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좌 - 김주연 숙대교수 강의모음

Gijuzzang Dream 2009. 3. 12. 00:39

 

 

 

 

 

 

한국학술진흥재단 제2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독문학)

 

 

 

 

 

 

 

 (1) 활자 시대 가고, 영상문학 시대 도래? 

 문학의 쇠퇴현상 크게 우려...

 

 

 

소설가 신경숙 씨가 발표한 1992년 작품 ‘배드민턴 치는 여자’에서는

글쓰기 좋아하는 꽃집 처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처녀는 바람둥이 사진기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얼마 안 있어 글쓰기를 중단한다.

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문학평론가인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독문학)는 신경숙 씨의 소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즉 영상 문화에 의한 활자 문화 쇠퇴현상이 21세기 문학현장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활자, 문자문학의 전통과 새로운 영상문학의 대두'란

주제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2000년대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일군의 젊은 소설가들인

백민석, 박민규, 백가흠, 김애란, 편혜영, 김중혁, 김경욱, 이기호 씨 등의 작품들은

이미 전통 서사에서 벗어나 소설 자체가 하나의 영상 내지 만화 공간을 빚어내고 있다는 것.

“슈퍼맨의 최후는 어땠나요?”
“장렬했습니다.”
“둠스데이는 물론 최강의 적이었죠?”
“최강이었죠.”
“하하”
“왜 웃는 겁니까?”
“글쎄요. 영웅이 죽었다는 예긴 처음이라서...”

이처럼 불분명한 신원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현실의 일인지,

사이버 게임 공간 속에서의 일인지, 만화 속의 그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슈퍼맨’, ‘둠스데이’ 등의 등장인물들과 대화 내용을 미루어볼 때

이 대화를 깔고 있는 장면은 만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영상문학 등장은 놀라운 변화

김주연 교수는 최근 판타지, SF, 칙릿 등의 소설들이 등장하고,

장르문학(혹은 장르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고 있는 최근의 현상들은

활자문학이 영상문학으로 이전하는 놀라운 변화임에 틀림없다고 진단했다.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독문학) 

조선조 문학의 본질과 덕목이었던 예(禮)와 의(義), 그리고 종교적 숭고함과 같은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인격적 완성 추구와 윤리의 문제를 갖고 고민했던 1960년대 이후의 문학적 가치는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 존중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신문기사를 통해 한 소설가가 “문학에 대한 생각도 저희 세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소설 쓰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거나 숙명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공언하는 문학풍토가 새로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김주연 교수는 판타지, SF, 칙릿 등과 같이 새로 나타나고 있는 장르문학의 높아진 위상이 영상문화와 직접 관계된다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장르문학은 인터넷이란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을 급속히 장악해 나가고 있는데,

소설가 김영하 씨의 말을 인용, “독립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터넷 소설에 대해

기존 장르에 적용하던 잣대를 들이대면서, 질적 수준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는 주장을 내비쳤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김영하 씨는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독자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인터넷 소설에서 단편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절제된 표현이나 함축적인 문장의 미덕을 찾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중략)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있는 온라인이란 공간을 통해서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급하게 상자를 닫아도 돌이킬 수 없다. 이제 남아 있는 작업은

그 안에 남아 있는 희망을 찾는 일일 것이다”라고 쓴 바 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영상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활자문화의 쇠퇴현상에 대해

(일생을 활자와 함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활자가 많은 동화책보다 그림이 많은 그림책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동문학계 현실은

활자와 그림의 대결구도를 넘어, ‘책과 문학의 위상 저하’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

특히 책읽기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서점 환경이 크게 악화됐는데, 인터넷 서점으로 주된 무대가 옮겨갔다고 하지만

소형 다수의 서점을 통한 책에 대한 접근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됐으며,

이는 책과 문학의 쇠퇴에 대한 반증이며

문학을 좋아하는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독자들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문학의 죽음, 결코 있을 수 없어

“세기가 계속 지나갈수록 책의 숫자는 끝없이 증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주 전체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하듯이

책으로부터 어떤 지식도 얻기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을 인쇄기는 거대한 건물을 책으로 채울 것이며,

독자들은 그 책을 열심히 읽는 대신 어떤 책이 새로운 것이고 어떤 책이 새로운 책이라고 믿어지는가

하는 것을 조사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칠 것이다.

