리가 구부러진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지탱하며 똑같은 고통으로 결속된다.
운명의 무게는 셋을 짓누르며 육체적 힘의 무상함을 주장하므로 훨씬 위압적으로 보인다.
지상을 떠난 망령의 무언의 절망은 어떤 비명이나 신음보다도 무시무시하다.
이는 가장 대담한 내면의 갈등의 정점에 선, 로댕의 예술이다.
그는 ‘자연을 모방’했고 비현실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숙인 머리와 목 그리고 어깨는 연결되어 거의 하나의 수평선을 형성하며
운동선수처럼 구부리고 있는 육체의 모델링은 ‘청동시대’를 능가하는 해부학적 지식을 보여준다.
‘청동시대’에 대해 조각가는 솔직하게(솔직은 곧 그의 예술적 양심이다) 말하고 있다.
“그 이래로 완성도는 더 높아졌다” 장엄하게 구성된 군상인 ‘세 망령’의 존재는
망자가 가득한 섬뜩한 영역 위에서, 고통스럽게, 엄숙한 성가처럼 울려 퍼진다.
<지옥의 문> 문설주를 채우는 육체는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위로 상승하지만
운명의 무게를 지고 있다.
패널에서는 저주받은 영혼들이 한 줄기 격렬한 빛이 비치는 광포한 심연 속으로 곧바로 떨어진다.
부푼 젖가슴, 긴장한 엉덩이, 부채꼴 허벅지를 가진 여성, 짓밟히고 상처 입은 남성,
사티로스와 켄타우루스,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여성 커플 등 혼란스럽게 연이어진 누드 형상은
육체적 쾌락과 탐욕스런 욕망의 지옥(地獄)을 나타낸다.
상인방은 가장 복잡한 부분일 것이다. 이는 전체 구성의 중심주제로 지배적인 주체가 된다.
천사의 죽음과 죄 지은 사자 및 카미유 클로델의 슬픈 얼굴, 그리고 시인의 죽음 등
중간쪽 중앙에는 고뇌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양편은 모두 얕게 장식되어 있지만,
로댕은 광적인 인물로 빼곡한 원근감 깊은 광경을 창조해냈다.
무정형 무리들은 사방의 틀 밖으로 나오려 하고 사각 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흩어지는데,
이로써 상인방은 누드로 가득 메운 동굴 입구처럼 보인다.
왼편의 인물들은 공중을 떠다니고 오른편의 경우는 땅으로 추락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이다.
그는 굵은 눈썹, 황소 같은 목, 야성적인 용모를 갖고 있다.
가공할 만한 근육에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고도의 집중력은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는 듯한 형상에서 발산된다.
문에 부조로 장식된 망자들의 몸부림 위에 자리한 이 환조상은 이들의 운명에 대해 숙고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기성비평가들로부터 조소를 받았다.
가브리엘 무레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부금 모금 형식으로 항의운동을 벌였다.
청동으로 주조되어 훨씬 위력을 갖춘 ‘생각하는 사람’은 파리시에 기증되어 팡테옹 앞에 세워졌다.
1906년 화려한 제막식이 거행되었지만 1922년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비롱저택으로 옮겨지게 된다.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는 팡테옹 광장에 품격을 부여했고,
파리의 관례적이고 평범한 조각상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레옹 도데는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이 상을 위해 광장이 만들어진 것처럼 광장을 채우고 있다.
로댕의 작품들은 초시간적이지만 주어진 사건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공공기념비를 제작한 것이다.
코가 찌부러진 사나이, 순교자, 서있는 요정들, 몸단장하는 비너스, Victor Hugo기념상,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 파올로와 프란체스 등
186명의 인물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거친 듯한 마티에르와 당시까지 보기 힘들었던 검은색의 독특한 무채색으로
생명이 없는 조각이나 조소작품들 하나하나가 감정이 들어있고
말을 하는 모습으로 숨을 쉬는 모습, 살아있는 모습으로 승화하는 모습들이다.
‘돌을 이고 넘어진 여인’도 비참한 그러나 고통을 인내하는 이미지다.
