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부도(赤壁賦圖)
<적벽부도>, 작가 모름(傳 안견?), 15세기 중엽,
비단에 엷은 색, 161.3×102.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적벽도는 북송의 대표적인 문인 소식(蘇軾, 호는 동파東坡, 1036-1101)이
호북성 황주(黃州)의 서북 한천문 밖 적벽(赤壁)에서 뱃놀이를 하고 지은 <적벽부>를 표현한 그림이다.
당시 47세로 시화를 입어 황주에 귀양살이 중이던 소동파는
1082년 7월16일과 그 후 3개월 만인 10월15일,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적벽에서 뱃놀이하고 그 때마다 부(賦)를 지었다.
첫 번째 뱃놀이 때 지은 것을 <전 적벽부(前赤壁賦)>,
두 번째 뱃놀이 때 지은 것을 <후 적벽부(後赤壁賦)>라고 하는데
이 그림에 표현된 것은 '전적벽부(前赤壁賦)'이다.
그런데, '적벽(赤壁)'이라 하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호북성 황주에 있는 붉은 암벽이 강가에 깎아지른 듯 높이 솟아있는 곳으로
소동파가 배 띄워 노닐며 '적벽부'를 짓던 곳이고,
또 하나의 적벽은 삼국시대 吳나라 손권의 장군 주유와 유비의 연합군에게
魏나라 조조의 백만대군이 대패하여 곤욕을 당했던 이른바 적벽대전이 있었던 곳이다.
'적벽부'에서 소동파가 적벽에 노닐며 옛 영웅호걸들이 싸우던 고사를 회고하게 되는데
이것은 오로지 같은 이름 '적벽'에서 연유한 것 뿐이다.
이 '적벽부' 소재는 중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그려졌던 것이다.
15세기 화가 안견파 화풍으로 알려진 작품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그림으로,
오른쪽 암벽이 아래쪽을 향해 치우친 모습, 암벽에 가해진 준법과 섬세한 필선은
안견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그림은 적벽부의 내용 중에서
산들을 배경으로 근경에 배를 타고 소동파가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안견이 그린 것으로 오래 구전되어 온 것으로
북송 곽희(郭熙)계통의 화풍을 짙게 지니고 있다.
당시 화단에 있어 북송의 산수법을 이 정도로 소화해 낼 화가는
안견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든 실정이라고 주장되어 왔으나,
한편 전반적으로 인물의 묘사가 산수의 표현보다 훨씬 우수하여
이 작품은 산수화보다 인물화에 뛰어났던 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 확실시되어
이 작품이 안견의 작품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되어지고 있다.
이곳의 산들은 납작하며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안견파의 영향은 구도 및 공간처리, 수지법 등에 배어 있다.
또한 이 밖에도 명나라 절파의 개조인 대진(戴進)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15세기에 새롭게 파급되어온 절파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안견의 작품으로는 볼 수 없어도
15세기 화단의 또 다른 양상을 파악하는 데는 크게 참고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미술가>, 안휘준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의 대표화가, 현동자 안견', 사회평론, p53-55)
화면에 많은 균열과 탈락 부분이 있으나
전경(前景)의 선유(船遊) 중인 인물들을 압도하는 듯한 웅장한 산세 표현과 인물 묘사에 있어
고도의 필력이 나타나는 등 비록 안견이 그린 것인지의 여부와 별개로
상당한 기량과 격조를 갖춘 명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안견은 15세기 화원화가로 자는 가도(可度), 호는 현동자(玄洞子), 또는 주경(朱敬)이다.
중국 북송 곽희의 화북산수화풍을 토대로 여러 화풍을 종합, 절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으며,
그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16세기 안견파를 탄생시키는 등 조선 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적벽부(前赤壁賦) - 소식(蘇軾=蘇東坡)
壬戌之秋七月旣望에 蘇子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러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擧酒屬客하야 誦明月之詩하고 歌窈窕之章이러니,
少焉에 月出於東山之上하야 徘徊於斗牛之間하니,
白露는 橫江하고 水光은 接天이라.
