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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08년 9월5일 - 11월2일까지 <꾸밈과 갖춤의 예술, 장황> 특별전을 개최한다. 외교통상부의 '제2차 한, 중, 일 문화셔틀 사업'으로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물론 중국 북경 고궁박물원과 일본의 큐슈국립박물관 소장 문화재가 함께 전시된다. 이번 자리는 동아시아 삼국이 공유한 장황 예술의 전통이 각국의 특징을 고수하여, 각기 독특하게 발전하였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반적으로 ‘표구(表具)'라는 용어로 사용된 장황은 서화(書畵)와 서책(書冊)을 보존하고 장식하는 기술을 말한다. 삼국시대에는 서화미술과 기록 자료에 장황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이후 조선시대에 까지 이어졌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여러 가지 서화(書畵) · 서책(書冊) · 서지(書誌) 등의 장황이 실용성을 넘어 격조 높은 장식예술로 완성되었다.
이번 ‘장황’ 특별전은 서양식 장정(裝幀)에 익숙한 일반인들이 조선 왕실과 중국 청나라 황실 그리고 일본 근세 상류사회에서 제작 · 감상했던 서화 문화재를 통해 두루마리, 족자, 첩, 책, 병풍 등 전통 장황의 형식을 살펴봄으로써 동양 삼국의 전통 장황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 유물로는 국보 제131호 ‘이태조호적원본’, 보물 제931호 ‘조선태조어진’을 비롯하여 왕실의 책봉문서인 ‘교명(敎命)', 왕실족보인 ‘선원록’, 조선시대 왕들의 중요한 업적을 기록한 ‘국조보감’, 임금이 남긴 글과 글씨, 세계기록유산인 의궤 등 조선왕실에서 정성과 예를 다하여 만든 원형 그대로의 장황 문화재를 전시한다.
예술성이 돋보이는 보관상자가 함께 선보인다. 일본 유물로는 일본 특유의 장황 장식의 미를 보여주는 서화 족자, 서책을 비롯하여 일본 중요문화재인 ‘대마종가문서(對馬宗家文書)'를 엮은 두루마리가 전시된다.
- 장조왕세자 책봉교명, 조선, 1736년
?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한 교명[正祖敎命] 훈유문서(訓遺文書)이다. 왕비를 책봉할 때에는 교명과 책보(冊寶: 玉冊과 玉寶)를 내리며, 왕세자 이하를 책봉할 때에는 교명과 책인(冊印: 竹冊과 玉印 혹은 銀印)을 내린다. 교명의 내용은 그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 주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는다. 교명의 내용이 전사(傳寫)되어 전해지고 있는 책으로 『교명책문등록(敎命冊文謄錄)』·『봉세제교명죽책문(封世弟敎命竹冊文)』등이 있고, 책봉의식에 관해서는『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비롯하여 『책례도감의궤(冊禮都監儀軌)』등이 있다. <교명(敎命)> 대를 이을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일통(一統)의 도적(圖籍)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뭇사람들의 마음이 매여 있으므로 이에 큰 책임을 내린다. 이극(貳極, 왕세자)의 원자(元子, 맏아들)이고 총손(冢孫, 맏손자)이다. 인품은 천표(天表, 임금의 의용儀容)의 상서가 엉겨 있고 신과 사람의 소망에 참으로 합하였다. 성대하고 민첩한 칭예(稱譽, 일컬어지는 명예)를 강구하니 스승의 공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제왕의 대를 이으니 큰 복[洪祚]을 영원히 전하리로다. 어린 자질이 점차 장성하는 날을 기다리니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다. 소학(小學)에서 처음 가르치는 나이인 8세에 미쳐서 왕세손으로 책봉하는 의의를 생각한다. 너는 마땅히 어린 교육을 독실히 하여야 하니 아름다운 왕세손의 책명을 공경히 받을지어다. 진기한 놀음이나 물건을 물리치니 이목(耳目)이 부귀 · 명리(名利) · 물욕 따위[外物]에 부림을 당함이 없고, 경전(經傳)을 존중히 하니 좌우에 항상 바른 사람이 가까이 있다. 높은 곳을 오르는 데에는 아래로부터 시작하고, 타고난 지능(知能)은 반드시 넓혀서 완전하게 해야 하니, 뿌리를 북돋우어 가지에 사무치게 한다. 자손을 위한 좋은 계책[燕翼之謨]을 주노니 부귀 장수의 복을 축원한다. 내가 항상 깊은 못에 임한 듯 살얼음을 밟듯 두려워하였다. 누천 말씀의 훈계의 책이 더욱 밝게 전하니, 너는 그 조상의 이룩한 일을 이어받기를[堂構] 힘쓰기 바란다.