결국 학문의 세계 - 바로 우리의 세계 - 는 책 속에 빠져 익사할 것이다.”

‘문학의 죽음’ 엘빈 커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독자들은 이전보다 더 쉽게 책을 구입하고

인터넷 서점은 이전보다 더 많은 책을 판매하고 있지만,

이 같은 지식과 정보의 과잉은 오히려 상호 분별력과 판단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천 권의 시집이 출간되고 시인 숫자 만 명이 넘는 사회가 됐으나,

시집은 상대적으로 더욱 읽히지 않고 시인은 사회 중심부에서 더욱 밀려나며,

그 자리에 영상 매체의 총아인 TV 탤런트, 개그맨, 가수들이 자리 잡는

“결국 문학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지금 활자에 의한 각인(刻印, stamp)의 시대는 지나고,

영상에 의한 명멸(明滅, flicker)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과연 각인과 명멸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지

아니면 양자가 서로 협력하면서 만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문학적인 양식이 걸어온 역사적인 자취와 그 정신적인 성과, 업적에 비추어

양자의 분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2.09 ⓒ ScienceTimes

 

 

 

 

 

 (2) 영상문학의 힘, 먼저 詩부터 강타

 인터넷 언어 여파로 해체상황에 직면해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이메일로 이어지는 영상 속의 활자들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고수해오던 문법과 문맥을 해체하고 있다.

선생님을 ‘샘’이라고 쓰고, ‘흑흑흑’ 하는 울음의 의성어를 그냥 ‘ㅎㅎㅎ’으로 표기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표현들이 문학작품으로 재현되고 있는데,

1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영상매체의 문체를 시에서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열거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시인 심보선의 ‘여, 자로 끝나는 시’가 대표적인 사례.

이 시에서는 문자 메시지 등 인터넷 문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안녕하세여, 어디가세여, 나 몰라라 도망가지 말아여 (…)

억나세여, 당신의 아버지를 어미라고 부르곤 했지여, (…)

도대체 누구냐고여, 몇 생 전이던가여, (…)

전 요새 시 다시 쓰고 있어여, 사실은 아무거나 쓰고, 이거 시다, 그러고 있어여,

엊그저께는 이력서에 사진까지 붙이고, 이거 시다, 이거 이력서 아니다, 그랬지여, (…)

다음 생에 볼 수 있음 또 보지, 아님 말지, 여”


영상매체와 시 문체 간의 구별 사라져

김 교수는 지금 영상매체와 시의 문체들 사이에는 구별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자와 영어, 혹은 그 이상의 외국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동일한 차원에서 거래되고 교통하면서,

수많은 말들이 (시의 세계에서) 정처 없이 떠다니는 시의 해체현상이 결정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

황병승의 시 ‘트랙과 들판의 별’에서는

평론가 이광호가 “하위문화, 분열된 주체, 퀴어, 잔혹극, 무국적성, 텍스트들의 콜라주 등의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웅성거리는” 세계로 표현한 시의 해체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첨, 내 동생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는 너의 사촌 형, 아홉소
첨 때문에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처음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포엣 poet, 온리 only 누벨바그 noubelle vaóue,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몰려와 낡은 것을 휩쓸고 어딘가로 다시
몰려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정지이고

정지의 침묵 속에서 비극을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
(…)
창작, 긁어대기 시작한다.
창작, 긁어대기 시작한다.
(…)

동생 ‘첨’에게 보내는 형 ‘아홉소’의 웅얼거리는 편지인데,
‘첨’과 ‘아홉소’라는 이름부터 가관이다.

또한 창작을 ‘긁어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詩라기보다는 웅얼거리는 에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평이다.


의미파괴 현상, 시를 엄습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시어 현상을 “텍스트를 균열시키고, 파편화시키는” 파괴작업,

즉 ‘의미의 산포(散布, dissémination)'로,

지금 의미의 경계를 허물면서 “우리의 시를 엄습하고, 강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미의 산포작업을 통해 최근 가장 부각되고 있는 변화와 현상은

성속(聖俗)과 남녀의 경계파괴현상이라고 지목했다.

해체 시들은 주체인 인간들을 스스로 비속화시키면서 남과 여를 뒤죽박죽으로 섞어놓고 있는데,

특히 남녀 성기와 관련된 단어들이 언제부터인가 시 전면에서 당당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의 눈에는 물이 흐릅니다. 한쪽 눈알은 말라빠졌습니다.