임술(壬戌, 宋 신종 원풍 5년, 1082) 가을 7월 기망(旣望, ‘望’은 음력15일, ‘旣望’은 이미 지나간 望이니 음력 16일)에 소자(蘇子=蘇軾=蘇東坡)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니는데,
청풍은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는지라,
술을 들어 손[客]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읊으며
요조(窈窕 : <시경, 陳風>의 ‘月出’ 詩 구절로 아름답다는 의미)의 장(章)을 노래하노라니,
조금 있다가 달이 동산 위에 솟아올라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에서 배회하니,
백로(이슬)는 강물에 비껴 있고 물빛은 하늘에 닿아 있다.
縱一葦之所如하야 凌萬頃之茫然이러니,
浩浩乎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하고,
飄飄乎如遺世獨立하야 羽化而登仙이러라.
한 조각 작은 배를 가는 대로 맡겨 한없이 드넓은 강물 아득한 데를 넘어가노라니,
하도 넓고 커서 허공에 의지하고 바람을 탄 듯,
그 머무를 바를 모르는 듯하며,
두둥실 가벼이 떠올라 마치 세상을 잊고 홀로 선 채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오르는 듯하다.
於是에 飮酒樂甚하야 扣舷而歌之하니,
歌에 曰 ; 桂棹兮蘭槳으로 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渺渺兮余懷하여, 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이에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극하여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삿대로 맑은 달그림자를 치며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올라가도다.
아득하고도 아득하구나! 나의 생각이여!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다보니 하늘 저쪽에 있도다." 하였다.
客有吹洞簫者하야 倚歌而和之하니,
其聲이 嗚嗚然하여 如怨如慕하며,
如泣如訴하고, 餘音이 嫋嫋하야 不絶如縷하니,
舞幽壑之潛蛟하고, 泣孤舟之嫠婦라.
손[客] 가운데 퉁소 부는 사람이 있어 노래에 의하여 여기에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구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껴 우는 듯 하소연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냘프고 길게 이어져 끊이지 않는 것이 실과 같으니,
깊은 골짜기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 홀어미를 흐느끼게 할 만한 것이었다.
蘇子愀然하야 正襟危坐而問 客曰 ; 何爲其然也오?
소자(蘇軾)가 애처로운 듯 옷깃을 바로잡고 정좌하여 손[客]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그것이 그토록 그러한가?(어찌 그리 신통한 소리를 내는가)"
客曰 ; 月明星稀하고 烏鵲이 南飛라 하니,
此非曹孟德之詩乎아?
西望夏口하고, 東望武昌하니, 山川相繆하야 鬱乎蒼蒼이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아?
方其破荊州하고 下江陵하야 順流而東也에, 舳艫千里하고, 旌旗蔽空이라.
釃酒臨江하고 橫槊賦詩하니, 固一世之雄也러니 而今에 安在哉오?
況吾與子로 漁樵於江渚之上하고 侶魚鰕 而友麋鹿하며.
駕一葉之扁舟하야 擧匏樽以相屬하니, 寄蜉蝣於天地에, 渺滄海之一粟이라.
哀吾生之須臾하고 羨長江之無窮이라.
挾飛仙以遨遊하고 抱明月而長終이나, 知不可乎驟得일세 託遺響於悲風하노라.
손[客]이 말하기를
"달이 밝으매 별이 드물고(조조가 자신의 위세에 군웅이 자취를 감춘다는 뜻)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하니(유비가 패하여 달아남을 의미),
이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는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매,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나무들은 빽빽하여 푸르고 싱싱하다.
이곳은 맹덕이 주랑(周郞=주유)에게 곤욕을 본 곳이 아닌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형주)을 점령해 흐름을 따라 동으로 나아가니,
배와 배는 천리를 이었고, 군사들의 깃발은 하늘을 뒤덮었다.
술잔을 들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창(횡삭,橫槊 : 1장8척되는 창)을 눕히고 시를 지으니,
참말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내 그대와 함께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와 짝을 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조각 작은 조각배를 타고 술 뒤웅박을 들어 서로 권하니,
하루살이 목숨을 천지(天地)에 붙임 같고, 아득히 푸른 바다에 한 알 좁쌀이라.
우리 인생 잠깐임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노라.
