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밀레이- 오필리아(ophelia)/ 베이컨- 십자가에 못박힘에 관한 세 가지 연구

Gijuzzang Dream 2009. 1. 18. 20:30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영국의 국립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설탕 제조업으로 부를 축적한 헨리 테이트(Tate, H.)가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회화와 조각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다.

영국 정부는 1897년 밀뱅크 교도소 자리에 헨리 테이트가 기증한 67점의 소장품과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들과 함께 테이트 갤러리로 개관했다.

테이트 갤러리는 소장품의 증가로 원래 밀뱅크 교도소 자리에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2000년에는 뱅크 발전소를 개조해 초대형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으로 나누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테이트 브리튼은 19세기 영국의 미술계를 휩쓸었던 라파엘로 전파의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서, 라파엘로 전파는 당시 영국 아카데미에 대한 반동의 의미를 가지고 탄생된 미술사조다.

 

 

 

 

 

 (1) 오필리아(ophelia)자살로 그려낸 '햄릿' 속의 여주인공

 

 

 
라파엘로 전파의 화가들은 자연주의적 세부 묘사에 중점을 두었으며

중세적이고 문학적인 소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문학적 소재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 밀레이의 <오필리아(ophelia)>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 전파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여주인공 오필리아를 모델로 했다.

 

 

 

 

▲ <오필리아(ophelia)>, 1851년, 캔버스에 유채, 76×111 


오필리아의 죽음을 둘러싸고 문학적으로 자살이냐 아니냐에 논란이 많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살로 그려졌다.

 

<햄릿> 4막 7장에 나오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설명하는 글이다.
‘시냇가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고 맑은 물 위에 그 희고 뿌연 잎사귀가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버드나무 가지에다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실국화, 야생화를 엮어서 환상적인 화환을 만들었다.

그녀의 옷자락은 활짝 펴져 그녀를 마치 바다의 요정 사이렌처럼 잠시 동안 물 위에 떠 있게 만들었다.’

이 작품 속에 오필리아의 머리 위로는 버들가지가 있고 그녀의 오른손은 꽃을 쥐고 있다.

물 속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오필리아의 허리에는 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의 드레스는 물에 부풀어져 있다.

수면 위로 얼굴은 나와 있지만 그녀의 머리는 물 때문에 흐트러져 있다.

이 작품에서 밀레이는 열두 종류의 식물과 꽃의 말로 오필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오필리아 오른손에 들려 있는 데이지 꽃은 순결을,

버드나무와 쐐기풀은 이루지 못할 사랑을과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Millais, Sir John Everett,
1829~1896)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오필리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델에게 화실 욕조에 누워 있게 했다.

밀레이는 욕조 속의 모델을 그렸지만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풍경은 영국의 에월에 있는 흑스밀 강이다.

  

 

 

 

그 여인이 살던 집은 예전처럼 아름답고
그 앞을 천천히 흐르던 강물도 여전히 아름답다.
처마부터 주춧돌까지 모두 흘러가는 물속에 잠겨
그 집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아름다웠던 여인이여
그렇게도 일찍 죽을 줄이야.
지금쯤 그 여인의 삶에 대한 꿈도 끝났을 것이다.
그 여인 생전에 평화로운 모습은
아마도 더 완벽한 평화를 향하여 천천히 변하고 있겠지. - 테니슨, 죽은 이를 위한 기도

라파엘 전파가 열광했던 테니슨의 ‘죽은 이를 위한 기도’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오필리아(Ophelia)는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목숨을 잃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오필리아(Ophelia)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4막 7장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주인공인 햄릿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햄릿의 아버지인 덴마크 왕국의 왕이 갑자기 죽고 나자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가 왕이 되고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시동생인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벽에 매일 밤 자정마다 죽은 왕의 망령이 나타난다는 것을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가 발견하고, 친구들의 말을 들은 햄릿은

유령을 만나 클로디어스가 왕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유령으로부터 왕의 복수를 해줄 것을 부탁 받게 된다.