두 다리의 무릎까지만 털이 수북합니다.

음부의 반쪽에선 피가 나오고 오른쪽 사타구니에 정액이 흘러내립니다.

백년에 한 번 일는 일입니다만

[김이듬의 ‘명랑하자 팜 파탈’ 중에서]


사람들은 모두 슬픈 눈으로
벌거벗은 제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할미의 몸을 걸치고
여자는 남자의 성기를 달고
남자들이 입은 것은
너무 꽉 죄는 소녀들의 몸

[김근의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중에서]


김 교수는 이 같은 현상들이 영상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영상문학이 포스트모더니즘, 해체, 페미니즘, 에로티시즘, 하위문화(주변문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영상문학 언어, 객관적 개념 부정해

이전의 전통적인 활자문학에서는 객관적 개념을 중시하는 반면

영상문학에서는 객관적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자문학에서는 또 안정적 문체, 장르 구분, 질서, 숭고함 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영상문학에서는 문체의 해체, 장르의 해체, 경계 파괴, 잔혹미 등을 추구하고 있다며

최근 영상문학으로부터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거의 ‘마적(魔的)’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 악플을 들었다.

일정한 사회적 검증을 거쳐 공인될 수 있는 활자문화와는 달리

누구나 무슨 소리나 마음대로 인터넷 화상에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제한 무차별 공격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다.

이로 말미암아 선택적인 심의를 통해 세련된 문화로의 진출이라는 문학의 전통적인 질서는 흔들리고,

인터넷 광장에서 모든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동으로 만나는 인터넷 문학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인터넷 문학이 거꾸로 오프라인, 즉 활자문학으로 역유입되면서,

활자문학의 질서를 변종시키고 있다는 것.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과거의 시인은 방랑자였지만, 이제는 허공의 노숙자가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위로를 거부한 그들에게 아무 위로는 없다”며 암울한 상황을 표현했다.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시와 영상문학과의 교류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영상문학을 넘어서야 할지에 대해 문학상황 전반에 걸쳐 깊은 고찰이 있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2.16 ⓒ ScienceTimes

 

 

 

 

 

 (3) 엽기와 폭력이 최근 소설문학 추세

 판타지 등 장르문학에 세밀 진단 이뤄져야...

 

 

2000년대 들어 문단에 휘몰아치고 있는 영상문화의 바람은

시에 이어 소설에 있어서도 뿌리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부분은 소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엽기성과 폭력성.

2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문학평론가인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등장하고 있는 소설 가운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들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영상문화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김 교수는 소설가 백가흠의 소설, ‘귀뚜라미가 운다’를 예로 들면서

근대 한국소설 한 세기를 통틀어 가장 엽기적이며 패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묘사가

백가흠의 소설 도처에서 무수히 발견되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달구의 늙은 노모가 달구에게 매를 맞고 있다. 노모의 검버섯 곱게 핀 뺨이 벌그죽죽하다.

바람횟집의 남자가 막 여자의 질 안에 삽입을 시작했을 때,

달구분식의 노모는 가지런히 쪽찐 머리가 일순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귀뺨 한 대를 아들에게 얻어맞았다.

장으로 넘어온 여자의 웃음소리는 가는 신음소리로 변하고 있다.

바람횟집 여자는 자신의 신음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엎드려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달구의 노모도 비슷하다. 손으로 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어금니를 단단히 물어 거친 숨소리만 코로 작게 새어나온다.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운다’ 중에서]


엽기와 폭력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이기호의 소설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에서는

속칭 보도방이라고 불리는 이동식 집창촌 여성, 순희와 그녀를 관리하는 남자인 ‘나’의 이야기로 꾸며진

폭력과 섹스의 비루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와 비슷한 소재가 소설가 이기호만의 소재가 아닌,

새로 등장하고 있는 소설들의 ‘일관된 무대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이른바 랩 풍의 경쾌한 톤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이 소설을 보면

몸을 팔고 다니는 젊은(‘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여성과

속칭 ‘더러운’ 이야기가 어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내 나이 열아홉, 세상이 ◌ 같다는 걸 충분히 알 나이,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잘난 놈은 어떻게 사는지, 못난 놈은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알 나이,

돈이 왜 좋은지, 사람은 왜 때리는 걸 좋아하는지, 몰려다니는 게 좋다는 걸, 혼자 남으면 무섭다는 것,

모두 다 아는 나이.
나는 고등학교 중퇴자, 나는 최선은 다했어. (…)

나는 보도방을 차렸어. (…) 우리는 돈 벌어 좋아,

우리를 욕하지 마, 네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 싸다고 욕하지 마, 어리다고 욕하지 마,

영계를 찾은 건 너희야, 계집애들은 충분해. 돈 못 벌어 환장한 계집애들, (…)

우리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몰라, (…) 인생이 그렇게 되리라는 걸,

그것을 알아. 랄랄랄랄랄랄랄 랄라라라라라.

