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38년 만에 되찾아온 조선왕릉 태릉의 존엄성

Gijuzzang Dream 2009. 1. 16. 13:10

 

 

 

 

 


 

 

2008년 12월 1일. 왕릉에서 행사가 벌어질 냥이면

어김없이 비가 오곤 했던 과거 사례는 이날도 빗나가지 않았다.

태릉사격장의 철거와 능제복원을 위한 고유제가 막 시작될 무렵, 이마와 콧등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지난 38년간 사격장 소음과 후손들의 무심함에 시달렸을 문정왕후(중종 계비)의 애환이 담긴 비였을까?

고유제를 지내는 내내 그치지 않았다.



애환서린 빗속의 고유제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문화재청은 훼손된 왕릉의 일제정비를 추진하였다. 문화재의 가치는 뒷전으로 한 채

국유지라는 이유로 무참히 짓밟히고 무시당했던 지난날의 역사를 치유하는 작업은

세계문화유산의 성공적인 등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올 한 해, 그동안 묵은 과제로 해결치 못하고 있었던 정릉 내부의 국궁장,

의릉 내부의 구 안기부 본관건물, 태릉의 육군사관학교 훈련장 시설을 철거하였다.

대개 40~50년간 해당 시설을 이용했던 이해관계자가 많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관계자를 찾아가 설득하고,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하여 철거정비의 필요성 등을 설명한 결과

큰 무리 없이 협조 속에 정비작업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태릉사격장이었다. 사격계 입장에서는 대체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물러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때는 국가의 명예를 드높였을 체육시설이

잘못된 위치에 들어선 까닭에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철거되는 현실이

태릉사격장 철거와 왕릉복원을 담당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애당초 왕릉과 사격장은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만남이었다.

 


태릉 복원의 난제, 사격장 철거

 

지난 1970년,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 개최를 명분으로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은 태릉 문화재보호구역 내부에 사격장을 짓겠다고

문화재관리국에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하였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권력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사격선수권 대회가 끝난 뒤 최단 시일 내에 타처로 이전하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 38년 동안 사격장은 이전되지 않았고, 대한사격연맹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 태릉푸른동산,

한국사격진흥회 등 단체를 달리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 구역에서 골프연습장 영업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각종 예식업, 수영장, 눈썰매장 영업이 진행되고,

클레이사격장은 토양이 납탄으로 오염되어 이를 방치할 경우 수질오염까지 우려되는 한편,

관할구청으로부터 토양정화 명령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더구나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사격장 철거는 더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지난 5년간 이 자리를 거쳐간 선배들의 고생어린 노력 끝에

태릉권역의 난제를 풀 실마리를 마련한 것은 작년 8월이었다.

 2002년 9월 태릉푸른동산의 체납 변상금을 징수하기 위해 공매한 사격장을

기부채납 한다는 조건으로 취득한 한국사격진흥회와 5년간의 법정소송 끝에

조정권고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사격진흥회는 사격장에 입주한 각종 단체들을 퇴거시키고,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해제한 뒤 기부채납을 이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2007년 10월 사격장 시설을 기부채납 받고 11월에 폐쇄하였으나

이듬해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사격장이 폐쇄될 경우

선수들의 훈련공간 부족과 사기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올림픽이 끝나는 2008년 9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허가를 하게 되었다.

물론 대한사격연맹과 한시적 사용 후 원상반환한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작성하여

철거방침을 분명히 한 뒤였다.

 


어렵고도 기나긴 협상과정, 반쪽의 고유제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고 10월에 접어들어서도 사격장은 반환되지 않았고,

대한사격연맹은 무단점유를 지속하였다.