- 일본 쓰시마종가문서, 두루마리, 江戶, 18세기 오늘날 흔히 전통 서화를 꾸미는 작업을 ‘표구’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제시대 유입된 용어이다. 우리의 전통 장황에 대한 인식이 점차 사라져 장황 기술 대부분이 일본식으로 대체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전통 장황의 요소를 잘 보전하고 있는 유물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장황의 유구한 역사를 고증하고, 전통 장황의 명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살리는 것이 이번 특별전이 갖는 의미이다.
각국의 장황에 쓰인 비단의 쓰임과 부속구들을 눈여겨보면, 삼국이 선호하던 색감과 재질, 재료 등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어진 함
작가의 창작품에 소장자의 감식안과 장황사의 미적 기술이 보태져 비로소 서화 작품이 완성 된다. 따라서 시대적 미감을 반영한 장황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적 수준 또한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의 예술품 보존의 노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장황은 오늘날 고서화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조선시대 장황은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특히 조선왕실에서는 많은 서화 유물과 기록물들을 왕실의 격식과 법도에 맞게 꾸미고 갖추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장황의 기술과 취향을 선도해왔다. 임금은 왕실 기록물의 구체적인 장황의 방법까지 지시할 만큼 높은 식견을 가졌고, 과거 전례를 기준으로 법도에 맞춰서 전통을 이어왔다.
천연 염료로 염색하고 큼직한 문양을 짜 넣은 비단을 선호하고, 여러가지 종류의 종이를 사용했으며, 재질의 치밀함은 삼국 중에서 으뜸이었다. - 박윤희 학예연구사, 사진 제공(국립고궁박물관) - 월간문화재사랑, 2008-10-13 - 고종실록(高宗實錄) - 전시안내도록『국립고궁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2007)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장황(裝潢), 표구(表具)
서화(書畵)를 감상 또는 보존하기 위하여 종이나 비단 등을 써서 족자 · 액자 · 병풍으로 만드는 일.
표구는 일본의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원래는 장황(裝潢) 또는 배첩(褙貼)이라는 말을 썼다.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삼국시대 이래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 표구의 영향을 강력히 받았다. 표구는 형태에 따라 족자 · 액자 · 병풍으로 구분되는데 요즈음은 건축양식이 바뀜에 따라 액자 모양이 대부분이다.
액자 표구에서는 우선 비단을 마름질하고 서화를 배접하는데 배접은 2, 3번 하며 풀을 고루 먹여 잘 말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에 비단을 붙이며 이때 그림과 비단 사이에는 금선(金線)이나 색지(色紙)를 넣는다. 이것을 마련해둔 액자틀에 넣는다.
족자나 병풍의 표구도 같은 배접과정을 거치는데, 병풍은 여러 폭을 잇기 위해 삼베 · 비단 · 광목 따위로 돌쩌귀를 하며 족자는 반달과 축목을 붙이고 축머리를 끼워 맞춘 다음 장식과 족자 끈을 달아 완성한다.
1996년 표구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하였으며 기능 · 예능보유자에 김표영(金杓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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