[이기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중에서]

 

김 교수는 “고전적 소설 이론에 따른다면 백가흠 류의 소설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는 견해도 가능하다”

고 말했다. 정신분석학파 창시자 프로이트의 이론대로 ‘도착(倒錯)’으로 보는 견해가 탁월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평론가 김형중이 그 해답을 ‘시대’에서 찾은 것은 매우 예리한 안목이라고 평가했다.

그 시대란 다름 아닌 ‘영상시대’ 라고 말했다.

영상시대가 젊은 소설가들을 폭력을 일삼는 불량배, 패륜아에서 ‘남성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올려 주었고,

억압 없이 즐겁게 날뛰는 광기를 ‘도착’의 작가로 이름 붙여 주었다고 말했다.

사회적인 관대함에 힘입어 영상문화는 그 위력을 바로 소설문학에 뻗치고 있는데,

소설은 이 같은 흐름에 기꺼이 화답하고 있는 모습이 다른 작가들에게도 광범위하게 파급되면서

최근의 국내 소설문학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평했다.


만화 모방 소설, 인기 소설로 부상

한 신문사의 1억원 고료 당선작인 백영옥의 소설 ‘스타일’은 만화 같은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인기만화 ‘빨강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소설가 백영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한 바 있다.



스타일’은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고 들여다보기를 열망하는 음식, 패션, 섹스 등의 세계를

매우 역동적이고, 수다스럽게, 대단히 잘 읽히는 문체로 그려냈다.

(…) 더러운 세계를 견디면서 진정성을 지켜가려는 젊은이들을

자기 세대로 끌어안기를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이 시대의 피상성, 깊이 없음을 쿨하게 잘 형상화했다는 점 등이 돋보인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 심사평대로 과연 “진정성을 지켜가려는 젊은이들”이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지,

그리고 “이 시대를 쿨하게 잘 형상화했다”는 말 속의 ‘쿨하게’란 또한 과연 어떤 것인지,

요컨대 진정성 있는 젊은이를 끌어안고 그것을 쿨하게 형상화한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미상불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만화적 성격과 가장 근접해 있는 소설도 나타나고 있다.

‘지구영웅 전설’, ‘’핑퐁‘ 등의 화제작으로 이목을 끈 박민규란 소설가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모두 만화를 모방했음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설리번, 자료실의 메건입니다. (…)

만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사건이더군요.

그러니까 둠스데이란 괴물이 정말 등장했고, 결국 이 괴물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슈퍼맨은

괴물을 끌어안고 멀리 우주로 날아가 함께 자폭합니다.

물론 만화 ‘슈퍼맨’의 이야기죠. 햇수도 정확합니다. 1992년이에요.”
“그 책들은 모두 구했나?”
“네, 물론입니다.”

[박민규 장편소설 ‘지구 영웅 전설’ 중에서]


이 소설에서는 만화산업의 내막과 정보를 친절하게 소개하면서

동시에 그 만화적 성격을 그대로 소설에 빌려오고 있는,

이제까지 우리 소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를 열어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인 이슈, 어떤 경우엔 그 핵심에 닿아 있으면서도 그 전개방식이 황당무계하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 소설문학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그리고 만화적인 묘사들을

열거하면서 이 같은 현상들이 “결국은 모든 것이 권위의 몰락과 관련된 듯이 보인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적되고 공감되는 이러한 현상이

문학에서는 활자문학의 권위상실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영상문학은 파생 문화산업을 번성케 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동시에 문학 등 다른 문화양식과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상문화의 부정적인 요소들, 특히 인터넷의 그것들을 거의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본격문학의 후예들이 벌이고 있는 ‘문학 해체의 페스티벌’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장르문학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더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2.23 ⓒ ScienceTimes

 

 

 

 

 

 (4) 융합문학 출현 가능한 것인가

 참다운 문학적 접근 찾아야

 

 

 

1968년 2월 백남준 씨는 “수 세기 동안 철학의 헤게모니를 잡아온 철학자들이

계속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양피지 문헌학 대신 전자공학에 노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문학평론가인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영상문화와 문학 간의 역학관계를 설명하면서 백남준 씨의 어록을 인용했다.

