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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사옥 '공간화랑' Gallery SPACE 다시 개관하다(10/2-11/16)

Gijuzzang Dream 2008. 10. 18. 12:40

 

 

 

 

 

  다시 ‘공간(空間)’ 열고 미술을 말하다 

 

1972~1991 활동 공간화랑 재개관

기원 씨 ‘마찰(Friction)’展 시작으로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01
책임기획 : 고원석
 

 

 박기원, ‘마찰(Friction)’, 철실, 가변크기, 2008

 

박기원의 '마찰(摩擦, Friction)'이라는 작품은

형식적 속성이나 그로부터 얻은 느낌들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조어한다. 

가벼운 무게(Light weight), 파멸(Ruin), 수평(Level), 보온(Warmth), 부피(Volume)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마찰’은 실처럼 가는 금속(스테인레스 스틸)이 불규칙적으로 얽혀있는 상태로

전시장 바닥에 깔리는 작품이다.

공간화랑의 건축적 구조 내에서 없는 듯 존재하는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입던 옷을 빨아서 입는 느낌’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로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마찰’이라는 단어는 물리적으로 두 물체가 서로 닿은 상태를 의미한다.

‘마찰’에 해당하는한자는 ‘문지를 마(摩)’와 ‘문지를 찰(擦)’ 인데,

문지른다는 의미를 중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감각적인 요소를 강조한 느낌을 준다. ‘마찰’에서 관객의 발이 작품에 ‘닿는다’는 물리적인 상황은

관객과 작품의 공존을 전제하고 있다.

관객은 작품과 맞닿아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작품과 관객 간의 이격(離隔)이 존재하지 않는, 가장 내밀한 환경에서 관객이 작품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마찰’이라는 단어는 의견이나 견해가 다른 주체간의 충돌을 가리키는

추상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대상간의 ‘닿음’은 내밀한 감각적 체험의 차원에서 벗어나 갈등과 충돌의 부정적인 분위기로 접어들게 된다.

 

작품의 소재는 ‘마찰’이라는 단어의 중의적 속성을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

즉 피부에 부드럽게 와 닿는 이 작품의 실체는 매우 정밀하게 절개된 금속인데,

절개의 정도가 더해져 날카로운 상태의 금속면을 부드러운 촉감의 표면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과 금속으로서의 경성(傾性)의 조화는 잘 떨어지지 않는 어떤 얼룩 같은 것을 일거에 제거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역설적인 조화와 중의적 의미를 통해서 박기원은 어떤 독특한 분위기 속에 구체적인 표현을 더했다. 공간의 속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형성된 표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박기원은 매우 조용하고 내밀한 방법으로 온갖 종류의 마찰들을 슬며시 불러들인 것이다.

- 전시도록 : 닿음과 부딪힘, 그 사이 어딘가 중에서 -

 

- 박기원의 메시지 
박기원의 작품은 유일성과 한정성을 가지고시 공간을 점유하는 미술작품의

고전적 형식을 거부하고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자체를 작품의 요소로 간주한다.

공간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공간 자체의 속성과 합쳐짐으로써,

관객의 인식의 스케일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어떤 ‘속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박기원이 가진 분명한 차별성이다.

어떤 공간에 조용히 개입하여 공간 본래의 어떤 ‘속성’과 ‘특징’을 읽어내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하여 그는 말한다.

공간의 물리적 속성의 변화는 곧 공간에 개입한 주체의 시각과 인식의 변화라는 것,

결국 그 공간에서 감지하는 것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마찰(Friction)’(위).

공간화랑이 재개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전시로 기획했다. 전시장 바닥에 철수세미를 설치한 작업이다.

신관에 해당하는 유리 큐브(아래).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연장한 이 건축물은 유리로 외관을 만든 초고층 건물이 흔한 지금도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옆에

자리한  ’공간(空間)’ 사옥 스페이스(SPACE)처럼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한 소박한 로망을 자극하는 건물이 또 있을까.

 

1971년 짓기 시작한 검은 벽돌 건물과 유리로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앤

90년대 ‘유리 큐브’가 조우하고,

가운데 마당의 한옥까지 끌어안으며 생명체처럼 자라온 공간 사옥은 말할 나위 없이 한국의 근대건축사 그 자체다(두 건물 사이 한옥은 원래 현대 소유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좋아하던 것을 회장이 고인이 된 뒤 공간에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건축사를 알지 않아도, 아무리 건축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콘크리트 빌딩들 사이에서 문득 담쟁이덩굴이 휘덮은 벽돌집이며,

빛나는 유리집인 공간 사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누군들 ‘저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다.

