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문화적 경관을 문화유산으로

Gijuzzang Dream 2009. 1. 16. 14:04

 

 

 

 

 

 

 문화적 경관을 문화유산으로 만들자

 

 

 

문화적 경관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서 만들어낸 가시적 · 정신적 상호관계를 표상하며,

자연 속에서 인간이 생존해 온 자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국, 각 지역은 각기 다른 삶의 양식에 따른 문화적 경관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 서민들이 생활 속에 배어있는 보통성을

독특한 문화재적, 또는 문화유산적 가치로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이다.

 


문화적 경관은 중요한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및자연유산협약'에서는 문화적 경관을 구상하는 회의를 개최하고,

1994년에는 문화적 경관의 개념을 도입, 운영지침을 개정하였다.

문화유산이 예술적 · 인문적 수월성과 장대함을 지닌 기념물이나 무형유산을,

자연유산이 생태적 · 자연적 훌륭함과 과학적 가치를 지닌 대상에 치우친 것에 대한 보완으로서

인간과 자연이 결합된 결과를 문화적 경관(cultural landscape)으로 보고,

이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1995년에 필리핀의 꼬르디예라(Cordillera) 산지의 계단식 논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문화적 경관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경사 60∼70도의 산비탈 등고선을 따라 수십 만 개의 계단식논이 장관을 이룬 바나웨 지역은

이제 아시아지역의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경관(landscape)이란 용어는 19세기 후반 독일 지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용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문화경관(문화적 경관으로도 번역)이라는 용어를 학문적으로나 대중적으로 확립시킨 것은

미국의 버클리대학의 유명한 문화지리학학자 칼 사우어(C.O.Sauer)였다.

그는 1925년 발표된 '경관의 형태학'이라는 논문에서

문화경관이란 천천히 변화하는 자연경관이 인간활동, 즉 문화과정(cultural process)에 의해

변형된 결과 나타나는 가시적 형태라고 하였다. 문

화경관의 내용으로는 인구, 가옥, 경작지, 도로 등의 요소를 들 수 있고,

이러한 요소들의 유기체적 총합(organic whole)을 문화경관이라 하였다.

쉽게 말하면 ‘인간과 자연의 공동작품’이다.


문화적 경관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서 만들어낸 가시적 · 정신적 상호관계를 표상하며,

자연 속에서 인간이 생존해 온 자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국, 각 지역은 각기 다른 삶의 양식에 따른 문화적 경관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일반 서민들이 생활 속에 배어있는 보통성을

독특한 문화재적, 또는 문화유산의 가치로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이다.

이제 보통 사람들에게 ‘흔한 풍경’이 문화재로 평가, 보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문화적 경관 보호

 

일본의 중요문화적 경관으로 지정된 시코쿠 에히메현 우와지시마 미즈가우라 마을은

일본의 내해 세토나이카이연안, 시코쿠의 서북쪽 끝에 위치한 바닷가의 평범한 마을이다.

평균 47도의 계단식 경사지에 돌기단을 쌓아 경지를 만들어 지금은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감자소주 등 다양한 상품개발로 지역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의 문화청은 2000년에 ‘문화적 경관에 관한 검토위원회’를 설치하였다.

특히 농림수산업이라는 전통 산업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경관의 관점에서 평가를 하고,

그 보호방안을 마련하였다.
문화적 경관의 정의에 해당하는 내용에 대한 전국적인 상황 파악을 목적으로 1차 조사를 실시해

2,311건의 문화적 경관지역을 확인하였다. 1차 조사에서 확인한 문화적 경관의 지역 중에서

농림수산업 경관 또는 농림수산업과 깊은 관련성을 갖는 경관으로

독특한 성질과 구성요소가 인정되는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502건을 선택하고,

현상파악을 위한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실시한 결과를

『농림수산물에 관련된 문화적경관의 보호에 관한 조사연구보고서』로 정리했다.

(2003, 일본 문화청 문화재부기념물과)

 

이를 바탕으로 문화적 경관의 보호를 위해 2004년 문화재보호법을 일부 개정했다.


이는 산업구조나 국민의 생활 의식의 변화에 의해 소실되어 가는 향토의 문화적인 경관,

생활, 생산의 제작기술, 근대의 문화유산들이 기존의 문화재에서는 충분히 보호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보호방법이 필요하다는 의식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보호방법을 다양화하는 것이 법률개정의 취지였다.


보호대상의 확대에서는 문화적 경관과 민속기술이 추가되었다.

문화적 경관은 촌락과 같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경관이 그 대상이 된다.

구체적인 보호조처로서 정부는 도도부현과 시정촌의 신청을 받아 특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중요 문화적 경관으로 선정하여 지원한다.

보호수법의 다양화로는 등록제도를 확충하는 방법이 포함되었다.  

정부, 지방, 문화재의 소유자가 연계, 협력하여

역사적 가치를 가진 향토의 경관이나 근대의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법률개정의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문화적 경관에 논, 밭, 초원, 삼림, 어장, 어항, 해변, 하천, 연못, 호수와 늪, 수로 등의 경관,

취락과 관련된 경관, 예부터 신앙 및 행락의 대상이 되어온 경관,

예부터 예술의 소재와 창조의 배경이 되어 온 경관, 독특한 기상에 의해서 나타나는 경관,

풍속 및 행사에 의해 만들어진 경관, 전통적 산업 및 생활을 보여주는 문화재 주변의 경관,

그리고 복수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일정 체계 하에서 유기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역 및

농 · 임 · 수산업의 각 경관이 조합된 경관 등 매우 넓은 범위의 문화재들이 신청에 의해 지정되고 있다.

 


문화적 경관의 시대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문화재과가 설치되고 등록문화재의 제도가 만들어져

그동안 많은 염려를 낳았던 근대문화재에 대한 본격적인 보호 제도를 확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경관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의 보호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장치나 제도는 매우 미흡하다.

현재는 문화재청의 사적명승국의 천연기념물과에서

명승의 개념 속에 문화적 경관 개념을 포함하고, 보호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명승의 발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2003년까지 명승 지정이 7건에 불과했으나, 현재 46건이 지정되어 그간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새롭게 지정된 명승에는 옛길, 다랑이논 등이 포함되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 준다.

 

 

남해 가천 다랑이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이다.(위)

순천만의 겨울 해수로모습(아래)

 

함양 계단식 농지 / 증도 태평염전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는 계단식 경지

증도태평염전은 증도와 그 옆 대초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형성된 간척지 462만㎡에서

매년 1만5천t의 천일염이 생산되는 국내 최대의 단일염전이다.

 

 

문화적 경관이라는 문화유산의 가장 큰 특징은 점적 개념이 아니라 면적 개념이라는 점,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의 산물이라는 점, 빼어난 자연미나 인공미가 아닌 생활유산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예부터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로서 역사적· 예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며,

빼어난 자연미와 함께 그 형성 과정에서 비롯된 고유성 · 희귀성 · 특수성이 큰 곳을 지칭하는 명승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도 다양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식물 · 동물 · 지질 · 지형 등 자연유산 전체와

명승 · 경관 관련 업무를 천연기념물과 1개 과에서 담당하고 있어

인력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과 일본은 문화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문화유산이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용어의 차이는 개념과 철학의 차이에 바탕 하지만 그 차이를 재생산하며,

대상의 인식에 차이를 가져 온다.

문화유산의 개념으로 문화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양보경 문화재위원,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
- 사진, 문화재청, 순천시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