영상문화의 번성과 함께 과연 활자문화는 사라져가는 것인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김 교수는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얼마 전부터 국내 많은 문학지들이

영상문화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장르문학’을 주제로 일제히 특집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판타지, 무협, SF, 인터넷소설 등을 일컫는 장르문학은

이전의 순수 문학 혹은 본격 문학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판타지의 성격은 압도적 환상성

장르문학에 대해 본격적인 글을 게재한 것은 계간 ‘문학과 사회’ 2004년 여름호로

이 특집을 통해 ‘드래곤 라자’로 유명한 이영도 씨는 장르문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먼저 환상 문학과 장르 판타지를 구분하자. ‘

판타지’를 기계적으로 번역하면 ‘환상’이 되기 때문에 오해가 자주 발생한다. (…) ‘

문학과 사회’가 기획한 ‘한국 장르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서 무협, SF, 인터넷 소설과 함께 거론되는 

(인터넷 소설, 이 용어는 어색하다. 신문소설, 잡지소설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니까.

다른 좋은 명칭이 필요할 듯하다)

판타지는 환상 문학이 아니라 장르 판타지다.

이차세계 창조, 압도적 환상성, 외연의 확장 등을 주된 특징으로 삼는 장르이며,

또한 작가와 독자가 판타지라고 규정한 장르다.

이영도 씨는 환상문학과 장르 판타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장르소설은 곧 장르판타지인데, 이때 판타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닌,

“압도적 환성성”이라는 것. 매우 애매한 구별법이지만,

이 씨는 ‘이차세계 창조’라는 구체적인 용어로 애매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이 이차세계는 바스티앙처럼 책을 들춰 보거나 앰버의 왕족들처럼 그림자 사이를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우리의 이웃 세계인 경우도 있고, 마법사 간달프나 야만인 코난이 활약했던 시대처럼

어쩌면 우리의 과거였을지도 모르는 세계인 경우도 있다. (…)

판타지가 구현하는 이차세계는 이렇듯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모두는 비현실이다.

이 씨는 ‘압도적인 환상성’의 ‘압도’에 대해 그것이

“한국인이 쑥과 마늘의 부작용으로 변태를 일으킨 곰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예화를 들었다.

말하자면 매우 엉뚱한 환상성을 사실성과 짐짓 혼동하기 좋아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인식 아래

공포나 황홀을 만들어 낸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장르문학은 수요 창출한 기획상품들

장르문학에 관한 논의는 계간 ‘창작과 비평’ 2008년 여름호에서도 이어져

이 문제가 한국 문단의 중심적인 관심사로 확대됐음을 보여주었다.

특집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의 필진으로 참여한 다섯 명의 문학평론가 중의 한 명인 유희석 씨는

‘장르의 경계와 오늘의 한국문학’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장르문학의 형성과정이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른다고 평했다.



이런 장르문학을 정의한다면

특정한 서사적 코드를 활용하여 서사의 주제와 범위를 집중화, 전문화함으로써

출판시장에서 나름의 점유율을 확보한 ‘기획 상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주요 고객은 장르문학의 관습적 이야기 내용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이들이 바로 마니아 독자다.

판타지를 소재로 제작한

영화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 

유희석 씨와 다른 견해도 있었다.

문학평론가 복도훈 씨는 ‘한국의 SF, 장르의 발생과 정치적 무의식’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장르문학의 내용이 풍요롭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며 장르문학의 문학적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최근의 한국소설(비평)은 역사(과거)에 대한 해체적 상상력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 성과는 그런대로 풍요롭다.

그런 반면,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다.

혹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는 방식으로 과거만 그토록 문제 삼는 것은 아닌가. 풍요와 빈곤의 기형적 현실은 문학의 장르 내에서 반영되어 있다.