 

클로디어스가 의심할 것을 염려한 햄릿은 미친 행동을 하며,

결국 오필리아(Ophelia)와의 사랑도 포기하게 된다.

햄릿은 유령이 한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장면을 연극으로 구성해서 클로디어스 앞에서 상영하고,

왕은 상연도중 충격을 받고 자리를 뜨게 되며,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된다.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는 햄릿의 행동을 문책하기 위해서 햄릿을 부르지만,

햄릿의 이야기를 듣고 난 거트루드는 크게 반성하게 되며,

이때 휘장 뒤에 숨어서 이들을 지켜보던 오필리아(Ophelia)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햄릿은 클로디어스로 착각해서 죽이게 된다.

결국 햄릿은 폴로니어스를 죽인 혐의로 영국으로 추방되고 만다.

연인이었던 햄릿과의 실연과 그 연인이 죽인 자신의 아버지를 슬퍼하다가

그녀도 결국에는 실성을 하게 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이 없었던 그녀는 결국 죽음을 택하고 만다.  

 

라파엘 전파가 열광했던 테니슨의 시처럼 아버지를 죽인 자와의 사랑 관계에서 헤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한 '도덕주의자'로서의 오필리아는 '도덕주의자'인 밀레이가 택했음 직한 소재였다. 

아놀드 하우저가 "대부분의 빅토리아인처럼 이상론자요 도덕가이며 위선적인 관능파"라 지적했던

라파엘 전파의 한 화가 밀레이.

밀레이는 <Ophelia>를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템스 강 지류의 허그스밀 강가를 골라 배경을 그리는 데 몇 개월을 보냈다.

런던에 돌아와서는 모델을 며칠 동안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게 하고 작업을 한 나머지

모델이 폐렴에 걸렸다고 한다.

모델은 19세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 가브리엘 로제티의 열정적인 연인이자

라파엘 전파의 회원 모두가 사랑한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 이다.

시달과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의 첫 만남은 모자가게에서 시작됐다.

모자가게 창문에 비친 시달의 관능적인 입술, 비극적으로 내려앉은 눈꺼풀,

풍성하고 관능적인 붉은 머리에 반한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그녀를 열정적으로 등장시킨다. 

 밀레이의 <오필리아(Ophelia)>는 물론,

헌트의 <발렌타인, 프로테우스로부터 실비아를 구하다>, 로제티의 <베아타 베아트릭스> 등의

그림에서 모델이라는 단순한 이미지에서 승화된 여신 뮤즈로 군림한다.

 
열렬한 열애 속에서 로제티와 1860년 결혼한 시달은

야속한 운명의 장난인지 계속되는 병치레와 사산, 남편의 외도 속에

슬픔과 질병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내다 결국 약물 과용으로 인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오필리아 그대로의 비극적인 모습으로.

문학사와 예술사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화가와 뮤즈의 열정적인 사랑도

이렇게 욕망의 상처만 남기고 덧없이 끝나버렸다.

 

 

 

 

 

 

 


 (2) 십자가에 못 박힘에 관한 세 가지 연구

 -  전쟁의 잔혹성을 일깨워주는 작품

 

 


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충격적으로 표현해 영국 화단에 놀라움을 주었던 작품이

베이컨의 <십자가에 못 박힘에 관한 세 가지 연구>이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보여주지는 않는 이 작품은 베이컨이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3면화로 제작해 중세의 제단화를 연상시키고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상기시키고 있다.


 

 

▲ <십자가에 못 박힘에 관한 세 가지 연구>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년, 압축 패널에 유채와 파스텔, 각 패널 94×74 

 


이 작품은 베이컨이 두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제작한 것으로서

끔찍한 폭력으로 발생한 인간의 고통을 표현했다.

화면은 같은 크기의 캔버스 3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신을 상징한다.

각각의 작품들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배경이 강해

인물의 형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이다.

이 작품은 인물이 지닌 인간적인 요소와 동물적인 요소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해부학적 구조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인물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갇혀 있어 전쟁의 잔혹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이 작품으로 영국 화단에 첫발을 내딛었다.