 

 

김수근, 장세양 두 천재가 지은 사옥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거장 중 한 사람인 김수근(1931~1986)이 벽돌로 본관을 짓고,

그의 제자 장세양(1947~1996)이 신관인 유리집을 지음으로써,

두 천재가 세대를 이어 지은 공간 사옥은

개관 이듬해인 1972년 이 건물 지하에 문을 연 공간화랑과

5년 후 들어선 소극장 공간사랑은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예술이

발 디딜 공간을 제공하며 수많은 젊은 예술인들을 배출했다.

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대안문화를 살아 있게 한 공간이기도 했다.

 

관제가 곧 주류 문화가 되어 모든 전시와 공연 공간을 차지하던 시절,

공간 사옥 안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유명하지 않은 작가와 비주류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도,

'병신춤'의 춤꾼 공옥진이 세상에 나온 것도, 김금화의 굿이 무대화된 것도

공간사랑을 통해서였다.

황병기, 홍신자 등 ‘아방가르드’한 예술인들이 공연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80년대 초까지 척박한 시기에 공간 사옥은 상대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공간화랑 역시 당대 화단의 주요 작가들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며 미술의 흐름을 선도했다.

특히 김수근의 실험적인 건축 철학처럼

이곳에는 예술성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이 모였고,

박고석, 장욱진, 윤형근, 하종현 등이 공간화랑을 거치며 명성을 키웠다.

상업적 가치보다 예술성과 실험정신을 우선하면서 회화 뿐 아니라

조각, 판화, 사진, 민화 등 당시로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장르까지 아울렀다.

그러나 김수근의 사망과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공간'에서의 공연과 전시는 줄어들었고,

1990년대 들면서부터는 아예 맥이 끊겼다.

1991년 공간 사옥은 여전히 공간 그룹의 사옥인 채

공간화랑과 공간극장은 상설적인 활동을 접었다.

미술관과 화랑, 대안공간들이 생겨났고,

첨단시설을 갖춘 공연장들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10월2일 공간화랑은 그 작은 문을 다시 열었다.

1992년 이후 정기적인 전시가 없었다고 하니16년만의 재개관이다.

 

“80년대 초까지 공간은 정말 굉장했죠.

과거의 영화를 되살려보자는 생각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왜 없었겠습니까.

시간문제였죠. 척박한 시절 예술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처럼,

할 일을 할 때가 있을 거다 생각했었죠.

지금이 그때라고 판단해서 지난해 재개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박성태, 공간그룹 상무, 월간 스페이스 편집장)

 

공간화랑 재개관 시점을 ‘지금’으로 결정한 건

투기자본까지 끌어들이는 미술계의 급속한 ‘상업화’였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 의미 있는 담론의 생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동시대 한국 미술의 흐름을 반추해 보고자 재개관 프로젝트 주제를 ‘담론의 구축’으로 결정했다.

재개관 프로젝트의 목표를 ‘담론의 구축’으로 설정한 공간화랑의 고원석 큐레이터도 “작가들의 발언은 많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만한 생산적 담론은 드물다.

이는 작가의 위기이자 정신의 위기”라고 말한다.

현대 사옥 옆에 자리한 공간 사옥.

김수근, 장세양 두 거장이 조우한 건축 걸작이자 척박한 시기 한국 문화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했다(위).

건축 거장들은 남의 소유였던 한옥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보호하듯 존중하듯 건축물을 지었다. 지금은 공간 사옥의 일부가 됐다(아래).

 

“90년대 초 포스트모던 담론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엔 어쨌든 작가적 담론이 활발하게 생산됐다. 그 담론에 뿌리내리고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물론 비영리로 운영되는, 대안공간의 대안공간이 될 것이다.”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90년대 초 ‘젊은 그들’이었던 작가들은 지금 40대 중후반이다.

공간화랑이 ‘중견’을 위한 공간이 되는 건 아닐까.

그는 “지금 30대 신진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잘 팔린다. 그 말은 어쩔 수 없이 자본에 종속된다는 얘기다. 미술은 이런 환경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간 인식 문제를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

 

공간화랑의 재개관전이

처음 선정한 작가는 박기원 씨다.

공간화랑의 재개관에 이보다 더 좋은 작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박기원(44)씨는 

공간의 속성과 결부된 작업을 해온 작가.  

 

1990년대 중반부터 공간의 속성과 결부된 요소적인 속성으로 전환되어

그의 작업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미니멀리즘을 확장한 것이다.