영상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장르문학이 최근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교수는 지금 상황을 장르문학을 따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넘어서야 하는지,

“따라가는가, 넘어서는가”에 대해 갈등과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문단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참다운 문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

그러나 이른바 본격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중요한 것은 ‘문학’이며,

무엇이 참다운 문학에 기여하는가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장르문학에 대한 ‘근본주의적 접근’은 불가피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과거 속에서 살 수 없듯이 문학 또한 과거 속에서 살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영상 속에서, 그리고 영상문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문자가 존속하는 한 활자문학의 전통 밖으로 무작정 튀어나올 수 없다”며

“영상문화적 기법 내지 영상문학과의 화해라는 명제의 수용은 그리 녹녹치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정신’을 중시하는 근대적 이성의 관점과 한국문학 특유의 선비적 전통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영상문화로 대변되는 오늘의 현실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형성된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반영해 나갈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영상문학과 활자문학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양식의 출현까지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와 소설이 섞이는 장르 혼합의 형태가 빈번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3.02 ⓒ ScienceTimes

 

 

 

 

 

 (5) 이상한 며느리 맞은 전통문학의 미래는?

 석학인문강좌, 문학과 영상문화의 협력관계 조명  

 

 

최근 영상문화가 대두하면서 독자들은 활자에 의한 전통 문학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

과연 문학의 전통적인 가치는 사라지고, 전통 문학을 대체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7일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는

오생근 서울대 교수(불문학), 최동호 고려대 교수(국문학), 김용희 평택대 교수(국문학)가

그동안 있었던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의 강연 내용에 대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지금처럼 영상문화가 번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활자문학이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는 대표적인 헐리우드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사례를 들었다.



스필버그 감독 “책을 많이 읽으세요”

스필버그가 어느 시상식장에서 “지금 영화를 하는 후학들에 해줄 말이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책을 많이 읽으세요”라는 답변을 했다면서,

지금의 영상문화와 활자문학과의 관계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비유했다.

지금 문단의 상황은 끔찍하게 사랑하는 외아들이 비천한 신분에다 현란하고,

천하게 치장한 젊은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양반집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그 젊은 여자의 품 안에서 손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와의 세대적, 풍습적 갈등을 해결하고,

윈윈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토론자들과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

▲ 미술과 영상문화, 그림과 동영상은 구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독일의 표현주의가 모두 미술 내지 그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런 운동들이 바로 미술에서 발원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사실이 오늘의 영상문화에서 대규모적으로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일련의 화상성을 무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독자의 압도적인 개입으로 작가=창작가, 독자=수용자란 오랜 인식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전에도 그런 사례는 있었다.

가령 60년대 인기 신문연재소설이었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도 그랬다.

독자의 압도적인 개입은 대중문학이라는 점에서 가능한 것이다.
“오늘의 영상문학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해주실 것을 당부한다.

현재 다음(daum)에 연재 중인 공지영과 이기호의 소설을 보면

과거 대중소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독자의 압도적인 개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문자매체와 영상매체는 다른 방식의 이미지와 리얼리티를 갖고 있고,

따라서 인식과 사유의 방법도 다르지 않는가.
“다른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문학의 관점에서 영상매체를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문자매체가 영상매체에 비해 더 전통적이며,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전통과 관습에 의해)

새로운 현상에 대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매체가 주는 이미지와 리얼리티 방식으로 영상매체를 재단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 활자문화 시대에 인류가 축적한 지혜를 (지금의 영상문화 등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가.
“문제는 지금 우리 문학에서 질문하신 내용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언어가 먼저 발생하고, 그 영향이 문학언어 쪽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언어가 유감스럽게도 폭력, 섹스, 엽기를 찬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 영상시대를 맞아 앞으로 시의 행로는 어떻게 될지 의견을 듣고 싶다.
“극단적으로 시라는 장르 자체의 소멸까지 예상한다.

왜냐하면 시는 그 장르의 성격 자체가 ‘회상과 추억’이며,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영상문화의 역동적, 명멸적, 진행적 성격과 맞지 않는다.

오늘의 시는 이미 문자로 된 만화 비슷하게 됐다.

서정시가 조선조의 잔영이 된 시조의 운명을 밟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 영상시대를 맞아 문학은 이전과 같은 헤게모니를 갖지 않고 소수의 문학인들을 통해 쓰여져도

별 문제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그것이 선천적 운명, 생래적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전체적으로 그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상문학가들이 스토리텔링이나 시나리오 소재로서의 소설 찾기에 분주하고,

소설가는 거기에 부응하는 일에 자족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상적인 상상력이 문학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활자문학을 결코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3.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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