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반가좌(半跏坐)라는 특이한 자세 때문에
얼굴과 팔, 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치마의 처리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반가사유상의 등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조각사의 출발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반가사유상은 우선 화려한 보관이 눈에 띈다.
보관의 맨 꼭대기에 반원의 받침 위에 작은 구슬을 마치 탑처럼 쌓아 올린 부분이 보이는데
이것은 초승달과 태양이 결합되어 있는 모습으로 흔히 일월식(日月飾)이라고 한다.
일월식의 보관 장식은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유래, 발전하여
비단길을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보살상의 보관으로 차용되었는데,
인도 간다라의 보살상이나 중국의 북주(北周) 및 수대(隨代) 보살상의 보관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정면에서 이 반가사유상을 보면 허리가 가늘어 여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측면에서 보면 상승하는 힘이 넘쳐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탄력 넘치는 신체의 곡선이 강조되었고
양쪽 어깨로부터 끝이 위로 올라와 날카로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는 천의자락은
유려한 선을 그리면서 몸을 감싸고 있다.
양 무릎과 뒷면의 의자 덮개에 새겨진 주름은
타원과 S자형의 곡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변화무쌍한 흐름을 나타낸다.
반가좌의 자세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것은 허리를 약간 굽히고 고개는 살짝 숙인 채 팔을 길게 늘인 비사실적인 비례를 통하여
가장 이상적인 사유(思惟)의 모습을 창출해낸 조각가의 예술적 창의력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뺨 위에 살짝 댄 오른손의 손가락은 깊은 내면의 법열(法悅)을 전하듯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오묘하다.
한마디로 이 불상의 조형미는 비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종교적 아름다움,
곧 이상적 사실미로 정의할 수 있다.
고졸한 미소와 자연스러운 반가좌의 자세, 신체 각 부분의 유기적 조화,
천의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완벽한 주조 기법 등
우리는 이 금동불에서 가장 이상적인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 상(像)은 내부가 흙으로 채워진 중공식(中空式) 주조 기법을 사용하였다.
크기가 1m에 가까워서 금동불로는 비교적 큰 상임에도 불구하고
청동의 두께가 2-4㎜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얇은 두께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하여
머리까지 관통하는 수직의 철심과 어깨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철심을 교차시키고,
머리 부분에 철못을 사용하여 주조틀을 고정시켰다.
고도의 주조 기술이 뒷받침되었기에 이처럼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불상의 제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반가사유상은 보관의 형식과 어깨에서 위로 뻗치고 있는 천의자락, 옷주름 등으로 미루어
6세기 후반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제작국가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당시 우리나라에 존재하였던 삼국이 모두 거론되고 있으며,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로는 하나의 특정국가를 지목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이 반가사유상이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범용적 예술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 민병찬 미술관 불교조각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142회(2009년 5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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