그 부드러움과 젊음은 살이 늘어지고 비썩 말라 죽음에 처한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와 대조를 이룬다.
‘순교자’는 뒤틀린 몸을 지면에 누이고 있고, ‘슬픔의 두상’은 자연미에 고통이 뒤섞여 더욱 통렬하다.
‘웅크린 여자’는 신비로운 얼굴을 어깨와 허벅지에 기대고 있는데 이렇게 비틀어 구부린 자세를
외설적이지 않으면서 부조리하지도 않게 다룰 수 있는 이는 로댕뿐이다.
여기에서는 현란한 기교를 찾을 수 없으며 조화로운 무심(無心)의 인상을 받는다.
로댕은 단테를 읽으면서 ‘우골리노’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같은 주제들을 선택했다.
하지만 단테와 미켈란젤로가 지옥에 대해 내린 해석은 형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 신앙이 없던 로댕은 이교적인 지옥을 그려냈다.
미켈란젤로의 망자들은 혼령인 반면, 로댕의 경우는 육체이다.
남녀의 육체는 거룩한 빛을 빼앗기고 서로 고통을 가하는 운명에 처해 공허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미켈란젤로의 누드는 지상의 낙원에서 추방된 피조물의 형태를 띠는 반면,
로댕의 누드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칠 뿐 아니라 절망적인 욕망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들은 스스로를 해치며 불행을 자초한다.
로댕은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쳐놓았다. 그는 성서의 신을 고대 그리스의 신과 결합시켰고,
단테의 영웅을 보들레르의 저주받은 여성과 결합시켰다.
사실 예술만이 그의 도덕이고 종교이며 구원의 개념이었다.
조각가 로댕은 평평하거나 돌출된 수많은 인물상에 어떤 대칭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형상은 20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유동적이어서 헤아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미리 짜여진 계획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개미군집 같은 혼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무원칙적인 발생과정 때문인 듯하다.
각 형상은 모호한 개인철학에 따라 전체 구성 법칙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음 형상을 생성시킨다.
서로 간에 여러 번 오해가 있긴 했지만, 로댕에게 평생 존경심을 품었던 부르델이
어느 날 작업실에 들어서면서 <지옥의 문>의 돌출된 부분에 모자를 걸었다.
이 경솔한 행동에는 상당한 비판이 들어 있었다. 로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자를 그대로 두었다.
이는 자기 작품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그는 모자걸이에 지나지 않은 것에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델은 사소한 일이 이처럼 가슴 아픈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로댕은 열정 때문에 길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국가로부터 주문받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지금 이 작품은 고통스럽게 상상력을 발산하는 출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품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 로댕(시공아트 33), 베르나르 샹피뇔르 지음, 김숙 번역, 시공사, 2006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한 <다나이드, Danaid>
<지옥의 문> 제작 당시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한 작품이 <다나이드>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스 왕의 딸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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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이드(Danaid)> 1885년, 대리석, 36×71×53㎝ Private collection |
다나오스는 딸이 모두 50명이었는데 쌍둥이 형 아이갑토스의 아들들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나오스는 자신을 제거하고 나라는 빼앗으려는 형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다나오스는 딸들에게 결혼식 날 단검을 하나씩 주면서 남편들을 죽이라고 한다.
50명의 딸들 가운데 한 명만 빼고 모두 아버지의 지시에 따른다. 그 한 명은 큰딸 휘페름네스트라였다.
큰딸의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다나오스를 죽이고 나라를 차지한다.
49명의 다나이드는 남편을 죽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끝도 없는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계속 채워 넣어야 하는 혹독한 벌을 받게 된다.
로댕의 '다나이드'는 절묘한 등 부분에서 로댕작품의 특성은 절정을 이룬다.
로댕은 이 작품에서 지옥의 형벌을 받는 다나이드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추어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표현했다. 평생을 지옥에서 물긷는 형벌을 받았는데
엎드린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이 그녀 앞으로 흐르는 물과 함게 흐르고 있다.
로댕은 매끄러운 선으로 카미유 클로델의 관능미를 나타나게 했다.
말년에 과도한 작업에 피로를 느낀 로댕은 새롭고 자연스러운 데생 기법을 개발한다.
