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백제의 변려문(駢儷文)

Gijuzzang Dream 2009. 5. 28. 23:55

 

 

 

 

 

 

 

 유물에 남아있는 백제의 변려문 - 금석문과 목간

 

 

 

 

변려문(駢儷文)은 변체문(駢體文)ㆍ사륙변려(四六駢儷) 또는 사륙문(四六文)이라고도 하며

간단하게 줄여서 변문(駢文)이라고도 한다.

이른바 ‘대구(對句)’를 많이 사용하여 지은 문장형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어원은 ‘두 필의 말을 한 수레에 멍에 메운다’는 의미의 ‘변(駢)’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의 ‘려(儷)’자1로부터

대구를 이루는 문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의(轉意)되어 사용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변려문이라는 개념과 용어는 고문(古文)과 구별되는 형태의 문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변려문과 구분하고자 한 데서 출현한 ‘고문’이란 문장의 개념은

원래 진한(秦漢) 이전의 문장이라는 의미로서 당송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문과 구분되는 변려문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적 특징은

대구(對句)를 사용한 대우법(對偶法)이다.

물론 어떤 어문(語文)에서나 대구적(對句的) 표현은 존재한다.

대구적 표현이 갖는 운율상의 아름다움과 의미 전달의 편의성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어문(語文)에서 사용하는 대구적 표현의 비중이나

특정 문장 속에서 차지하는 대구적 표현의 비중은 일정치 않다.

다만 변려문에 있어서는 대구적 표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대구적 표현이 문체 정체성의 큰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문에서 이러한 대구적 표현이 강조되고 변려문의 발달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중국어와 이를 표현하는 의미전달 도구인 한문(漢文)이 가진 언어ㆍ문자 상의 특징 때문이다.

즉 라틴어 계통의 인도-유럽어나 한국어, 일본어 같은 표음문자 어문체계에서는

어음(語音)과 어의(語義)가 뚜렷하게 일치하는 체제가 흔치 않다.

그러나 한문은 일음일의(一音一意)로 되어있기 때문에

대(對)를 이루기 용이한 어문구조(語文構造)를 갖는다.

 

변문(駢文)은 한문의 이러한 특수성을 기반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문장의 수식 상에 대구적 표현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독특한 문체가 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변문(駢文)은 본질적으로 형식주의적 특성을 가진 문장형태이자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 성격을 가진 문체이기도 하다.

때문에 변문은 형식상 대단히 아름답고 균형 잡힌 외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태생적 배경에 의해 의사표현이나 사실의 전달, 논리적인 서술과 같은

문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대(唐代) 한유(韓愈)를 필두로 한 고문주의자(古文主義者)들은

이 때문에 변려문(駢儷文)의 한계와 이로 인한 문학발전상이 폐해를 공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의 변려문의 사용은

고문의 그것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가지면서 성쇠를 달리하며 발달해 왔다.2

 

변려문은 시기에 따라 4-4구(句)의 변려문으로부터

4-6구의 변려문으로 바뀌어가는 변화과정을 볼 수 있다.

4-6구의 변려문은 이른바 사륙변려문이라고 불리우는 문장체로서

변려문 가운데 가장 발달된 형식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변문의 대구(對句)에는 자구상(字句上) 대구와 내용상 대구 즉 의미상(意味上) 대구가 있다.

 

현재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백제의 변려문으로는

사택지적당탑비와 백제 목간에 남아있는 변려문을 들 수 있다.

사택지적당탑비는 사택지적이 당탑을 세우면서 자신의 소회를 적은 글로서

사륙변려체의 문장이 세련된 문체로 쓰여져 있다.

 

 

 

목간 가운데에는 능산리에서 출토된 “숙세결업(宿世結業)”명 목간이

4-4구 변려문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사택지적비에 적힌 변려문과 능산리 “宿世結業”명 목간에 기록된 변려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사택지적비문

 

(甲)寅年正月九日奈祗城砂宅智積

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穿金

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

吐神光以送雲峩峩悲貌含聖明以

이 비문의 변려문 부분을 운율에 따라 끊어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慷身日之易往 + 慨體月之難還 + 穿金以建珍堂 + 鑿玉以立寶塔 + 巍巍慈容 +

吐神光以送雲 + 峩峩悲貌 + 含聖明以 …

 

 

 

- “宿世結業”명 목간

 

全面 : 右行 : 宿世結業同生一處,是

左行 : 非相問上拜白事

 

이 문장도 운율에 따라 끊어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宿世結業 + 同生一處 + 是非相問 + 上拜白事

 

 

 

 

이들 변려문은 4+4자 혹은 4+6자를 단위로 대구(對句)를 형성한 문장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택지적비문의 경우

대(對)를 이루는 각각의 해당문자 사이에 거의 완벽하게 의미상의 대구(對句)가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어 백제의 문장이 매우 세련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최근 발굴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안기의 문장도

4+4자 혹은 4+6자를 단위로 대구(對句)를 형성한 변려문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금석문들은 오늘날까지 백제의 변려문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옴으로써

백제인들이 이룩한 높은 수준의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 문학경향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박중환, 역사관 금석문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142회(2009년 5월27일)

 

 

 

 

 

 

 

 

 

 

 

 

 

 

 

 

 

 

 

 

 

  1. 이가원, 안병주 감수 '교학대한한사전(敎學大漢韓辭典)', 2008, 273, 3730-3731쪽 [본문으로]
  2. 최신호, '변려문(駢儷文)'「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659-660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