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작가미상의 ‘연행도’ - “단원 김홍도 작품” 결론

Gijuzzang Dream 2009. 4. 21. 18:53

 

 

 

 

 200여 년간 작가 몰랐던 ‘연행도’ 

 - “단원 김홍도 작품” 결론

 

 

도화서 화원시절인 1790년경 작품

숭실대 박물관 등 “표현 기법 동일”


‘연행도’ 제7폭 ‘조양문(朝陽門)’

 

지금은 없어진 연경성의 동문인 조양문으로

조선사절이 들어가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연행도’ 제8폭 ‘태화전(太和殿)’

 

청나라 황제가 정월 초하루에 신년하례를 받았던 자금성(紫禁城) 태화전을 도포차림관 군관복차림의 조선사절이 구경하고 있다.

 

 

‘연행도’ 제9폭 ‘조공(朝貢)’

 

조선사절단(오른쪽 아래)이 공복을 갖춰 입고 청 황제의 궁궐 밖 행차를

지영(祗迎 · 배관이 임금의 행차를 공경해 맞음)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연행도’ 제13폭 ‘유리창(琉璃廠)’

 

연경 유리창의 화려한 가게들과 번화한 거리를 묘사한 그림.

2명의 인물이 각각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가운데 아래)은

조선에서 국여하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다.


‘연행도’ 제10폭 ‘벽옹’

 

 1784년 겨울 준공된 벽옹을 중심으로 국자감을 묘사한 그림.

벽옹은 원래 주나라 천자가 만든 교육기관인 태학에서 기원했다.

원형 연못 위에 자리 잡았고 4면에 석교를 두어 통하게 했는데,

이처럼 중심 건물 4면이 물로 둘러싸인 모습은

황제의 교화가 두루 미쳐 흐르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동안 작가와 제작연대를 몰랐던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최병헌) 소장 ‘연행도(燕行圖)’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도화서 화원시절인 1790년 또는 그 직후 그린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병헌 관장은 21일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매산(梅山) 김양선(金良善,  1907~1970) 선생이

박물관을 숭실대에 기증할 때 함께 인계한 ‘연행도’를 영인본으로 제작, 발간하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1789년 연행사절의 일원이었던 김홍도의 작품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조선사절단이 육로로 청나라 연경(燕京, 베이징)을 왕래한 노정과 연경에서의 공적인 행사를

1폭(35.4×45.3㎝)의 발문과 13폭의 화면에 나눠 담은 ‘연행도’는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몇 점 안 되는 육로 사행 기록화 중에서도

여행 노정의 경치와 행사장면의 화면 포착, 회화적 기법과 수준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혀 왔다.

만리장성과 산해관 동라성(東羅城), 자금성 태화전, 유리창 외에

지금은 없어진 연경성의 동문인 조양문(朝陽門) 등이 묘사돼 있다.

실물 크기의 그림을 수록한 영인본에 실린 논문에서

연행도 전문가인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연행도’ 제10폭의 ‘벽옹(?雍, 국자감의 중심건물)’이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5)의 명에 의해 1784년 겨울 완공된 사실을 밝혀냈다.

1784년 이후 작품이란 전제 아래 조선후기 회화사를 전공하는 박효은 홍익대 강사는

‘연행도’에 그려진 건축물의 지붕, 서까래, 공포의 묘사 등 세부 표현 기법을 분석한 결과,

김홍도의 작품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화성원행도병(華城園行圖屛)’이나 ‘금강산도(金剛山圖)’ 등 김홍도의 1790년대 작품과 비교할 때

‘연행도’는 김홍도의 사실적인 산수화풍 직전 단계에 해당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홍도가 정조 13년(1789) 정사 이성원(李性源)의 주청에 의해

동지사행(冬至使行)의 일원으로 연행에 참가했다는 ‘일성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에 주목한 박씨는

“‘연행도’가 이성원 등의 주문에 의해 연행에서 돌아온 1790년이나 그 직후 그려진 것이 분명하다”

밝혔다.
-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 2009-04-21,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