베이컨은 20세기에 활동한 예술가들 가운데 인간의 비극을 선명하게 표현한 화가로서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화폭에 담아냈다.

베이컨은 실제 경험에서 얻은 감정을 매우 격렬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bluep60@hanmail.net

- 2009.01.14 ⓒ ScienceTimes [명화산책]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베이컨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영국군 장교이자 기마 조련사인 에드워드 베이컨의 아들이다.

베이컨은 어려서부터 약간은 역마살이 낀 아버지를 따라 말(馬) 기르는 마을을 전전하며 살았다.
베이컨의 어린시절은 가정의 불안정감 보다는

아일랜드의 정치적 동요와 1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아 런던의 분위기로 더욱 불안한 시대였다.

어린시절 부모와 떨어져 외갓집에서 외롭게 자란 베이컨은

모순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상에 늘 불만을 갖고 성장했다.  

베이컨은 어려서부터 천식과 동물 알레르기로 고생했으며

아일랜드와 영국을 오가는 부모들의 복잡한 생활로 겪은 정서적인 어려움이

평생동안 그의 작품에 투영된다.

 

그런 그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된 것은 1927년부터 1929년에 이르는 파리생활부터다.

비록 가난한 건달생활이었지만 베이컨은 종종 상티의 ‘콩데 미술관’을 찾았으며

그 곳에서 본 ‘푸생’의 작품 ‘결백한 자들의 학살’에 크게 감명을 받는다.


또한 ‘폴 로젠버그 미술관’에서 열린 ‘피카소 전’을 통해

현대미술과의 첫 대면을 하게 되면서 파리에서의 예술적 울림을 감지한다.

교육을 거의 받지못한 그는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을 하던 중

1928년 피카소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인체의 독특하고 근본적인 생동감에 관심을 가졌고

피카소를 통해 직감적으로 자신이 개척해 나갈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또 베이컨은 늘 베를렌(프랑스 시인)의 방황, 보들레르의 시학(詩學), 러시아의 발레,

초현실주의 예술의 약동, 뷰뉴엘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등을 찬미하면서 그의 예술성을 살찌우며

19세기 미술과 현대회화의 유산을 전수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우하우스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작품에도 흥미를 느끼면서

실내장식과 가구를 만드는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런 인연 때문에 수채화를 종종 그리게 된다.


그 후 회화의 유혹에 이끌린 젊은 장식미술가 베이컨이 유화작품을 처음 그리게 된 것은

1929년 20살 때 런던의 아틀리에에서다.

사실 이 당시 파리의 미술은 너무나 다양하고 위대한 현대미술의 양식들-소위 구성주의, 초현실주의, 입체파, 추상미술 등-이 동시적으로 혼재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혼란스런 시대적 상황을 동시에 목격하고 예의주시하던 베이컨은

형식적 추상, 초현실주의자들이 개척해 놓은 우연의 경험과 형상에 대해 유난히 애착을 갖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회화 공간의 창조에 적절히 활용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졌다.


특히 장식미술가로 활동한 경험 탓인지,

그의 초기 작품들은 건축적 요소와 복합시점의 화면 구성이 뒤엉킨 혼란스런 그림이었다.

얼마 후, 베이컨이 작가로 변신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작가 ‘로이드 매스터’라는

10년 연상의 작가를 만나게 된다. 이 작가는 작가로 화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베이컨의 회화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제공해 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베이컨의 첫 번째 성공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는 작품 ‘십자가’(1933년 작)가 그려진 것도

‘로이드 매스터’와의 교류시기에 그려졌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베이컨은 막상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몇 차례 그룹전 등을 가졌으나 실패하고

언론과 화단의 평도 별로 좋지 않자 방탕생활을 하며 전전긍긍한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은 놀음과 섹스로 점철된 어두운 생활 속에 지냈다.