그는 여자 누드모델을 작업실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면서 데생을 했다.
로댕의 도발적인 누드 그림은 모두 1천500점이 넘으며
드로잉은 현재 로댕 미술관에서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해 전시한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년 06월 09일 [명화산책] ⓒ ScienceTimes
한때 로댕의 비서로 일했던 라이나 마리아 릴케는 ‘다나이드’를 평하기를,
“이 대리석 조각의 주위를 돌아가는 완전하고도 긴 여정으로의 유혹…
풍성하고 넓은 등의 곡선을 더듬어
눈물에 목 메이면서 돌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는 그 얼굴 쪽으로 이끌려,
영겁의 얼음과 같은 돌에 깃든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흩어져 사라져가는 마지막 꽃처럼
지금 단 한 번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그녀의 팔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는 죄책감과 절망에 빠진 여인 ‘다나이드’를 표현했다.
- 증오의 물통 -
증오는 지쳐버린 다나이드의 물통
제 정신을 못차림 복수의 화신이 붉고 억센 두 팔로
죽은 이들의 피와 눈물 가득담은 큰 항아리들을
텅빈 어둠 속으로 던져버리지만 모두 헛수고로다.
악마가 그 깊은 구렁에 몰래 구멍을 뚫어놓으니
수 천년의 땀과 노력이 그리로 새어나간다.
설사 복수가 제 희생자들을 깨어나게 할 줄 알아
그 몸들을 되살려 피를 다시 짜낼 수 있다 하더라도.
증오는 선술집 안쪽에 도사린 술주정뱅이
갈증이 이 술에서 끊임없이 일어나 레메의 히드라처럼
그의 갈증은 자꾸만 불어난다.
행복한 술꾼은 제 정복자를 알고 있으나
증오는 식탁 아래로 도무지 잠들 수가 없으니
그들은 정말 딱하고 가련한 팔자를 타고 났도다
- 보를레르 <악의 꽃> 중
Eve, 1881, Bronze, 172.7×48.3×63.5㎝
1881년에 제작된 ‘이브’는 ‘아담’과 같이 <지옥의 문>옆에 놓이도록 계획되었다.
살결이 거무스름한 모델 안나 아브루제지에 대한 열성적 관심을 가진 ‘진실과 삶의 포획자’인 로댕은
매일 그녀의 골반을 수정해야 함을 알고 놀랐다.
“나는 이유를 모른 채 변해가는 모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로댕은 이후에 털어놓았다고 한다.
“나는 점차 풍만해지는 신체의 변화에 따라 윤곽들을 변경했다.
어느날 나는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야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복부의 윤곽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변화했다. 그러나 허리와 늑골의 근육과 옆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들을 실재에 매우 근접하게 모사했음을 알았다.
나는 ‘이브’를 만들기 위해 임신부를 모델로 취해야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운좋은 사건이었으며, 분명 형체의 특성을 구현하는데 유리했다.
그러나 곧 더욱 예민해진 나의 모델은 작업실 안이 너무 춥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방문이 점차 줄어들더니 마침내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브’가 완성되지 않았다."
(『로댕과의 대화』H, 뒤자르댕 보메츠)
‘이브’는 실물대 크기의 작품으로 거친 표면에서 알 수 있듯 미완성으로 남았고
이후 보다 부드럽고 감각적인 ‘작은 이브’ 또는 ‘젊은 이브’가 제작되었다.
"구부린 팔과 모든 것을 뒤로 밀려는 듯 바깥쪽으로 향한 손을 가진 그녀의 몸 자체는
멀리서 변형된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귀스트 로댕』)
‘이브’는 여전히 그 진가를 인정받는 로댕 조각 중의 하나인데
아마도 그녀가 암시하는 감정의 복합성 때문일 것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공포에 움츠리고, 죄에 대한 후회보다는
미래에 고통을 겪게 될 인간들을 창조했다는 생각에 막연히 괴로워하는 ‘이브’는
훌륭한 외관적 특성을 가진 청동이며 그 안에는 로댕이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카미유 클레르『오귀스트 로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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