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55. 북방 경계 개척 주장 펼친 남구만

Gijuzzang Dream 2009. 5. 8. 12:04

 

 

 

 

 

[간도오딧세이]  북방 경계 개척 주장 펼친, 남구만사형 

 

 

 

 

 

청구도 본조팔도 성경합도.

성경이 심양이며, 오라성과 영고탑이 보인다. 

현대지도로는 오랄성과 영고탑은 두만강 · 압록강과

거리가 더 멀다. <규장각 소장>

 

 

공포는 엉뚱한 생각을 낳는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혼쭐이 난 조선은 청을 공포, 그 이상으로 두려워했다.

조선이 황제의 나라로 받들던 명을 상대로 청이 전투에서 승리하자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

조선의 조정 대신들은 그동안 ‘모셔온’ 명이 야만족인 ‘청’을 무찔러주길 기대했다.

엉뚱한 상상은 또 엉뚱한 상상을 물고 이어졌다.

명이 청을 무찌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해보았다.

심양에서 쫓겨 만주족의 본거지인 영고탑(현재의 길림성 흑룡강 일대)으로 물러갈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가정까지 한 것은 좋았지만 상상이 지나쳤다.

심양에서 쫓긴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거쳐 영고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북방 경계지역에 군사 시설은 보충해도

민간인들의 이주는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북방지역 백성들 접근 방지 논의


추측이 어긋난 만큼 대책도 엉뚱한 것이 돼버린 꼴이다.

심양에서 지금의 길림으로 가려면 직선 코스가 있다.

만주를 가로질러 바로 가면 거리가 훨씬 줄어드는데

청나라 군대가 일부러 험한 압록강-두만강으로 내려와 고향을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지리 정보에 어두웠던 만큼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리적 정보는 발로 다닌 경험 외에 가보지 않는 곳은

‘심양에서 오라까지 800여리’  ‘오라에서 영고탑까지 400여리’라고 하는 정도다.

신지도만 접했더라도, 지리적 정보를 좀 더 갖고 있었더라도

청나라 군대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거쳐 길림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행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근심을 하는 데 전제부터 잘못됐다.

명은 ‘지는 해’였고, 청은 ‘뜨는 해’였다.

명은 더 이상 일으켜 세울 힘도 없었다. 그런 명이 청을 칠 수 없었다.

그러니 청이 쫓겨가는 일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

조선의 조정대신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국제 정세를 점쳤다.

그래서 북방지역에 백성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구만은 이런 인식이 잘못됐음을 왕에게 아뢰었다.

남구만은 함경감사로 재직하면서 북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숙종실록> 1697년 5월 18일 기사에는 이 부분이 잘 나타나 있다.

영중추부사 남구만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선조에서 근신으로 입시하였는데, 재신이 일을 아뢰고 인해서 말하기를,

‘심양에서 영고탑으로 가려면 길이 매우 험하고 멀지만,

만약 우리나라 서북의 변경을 거쳐서 간다면 매우 가까우니,

피중에서 만약 급박한 변고가 있어 옛날에 살던 땅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면

틀림없이 돌아가는 길을 버리고 질러가는 길로 나아가면서 우리나라의 서북 변경을 짓밟으려 할 텐데,

조정에서는 더욱 유의하여 미리 방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신미년(1691년) 사이에 피중에서 백두산(白頭山)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을 하면서

아울러 다섯 명의 사신을 보내어 우리에게 길을 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위로는 조정부터 아래로는 하인까지 모두 피중에서 틀림없이

급하게 옛날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겨 이렇게 백두산을 그린다고 핑계를 대지만

실제로는 도로를 엿보려는 일이라고 여기고 시끄럽게 떠들며 어수선하여 금지시킬 수 없었습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우리나라의 서북 두 곳의 변경은

겹쳐진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험하고 좁은 길이 하늘에 달려 있는 듯하니,

심양과 영고탑의 사이가 틀림없이 이보다 험하거나 이보다 멀 이치가 없습니다.”


남구만은 북방 경계지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았는지 역사가 말해주었다. 남구만의 생각이 옳았다.
-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2009 05/26   위클리경향 8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