하지만 폭격으로 부서진 아틀리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한편으로는 아틀리에 구석에서 노름방을 차려놓고 노름과 술로 지내는 이중적 생활을 지속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44년 발표한 습작 ‘십자가 발치에 있는 인물에 관한 세 습작’에서

베이컨의 작가 생활에 중요한 이미지가 되는 괴물과 인간의 중간 쯤 되는 피조물들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아마도 전쟁의 상흔과 방탕한 자신의 모습과 병든 현실이 혼합돼 빚어진

이 시대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1953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세계적 회화로 이름을 얻게 된 베이컨은

1940-1950년대 넘치던 추상미술의 세계에서

뛰어나고 힘있는 자기 목소리를 지닌 독특한 구상화가로 평가 받았다.

모든 예술 가운데 회화만이 히스테리컬하게 자기 자신의 대재난을 통합한다.

 

현대회화에는 3개의 길이 있다.

기하학적 추상은 심연, 혹은 혼돈과 손의 존재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길이다.

그것은 일종의 금욕주의와 정신적인 구원을 제안한다.

그것은 형태적인 대비들에 따라 상징적인 코드를 만들어 낸다.

코드란 두뇌적이어서 감각이나 추락의 본질적인 현실이 결여되어 있다.


1960년부터 베이컨은 어느 정도 명성을 얻지만,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허술한 아틀리에에서 30년이 넘게 작업한다.

지저분한 계단, 잡다한 도구와 잡동사니들, 낡은 책들, 버려진 그림, 쓰다 남은 물감 튜브,

벽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칠해진 물감 칠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오히려 베이컨의 우수한 재능을 싹틔우는 토양으로 발전된 것이다.
베이컨은 인생은 뒤죽박죽이었을 망정 작가로서의 명성은 꾸준히 쌓아갔으며,

드디어 국제무대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1962년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베이컨의 첫 번째 회고전과

1963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그것이다.

베이컨의 그림은 대부분 인물화에 집중돼 있는데, 그림에서 그의 관심 사항은

항상 “어떻게 하면 이 이미지들이 보다 내게 즉각적으로 실재적인 것이 되도록 감지할 것인가?”였다.
특히 자신의 얼굴이 작업실 거울에 반사하는 단순한 영상을 넘어서

그림 속에 나의 정신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 ‘자화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그림 속의 이미지는

마치 뇌성마비 장애인처럼 변형 해체되고, 조각나고, 과장되며, 이중화되고, 분화돼 있다.

그의 리얼리즘은 통상적인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실재를 갑자기 잡아내고 형태의 해체를 통해서 유사성을 찾아내고자 했다.
어쩌면 그의 그림 속의 일그러진 얼굴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장애인으로 생각했고,

육각형 또는 밀폐된 공간 속에 갇혀 불안하게 앉아있는 인간은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하고자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상은 앞에 버려진 신문처럼 구겨져있고, 시계는 깨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를 파괴시키고, 변형과 해체를 일삼은 베이컨의 회화는

입체파의 대부 피카소의 회화와 일맥한다.


1992년, 83세의 노(老) 화가 베이컨은

또 하나의 괴물 같은 얼굴을 탄생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다 말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인생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 동양일보 2005년 10월 20일 [동양일보미술관 연재, 42]

 

 

 

 

 프란시스 베이컨의 1971년 작품인 '자화상'

베이컨의 대표적인 자화상으로 피카소의 영향(다중시선기법)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 
자신의 모습이 신경 충돌을 일으켜 기형적으로 왜곡되는 총체적인 상황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1972년 작품인 '자화상'    

 

 

 프란시스 베이컨의 1976년 작품인 '자화상'  

추상미술과 대립되는 개념인 구상주의로 유명한 그는  구상주의로 유명한 그는

과거의 명화나 사진을 통해 얻은 주제를 상징적인 유기적 형태로 변형시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폐쇄 공간 안에 배치하였다.

