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간(空間)’ 열고 미술을 말하다
1972~1991 활동 공간화랑 재개관 박기원 씨 ‘마찰(Friction)’展 시작으로 |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01
박기원, ‘마찰(Friction)’, 철실, 가변크기, 2008
박기원의 '마찰(摩擦, Friction)'이라는 작품은 형식적 속성이나 그로부터 얻은 느낌들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조어한다. 가벼운 무게(Light weight), 파멸(Ruin), 수평(Level), 보온(Warmth), 부피(Volume)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마찰’은 실처럼 가는 금속(스테인레스 스틸)이 불규칙적으로 얽혀있는 상태로 전시장 바닥에 깔리는 작품이다. 공간화랑의 건축적 구조 내에서 없는 듯 존재하는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입던 옷을 빨아서 입는 느낌’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로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마찰’에 해당하는한자는 ‘문지를 마(摩)’와 ‘문지를 찰(擦)’ 인데, 문지른다는 의미를 중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감각적인 요소를 강조한 느낌을 준다. ‘마찰’에서 관객의 발이 작품에 ‘닿는다’는 물리적인 상황은 관객과 작품의 공존을 전제하고 있다. 관객은 작품과 맞닿아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작품과 관객 간의 이격(離隔)이 존재하지 않는, 가장 내밀한 환경에서 관객이 작품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추상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대상간의 ‘닿음’은 내밀한 감각적 체험의 차원에서 벗어나 갈등과 충돌의 부정적인 분위기로 접어들게 된다.
작품의 소재는 ‘마찰’이라는 단어의 중의적 속성을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 즉 피부에 부드럽게 와 닿는 이 작품의 실체는 매우 정밀하게 절개된 금속인데, 절개의 정도가 더해져 날카로운 상태의 금속면을 부드러운 촉감의 표면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과 금속으로서의 경성(傾性)의 조화는 잘 떨어지지 않는 어떤 얼룩 같은 것을 일거에 제거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역설적인 조화와 중의적 의미를 통해서 박기원은 어떤 독특한 분위기 속에 구체적인 표현을 더했다. 공간의 속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형성된 표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박기원은 매우 조용하고 내밀한 방법으로 온갖 종류의 마찰들을 슬며시 불러들인 것이다. - 전시도록 : 닿음과 부딪힘, 그 사이 어딘가 중에서 -
- 박기원의 메시지 고전적 형식을 거부하고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자체를 작품의 요소로 간주한다. 공간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공간 자체의 속성과 합쳐짐으로써, 관객의 인식의 스케일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어떤 ‘속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박기원이 가진 분명한 차별성이다. 어떤 공간에 조용히 개입하여 공간 본래의 어떤 ‘속성’과 ‘특징’을 읽어내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하여 그는 말한다. 공간의 물리적 속성의 변화는 곧 공간에 개입한 주체의 시각과 인식의 변화라는 것, 결국 그 공간에서 감지하는 것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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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옆에 자리한 ’공간(空間)’ 사옥 스페이스(SPACE)처럼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한 소박한 로망을 자극하는 건물이 또 있을까.
1971년 짓기 시작한 검은 벽돌 건물과 유리로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앤 90년대 ‘유리 큐브’가 조우하고, 가운데 마당의 한옥까지 끌어안으며 생명체처럼 자라온 공간 사옥은 말할 나위 없이 한국의 근대건축사 그 자체다(두 건물 사이 한옥은 원래 현대 소유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좋아하던 것을 회장이 고인이 된 뒤 공간에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건축사를 알지 않아도, 아무리 건축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콘크리트 빌딩들 사이에서 문득 담쟁이덩굴이 휘덮은 벽돌집이며, 빛나는 유리집인 공간 사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누군들 ‘저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다.
김수근, 장세양 두 천재가 지은 사옥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거장 중 한 사람인 김수근(1931~1986)이 벽돌로 본관을 짓고, 그의 제자 장세양(1947~1996)이 신관인 유리집을 지음으로써, 두 천재가 세대를 이어 지은 공간 사옥은 개관 이듬해인 1972년 이 건물 지하에 문을 연 공간화랑과 5년 후 들어선 소극장 공간사랑은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예술이 발 디딜 공간을 제공하며 수많은 젊은 예술인들을 배출했다. 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대안문화를 살아 있게 한 공간이기도 했다.
관제가 곧 주류 문화가 되어 모든 전시와 공연 공간을 차지하던 시절, 공간 사옥 안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유명하지 않은 작가와 비주류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도, '병신춤'의 춤꾼 공옥진이 세상에 나온 것도, 김금화의 굿이 무대화된 것도 공간사랑을 통해서였다. 황병기, 홍신자 등 ‘아방가르드’한 예술인들이 공연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80년대 초까지 척박한 시기에 공간 사옥은 상대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공간화랑 역시 당대 화단의 주요 작가들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며 미술의 흐름을 선도했다. 특히 김수근의 실험적인 건축 철학처럼 이곳에는 예술성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이 모였고, 박고석, 장욱진, 윤형근, 하종현 등이 공간화랑을 거치며 명성을 키웠다. 상업적 가치보다 예술성과 실험정신을 우선하면서 회화 뿐 아니라 조각, 판화, 사진, 민화 등 당시로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장르까지 아울렀다. 서서히 '공간'에서의 공연과 전시는 줄어들었고, 1990년대 들면서부터는 아예 맥이 끊겼다. 1991년 공간 사옥은 여전히 공간 그룹의 사옥인 채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상설적인 활동을 접었다. 미술관과 화랑, 대안공간들이 생겨났고, 첨단시설을 갖춘 공연장들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10월2일 공간화랑은 그 작은 문을 다시 열었다. 1992년 이후 정기적인 전시가 없었다고 하니16년만의 재개관이다.
“80년대 초까지 공간은 정말 굉장했죠. 과거의 영화를 되살려보자는 생각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왜 없었겠습니까. 시간문제였죠. 척박한 시절 예술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처럼, 할 일을 할 때가 있을 거다 생각했었죠. 지금이 그때라고 판단해서 지난해 재개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박성태, 공간그룹 상무, 월간 스페이스 편집장)
공간화랑 재개관 시점을 ‘지금’으로 결정한 건 투기자본까지 끌어들이는 미술계의 급속한 ‘상업화’였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 의미 있는 담론의 생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동시대 한국 미술의 흐름을 반추해 보고자 재개관 프로젝트 주제를 ‘담론의 구축’으로 결정했다. 재개관 프로젝트의 목표를 ‘담론의 구축’으로 설정한 공간화랑의 고원석 큐레이터도 “작가들의 발언은 많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만한 생산적 담론은 드물다. 이는 작가의 위기이자 정신의 위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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