그러나 무단점유라 하여 무작정 퇴거시키고 사격장을 철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대체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격선수의 훈련공간을 빼앗는 행위로

비춰질 우려가 있었다. 이에 사격연맹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클레이사격장과 사용하지 않는 50m MRT 사격장은 철거하고

나머지 라이플사격장은 최대한 사용기간을 연장해 줄 수 있다는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받아들일 지를 놓고 사격연맹은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8월말 이사회를 열어 결정하겠다던 사격연맹은

10월에 개최된 전국체전의 참가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었고, 그 뒤로도 물밑으로 사격장 존치를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협상은 어렵고도 기나긴 시간을 거쳐야 했다.
문화재청도 서울시, 문화부, 대한체육회 등에 대체사격장 마련 협조를 구하고,

대체사격장 마련 전까지 클레이사격 선수들이 타 사격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편의 등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풀고자 관계자 면담 등의 공을 들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한사격연맹 책임자와 사격장 철거 범위 및 연장사용 방안에 대해

원만한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대적인 언론홍보와 기자초청, 정부관계자, 사격계 인사, 문화재계 인사, 시민단체 등이

모두 참여하고, 사격연맹에게 지난 과오의 역사를 씻고

태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협력하는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합동고유제를 기획하고

최종 준비를 마쳤으나 행사 이틀전 돌연 사격연맹의 강경입장 선회로 모든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급기야 축제 속에 진행되었어야 할 행사는 철거업체만의 약식 고유제로 축소되었고,

경찰병력의 호위 속에 삼엄한 분위기로 철거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국유재산이자 문화재였던 태릉 권역에서의 불법, 탈법 행위는 이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무단점유로 인해 검찰고발되었던 단체들은 벌금조치를 받았고,

행정대집행 대상이었던 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개발제한구역 내에 설치되었던 골프연습장은 약 10년 전 인명사고를 내기는 했으나

관할구청과의 협의 끝에 원만히 철거 되었고,

장기체납 국세였던 태릉푸른동산의 변상금 부분도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영장, 예식장 영업공간도 올해 말까지 기부채납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곧 클레이사격장의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작업도 예정되어 있고,

국군체육부대가 사용했던 각종 시설물도 환경정화 차원에서 철거할 예정이다.

하지만 태릉권역은 여전히 긴장상태다.

1단계 사격장 철거가 끝난 뒤 남아있는 라이플사격장의 처리문제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국유재산법상 대한사격연맹에게 무상사용 허가를 해줄 수 없는 까닭이다.

 

지금도 각종 단체에서 끊임없이 골프연습장 부지를 노리고 있고,

공공기관 마저도 왕릉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하는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사격장 재건을 위한 현상변경 허가신청서까지 접수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번 잘못 발을 들여놓은 실수가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 관리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어떠한 압력과 위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청의 시계는 3~4년이 아니라 최소 30~40년 앞을 내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30년만에 총성이 멎은 태릉의 고요


이제는 복원이다.

사격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화재의 원형복원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철거정비 작업이 시작된 만큼

태릉의 존엄성과 신성한 공간적 특성을 살려 국민에게 온전히 되돌려주는 일이 남았다.

수영장을 만들면서 허물어버렸던 재실 공간도 복원해야 하고,

사격장을 지으면서 허물었던 원찰 공간도 일정부분 복원해야 한다.

태릉에 모셔진 문정왕후와 강릉에 모셔진 명종은 어머니와 아들, 모자지간이다.

태릉선수촌이 사이를 가로막아 연계관람로가 없고,

선수촌 공간에 우백호 부분을 내어줌으로써 관람공간이 협소해진 탓에

비공개로 관리되던 ‘강릉’도 개방할 계획이다.

 

문화유산 보존차원에서 충북 진천에 짓고 있는 종합훈련원으로 태릉선수촌이 이촌 하는 것을

과감하게 결정한 문화부의 강력한 문화유산 보존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 7월이면 우리는 또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게 될 것이다.

임금님이 살았을 적 공간인 궁궐과 돌아가신 후 위패가 모셔진 종묘,

그리고 사후공간인 왕릉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다.

유네스코 실사단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강남 도심 속 허파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선릉’이 그러한 것처럼

‘태릉’역시 언젠가 개발이 완전히 진행된 후,

서울 북부의 가장 잘 보존된 왕릉 역사경관림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38년간 왕릉 신성림을 울렸던 총성이 멎었다.

조선왕릉 ‘태릉’의 공간적 존엄성을 되찾은 2008년 12월 1일.

문화재를 문화재로 인식치 못하고 무심히 방치했던 후손들의 부끄러움을

오늘에야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 황권순, 문화재청 궁능관리과 행정사무관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