그로테스크한 묘사는 실재에 대한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며

점차 추상표현파와 비슷한 모티프의 변형과 격렬한 필치구사로 변해갔다.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360억원에 낙찰된 프란시스 베이컨의 '3명의 자화상 연구'

 

 

 

2008년 12월30일(현지시간) 런던 크리스티의 전후 및 현대미술품 경매에서

영국 출신 작가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년)의 '자화상 연구'가

예상가의 두 배 이상인 3400만달러(360억원)에 팔려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뒤틀린 얼굴, 괴기스런 표정과 절규하는 몸부림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본능과 고통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지금까지 베이컨의 경매 최고가는
2008년 5월 소더비의 뉴욕경매에서

8,300만달러(약 900억원)에 팔린 1976년 작 '트립틱(Triptych)'이었다.

- 2009.1.18

 

 


프란시스 베이컨이 그린 천만불 짜리 '전신자화상'

 


2008년 11월 12일(현지시간) 크리스티 경매에서 공개된

프란시스 베이컨의 1964년 작품인 유화 '자화상'


보기 드물게 작가의 전신자화상을 그린 이 작품은

4000만불 선에서 호가될 것이라고 경매장 측은 내다봤었으나 이날 판매되지는 않았다.

- 2008.11.13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프란시스 베이컨의 미완성 초상화'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 직원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헨리에타 모라에스의 초상화” 앞에 서 있다.

 

10월19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리얼리즘 회화의 대가'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동시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미완성 초상화는

최대 700만 파운드(160억원)에 팔릴 것이라는 업계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541만 파운드(123억원) 낙찰가에 팔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보도했다. 


영국 작가인 프로이드와 베이컨은 1992년 베이컨이 사망할 때까지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고,

85세 고령의 프로이드는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프로이드가 베이컨을 그린 단 2점의 유화 중 하나인 이 베이컨의 미완성 초상화는

1972년 이래 개인 소장가가 소유하고 있었고,

1952년 완성된 또 다른 작품은 1988년 독일 베를린의 한 화랑에서 도난당한 채 되찾지 못했다.

- 2008년 10월21일

 

 

 

 

 2008년 2월27일 런던에서 열린 ‘소더비경매 현대미술품 이브닝세일’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거울 속 누드에 대한 스터디’(1969년 작)는

1,995만 6,500파운드(약 378억원)에 낙찰되었다. 

베이컨 그림의 기본적인 대상은 인간의 신체다.

그러나 그가 그린 신체들은 전통회화에 등장하는 신체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베이컨에게서 신체는 고전적인 그림에서처럼 우람하고 아름답지 않다.

그의 그림에서 인간은 괴물에 가깝다. 그것은 인간 ‘이다’와 ‘아니다’ 사이에 놓여 있다.

베이컨은 신체가 느끼는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경험에 유난히 민감했다고 한다.

그 극한은 어떤 작은 구멍을 통해서 우리 신체가 녹아내리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 신체의 표면과 심층이 뒤집어져 속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베이컨은 인체란 화가의 통찰력에 의해 분해되어 화면 위에 재구성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의 과감하고 즉각적인 손놀림은 화면 속에서 상처받아 몸부림치고 격렬하게 투쟁하며

두려움과 고독 속에 절규하는 모습으로 섬뜩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독재자, 고깃덩어리, 친구의 얼굴, 자화상 등으로 표현되는 왜곡된 인체와

냉정하고 무심하게 에워싼 배경 공간은 생명체의 생생한 현장감을 극적으로 고조시킨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 8,628만달러(906억원)에 낙찰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일그러진 인물초상으로 형상화한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909~1992)의 작품 ‘Triptych’가

5월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Contemporary Art Evening Auction)’에서

8628만달러(한화 약906억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이같은 낙찰가는 영국 출신 현대미술 작가 작품 경매가로는 최고가다.

3점의 인물화가 마치 삼면경처럼 연결된 ‘Triptych’는

베이컨이 1976년 그린 연작으로 경매 초반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 헤럴드경제, 2008.05.15 

 

 

 

 

 

 

 

 

 

 - Now And Forever / Davi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