특별한 작가적 상상력과 치밀한 사전계획을 기반으로 매번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공간을 바꾸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옥 구조의 전시장 천장을 반투명 비닐로 덮어씌우기도 하고,

회색의 시멘트 벽에 유성바니쉬를 겹칠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먹을 먹인 무늬목으로 벽과 천장, 바닥을 뒤겊거나,

건물의 외형을 초록빛 반투명 재료로 둘러싸는 작품,

과거 고성(古城)이었던 미술관의 벽과 천장에 온통 산업용 그리스를 칠하고 비슷한 색의 에어매트를 바닥에 깔아놓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미술관 리움의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전에서

전시장 벽면에 누런 산업용 그리스를 칠하고 바닥에 에어매트를 까는 등,

색다른 소재와 기법의 공간 실험작업을 시도해왔으며

2006년 대학로 아르코미술관과 스페인 마드리드 라이나소피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우리가 늘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어딘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소재로 작업한다.

작품이 놓여질 공간을 보고 작품의 창작여부를 결정하는 박기원은

공간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분석한 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의 작품은 그 공간이 가진 속성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공간의 구조적 요소의 일부로 가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덮거나 쒸으기, 바닥에 놓거나 벽에 붙이는 행위들은 박기원의 작업이 가시화되는 보편적인 방법론이다. 

 

박기원은 조각의 기본적인 요소들-질감, 표면, 색, 부피감, 공간감- 을 사용하여

현재의 시공간을 추상적으로 변형시켜 놓고 또 다른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들은 공간과 경계의 의미를 다시 경험하게 하고

그 공간을 상상의 공간으로 다시 만든다.

 

박기원의 작품은 어떤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을 바라보거나 인식하는 방법을 전환시켰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무중력의 상태, 영(零)의 상태의 공간에 사람이 들어온다.

빈 공간과 사람의 사이에 없는 듯, 작품은 존재하게 된다.

관객은 산책하듯 공간을 돌아보고 나간다.

박기원의 작품은 '감상'하는 것이기보다는 '체험'을 하는 것에 더 가깝다.

특정한 시점과 공간을 점유하며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작품과 합쳐져 변화된 속성으로서의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원래의 구조와 느낌이 완전히 뒤바뀐 공간 속에 '존재'하게 된다.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작품은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박기원 씨는 공간화랑 바닥에

‘마찰’(Fric-tion, 11월16일까지) 이란 제목으로

전시공간 바닥에 실처럼 가는 스테인리스스틸이 불규칙하게 얽혀있는 작품.

 

실처럼 가느다란 금속이 불규칙하게 얽힌 채로 전시장 바닥에 깔렸다.
관객은 맨발로 작품에 맞닿는 경험을 통해 날카로운 철조각들이 매우 부드러우며,

어떤 얼룩을 제거하리란 기대를 갖거나 혹은 제거해야 한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없는 듯 독특한 공간을 이뤄내면서,

날카로운 금속이 정밀한 절개 과정을 거쳐 피부와 맞닿을 때

부드럽게 느껴지는 독특한 마찰 체험으로 이끈다.

’마찰’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전시 작품은

수세미 철실과 같은 재료를 바닥에 깔아놓는 형태로,

공간에 변형을 가하지 않되 공간 자체의 속성과 합쳐져

관객의 인식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작품이라고 한다.

 

 

‘마찰’은 이 가을에 열리는 국제적인 대가들과 화려한 신진작가들을 제치고

반드시 봐야 할 전시다.

또한 거대한 도시 가운데 개미집처럼 벽도 층수도 없이 지어진

김수근과 장세양의 공간 안에서 길을 잃는 경험도 꼭 해보길 권한다.

 

예전의 벽돌 벽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화랑 자체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이후 설치작가 김승영, 안기철 등의 전시를 내년까지 잇따라 개최한 후

전시작가들이 제기한 담론들을 모아 책도 출간한 계획이다.02)3670-3628

고원석 큐레이터는

“공간화랑은 설립 이후 지켜온 문화적인 정체성과 역할을 이어가면서

오늘날 빚어지는 과도한 속도와 부족한 사고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태 공간사 상무는 "문화가 지나치게 거대해지면서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전시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면서 말한다.

"1970년대 화랑에 이어 소극장을 열었듯이 공간사랑의 재개관도 검토하고 있다"고.

 

- 주간동아, 김민경 편집위원 holden@donga.com

- 2008.10.21 657호(p62~63)

- 경향, 문화, 조선, 한국일보 등 기사내용

- 공간화랑 Gallery SPACE  http://www.space-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