날아다니는 신선을 끌어안고 마음껏 노닐고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 살다 죽으려 하나,
쉽게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새 여운을 슬픈 가을바람에 부쳐 보노라.”
蘇子曰 ; 客亦知夫水與月乎아?
逝者如斯로되 而未嘗往也며, 盈虛者如彼로되 而卒莫消長也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하면 則天地曾不能以一瞬이요,
自其不變者而觀之면 則物與我皆無盡어늘 而又何羨乎아?
且夫天地之間에 物各有主라, 苟非吾之所有인댄 雖一毫而莫取어니와,
惟江上之淸風과 與山間之明月은 耳得之而爲聲하고, 目寓之而成色하나니,
取之無禁이요, 用之不竭이라.
是造物者之無盡藏也요, 而吾與子之所共樂이니라.
소자(蘇軾) 말하였다.
"손[客]도 또한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이 이와 같지만 아직 일찍 가 버린 적이 없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지만 마침내 사라지거나 커지는 일이 없으니,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이것을 본다면 곧 천지도 일찍이 한순간도 그대로일 수 없고,
그 변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이것을 본다면 곧 물(事物)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거늘
또 무엇을 부러워할까 보냐?
또한 저 천지 사이에 만물은 각각 주인이 있는 것이라,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닐진대 비록 한 털끝만한 것이라도 취하지 말 것이며.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만은 귀에 들면 소리로 삼고,
눈에 담기면 색깔을 이루니, 취해도 금함이 없을 것이요, 써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이는 조물주의 무진장한 것이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다”
客喜而笑하고 洗盞更酌하니,
肴核旣盡하고 盃盤이 狼藉라.
相與枕藉乎舟中하니, 不知東方之旣白이러라.
손[客]이 기뻐서 웃으며 잔을 씻어 다시금 잔을 드니,
안주가 이미 다하고 잔과 접시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네.
서로 더불어 배 가운데 베개 베고 있으니, 동방이 이미 하얗게 샌 줄을 알지 못하더라.
- <고문진보(古文眞寶)> 後集, 황견 엮음, 이장우ㆍ우재호ㆍ박세욱 옮김,
을유문화사, 2003, pp 821-828
후적벽부(後赤壁賦) - 소식(蘇軾=蘇東坡)
是歲十月之望에 步自雪堂으로 將歸于臨皐할새,
二客이 從予하야 過黃泥之坂하니, 霜露旣降하고 木葉盡脫이라,
人影은 在地어늘, 仰見明月이라.
顧而樂之하고 行歌相答이라가,
已而歎曰 ; 有客이면 無酒요,
有酒면 無肴라 月白風淸한데 如此良夜에 何오?
客曰 ; 今者薄暮에, 擧網得魚한데, 巨口細鱗이 狀如松江之鱸라.
顧安所得酒乎아?
이 해 시월 보름에 설당(雪堂 : 소동파가 황주에 있을 때 지은 초당으로 네 벽에 눈 그림을 붙이고 이름 붙였다)에서부터 걸어서 장차 임고(臨臯亭 : 양자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황주의 정자로 소동파가 머물렀다)로 돌아가려 할새,
두 손님(한 사람은 양세창이라는 도사이나, 또 한사람은 알 수 없음)이 나를 따라와
함께 황니재(누런 진흙으로 된 산비탈)를 지나가게 되니,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려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린지라,
사람 그림자가 땅에 있거늘, 우러러 밝은 달을 쳐다보았다.
둘러보며 이를 즐기고 걸으면서 노래 불러 서로 화답하다가, 이윽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손[客]이 있으면 술이 없고, 술이 있으면 안주가 없으니
달은 밝고 바람은 맑은데 이같이 좋은 밤을 어찌할꼬!”
손[客]이 말하였다.
“오늘 땅거미 질 무렵, 그물을 들어 물고기를 얻었는데,
큰 입에 조그마한 비늘모양이 마치 송강(강소성에 있음)의 농어 같네.
생각건대 어디서 술을 얻을 곳이 있을까?”
歸而謀諸婦하니 婦曰 ; 我有斗酒하야,
藏之久矣라. 以待子不時之需러니라.
於是에 携酒與魚하야 復遊於赤壁之下하니,
江流는 有聲하고, 斷岸은 千尺이라.
