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선암사)

Gijuzzang Dream 2008. 12. 9. 20:02

 

   

 

 

 

봄을 느끼러 선암사로 간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사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전남 순천의 선암사였다. 여행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을 갈 때마다

옆 동네의 송광사는 몇 번이나 갔으면서 선암사는 시간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매번 비켜가게 되었던 곳이라 더욱 아련하게 가보고 싶었는데 그 작은 소망을 이번 봄에 드디어 이루었다.

서울의 잔잔하고 싱거운 봄날이 너무도 아쉬워 남도의 진한 봄을 느끼고 싶어

4월의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을 뜨며 ‘그래, 무작정 떠나는거야’라며 결심했다.
2박 3일 짧은 여정 길에 제일 먼저 도착지로 정한 것이 순천 선암사였다.

봄은 ‘선암사’ 가을은 ‘송광사’라 하지 않는가.


작년 연말 직장을 그만두고 약간은 의기소침한 날들을 보내다가 이 푸른 봄볕이 눈이 부셔

나의 여행 단짝 친구 어머니와 함께 백수의 특권으로 무작정 봄날에 길을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태어난 곳,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했으니

햇살 맑은 봄날 선암사 해우소에 들러 한번쯤 실컷 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리라.

 

임권택 감독의 오래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마지막 감동과

<동승>의 세 스님 이야기가 반겨줄 것만 같은 선암사 그 길에 들어서면

우울해했던 시간들이 모두 봄바람에 날아갈 것이다.
멋들어진 아스팔트 포장이 사찰 입구까지 이어지며 편리한 건물에 옛 건물이 밀리고

호화로운 단청이 총천연색으로 치장되며 점점 현대화되어 가는 요즘 사찰의 모습에서

저만치 비켜 앉아 있는 것 같은 소박한 모습의 선암사는 나의 기대 이상이었고,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암사의 소박한 옛 모습이 남아있는 것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분쟁으로 말미암은 결과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美의 결정체 ‘승선교’

전남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 입구에서 작은 흙길을 한동안 걸어가다 보면 대규모의 부도밭을 지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돌다리 승선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돌다리 중에서 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홍예교, 무지개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사실 아쉽게도 지금의 승선교는 2002년 홍예교의 지반 붕괴 위험으로 보수공사에 들어가기 시작해서

2004년 복원공사를 마쳤기에 예전의 홍예석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교체된 홍예석들이 승선교 왼편에 복원안내 표지와 함께 돌무덤처럼 진열되어 있어

보수전의 홍예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암사 초입에서 푸르름과 함께 방문객을 반겨주는 무지개다리 승선교

2004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너무 노후되어 사용이 불가능한 홍예석을 전시해두고 있다.

 
조선 숙종 39년(1713) 호암대사가 쌓았다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는

그 이름처럼 속세에서 신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단박에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풍광이 아름답고 신비롭다.
다리의 모습은 아치형의 반원이지만

그 모습이 맑은 물에 비친 모습과 합쳐져 완전한 원형의 모습을 이루는데 가히 그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하다. 반원이기 때문에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개의 반원의 모습이 합쳐져 하나의 큰 원으로 합일되는 것이다.


또한 그 하단에서 승선교 뒤에 자리 잡은 강선루를 바라보는 모습은

무지개를 형상화하는 모습으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최상의 미가 바로 이곳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승선교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리라.

홍예다리 하단의 중앙에는 용머리의 조각이 달려 있는데

이 용머리를 떼어내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단다.

이 조각은 물길을 통해 들어오는 재앙이나 나쁜 악의 기운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승선교는 하나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는데

다른 시설의 받침 없이 오직 자연암반만으로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기에

큰 홍수가 나도 무너질 염려가 없는 튼튼한 기초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이 건축기술은 과학과 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선암사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우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절로 찬사가 나오는 것은 결코 나만의 감동은 아닐 것이다.

20년도 못 채우고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아픔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런 비극을 저 세상에서 지켜보며 우리 선조들께서는 혀를 차고 계시지는 않으실지….

날로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화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닐진대

우리는 빠르고 현대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이 곳 선암사 승선교에 앉아 모 광고에서처럼

잠시 휴대폰은 꺼두고 속세와 단절하며 며칠을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한동안은 고적함에 가슴이 훤해지겠지만 오랫 동안은 견디지 못하리라….

그것은 너무도 익숙하게 지내온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 생활이 몸에 배어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탓일 게다.

 

선암사에는 400년이 넘은 장고의 세월을 견디며 고매화(古梅花)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평소 느긋하게 즐기기를 좋아하던 내가 퇴사한 후 노심초사하며 ‘나답지 않다’라고 느끼며 지냈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아름다운 4월의 선암사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라면 급하게 가지 않으리란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이 잠시의 시간은

훗날 선암사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내 인생에 여유와 풍요를 선사할 것이리라 믿는다.
가슴에 벅찬 감동과 흥분을 가득 담고 선암사 경내를 나오며 승선교 입구에 서서 돌아보았다.

 

다시 방문했을 때 부디 다른 사찰이 현대적으로 변화해 가는 와중에도

순천의 선암사만은 옛 모습 그대로 단아하고 조금은 촌스런 모습을 유지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 글 · 송수미 /  사진 : 순천시청

- 2008-12-05,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