山高月小하고 水落石出하니, 曾日月之幾何오? 而江山不可復識矣로다.
돌아가서 이것을 아내(소동파의 후취부인으로 王씨)와 상의하니 아내가 말하였다.
“제게 술 한 말이 있는데, 이것을 간직해 온 지가 오래요.
당신이 불시에 찾을 것을 기다렸던 것이라오.”
이에 술과 고기 안주를 가지고 다시금 적벽 아래에 노니,
강물 흐름에 소리가 있고, 깎아 세운 듯한 언덕이 천척이라.
산은 높고 달은 작고 물은 떨어져 돌이 드러나니,
그때로부터 日月이 얼마나 되었던가? 강산을 다시금 알아볼 수가 없구나!
予乃攝衣而上하야 履巉巖하고 披蒙茸하야, 踞虎豹하고 登虯龍하야,
攀棲鶻之危巢하고 俯馮夷之幽宮하니, 蓋二客之不能從焉이라.
劃然長嘯하니, 草木이 震動하고 山鳴谷應하며 風起水涌이라,
予亦悄然而悲하고 肅然而恐하야 凜乎其不可留也러라.
나는 옷자락을 걷어잡고 올라 높고 위태로운 바위를 밟고 어지러이 무성한 풀들을 헤치고서,
호랑이 표범 형상을 한 바위에 걸터앉거나 용(虯龍) 모양을 한 고목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매가 사는 위태로운 둥우리에 기어올라
풍이(馮夷 : 水神 이름)의 깊숙한 수궁(水宮)을 굽어보기도 하니,
거의 두 손[客]은 따르지 못하였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 큰소리를 질렀더니,
초목이 진동하고 산이 울고 골짜기가 응하며 바람이 일고 물이 솟구쳐 오르는지라,
내 다시 조용하다가 슬퍼지고 숙연해졌다가 두려워져서 오싹 얼어붙는 듯하여
거기에 머무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反而登舟하야 放乎中流하고 聽其所止而休焉하니,
時夜將半이요, 四顧寂寥한데, 適有孤鶴이 橫江東來하니,
翅如車輪하고 玄裳縞衣로, 戞然長鳴하며 掠予舟而西也라.
돌아와 배에 올라 흐름 가운데 던져놓고서 그것이 가든 말든 내버려두고 쉬니,
그때에 밤이 곧 깊어지는지라, 사방을 둘러보다오 적적하고 고요한데,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오니,
날개는 마치 수레바퀴와 같고 검은 치마와 흰 옷을 하고,
끼룩끼룩 소리 내어 길게 울며 내 배를 살짝 스치고서 서쪽으로 날아간다.
須臾에 客去하고 予亦就睡하니 夢一道士가 羽衣翩躚하고
過臨皐之下라가 揖予而言曰 ; 赤壁之遊樂乎아?
問其姓名하니, 俛而不答이라.
嗚呼噫嘻라! 我知之矣로다.
疇昔之夜에 飛鳴而過我者가 非子也耶아? 하니,
道士顧笑어늘 予亦驚悟하야 開戶視之하니, 不見其處러라.
잠시 뒤 손[客]은 가고 나 또한 잠이 들었더니 꿈에 한 도사가 새 깃옷을 펄럭이며
임고정 아래를 지나다가 들러 나에게 읍하고 말한다.
“적벽의 놀이가 즐거웠던가?”
그 성과 이름을 물으니, 구부리고서 대답을 안하는구나.
오오! 아아! 내 이를 알겠구나!
“어젯밤에 날아서 울면서 나를 스쳐 지나간 이가 그대가 아닌가”하고 물으니,
도사 다만 웃기만 하거늘 나도 또한 놀라 깨어서 문을 열고 이를 보니,
그 지나간 자취를 찾지 못하겠도다.
- <고문진보(古文眞寶)> 後集, 황견 엮음, 이장우ㆍ우재호ㆍ박세욱 옮김,
을유문화사, 2003, pp 829-834
- Mendelssohn, Songs without words Op.67 No.2 / Venetian Gondolier's Song '베네치아의 뱃노래(곤돌라송)'
- Murray Perahia ,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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